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신앙의 작품(연합예배201011)
201011연합 [평생의 신앙의 작품] 김성현 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눅 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눅 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눅 6: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좀 전에 교회창립51주년 기념으로 처음 스타트를 끊은 가족분들 보셨지요.
이렇게 찬양할 때, 감사하면서, 평안한 느낌이 듭니다.
교회 모두 애써서 해나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생각이나 이념이나 사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인격이신 하나님,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를 기억하시고, 돌보시고, 걱정하시고, 격려하시고, 오늘도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평생 기억하는 것이 가장 삶에 합당한 모습이다.
우리에게는 그의 사랑을 기억하는 한평생이 작품이 될 것이다.
우리 교회의 작품이요, 우리 신앙인생의 작품이요, 결국 하나님의 작품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뿌리신 사랑, 영생의 권능이 우리에게 심어져서,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경외, 사랑으로 훌륭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가는 것이다.
화려한 나무도 있겠지만, 작은 나무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열매를 맺고, 작품을 드리고 갈 것이다.
우리의 작품은 우리의 한평생이다.
작품이라니까, 사람들은 화려한 작품만 생각한다.
금과 은으로 대표되는 것을 생각한다.
성경에서는 이는 무가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금은 정금, 깨끗하고 순수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처럼 진실을 다하고, 신실하고, 자비와 긍휼, 그런 하나님의 애쓰심에 대한 우리의 결과를 원하신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는 이론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난 주님,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셨을지라도, 사랑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죽을 때까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더욱 경외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했다.
그들은 이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뵙고, 만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호흡을 같이 하며, 그분의 만져주심과 말씀해주심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한평생을 살았다.
우리 신앙에도 이론이 너무 많으면 영적생활에 지장이 된다.
우리의 작품은 화려한 것이 아니다.
자꾸 화려한 것을 이야기하니까, 세상에서 사는 삶을 그대로 갖고 온다.
세상의 생각으로 교회에서 살면, 엄청 손실이 많다.
왜 저렇게 무의미하게 하는가.
그런 부분에서 훈련이 부족해서 그럴 것이다.
피를 철철 흘리며 내 대신 십자가 위에 올라가신 그 분앞에서 우리가 할 것은 무례가 되지 않도록 견디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이다.
영광스러운 삶, 부르지도 않았는데 목사가 되는 것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하는 일이다.
주님이 고난받으시듯이 신앙은 괴로운 것이다. 많은 근심 속에서 어려움을 이겨가는 것이다.
우리 신앙은 어떤 이론도 아니고, 지식 체계도 아니고, 우리의 사랑이다.
우리 하나님이 남기신 것은 교회밖에 없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이다.
여기서만 성령이 역사하신다.
신앙생활 할 때, 마지막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최후에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경건하게 바뀐 자가 되는 것 아무 소용없다. 예수 믿는 순간부터 평생을 섬겨야 한다.
화려한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아는 것 말고, 나를 사랑하고, 희생하신 그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주님 앞에 미안해야 한다.
주님께서 기회를 주고, 네가 네 십자가를 지라 할 때, 미니 십자가라도 기꺼이 져야 한다.
최후에 잘하겠다는 것은 다 망하고, 나중에 잘한 척하자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서 늦게 예수 믿는 것과는 다르다.
예수 믿은 다음부터는 사랑해야 한다.
마지막에 잘하면 되겠지하는 것은 소용없다.
화려한 작품만 추구하다가 다 망할 것이다.
임원이 되면 주님이 더 요구하신다.
많이 선생이 되지말라고 하셨다.
눅 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다섯달란트를 받은 자는 다섯달란트를 드려야 한다.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은 세상이다.
여기서는 우리가 하나되어 주님을 사랑하느라 애쓰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작품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혼자 못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세상의 영향을 받고와서 교회를 망쳐놓는 것은 합당치 않다.
나는 교회에서 덕을 가르치지 않는다.
덕을 가르칠 시간이 없다.
나는 삶과 죽음을 가르치고 있다. 영생과 멸망을 가르치고 있다.
생명이 왔어도 멸망하는 자 많다.
나는 생명의 길을 가르치고,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치고, 오직 주의 생명의 말씀만 가르친다.
우리가 환언운동한다면서, 주님의 생각을 무시하면 안된다.
주님의 말씀이 이미 있다.
주님 말씀이 있으면, 첫째로 거기에 맞추어 가야 한다. 그래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우리의 터는 예수의 반석위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이 터 위에 이렇게 저렇게 짓는 것이다.
앞으로 50년 후까지 잘하자고 할 때, 터도 없이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우리 성락교회가 이단으로 치부되는 교회가 아니고, 보통교회라면 편안하게 구원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께 매를 맞든지 말든 편하게 하자 할 것이다.
그런데 소위 이단교회로서 소외되고, 우리만 따로 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백프로 주님 말씀으로 꽉 차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년도 못간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성경적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 거리낄 것이 없어야 한다.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눅 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눅 13: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신앙생활을 내가 만들어서 하면, 주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 것이다.
내가 신앙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조직적으로 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는 곳에서 나를 찢고, 깨서 드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훈련이 되고, 계획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그 앞에서 주님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위 구절의 장면은 이 세상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하나님 앞에 온 것이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화려한 작품이 아니라, 그 때 얼마나 고생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누구는 고생하고, 누구는 안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꺼져가는 촛불같다.
밖은 환한 태양이 비추지만, 나는 작은 화장실이라도 비추고 가야 한다.
부족한 촛불끼리 서로 이해하고, 서로 섬겨야 한다.
어떤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 발가락처럼 무거운 짐을 지며 짓밟히기만 하지만,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한 것이다.
교회가 이것을 다 알고, 신앙관이 분명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 앞에서 칭찬받을 것이다.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신앙생활하면서, 서로 자기가 훌륭하다고 하지말고, 처음 그가 부르신 곳에서 사랑한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훈훈하게 불타고 있어야 한다.
인생 마지막까지 이 사랑이 꺼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실패하지 않고, 50년후, 500년후를 내다볼 수 있다.
기초가 훌륭한 성락인 되자.
오랜 후까지도, 어떤 탁류와 바람에도 우리가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기초를 잘 준비해야 한다.
이런 것이 허술하니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함께 한 성령으로 주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손잡고, 주님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성락인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