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히 쓰는 그릇(연합예배201108)
201108연합 [귀히 쓰는 그릇] 김성현 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딤후 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딤후 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나는 여러분들이 모두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길 원한다.
하나님의 높으신 뜻대로 귀히 쓰실 자를 정하시고, 어떤 경우는 천히 쓰는 자를 정하실 것이다.
그가 정하시는 일이므로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귀히 쓰실 자를 여러분 속에서 찾으셔서, 우리 중 최대한 많은 수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쓰임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세대의 사람들이 개념차이가 있다.
우리 교회는 50년전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 때 귀히 쓴다고 하면 무엇을 생각하는가.
큰 벼슬같은 것을 상상한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사람 자체는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으로 귀히 쓴다고 할 수 없다.
어떤 경우는 예수님 닮은 사람을 오히려 더 귀하게 여겨야 할텐데, 낮은 일을 하고 있다.
세상도 주님을 낮게 보았다. 귀신들렸다고 하고,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했다.
귀히 여긴다는 개념을 오늘날 시대에 맞추어야 한다.
세상은 빨리 움직여서 이 세상과는 이제 말이 통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농담 한마디 하면 뒤로 넘어졌지만, 이제는 아재개그라고 한다.
웃기는 웃는데, 비웃는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서 개념 자체가 다르다.
가끔 TV나 인터넷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내가 대학다닐 때, 유명한 작곡과 교수님이 있었다.
그는 과거에는 이 정도면 피아노 잘 치는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다 웃었다.
어떤 경우는 90년대는 세계적인 성악가라고 했는데, 요즘은 평범한 성악과 학생같다.
다른 분야도 엄청나게 발전해서, 현악기 분야도 교수들이 어디서 연주도 못한다.
대중음악도 옛날 가수들 노래하는 것 보면 너무 못하는 것 같다.
모든 면이 달라졌다. 옛날에 잘났다고, 지금도 잘나지 않았다.
사람에게 늙는다는 것은 생각이 원래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 같다.
우리는 배워야 할 점이 많고, 달려가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가만히 있으면 뒤로 물러난다.
나는 책임을 너무 많이 느낀다. 모든 상황에서 경고를 받는 것 같다.
골목 분식점도 세상 정보를 받아가면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려면 잘 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서 큰일을 하면 높은 사람이고, 낮은 일을 하면 천하게 여기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귀한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다.
죄를 전혀 안짓고, 하나님으로만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다.
정말 겸손하고, 받은 사랑을 생각해서,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자기를 우습게 볼까봐 걱정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높낮이가 없고, 신실한 자들이 나와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어려운 도전을 오고 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무언가를 한다고 하지만, 동네에서도 못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해보지 않았다.
다음 세대가 있는지 인지도 못하고 있다.
분석도 안하고 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수련회나 운동회 한번 할 때, 고생했을 때, 내가 만들어진다.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었다.
내가 아는 사람도, 말씀듣는 현장보다, 교회를 사랑하게 된 계기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는 환경안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끼고, 보살피심을 발견한다.
이런면에서 많은 변화를 받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꾸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 움직여주시고, 우리를 쓰임새가 있게 보셔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
나는 수줍음도 많고, 담력도 부족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때만 담력이 생긴다.
이 세상 어떤 목사라도, 대부분 자기 위치를 위해 일할 것이다.
그저 자기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나는 목사로서의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 아래 갇혀 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를 원한다.
다 귀히 쓰는 자들 되길 원한다.
우리가 다른 신앙운동도 하지만, 자꾸 반토막나면 쓰러진다.
나는 성도들에게 참 신앙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신앙의 본질, 섬김의 본질을 가르쳐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가 쓰여지기 원하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앞에 진정 가치가 있기를 원한다.
다른 뜻은 없다.
신실함으로 도전해야 한다.
우리 교회도 앞으로 세상에서 전도해야 한다. 지금은 어렵다.
이단 문제도 속히 풀어야 한다.
우리만 옳고, 온 세상이 틀리다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역사하는 곳은 다 손 잡아야 한다.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귀하게 되는가.
많은 훈련들이 되어야 하는데, 혼자 일하기 너무 벅차다.
내가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면 다들 한마음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다.
하나의 이해하는 일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우리가 열려서 사람들이 오게되면, 옛날처럼 마음에 안드는 사람 나갈 수 밖에 없게 할 수 없다.
진짜 귀한 영혼들이 따뜻한 형처럼, 언니처럼, 배움은 못하지만, 훨씬 위대한 엄마처럼, 아빠처럼, 신실한 신앙의 정신으로 오히려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누른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세상에서 날카롭고, 가시돋힌 사람들이 순화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신앙의 모습에 감동되어야 한다.
우리 엉터리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을 한번 죽어라 사랑하고 가려는 모습.
사람들은 너무 연약해서 하나님을 위해 죽겠습니다 하지만, 안다치려고 한다.
나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과 맺어주려 할 뿐이다.
수준이 있어야 한다.
지적수준이 아니다. 아무 소용없다.
하나님 앞에 올곧이 서있는 신실하고 겸손하고 따뜻한 모습을 볼 때, 이 사람 높다라고 해야한다.
성락교인들 수준이 하나님과 너무 가깝다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짐승의 본능이 있어서, 서열정리 한다.
나는 그런 것 원치 않는다.
여기서는 어딜 보든지 그리스도를 보는 것 같아야 한다.
여기서는 나는 내어주고, 섬겨도 하나도 상실감이 없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 섬기고, 희생하고,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괴롭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요, 예수의 사람이다.
우리가 다른 방법이 없다면, 주님을 가장 닮은 그 인격이 되어 승부를 내야 한다.
그리고 나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나는 묘한 내 위치에서, 여러분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많이 보았다.
어쩌면 내 인생 내내 그런 것을 배우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대단히 고단했지만, 우리의 신실함으로 진짜 주님의 질서를 가져야 한다.
나중에 우리 교회에도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도 오고, 유능한 사람도 올 때, 간부 자리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겸손했으면 좋겠다.
옛날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 신분에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찬양을 같이할 때, 나는 엄청 힘들다.
옛날에는 복음성가를 하나도 못불렀다.
복음성가는 전세계를 향한 전도다. 믿지 않는 자를 향한 전도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마음이 없다.
이 노래는 부를 수 없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이단문제 때문에 다른 교단들이 전도하는 것처럼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교회는 세상에 나가서 전도하자 하는 것에서 제외된 것 같다.
서글프다.
극복해야 한다.
인성도 훈련해야 한다.
주님 만난 날부터, 놀라고 변화를 가졌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부간에도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 되게 많다.
상처주고 받는 일을 많이 겪다보면, 훈련이 된다.
훈련이 되지 않으면 같이 살 수 없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한이 있어도, 서로 위로해주므로 함께 살 수 있다.
주님의 교회는 더욱 더 그렇다.
배워야 한다.
유명인들이 우리 교회에 와도 동화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주님을 배우고, 주님의 사용하심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표적과 이적을 볼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깨끗하지 않으니까, 이런 것에서 멀다.
앉아서 듣기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케 하여 귀히 쓰시는 자가 되어야겠다.
딤후 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딤후 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언젠가 우리는 갑자기 변해서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올라갈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고, 하늘에 있는 자처럼 생각하고, 하늘의 영광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실 것이다.
롬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나는 나와 함께 어떤 작품으로 하나님께 드릴까 고민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귀히 쓸 그릇으로 여기시길 바란다.
우리는 애초에 세상에서 갖고 있던 것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한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정욕과 자랑은 훈련하지 않으면 버릴 수 없다.
긍휼하신 하나님은 일단 구원해 놓고, 성령으로 훈련시키신다.
하나님은 일단 합격이라고 해 놓고, 그 다음에 맞추신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교회에서 사랑하라고 하면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았다.
사랑하면 신앙생활에서 많은 것이 해결된다.
이것이 예수 오시기 전에 이미 가르치신 바 있고, 예수께서 모든 계명을 하나로 새롭게 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함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고쳐진다.
많은 방언과 예언을 했다고 해서 되는 줄 아는가.
진짜 길은 사랑이다.
요일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요일 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요일 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나는 우리 성도들이 목사로부터 힘내세요 하는 소리를 들으려하기보다는 주님과 마음을 맞추고, 생각을 맞추고 귀히 쓰는 자가 되길 원한다.
당장 사적 일이 잘되는 것보다, 이판사판 결단하길 원한다.
여기도 천국에 못들어갈 자도 있다.
빨리 전도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말한 것이지, 신령한 은사를 받고도 떨어질 자가 있다.
여럿이 천국에 이르지 못할 자가 될 것이다.
여러분 주님이 귀히 쓰는 그릇 되자.
우리는 다음 세대까지 챙겨주자.
내 가족을 함부로 하지 않듯이, 그들에게 우리의 신앙의 영향을 심어주자.
사람들은 나를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알도록,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진실하도록,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최고로 하는 사람이 되자.
주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평안이 있다.
세상은 환란이 있더라도,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니, 평안으로 인도하신다.
우리 두려움 없이 평안하자.
주의 길을 가므로 평안하자.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