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46 참 예배와 섬김(201108)
201108주일 [참 예배와 섬김]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마태복음 6:19~24)
마태복음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태복음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태복음 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구원을 확실케하려는 것이 아니다.
얘배참석으로 구원의 요구를 충족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일주일의 신앙의 모습을 한 번에 몰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로서 우리의 삶을 고백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배다.
우리의 예배는 사실 우리의 삶 자체와 그 동기가 같다.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삶은 기본정신이 같다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오늘 이 순간의 모습이 아닌, 지난 일주일간의 모습을 주 앞에 드러내고, 성도들 간에 서로 보여주므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의 진실성을 고백하는 시간이다.
우리 영혼의 신앙의 삶을 그렇게 하므로, 대표하여 드러나는 것이 예배일뿐이지, 그 예배에 담겨져 있는 참 내용은 우리의 매일의 삶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의 삶과 예배를 바탕에 둔 동기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예배는 우리의 삶을 대표할 뿐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행위는 주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 내용으로 예배를 하는데, 만약 우리가 주일 참석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참 예배의 의미를 엉뚱한 곳에 두고 있는 것이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가져야 할 마음은 차라리 하나님, 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먹고, 오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순간의 모습이 아닌 참 나의 모습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배하는 자가 드려야 할 가장 소중한 세가지]
하나님과 내가 대면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적어도 아래의 세 가지는 하나님께 분명히 보여드려야 한다.
우리 입장이 확고해야 한다.
[첫째, 우리 영혼]
예수의 공로로 구원하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일구어낸 열매다.
오늘 우리가 우리 되게 하신 하나님의 정성과 뜻과 노력, 사랑은 우리를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로 만드셨다.
우리에게 쏟으신 그 정성이 우리의 가치다.
요한1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 죄를 위해 그가 화목제로 아들을 보내셨다.
오늘 이 세상이 다 멸망해도, 하나님께서 한 존재는 반드시 구원하신다.
바로 우리다.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이것은 하나님도 포기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대가로 치러 얻은 그 사랑을 건지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해 얻은 사랑의 열매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영혼은 우리 것이 아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 우리 안에 심어져 있다.
주님의 고난은 우리 자체의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요, 원수를 이기는 능력이다.
주님의 죽으심은 사망을 다 이기고, 사망을 다 지워버리는 영생의 힘이 있다.
주님의 부활은 영원성이다.
영원히 하나님같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 자체가 이렇게 하나님의 정성뿐만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거의 전부가 들어있다.
함부로 나를 취급할 수 없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인생동안 정말 정결하게 지켜야한다.
예배하는 동안, 이런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
[둘째, 경건한 인격]
둘째로 하나님 앞에 분명히 해야 할 우리의 입장은 인격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경건한 인격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 지는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 개인들의 인생은 교회의 삶에도 엄청 큰 영향을 미친다.
교회에서 훌륭한 인격은 하나님의 일을 잘 진행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나쁜 인성은 교회의 분투를 다 잃게 만든다.
교회 성장을 저해하고, 교회를 파괴한다.
교회에서 겪는 온갖 괴로움, 고난은 고쳐지지 않은 인성에 의해서 오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전에는 세상의 성품을 가졌지만 예수 믿고 나서는 바뀌어야 한다.
진실하고, 충성되고, 사랑이 있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인내하는 주님의 모습처럼 바꾸어져야 한다.
베드로후서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베드로후서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베드로후서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베드로후서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베드로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도록 주님이 요구하신다고 하였다.
우리 영혼이 예수께 속하였다면, 우리 성품도 주님이 쓰시기에 최상의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주 앞에 나올 때, 예수 믿기 전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더 나은 모습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
[셋째, 물질에 대한 우리의 자세]
물질에 대한 개념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다른 의견이 있으면 안 된다.
오늘 이후로 다시는 혼란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주님의 의견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지 결단하라.
이 세상은 부를 귀한 것으로 여긴다.
겉으로는 다른 이름을 댄다. 건강이 더 중요하고, 꿈이 더 중요하고, 취미가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재물보다 더 원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부터는 상황이 바뀐다.
세상에 대한 의미와 개념이 예수를 믿음으로, 완전히 바뀐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에 이전처럼 육신에 매여서 고통에 시달리기를 원치 않으신다.
소망을 바라보고 나감으로, 과거 소망 없이 억눌렸던 삶을 정리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서 바래야할 것을 바라게 하신다.
하나님은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게 하신다.
우리를 볼 때, 전부 미래 지향적이 되게 하신다.
또,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신다.
죄를 버렸을 때처럼, 세상에 대한 미련을 함께 버리도록 요구하신다.
물질은 과거와는 달리, 평생 동안 필사적으로 애를 쓰며 바랄 것이 아니다.
물질은 육신이 있는 동안, 육신의 삶을 돕는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물론 물질이 너무 없으면 당장 살아가는데 불편하다.
그러나 이것은 육신과 관련해서 갖는 고민이지, 우리의 본질적 고민은 아니다.
영원한 나라가 우리 소유가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유업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세상의 재물은 아무 의미가 없다.
물질은 없어서 부끄럽고, 있어서 자랑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돈이 악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
물론 돈에 대한 욕심으로 많은 나쁜 일이 벌어진다.
물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많은 물질을 받았다. 욥도 엄청난 부자였다.
물론 그가 잠시 시험받는 동안 다 잃어버리는 불행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다시 다 채워주셨다.
그래서 부 자체를 하나님과 먼 것이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돈에 대해 너무 궁핍하다보면, 세상의 정서를 자대삼아 교회로 들여온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를 미워하시는 것 같고, 이것을 자대삼아 휘두르면서 정죄하는 일이 있다.
이것은 세상의 의견이 들어와서, 빙자해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신 재물은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 아무도 정죄할 수 없다.
성경에도 여러 부분에서 증거하고 있다.
마태복음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주님도 돈에 대한 이자를 요구하셨다.
구약에도 개미를 모델로 삼으라고 하였다.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지만,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잘 모은다.
잠언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언 6: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잠언 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재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소유에 지배됐던 부자 청년]
부자 청년에 대한 말을 듣고, 부자는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자기가 계명을 다 지킨다고 하면서 왔다. 그는 주님이 자기를 칭찬할 줄 알았다.
마태복음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주님은 그가 완전하지 않다고 하셨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가 있으리라 하셨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징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사람들이 주님은 부자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익숙하게 하심으로, 오늘 천국도 익숙하게 하려 하신다.
갑자기 주님께서 부를 악이라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재물과 영생의 소망 사이에서 재물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미 재물 쪽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
이 사람에게는 재물을 내놓는 것이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영생을 위해 투자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아시고, 주님은 그에게 요구하신 것이다.
이 청년은 신앙의 열심도 있지만 동기 자체는 재물이 주인이었다.
그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에서, 재물을 선택했다.
그는 영생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에게 재물은 자기 주인이었고, 영생은 그가 기대하는 하나의 보너스에 불과했다.
재물이 있으니 안심이 되고, 더불어 무엇을 얻을까 했다.
이런 경우에도 그 사람의 재물이 그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지 모르겠다.
세상의 재물은 자기에게 영적권리가 없으면 머물러 있지 않는다.
당장은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인정하는 재물이 아니면, 보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자기에게 재물이 있더라도, 자기에게 평생의 고민거리, 신앙을 해치는 도전이요, 고통일 뿐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은 적든지, 많든지, 그 사람을 돌보시고, 생각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긴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자에게 주신다면 그 재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적은 것을 받더라도, 권리를 함께 받는다면 감사한 일이다.
권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에게만 주신 것이다.
권리로 받은 재물은 그 자체가 거룩한 재물이 된다.
재물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우리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우리의 인성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되어있다는 것을 확실해야 하고, 또, 재물관이 하나님 앞에 분명해야 한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마태복음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쌓아둔다는 것이다.
쌓아두는 것은 하늘에 하라는 것이다.
재물을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까 봐 비축한다.
안전한 보관을 위해 자꾸 축적한다.
주님은 그래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하신다.
옛날에는 부를 축적하는 방법으로 옷이 있었다.
요즘은 다들 여러 벌의 옷을 갖고 있지만, 옛날에는 값진 옷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었다.
좋은 옷은 울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울은 벌레가 좀먹는다.
굉장히 비싼 옷을 샀는데, 벌레 먹으면 버려야 한다.
부유한 사람은 좀이 옷을 뜯어먹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동록은 아무리 견고한 금속이라도 부식된다는 것이다.
원래 헬라어는 먹는 것에 관한 단어다.
누가복음 12: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곡식을 쌓아두는 것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다.
창고에 곡식이 많으면 쥐들이 뜯어먹고, 벌레 먹는다.
옛날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축자재로 진흙이 많았다. 그러니까, 벽을 뚫고, 훔쳐가기 쉬웠다.
우리처럼 은행 같은 시스템이 없었다.
재산이 있는 그날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집을 떠날 수 없다.
재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문제는 엄청 심각한 문제였다.
도둑이 든다는 것은 강도 살인을 동반한다. 위험한 것이다.
모든 부는 도둑질의 대상이다.
평생 보관해도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도 적용된다.
어제까지 잘 살던 사람이 오늘은 빈 털털이가 될 수 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사는 사람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우리의 시간, 재물,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하늘에 저축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물도, 눈물 병에 담아 기억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눈을 자꾸 하늘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나 도적이 없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잠시라도 맡기셨을 때,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내 소망을 어디에 두는가.
내가 지금 재물을 다루고 있어서, 나를 위해 쌓아두고, 내가 얻어내려 분투하고 있지만, 이 물질은 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물질을 준비해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인가.
하나님이 물으신다.
다 같이 경제활동을 하는데, 한사람은 물질이 그를 지배하고 있고, 한사람은 그렇지 않다.
내가 수고한 물질이 내 마음을 빼앗고, 긴장하게 한다. 그 물질이 내 주인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시고, 그가 나를 위해서 내 모든 물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축복하시는가.
물질을 대하는 나는 이 땅에서의 미래를 위해서 쌓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에 소망을 두는 나를 위해 재정문제를 도와주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내게 물질의 권리를 주시는 것을 원하는가. 선택하라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디모데전서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주인은 단 하나뿐이다]
여기서 주인은 노예의 주인을 말한다.
그러므로 직장의 상사와는 다르다.
그냥 고용인은 주인이 여럿일 수도 있다.
두세 가지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그냥 고용주를 만족시키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노예의 주인을 말한다.
노예는 주인에게 모든 권한이 맡겨져 있다. 주인이 노예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노예는 주인을 파트 타임으로 섬길 수 없다. 풀타임 봉사가 의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두 주인을 노예가 섬길 수 없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되지 않는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의 충성이 다른데 가 있으면, 그리스도를 주로 주장할 수 없다.
두 주인은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주인이 마음에 있다.
주인이 아닌 자에게는 경히 여긴다.
우리 재물은 땅에 있거나, 하늘에 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거나, 재물이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마음도]
재물이 소중한 사람은 삶의 동기가 거기에 맞추어져 있다.
아니라고 해도, 잠재의식 속에 매여 있다.
그러나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은 소망이 가장 귀하다.
영원한 나라에 소속을 둔 자가 이 세상에 자기 소망을 빼앗기면 신앙도 절충할 수밖에 없다.
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래서 신앙이 하나님 앞에 굉장히 부실해진다.
완전히 신앙을 빼앗기는 자도 있다.
돈을 사랑하면 결국 믿음이 상하기 쉽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많은 근심이 마음을 찌를 것이다.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 보물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에게 주시는 유업이 우리의 소망이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둔 우리는 세상의 궁핍함으로 패배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잠시다.
우리는 승리를 약속한 자들이다.
패배가 승리로 바뀌는 자들, 기어코 승리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과 소유를 나눌 자들이다.
이 땅에 있을 때, 하늘을 소유한 자들의 법칙이 훈련된다.
잠언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언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나님이 내게 재물을 주시고, 권리를 주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적게 심은 자는 잘못되더라도 손해가 덜하니까, 마음을 다 쏟지 않는다.
이 땅에서 잠시 불편하지만, 우리를 최고의 길로 인도하시고, 영광의 날을 주시는 주님을 보자.
돈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 주님의 일에 잘 사용되어야 한다.
돈 자체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권리로 주신 재물은 작은 것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자들 되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십 분의 구를 나에게 권리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내게 주신 것으로 받겠다고,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재물을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나님을 우리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삼자.
나는 여러분이 주인 되신 주님을 잘 섬겨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길 원한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많은 재물을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그것을 아낌없이 기꺼이 사용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시작하라.
돈이 있건 없건, 하나님이 주신 복이 담긴 돈으로 굳게 서라.
우리는 세상의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의 자녀가 아니다.
시간의 개념도 없는 무한한 나라의 자손들이다.
영원한 나라로 갈 때, 오늘 주님 우리를 복주시고, 인도하시는 방법을 따라, 영원한 보물을 하늘에 쌓자.
오늘 예배 나올 때, 단지 참석했다는 것으로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영혼을 드리고, 인격을 드리고, 재물에 대한 내 개념을 하나님의 개념을 따르자.
내 물질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그것을 축복하소서.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예배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 받는 성도되자.
하나님 내 영혼은 주님의 것이고, 내 성품과 인성도 주님의 것이요, 재물도 하나님이 축복한 돈만을 원합니다.
나와 내 삶과 가정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재정의 원칙이 역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셔서 궁핍하지 않고, 풍성하기 원합니다.
설교요지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이다
그가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만물을 지으시고(창 1:1)
하늘에는 신령한 것들로 충만케 하여
그것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이다(시 8:1)
그 영광을 예배로 하셨으니(시 26:8~9)
하나님은 영이시요 예배는 영으로 하라고 하사
우리가 육신을 초월하여 영으로 예배를 드린다
영으로 하지 않으면 모두가 외식이요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실망은 크실 것이다(요 4:23~24)
희생의 제물로는
예수께서 마지막이 되셨고(고전 5:7)
성령으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
영혼을 하늘에 보내고 싶으나
마음이 영혼을 묶어 버리면 종교의식만 된다(요 13:2)
그러므로
재물을 드리라 하셨으니(마 6:19~20)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마 6:21)
재물(맘모나)이란 주인이란 뜻이다
재물이 있으면 주인이요 없으면 종이 된다
〇 예배는 오직 한 분의 주인만 섬기는 일이다
재물의 종이 된 자가 주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맘모나’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〇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면 그 마음이 하늘에 있고
땅에 쌓아 두면 그 마음은 땅에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곧 하늘에 계신 이다
〇 하늘은 영이요
하나님의 본체이다
예수는 그 본체의 형상으로서 믿고 의지한다
※ 예수께서 내 안에 있으라 하심은 하늘에 들어오라 하심이요
예배는 자기의 주인은 하늘에 계심을 시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주인이시다 (視無言)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시편 8:1 [다윗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편 26:8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시편 26: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린도전서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요한복음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