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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0 바벨탑의 교훈(20190512))

lks8284 2019. 5. 13. 01:38

주일예배설교 ‘바벨탑의 교훈’ – 김기동 목사님

[창세기 11:1~9](배경동집사님 정리)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살리시고, 호흡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시고, 영적으로 윤택하게 하시려고 성령과 진리를 우리에게 주셔서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창조하셨는데, 모든 만물은 다 각각 그들의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만은 자기 모양이 없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 그 사람들로 땅에 충만하도록 복을 빌어 주셔서 인류가 땅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땅에 충만할 때 아담과 하와를 불러 내셔서 생령이 되게 하시고, 생령이 되지 못한 네피림은 홍수로 지면에서 모두 쓸어 버리셨다. 영이 없는 인간을, 외모로는 형상과 모양이 같지만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영이 없는 네피림을 쓸어 버리시고 영적인 사람을 만드셔서 하나님과 대화도 되고, 뜻도 이해하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생령이 되게 하셨다.

 

네피림과 생령에 대한 하나님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네피림이 땅에 충만한 것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그 중에 하나를 택하사 생령이 되게 하시니, 생령을 통해 지구상의 인류가 충만하기를 바라신다. 그 충만한 중에서 훌륭한 사람을 또 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들어오실 때 잉태하고 해산하는 고통과 수고를 잘 맡을 수 있도록 하셨다. 영이 죽은 사람과 네피림은 똑같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영이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영이 있으나 마나이다. 이들과 네피림이 똑같다. 그러나 네피림은 사후 존재가 없지만 지금의 불신자는 사후에 그들이 받을 영원한 저주가 있다. 우리가 영적 존재로써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먼저는 영이 살기 원하신다. 영이 없는 땅에 충만했던 사람 중에 하나를 데려다가 생령이 되게 하신 것처럼, 지금 영이 죽어 있으나 마나한, 그러나 사후에 책임져야 할 형벌 받아야 할 인간을 살리기 위해 예수를 보내어, 예수를 피 흘리게 하셔서 영이 살아나게 하셨다. 그리고 그 영이 산 사람들이 땅에 다시 충만하기를 원하신다. 인간의 요구나 발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 하심이다.

 

세상은 인간의 지혜와 지능으로 많이 진보되어 나간다. 석기시대를 떠나 철기를 만들고, 악기를 다루고, 문화를 즐기고 진보해 나간다. 홍수가 있었을 때 네피림이 있었고 당시의 유명한 자들이라 했다. 이는 문명인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인간의 전통처럼 유전되어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다른 짐승들은 발전이 없다. 물론 진화하였다 하지만 이는 생존에 대한 몸부림이었고, 인간은 그 이상의, 인류를 지배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실망함은, 노아 홍수 뒤 다시 인류가 충만해졌다. 노아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대로 방주를 지어 구원받았다.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인류가 번창할 때, 인류가 무엇을 하는지 내려다 보셨다.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노아와 삼부자가 이룬 것 같이, 오직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방주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대대손손 유전될 줄 알았으나 사람들이 탑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만들었다. 벽돌을 쌓아 자꾸 높인다. 높게 쌓아 다시 홍수가 오면 모여들자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높은 탑을 쌓았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고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하여 탑을 쌓아 하늘을 찌르게 하자, 하늘을 찔러 하나님을 대적하자는 생각이었다. 인간의 교만과 인간의 상식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에 이르고, 하나님의 사심을 부정하고 인간이 주인이다 하여 탑을 쌓았다. 이것이 인본주의이다. 하나님이 원인을 판단하시니 구음이 하나이다. 인간은 다양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온 인류를 창조하신 것처럼, 만유를 다 이름 짓고 다스릴 수 있는 구음을 가지고 있다. 이 땅에 퍼져야 할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다. 그래서 저들이 탑을 쌓는 것은 구음과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한 목소리로 불러 모으고 리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을 쌓자고 다함께 합의하여 정성을 다하여 인류가 다 성을 쌓는데 힘을 합하였다.

 

하나님이 자기들의 의지, 자기들의 생각, 자기들의 지혜, 자기들의 뜻을 모아 이루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도록 영적 존재를 만들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인간의 의지와 지식이 합해져, 통일되어 하나님이 없어도 구원받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래서 흩으리라,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그러니 모이자 하면 흩어지고 이전 같지 않아 각자가 흩어졌다. 그래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는데, 아이들 응얼대는 소리를 뻐쁠이라 한다. 소리를 내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것, 언어가 완전히 분해된 것을 말한다. 완전히 바스락 깨져버린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언어를 혼잡게 하셔서 그들의 뜻과 지식과 용기를 합하여 무엇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대결하는 것이다. 바벨탑 경영은 인본주의의 표상이다. 인본주의의 상징이다. 그들의 구음과 언어가 하나이므로 마음과 힘을 합하여 탑을 쌓았다. 하나님이 이를 보고 놀라셔서 훼방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투표하여 대통령, 회장 등을 뽑아 잘 모인다. 하나님이 없어도 잘 모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랜 시간 지나며 발전하여, 여론을 일으켜 회의하여 합의하여 일을 한다. 나라도 국회에서 합의한다. 모든 것을 합의해서 행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렇게 할지라도, 교회는 그리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사람들이 합의해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에클레시아, 하나님이 부르셔서 순종하여 모였다는 뜻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피로 산 자를 모아 택했다 해서 에클레시아라 한다. 하나님이 모으신 것이지, 사람들이 의견을 모은 것이 교회가 아니다. 그런데 목사가 독재한다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 목사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집행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이다. 교회는 예수의 몸이다. 배가 고프지만 먹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머리이다. 이처럼 교회의 머리는 예수이다. 그 분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해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웅성대고 반항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지금은 자기가 강한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님 앞에 서서는 주님이 그 사람을 부정하신다. 우리 신앙은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내 뜻은 신념이다.

 

시무언은 지난 60년간 핍박을 받아 굳어진 상태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하니 담대한 것이다. 설교자로서는 가장 무섭고 결단 있는 것으로 한 것이 지난 설교다.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만을, 아들과 성령의 뜻이 있지만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아들이 피 흘리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니 삼위가 일체, 뜻이 하나이다. 다윗이 성전 짓기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전쟁이 네 의무다, 네가 피 흘리는 일로 끝날 것이다 하시고, 성전 짓는 일은 피 흘리지 않으니 아들인 솔로몬에게 성전 짓는 일을 맡기셨다. 성전 짓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몸부림쳤는가? 지금도 예루살렘에 보면 그 돌을 어떻게 옮겨오고 올렸는지 말이 안 된다. 왕의 명령이니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다. 백성들이 헌신하고 어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성전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두기 위해 성전을 지으라 하셔서 지은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이름을 가장 기뻐하고 행복해 하신다. 그 복이 하나님의 이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행복의 이름이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의 부속 건물을 완성하지 못했다. 르호보암이라는 아들이 그것을 계속했다. 솔로몬 왕 때 백성이 많은 고통을 당하고 힘들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죽고 나서 르호보암이 왕이 되고 그대로 하나님을 우선으로 하니 백성들이 불만하였다. 솔로몬 왕에 대항할 수 없어 참았지만 그 아들도 계속 하니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적당히 하라고 하니 왕이 전갈로 더 엄하게 하여 완성할 것이다 하였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10지파의 불만을 들었다. 그들의 마음을 합하여 부탁하고 왕이 거절하니 10지파를 데리고 나가 이스라엘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나라를 세워 벧엘에 갔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빼낼 수 없으니 성전을 짓고 금송아지, 황금 우상을 만들었다. 인본주의의 극치는 우상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속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들이 바벨론에게 먼저 망하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벧엘에서 사마리아로 옮겨 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천대받았다.

 

하나님의 일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도 죽고 우리 자손도 죽는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었다. 복의 근원은 지구상에서 아브라함 하나 뿐이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에게 축복받으면 살고, 아브라함에게 저주받으면 저주받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열방의 아버지라 하여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하였다. 아브람은 그냥 조상이라는 뜻이지만 아브라함은 열방의 아버지이다. 2,000년 동안 로마 카톨릭, 개신교가 모두 온전치 않았으나 하나님이 미련한 시무언을 택하셨다. 환언 베뢰아의 뿌리는 시무언밖에 없다. 이것이 근원이다. 5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근원이 되겠다 하여 나갔지만 모두 말라 버렸다. 교회는 여론에 의해 신앙이 만들어져 가거나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뜻을 보내셨다. 예수,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 그 뜻이 그대로 본체의 형상 되신 그 분만이 주인이시다.

 

사람들이 불평과 불만 때문에 바벨탑을 쌓았지만 하나님은 헐어 버리신다. 교회의 이상은 오직 성경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그들이 세상의 것으로 시무언을 아무리 털어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바벨탑을 통해 인본주의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영혼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