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기념3차신유성회2일저녁(190521)
특별신유집회 2일차 저녁설교 - 김기동 목사님(배경동집사님 정리)
[마태복음 8:5~13]
우리의 역사는 기적이 없다. 기적은 요행을 말하는데, 요행은 없다. 표적이다. 증거이다. 우리 믿음에는 기적, 요행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전부 표적이다. 이적이다. 요행을 성경은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요행을 믿지 않는다. 구원, 복은 요행이 아니다. 믿음으로 얻는 이적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이 아니고 로고스라는 것이다. 로고스는 인격, 영혼, 생명, 충만이다. 약점이나 부족이 없는 완전무결한 인격, 능력,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니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은 우리 신앙이다. 사람들이 헷갈려서 혼란을 일으킨다. 남편을 오빠라고도 하고 아저씨라고도 하고, 당숙을 삼촌이라 하고 혼란스럽다. 세상의 신들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나,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진리는 열쇠이다. 맞아야 문을 딸 수 있는 열쇠이다. 믿음은 열쇠이다. 대충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대충 하는 관념적 신앙이 아니라, 분명한 응답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귀에 들어가지 아니할지라도, 그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도 있고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은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전하는 자는 부르신 이에 의해 전파된다. 자기의 말로 무익한 말을 하면 그로 인해 가벼운 말이라도 양쪽으로 갈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성령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한다.
양심으로써 부도덕하니 죄다, 이것은 죄가 아니다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수천년 내려왔어도 구원 얻은 자가 없다. 천국에 이름이 기재된 자도 없다. 외모로 믿어 종교인이 될 수는 있지만 종교로 생명을 얻을 수는 없다. 믿음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우리가 예배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뵙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다. 로마 제국에서 전쟁에서 이긴 장군이 마차를 타고 온다. 계단 앞에 와서 투구를 벗고 계단을 올라간다. 그 위에 시저가 앉아 있는데 그 시저에게 입을 맞춘다. 예배는 하나님께 입을 맞추는 것이다. 승리한 자만이 입을 맞춘다. 그러나 패한 장수는 즉시 돌아오자마자 지하감옥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는 승자들만 나갈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직접 뵙는 일이다. 오늘도 병자들이 하나님을 잘 뵙도록 하자.
안수받는다고 설교를 듣지도 않는다면 실패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안수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안수하고, 병이 낫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낫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신데,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를 왕이라 한다. 영적으로 가장 높으신 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데, 목숨은 육신이 있는 자는 다 있다. 목숨은 육체가 있는 동안만 유지할 수 있다. 생명은 영이다.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병든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일 목숨이 다 해 죽을 수 있다. 병 낫는 것과 목숨이 다하는 것은 다르다. 목숨은 수명이 있으므로 어떤 사람은 10살, 어떤 사람은 50살, 어떤 사람은 100살까지도 산다. 목숨을 구하려고 여기 오지 말자. 예수는 우리 목숨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다. 이 자리에 온 것은 목숨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러 온 것이다.
목숨과 생명은 전혀 다르다. 여기에서 목숨을 살려 하지 말자. 목숨은 사용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와서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목숨이 하나님이다. 목숨이 마지막이고 유일하다. 그러나 우리는 목숨을 위해 구하지 않는다. 목숨은 각자 자기가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나온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함이다. 죄는 생명을 빼앗는다. 죄 사함 받음은 생명을 찾는 것이다. 생명은 영원히 살기 때문에 영생이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생명이다. 계명을 계속 들어야 영생을 얻는다. 생명을 얻으려 하고, 생명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인가?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명, 명령이 영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구원받은 생명을 영원히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 사함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계속 말씀을, 계명을 얻으려는 것은 생명을 영원히 가지려는 것이다. 이를 진리라 한다. 목숨 구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얻으려 하고, 하나님의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를 믿었다. 이제 그 영생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하시는지 잘 듣자.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전해질 때 두 개가 있다. 예수는 갈릴리 사람이요, 나사렛 사람인 것을 아는데, 나사렛 사람의 소리로 듣느냐, 하나님의 소리로 듣느냐이다. 생명을 내가 만들 수 없다. 유일한 생명을 맡아줄 자가 누구냐?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유일하다 하여 하나님이라 한다. 유일하신 분을 하나님이라 한다. 나에게 유일하신 분, 그 분이 없으면 영원히 망한다. 우리에게 유일하신 분이 누구인가?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이 누구인가? 우리 생명을 보장하시고 지옥에 보내지 아니하신다. 우주를 순식간에 접어 지옥불에 들어간다 하였다. 음부와 사망이 유황불에 들어가므로 여기서 우리가 벗어나야 한다. 내 하나님이 누구냐? 영원히 유일한 분, 영원히 살고, 영원히 구원받고, 영원히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분, 영원한 하나님. 그 하나님이 누구인가? 예수이다. 우리 아버지 이름을 아들을 통해 이 땅에 아버지 이름을 알게 하셨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셨다.
아버지를 본 자는 아들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기 철학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하나님은 철학적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실존이신데, 볼 수 없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믿으라 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다 인간에게 보여주셨고, 인간에게 다 나타내실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최대한 가까이, 이 이상 더 접근할 수 없다. 하나님이 접근하심을 총동원하신 최선의 방법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가까이 접근하여 다가오심이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초월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말씀으로 오셨으니 우리도 그분을 만나기 위해 말씀을 하나님이라고 가까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므로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마음에 혼란이 와서 얼마나 어지러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실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 말씀이 인간에게 믿음이 되게 하여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셨다. 말씀에 의해 순종하여 만물이 생겨났다. 세상 말로는 자연이라 한다. 자연은 스스로라는 말인데,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쓰는 말이다. 성경에는 자연이라는 구절이 없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자연은 하나님 뿐이다. 하나님만이 스스로 있는 분이다. 바닷물이 출렁이는 것도 하나님이 태초에 시작하신 것이다. 말씀의 권위와 위력이 얼마나 큰가? 그래서 만유를 보고, 말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말씀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는다. 인쇄된 책으로 보고, 사람의 손으로 보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는다. 포네라는 사람의 손으로 보지, 로고스라는 하나님으로 보지 않는다.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하나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말씀이 사람으로 현현하셨다. 이 과정을 임마누엘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임마누엘이 절대적이다. 예수의 말씀과 행하심과 가르치심과 예수 자체가 동일하다.
나사렛에서 나타나신 그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예수가 우리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역사도 부정할 수 없다. 역사적인 존재이다. 서기가 이미 진행되었을 때 로마부터 진행되었는데, 유대 땅에서 호적하기를 시작하였다. 구레네라는 사람이 총독으로 있을 때 유대 땅에서 호적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후에, 호적에 기록되어 있는 실존이다. 꿈과 신화적 존재가 아니다. 로마 제국에서 사용하는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분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는 민폐를 끼치고 악행하여 세상에 알려야 하는 사람이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나사렛 사람 그가, 기원 안에 들어 있고 역사적 존재로써 십자가에 죽으셨다. 공개된 데에서, 로마 법으로써 죽어야 할 당연한 죄목으로 죽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존재다. 실존이다. 그를 누구라고 믿느냐?
구걸하듯 그분이 용하다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셔야 한다. 나를 영원히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자가 하나님인데, 그 유일하신 분이 누구시냐?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이다. 우리는 옛날을 추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름을 우리 마음에 주셔서 우리에게 예수라는 이름이 들어오게 하셨다. 그 이름으로만 하나님을 뵐 수 있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귀신 쫓을 수 있고,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주신 이름이다. 그 이름이 우리 안에 계시다. 그가 하늘에 가셔서 성령을 보내사 성령으로 예수 이름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 그 이름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써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이 자녀의 권세를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는 후사이다. 상속자이다. 그 모든 권리를, 모든 것을 상속받는 자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후사로써, 그를 위해 만유를 창조하셨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신가?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으로 믿어야 한다. 성령이 그 이름으로 들어오셨다.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요, 그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고, 성령으로 우리에게 주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 받는다. 그 이름은 예수이다.
모두 예수 이름으로 침례 받았다. 아버지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데 아버지라 한다.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예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고,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알고, 성령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으로 침례 받는 자이다. 그 이름이 인격이요, 생명이요, 모든 충만이다. 여호와 이름은 사람의 심령에 들어오지 못한다. 예수라는 이름, 그 이름이 구원이다. 예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사망에서, 지옥에서 구원한다는 뜻이다. 그 구원은 실상이다. 실상은 실제 상황이다. 실제 체험하는 생활이므로 실상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가까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셔서 내 피를 마셔라, 내 살을 먹어라 말씀하신다. 그 말씀이 영혼 속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생의 말씀, 계명의 말씀이 들어온 것이다. 그 말씀으로 죄를 내쫓아라, 그 말씀으로 병을 내쫓아라, 더러운 귀신을 내쫓아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곧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내쫓아라, 가난을 내쫓아라, 의심을 내쫓아라, 저주를 내쫓아라, 사망을 내쫓아라.
백부장의 종은 아들이다. 예수께서 아들에게 가서 고쳐 주시겠다 하셨는데 그는 말씀으로 해 달라 하였다. 예수께서 자기를 살리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을 구하는가? 말씀만 하옵소서. 주여 내 영혼에 말씀만 하옵소서. 내 영혼에 복을 명하소서. 내 영혼에 능력을 명하소서. 내 영혼의 귀신을 쫓아내라 명하소서. 내 영혼의 불행을 저주하라 명하소서. 가정의 불화가 일어나는 것은 원수가 시험들게 하려 하는 것이다. 내 영혼에 화평을 명하소서.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가난하고, 어렵고, 시험들고, 괴롭고, 저주받는 것이다. 모든 말씀은 능력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함이 없다. 말씀이 내 영혼에 임하고, 성령이 내 영혼에서 역사하면 어떤 이적도 다 나타나고 능치 못함이 없다. 백부장이 말씀만 하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하셨다. 이 믿음이 정상인데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7살 이내의 아이들은 의지가 부모에게 있다. 엄마의 의지에 의해 행동한다. 엄마로부터 자기 의지가 나오려면 7살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서워한다. 12~13살까지는 아버지에게 의지가 있다. 아버지의 의지에서 탈출하는 것은 사춘기이다. 아이들이 병들었을 때 그 의지가 누구에게 있는가? 7살 이내의 아이들은 엄마에게 있고, 15살 이내의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있다. 병들어 있는데 귀신은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아이들이 안수받지 않아도 엄마에게서 귀신을 쫓으면 나간다. 의지가 엄마에게 있고 아버지에게 있기 때문이다. 백부장의 아들이 15살 이내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 의지가 아버지에게 있다. 백부장 속의 귀신이 나갔으면 아들이 낫는다. 야이로의 딸도 죽었는데 가보니 일어나 있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아플 때 아이들은 두고 오라는 것이다. 귀신이 자기 속에 있으니 내쫓으라는 명령을, 계명을 받아 나가라 하면 된다.
말씀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고난 당한다. 말씀이 없어서 병든다.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 말씀의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충만하자. 주의 능력 있는 명령, 주의 권세 있는 명령을 주소서. 말씀을 명하소서. 내 영혼에 말씀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