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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언베뢰아특강90(190419)

lks8284 2019. 4. 20. 00:20

190419환언특강(강석준집사님 정리)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복음중재로서의 예배 1

 

사람들이 예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허송세월하는 사람이 많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무렵 엘리사가 열심히 따라다녔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자기를 데려가는 것을 엘리사가 눈으로 보면 갑절의 영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

엘리사는 아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엘리야가 가는 곳마다 따라갔다.

어느순간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의해 올라가고 겉옷만 떨어졌다.

엘리사는 그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이 어디있습니까 했다.

그랬더니 강이 갈라졌다.

엘리사는 그 다음부터 엘리야보다 더 많은 이적을 행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인을 멸했지만, 엘리사는 더 큰 일을 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 사람은 엘리야와 엘리사 뿐이다.

이와같이 시무언에게 주신 영감을 받으려고, 금요일에도 오고, 주일에도 오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원래 시기, 질투가 많아서 한국에서는 대접받기 힘들다.

시무언이 60년간 일한만큼 일하고, 가르친만큼 행한 사람이 2천년간도 거의 없었다.

아브라함부터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엘리야가 능력이 있었는데, 그 엘리야가 하늘에 가는 것을 보면 능력을 얻으리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안 오니까, 타락하고, 게으름피다가 신랑이 오니까 늦어서 문이 닫혀버렸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엘리사처럼 얻으려고 따라다녀야 한다.

그 영감을 받아서, 자기도 똑같은 능력있는 지도자가 되려고 해야한다.

시무언이 떠난 다음에도 이제까지 듣고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제자들이 나가서 역사할 때, 함께 역사하사 따르는 표적으로 그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신다.

들은 말씀을 가르치고, 역사하면 이적이 나타난다.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시무언이 떠난 후에라도, 제2의 시무언이 되리라 결심하라.

간절해야 한다.

여러분이 지도자가 될 가망도 없고, 열망도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지도자가 될 사람이 나오리라는 기대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이다.

부흥회 참석하듯 하지말고, 엘리사처럼 엘리야의 뒤를 이으려는 사명감을 가지라.

 

복음중재로서의 예배

 

중요한 것일수록 나중에 나온다.

기초가 되어야 고등과정을 말할 수 있다.

들어도 멍하면 가르치는 사람도 심난하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으면 예배를 드린다.

주일날 교회나오라고 한다.

교회 나와서 예배 드리라는 것이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므로써, 교회 나온다고 하고, 교회 등록을 한다.

69년부터 우리 교회 등록인원은 18만명이다.

이제 남아있는 인원은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예배에 참석했다가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다.

산업화로 인한 이동인구가 많아서 그렇기도하다.

개척할 때, 이 지역은 판자촌이 많았다.

그 때 교회 나온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람들이 화재를 당하고, 수해를 당했다.

그 사람들이 갈 때가 없으니, 시에서 성남이나 이런 곳으로 보냈다.

이백명이 순간에 사라져 교회가 텅비었다.

그 중에서 끝까지 머문 사람도 있다.

지도자로서 첫번 신앙생활의 경험은 예배다.

아무것도 몰라도, 경험이 없어도, 예배에 참석한다.

참석하여 분위기를 알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설교듣고, 축복받고 간다.

우리 교회 예배 순서는 다른 교회와는 다르다.

나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예배순서지를 만들면서 11번을 고쳤다.

한번에 고치면 사람들이 어려워할까봐 조금씩 고쳤다.

우리교회에서 예배드리다가 다른 교회가면 헷갈릴 수 있다.

우리 교회는 매끄럽게 순서가 흘러간다.

다른교회는 사회가 순서를 하나하나 인도해야 한다.

예배순서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리를 따라서 맞추어서 한 것이다.

어떻하면 하나님과 우리가 교통할 수 있는가.

우리 교회 예배순서는 자랑해도 될만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

회개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신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예배는 산제사다.

구약에서는 예배라는 말이 한번이나 두번 나온다.

구약의 예배는 제사라고 한다.

제사와 예배는 갖추는 격식은 유사하지만, 전혀 뜻은 다르다.

제사는 희생을 드리는 것이다.

제사는 아직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옛사람들(죽은 자들)이 죽은 제물을 가지고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우상숭배와 유사하다.

다른 종교의 경건한 모임과 의식과 비슷하다.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곧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다.

성경에서 뭐가 아닌지 많이 갈라놨다.

너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제사는 이미 죽은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예수의 피는 생명이다. 그 피는 살아계신 분의 피다.

산제사는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드리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와 피는 유사하지만, 구약은 죽은 제사다.

오늘 기독교인의 예배는 산제사다. 산제사가 영적 예배다.

 

내 영혼아 영적 예배를 드리자.

영적예배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날 계시가 있다.

안식후 첫날 주의 날에 계시가 있는 것이다.

이 날은 떡을 떼는 날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예수의 하신 일을 교회에서 듣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듣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고 믿으려고 하는데, 본 자들의 말을 귀로 듣고 믿는 것이다.

율법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의 복음을 믿음이라고 한다.

구약 때는 믿음이 없다. 제사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신약에서만 말하는 것이다.

예수로부터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한복음 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한복음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구약은 창조사, 이스라엘의 건국사, 이스라엘의 종교사로 이루어져있다.

집을 지으려면 집터가 있어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시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것이 믿음의 반석이다.

 

고린도전서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고린도전서 3:11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고린도전서 3: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린도전서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린도전서 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자기 공력이 없는 구원은 상이 없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집터를 마련해준 것이다.

그 터 위에 각각 자기 영혼을 건설하는 것이다.

육신을 떠난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숨이 끊어지는 동시에, 낙원으로 갈 자와 심판받을 자와 심판받은 자로 나뉜다.

또 부활이 없는 구원을 받을 자들이 있다.

기도하여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주고, 영이나 구원받게 할 자가 그런 자들이다.

그냥 안심하고 있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만이 영생에 들어간다.

은혜받고 타락하면 영이나 구원받는 가장 낮은 구원을 받는다.

자기의 의로 낙원에 들어갈 자는 하나도 없다.

백프로 은혜로만 들어간다.

누가 은혜받는가.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 하셨다.

요한의 제자들도 오실 이가 당신이냐고 물을 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 하셨다.

가난은 물질의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푸토코스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무력한 자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이라니까, 교회가 가난한 사람 도와줘야하고, 구제안한다고 비방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억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은혜갚기 위해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상주심을 바라는 것이다.

구원과 상은 다르다.

바울은 부활의 푯대를 향해 상을 보고 간다고 했다.

교회 다니다가 실망해서 나 안가하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다시는 회복이 어렵다.

우리는 처음 은혜받았을 때, 어떤 경우가 와도 넘어지지 않고, 계속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예수의 율법에는 꼼짝없이 잡힌 것이다.

성령을 거역하면, 훼방하면, 영원히 사함이 없다.

나는 설교할 때, 벽돌 쌓듯이 차근차근 한다.

어떨 때는 일년치를 설교요지를 만들어놓고도 한다.

일생 나는 설교에 대한 근심을 해 본적이 없다.

내가 해야할 일을 알기 때문이다.

예배에서 우리 신앙이 자란다.

예배에서 한번만 타락하면, 그 다음부터 그런 영적 예배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의식으로만 여긴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이다. 회복이 안된다.

충만한 자를 더 충만케 하시지만, 한번 타락하면 다시는 새롭게 하여 회개케할 수 없다.

예배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주려고 하시는 것이 충만하다.

예배시간에 설교듣고, 믿음이 생기지 않는가.

각오도 생기고, 결단도 생긴다.

성경에 원수앞에 상을 베푸시고 하는 말이 있다.

여기 상은 밥상을 말한다.

임금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말한다.

멸망할 자를 임금이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하면 그 다음부터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

예배가 그런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배드리려고, 일찍와서 맨앞에 앉아 있다.

자기 영혼을 어떻게 위하고, 어떻게 학대하는가.

예배를 통해 어떤 복음이 내 영혼에 들어오는가.

임마누엘, 침례, 부활이 진리의 세기둥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아들과 다 연관이 있는 것이다.

만물이 자연계시, 율법이나 선지자가 일반계시, 예수가 특별계시다.

 

창조역사

창세기1장부터 11장을 신화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이는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이다.

천지창조의 의미는 아들을 후사로 세우시고, 아들을 위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세계가 지은 것을 아는 것이다.(히11:2)

창조된 세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날 수 없다.

창조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실존을 우리가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실존을 확신하는 것이다.

 

종교역사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하셨는데, 마귀는 안죽는다고 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다.

마귀는 진리가 없으므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선악과를 먹고 타락함으로써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까지 온다.

종교사가 예수를 죽는 길까지 안내하고 있다.

 

건국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셨다.

태초부터 때와 기한을 작정하셨다.

구원을 작정하신 것이 아니다.

기름부음은 작정한 자에게 하는 것이다.

예언하신대로 이루신다.

예수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작정대로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는 형벌을 받는데, 빌라도가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형벌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시대를 잘못만난 것이 아니다.

창3:16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 하실 때, 이미 작정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백성이 되어 나왔다.

이들에게 약속된 땅을 주셨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중,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파가 모여서 이스라엘을 만들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왕국으로 나뉘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400년전에 왕국이 멸망했다.

만약 지속되었으면 예수도 왕이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예수는 이스라엘의 법에 의해 정죄받는다.

그러면, 예수는 이스라엘의 구주는 될 수 있어도, 온세계의 구주가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끝나고, 헬라가 지배했다가, 로마가 지배했다.

로마는 그 지역전체를 다스리는 큰 제국이다. 말하자면 세계다.

로마법에 의해서 예수가 죽으셨다.

제사장들이 예수를 로마법정에 넘겨서 죽여달라고 하였다.

그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려서 죽게 하였다.

예수는 유대왕에 의해서가 아니라, 로마에 의해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은 세계를 위한 죽음이 된 것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율법의 정죄를 받아서 오늘까지 왔다.

예수는 가장 적은 나라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그러나, 예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만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온세계를 위해서 죽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건국사는 하나님이 태초부터 작정하신 것을 말한다.

예수의 죽음도 작정된 대로 가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할 곳이 벧엘이 있다고 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을 초월해서, 예수로 인해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구원은 유대에게서 나온다. 작정된 것을 말씀하신다.

 

침례는 죄인인 인간이 의로우신 하나님과 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예배는 의로우신 하나님과 구원받은 우리의 영이 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침례와 똑같다.

일주일간 세상사람과 어울려서 살아간다. 그래도 주일날은 세상사람과 분리되어 예배드린다.

우리가 영이 아니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예배는 영으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침례받은 이후 끝없이 하나님과 연합한다. 가장 이를 잘 나타내는 것이 예배다.

침례 안받은 사람은 예배를 참석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여한 자와 같다.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로 옷입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침례받았기 때문에 예배참석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침례받은 자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배에 참여한 자가 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충만해진다.

침례는 단한번 받아서, 옛날 잃어버려도 좋을 추억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이다.

 

내 영혼아 신령한 예배를 드리자.

 

침례는 추억이 아니고, 현실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내가 연합하는 것이다.

 

침례를 추억으로 버리고 간 자가 얼마나 많은가.

침례가 추억이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의 현실이라는 것을 영원히 명심하라.

 

내 영혼아 영으로 예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