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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언베뢰아특강79(20190118)

lks8284 2019. 1. 19. 09:02

190118환언특강(강석준집사님 정리)

 

 

마태복음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마태복음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마태복음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태복음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태복음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태복음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마태복음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복음중재로서의 이적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불행하게도 신앙을 찾지 못하고, 교리를 찾아간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종교인이 되는 것을 성공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 바깥에서는 활발했지만, 교회안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하다고 여긴다.

 

자기들은 그것이 겸손인줄 알지만, 개성도 없고, 오그라들어서 축처진 모습이다. 그럼에도 성령충만하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신자일 뿐이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는데, 구약은 1년에 한번만 읽고, 신약은 열번을 읽어야 한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집중적으로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계명도 주셨다. 하나님이 직접 다스렸다. 그 때 사람은 신정시대로 생각한다. 이스라엘에 따로 왕이 있지않고,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니 아주 엄숙하고 무섭다.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은 즉시 현장에서 돌로 쳐 죽였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백성의 명단에서 없애버렸다. 그것이 느슨해지다가 느헤미야 시대에 학자들이 많이 연구해보니, 자기들에게 왜 저주가 있는가를 찾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 다섯가지를 찾아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경히 여겼다. 세상 재물에 관심이 더 많고, 하나님의 성호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둘째는 안식일을 범했다. 안식일에는 사사로운 말을 해서도 안되고, 장사해서도 안되고, 엄숙해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일을 자신의 일반생활하듯이 무시했다.

 

셋째는 첫열매를 드리지 않았다.

 

 

사도 요한은 백세까지 살았지만, 야고보는 예수께서 죽으신후 몇달만에 죽었다.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린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마음에 우상을 가지고 있다. 목사를 존경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우상을 몰라서 하는 것이다. 우상은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스라엘 왕들은 거의 다 말년에 우상숭배를 했다. 처음에는 잘 하다가 그렇게 된다. 오랫동안 그렇다보니, 그것이 전통이 되고, 습성이 되어버렸다. 이런 것들을 놓고, 이스라엘이 저주받은 원인을 찾았다.

 

또,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하신다. 조상 때부터 그들이 저주받은 원인을 찾아냈다.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섬기는데, 신약성도하고 무엇이 다른가. 광야생활에서부터 모범된 일이 많지만, 그들 개인에게 어떤 이적이 있던가. 그들 개인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가 있던가. 모세와 선지자가 그렇게 열심히 해도 증표가 없었다.

 

침례 요한이 침례를 주므로, 율법과 선지자가 다 장사지냈다. 신약에 와서는 처음부터 예수는 나를 믿는 자는 나 하던 일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하셨다. 새 방언을 말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치리라 하셨다.

 

침례 요한이 옥에서 예수에게 제자를 보내어 오실분이 당신인지 물었다. 예수께서 본대로 말하라 하시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귀신이 쫓겨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전하라 하셨다. 예수의 복음은 이적과 함께 전파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구약신앙으로 이끌어간다. 그저, 엄숙하고 경건하기만 하다. 그들은 능력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다. 내게 능력이 나타났을 때, 교만하지 말라고, 겸손하라고 하고, 환상본 이야기를 하니, 환상이 다가 아니라고 했다. 어떤 병든 아이에게 기도해달라고 해서, 기도해 주었더니, 병이 나았다. 그랬더니, 그게 다가 아니라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과 말싸움하지 않고, 시무언하고 살았다.

 

그렇게 하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가나안 땅은 들어갔지만, 하늘나라는 들어가지 못했다. 구약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있지만, 그것은 영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신정시대를 말한다.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은 이 땅에서 다윗왕과 같은 왕이 와서 신정시대를 다시 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기다리라, 성령을 받으면 비로소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해야한다. 증거하려면 성령을 받고,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되고, 권능을 받으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수 있다.

 

오늘 은혜받았다고 말하지만, 예수 증거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르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목사가 되었지만, 설교거리가 없다. 처음 1년은 배우고 외운 것 가지고 하지만, 밑천이 떨어진다. 신학교 교수가 아예 2년이상 하기 어려우니, 교회를 옮겨야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내게 와서 설교거리 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들 나이 많고 목회를 오래한 사람이 많은데도, 모임이 있으면 꼭 내게 설교를 시켰다. 이는 내가 영감이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막내에게 심부름시키듯 한 것이다. 난 항상 설교할 거리가 있다.

 

자기가 목사지만, 알지 못하니까 말을 못한다.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말라, 성령께서 말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교회는 성령으로 능력이 있게 되어있다.

 

교회가 무능한 것은 성령으로 예수를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몰라도, 전도지 뿌리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예수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는 것은 성령으로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 것을 엄히 경계하시며 금하셨다. 오직 성령으로만 전하게 하셨다.

 

예전에 미국 교회를 갔었는데, 처음 TV로 설교를 방송한 교회였다. 거기는 구약성경을 아예 읽지 않고, 신약성경만 읽는다.

 

신약성도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하신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성령으로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게 교회다.

 

점잖으면 이 세상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이다. 점잖은 것이 신앙이 아니고,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앙이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는 침례를 통해 율법과 육에 속한 모든 정욕을 장사지내고, 성령으로 그리스도안에서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얼마나 훌륭한가. 그러나, 이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셨다. 가장 구약성경에 몰입된 그들에게 경고하신다. 그런 말을 듣고도 왜 다시 구약으로 매몰되려 하는가.

 

예수께서 이것이 신자다라고 정의를 내리셨으니, 그대로 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신유집회가 있는데, 우리는 주님이 일러주신대로 하자는 것이다.

 

복음은 말로 중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않고, 능력에 있다.

 

우리 신학교를 사도들을 길러내는 학교라고 말한다. 베뢰아아카데미도 사도적 신자를 만든다고 한다. 신학교도 다른 신학교 하듯 하면 절대로 부흥안된다. 성경대로 하라.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에 몰입해야한다. 순복음신학이 50년대 시작할 때, 아주 비참했다. 그래도, 거기는 방언해야 입학할 수 있었다. 지금은 큰 교단이 되었다.

 

바울은 내가 사도된 표는 오래참고,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행한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학교출신은 다른 곳에서 뭐라고 하든지, 표적과 기사를 행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그리스도인이다. 이적이 구름과 같이 복음을 싣고 간다. 신앙생활을 하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 성령받고 권능이 있어야 한다.

 

가정예배를 하면서도, 가족이 다 성령받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본문에서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려왔다. 예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받았다 하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네 죄사함받았다는 말에 반발한다. 하나님만 죄사하실 수 있는데, 감히 사람이 죄를 사한다고 하는가 수근수근댄다.

 

예수께서 그것을 아시고, 네 죄사함받았다는 말과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는 말이 어느것이 쉽겠는가 묻는다. 오늘 성경학자들이 이것을 난해라고 여긴다.

 

모세가 가르쳐준 율법가운데 죄는 전부가 육체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육체끼리 대적하는 윤리와 도덕을 말한다. 영적인 것이 아니라, 전부 육체의 예법이다.

 

모세가 이제까지 가르쳤던,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침례받고 끝이나고, 성령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가르친다. 우리 신앙생활이 모세의 제자냐, 성령의 제자냐하는 것이다.

 

모세의 제자면, 자기 육체로 행한 모든 품행을 죄로 생각할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해서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다.

 

물위로 걸으시는 예수를 보고, 베드로가 당신이 나의 주시면 나를 오라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오라하신다. 베드로가 그대로 물에 뛰어들어 걸어갔다. 걸어가다가 의심하니까 다시 빠져버린다. 하나님의 명령이면 정말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기 어렵다.

 

주님의 손에 올려놓으니, 오병이어의 이적이 일어난다. 죄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 죄다.  의심하는 순간에 이제까지 수고한 것이 헛되게 되어버릴 수 있다. 모세가 가르쳐준 죄와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도덕과 윤리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오늘 신자들이 그저 깨끗이 살려고 한다. 죄 안질려고 사는 것이 은혜받는 삶이 아니고, 죄를 용서받는 것이 은혜받는 삶이다. 육체에 관한 것은 먼지 터는 것과 똑같다. 예수께서 일러준 말로 인해 깨끗해 졌다.

 

율법이 강한 사람은 아무리 주님의 은혜가 강해도 자유를 얻지 못한다. 율법에 눈이 가리워서 절대로 주의 은혜가 보이지 않는다. 윤리, 도덕적인 죄는 얼마든지 사함받을 수 있다. 율법이 말하는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다. 예수께서 다 담당하셨다. 예수를 믿지 않아서, 자기가 죄를 갖고 있는 것이지, 예수를 믿으면 자기가 죄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침례로 육체의 사람은 죽었다. 우리는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 영혼아 예수 믿자

 

 

믿지 않는 것이 죄다. 의인은 이 땅에 오직 예수 뿐이다. 자기가 의인되려고 하면 망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부처되려고 일생 몸부림친다. 안되는 것이다. 석가모니도 못 깨달았는데, 누가 깨달을 수 있는가.

 

죄를 회개하라고 하니까, 예전에 잘못한 것 생각하면서 쥐어짜낸다. 바리새인들이 꼭 그렇게 했다.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병도 낫고,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내가 예수 믿고, 자범죄를 지었어도, 그 죄가 당신을 넘어뜨릴 수 없다. 당신은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에 참예하고, 능력을 맛보고 타락하면 회개가 안된다.

 

예수를 안믿는 것이 죄다. 예수 믿고, 윤리, 도덕적인 죄를 지었다해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밤낮 간구하시는 보혜사가 계시다. 곧 예수 그리스도다. 이미 주님께서 담당하셨으니, 오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예전에 베뢰아아카데미를 했다는 사람들이 수양회를 한다면서, 종이에 예전의 죄를 다 적으라고 하고, 그것을 촛불에 태우고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사단적이다.

 

우리가 성령받은 것은 죄를 도말했다는 증표를 가진 것이다. 어떤 유혹이 와도, 끝까지 예수의 피만 증거해야한다.

 

회개해야 병낫는다고 하니, 종이쪼가리에 자기 죄를 적지 말고, 예전 죄를 기억하지 말고, 오직 믿지않는 죄를 회개하라.

 

 

그래서, 네 죄사함받았다는 말과 병나으라는 말중 어느것이 쉽겠는가. 어느것도 쉽지 않다. 죄사함받지 않으면 침상들고 갈 수 없다. 죄는 영적이고, 침상들고 가는 것은 육체를 말한다. 육체의 일로 인해서 영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일이 해결되야, 육체가 잘된다.

 

육체를 위해 아무리 많이 쌓아놔도, 영이 떠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병이 나으라는 것은 육체를 위한 것이고, 죄사함받으라는 것은 영을 위한 것이다.

 

율법은 영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저 육체의 예법일 뿐이다.

 

죄의 문제는 육신의 도덕과 관련하지 말라.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케 하셨다. 속죄소에서 날개로 덮어주신다. 문제는 예수를 믿느냐, 안믿느냐.

 

 

그는 하나님이시다.

 

 

네 죄사함받았다 하는 말과 병나으라는 말은 둘 다 쉽지 않다. 그러나, 죄사함받았는가 하는 말은 육체가 죄사함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죄사함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죄사함받으면 병도 낫는다.

 

내가 죄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하려한다 하신 것은 내가 하나님이다 하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의심하고, 불충성하고, 불신앙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자.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고 굉장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 죄와 병의 문제 둘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고, 어느것도 쉽지 않지만, 순서가 있다. 죄사함받아야 병 고침을 받는다.

 

 

천지창조를 하실 때, 흑암이 깊음위에 있다고 하셨다. 흑암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고, 낮과 밤을 나누셨다. 우주안에 빛과 어둠이 같이 있다. 물과 물이 나뉘어, 우주의 벽이 물로 되어있고, 그 안에 흙덩이가 뭉쳐있다. 우주가 영계가 아니다. 우주는 음부다.

 

흑암에서 빛과 어둠이 나뉘듯, 우주안에 선과 악, 삶과 죽음이 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전부가 상대를 이루고 있다. 갈등이 있다. 덩굴이 얽혀있듯 하고 있다. 하나도 완전한 것이 없다.

 

우주안에는 처음 창조하실 때부터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인생속에 빛과 어둠을 갖고 산다. 아무리 출세하려고 해도 얼마간 잘되었다가 또 망한다. 오래가는 것이 없다. 끝없이 갈등한다. 우리 속에 육체와 영이 끝없이 충돌한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하는가.

 

우주안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본래 행복은 하나님의 행복이라는 뜻이다. 이 땅의 행복은 시한적이고, 행복이 끝나면 불행이 온다. 이 땅에서 돈 벌어서 행복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반드시 저주와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 나라를 세워도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일용할 양식만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별이 없다. 이 땅의 사랑은 추억이 있다. 추억은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꿈이 다 없어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이다. 평강은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병도, 사망도, 불행도, 저주도 없다. 그것은 우주안에 있지 않고, 우주 바깥에 있다.

 

이 땅에서 성공하려고 하면, 실패도 오고, 돈을 벌면, 잃어버릴 때도 있다.

 

이 땅에는 죽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죽음을 맛보러 오셨다.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려고 성령이 임하셨다. 우리가 성령받은 것은 우리도 예수처럼 부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성령을 의지하는가. 돈이 있어야 먹고산다고만 생각한다.

 

아담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와는 산자의 어미, 생령, 영원한 것이다. 교회를 여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진리를 공급받아 사는 것이다. 거기만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원한 사랑이 있고, 영원한 행복이 있다.

 

우주 안에서는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다. 종교는 하늘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