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2 순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예수(230108)

lks8284 2023. 1. 8. 20:30

230108주일 [순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예수]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요한복음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한복음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한복음 17: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요한복음 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과 똑같다.

우리는 주께서 주신 일을 담당하여, 일하므로, 주 예수의 하신 일에 참예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결국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은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할 일을 남겨주셨다.

 

[영화롭게 해드려야 할 그리스도]

 

모든 일을 완수하신 후에 아주 조금 일을 남겨주셨다.

이것은 주님 일의 마무리가 아니라, 그가 하신 일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주의 남기신 일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우리가 의롭고, 의롭지 않고는 우선적이지 않다.

순종이 우선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보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일부 사람은 어떤 큰 일을 하기 원한다.

그래야, 칭찬받고, 구원받고, 상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대한 일을 하는 것으로 하나도 하나님께 영광이 더해지지 않는다.

내가 한 큰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내가 큰 일을 하게 되면, 자랑을 하게 되고, 그래서,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내가 빼앗게 된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내가 빼앗아 자랑할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우리는 그가 원하실 때, 자기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회개의 진실이다.

통회하는 마음과 통회하기 때문에 변화된 인격에 대한 사실이 중요하다.

내 인격이 변하여, 이제는 예수를 위하여 진실로 나를 드리는 삶을 가질 때, 아버지도 기대하시고, 아들도 기대하시는 일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명하신 뜻을 따라, 당신의 일을 이루셨다.

이것은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왔다.

죄인이 원래 죄인의 성품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잃었던 자를 찾기 원하신다.

잃었던 영혼을 찾으면, 예수께서 하신 사명이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의 돌이킨 마음은 아버지의 목적이었고, 예수께서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이루시려는 목적과 정확히 부합한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하는 양심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에 대한 증거물이다.

우리의 심령의 상태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일을 성공시키셨다는 증거가 된다.

아버지는 또한 이 모든 일을 아들을 통해 이루시기 원한다.

전적으로 아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일로 그가 만물로부터 칭송받기 원하신다.

아들이 잘되기 원하시는 것이다.

아들이 하는 모든 것은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당신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성취하실 때,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무엇이 하나님을 그렇게 어렵게 만드는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두가지를 겸하여 하실 수 없다.

불의를 봐줄 수 없다.

죄를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죄를 간과할 수 없는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이 이치적으로는 서로 반대다.

물과 불이 함께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죄인을 그냥 받아준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마땅히 공의를 이루셔야 한다.

죄인을 지옥에 처벌하심으로써 공의를 이루셔야 한다.

그래야, 진짜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비로소 증명한다.

그런데, 공의만을 지키신다면, 인간은 전혀 살아날 길이 없다.

모두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은 구원자를 세상에 보내신다.

죄로 인해 죽을 인간을 대신하여, 죄값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다.

그렇게 하므로, 예수에게 죄를 다 몰아서, 예수를 처벌하시는 공의의 심판을 하시게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판명되었다.

그리고, 죄값은 치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원수관계는 없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게 되었다.

이렇게 될 때, 아들을 죽도록 내어주셨다.

이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할 뿐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이미 나타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랑 때문에 살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의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영광돌려야 마땅하다.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하는가.

예수께 순종하는 것이 방법이다.

순종 자체가 구원이 된다.

, 구원받은 자가 예수께서 남기신 일을 하게 된다.

그가 맡기신 사명을 맡아서, 일을 완수한다.

이것이 순종하는 길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이 다 완성하신 일을 받들어, 선포하는 우리의 일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게 된다.

그래서, 온 세상에 선포가 된다.

아들이 목숨을 던져, 아버지의 일을 완성하셨다는 소식은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만물이 이 진리를 위해 기다려왔다.

그러므로, 모든 숨쉬는 존재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가 아들을 영화롭게 한 것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 결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잘 하게 된다면, 우리의 존재는 영원하게 펼쳐진 하나님의 계획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이다.

하늘이 정해준 직분이 있는데, 내 뜻대로 하면 안될 것이다.

인간이 원래 갖고 있던 좁쌀 같은 심정으로 우리 남은 인생을 설계하고, 판단하는 것은 엄청 잘못된 결과를 자초하는 것이다.

시작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

우리는 죄인에게서 옮긴지도 얼마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육신의 소욕에 약하다.

육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에는 굉장히 익숙하다.

우리의 새삶을 자기가 정의하고, 자기가 결정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 좁은 심령, 바람만 불면 흔들리는 심령을 가지고, 육신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늘을 틀림없이 갈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치면서 살 수 없다.

굉장히 위험하다.

무언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했고, 신앙을 잘못보았다.

우리 생각대로 신앙을 결정하거나, 인생의 흐름을 결정할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종이라는 위치를 벗어난 것이다.

내 본분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벗어나면 탈선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성경에서도 계속 가이드를 주고 있다.

그 가이드의 거의 대부분의 일치된 요점은 예수를 닮으라는 것이다.

, 우리는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즉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다.

보냄받은 자의 역할을 다하므로, 일단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간절히 소원하는 바, 아버지께 영광이 돌려지는 일에 절대 중요한 근거가 된다.

주님은 일단 우리가 신실하고, 헌신적인 영혼이 되기 원하고, 주님의 것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주님으로부터 나온 자, 주님의 피로 세운 교회, 옛사람을 벗고 충성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성품 뿐만 아니라, 방향 자체를 옳게 갖기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크고, 작은 죄를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셨다.

공짜가 아니라, 그가 값을 치루어 받으셨다.

주님이 용서하셨다고, 우리는 용서받았다고, 개운하게 생각하겠지만, 반드시 이에 맞추어 변화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성품, 주님의 신앙, 주님의 정신과 같이 가야 한다.

그가 가시는 길에 우리도 함께 가야 한다.

그렇게 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항상 우선적 권위를 두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가장 실수하기 쉬운 규칙이 이것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자기 뜻대로 한다.

열이면 열 다 자기 뜻대로 한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서로 정하여, 인간의 뜻으로 간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연약함이 약점이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성숙함이 예수님의 수준에 꽤 가깝게 갈 수 있다.

어느 정도 주를 닮도록 성장했는가는 두번째 문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부단한 노력이다.

안되더라도, 하려고 하는 바뀐 자세를 기대하신다.

마음이 아픈 자, 통회하는 자, 이런 자들이 결국 주님 닮도록, 자기를 희생하면서 할 것이다.

이런 자의 신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자.

주님 때문에 아버지가 영화롭게 된다고, 천하만물이 외칠 수 있도록, 힘써주시기 바란다.

 

본문의 말씀은 요13장부터 시작된 그날 저녁의 긴 설교를 마치고 난 이후의 일이다.

주님 돌아가시기 전날밤이다.

이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다가 하셨는지, 다락방에서 하셨는지는 잘 모른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의 기도를 듣는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하시는 기도를 듣는다.

예수께서 고의로 제자들이 듣도록 하셨다.

예수께서 아버지와 어떻게 관계가 되셨는지, 다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보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엄청난 대역사를 계획하고 계셨고, 그 일을 진행해오셨다.

제자들에게만 적나라하게 보여주셨다.

세상이 그냥 자동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창세전, 시간이 있기 전부터 게획되어, 이어왔고, 그 일을 감당할 분이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을 향해 그 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 모든 계획을 성취하시는 분이셨다.

, 이후에 드러나지만, 충격적인 놀라운 일이 있다.

앞으로 제자들 때문에, 앞으로 있을 교회들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있었다.

이 때, 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진짜 주기도다.

그런데, 통상적인 우리의 주기도는 마태복음의 주기도다.

사실 이 기도는 주님이 하신 기도가 아니다.

제자들에게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모델을 내어주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의 기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문의 기도가 진짜 주기도다.

여기서 주님은 세부분을 나누어 기도하셨다.

자신을 위하여, 제자들을 위하여, 앞으로 나타날 교회를 위하여 하셨다.

오늘 부분이 삼부중 첫번째 부분이다.

 

요한복음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요점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가 영화롭게 되게 하옵소서 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이어온 하나님의 큰 역사가 여기서 집중되어, 절정에 이르기 직전임을 나타낸다.

이 때 주님께서 기도를 시작하신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현실적으로는 완절히 음울하고, 망하기 직전이다.

주님은 곧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된다.

사람들이 살기를 가지고 노리고 있고, 잡으려고 하고 있다.

주님 앞에 놓여진 시간들은 세상적으로는 가망이 없다.

주님은 망하기로 되어있는 것 같이 어두운 시점에 놓여 있다.

그런데, 주님은 힘찬 목소리로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영어로 MY FATHER.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LORD)라고 부르지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다.

여기서 드러내신다.

그는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요, 서로 다른 인격이시다.

이전에는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때가 이르렀다고 하셨다.

영원전부터 준비하신 일이 마침내 완성하는 때가 도달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의 드라마는 여기서 정점을 맞게 된다.

어떤 것이 성격인가.

희생제물이 인자인 것이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자신을 드리게 된다.

그동안 수많은 세월동안 양들의 희생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참 하나님의 어린양이 나타나셔서, 자신을 드릴 때가 되었다.

어린양되신 주님의 희생은 마귀를 이기고, 사단을 심판하고, 죄를 한번에 다 멸하고, 사망을 이긴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보면, 답답할 뿐이다.

어둠이 가득하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싸여 있다.

마음이 굉장히 상해있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아무 희망이 없는데, 비참한 패배 분위기에서, 주님은 홀로 승리를 말하고 계시다.

 

[승리에 대한 확신]

 

눈앞의 일은 십자가의 죽음뿐인데, 주님 홀로 승리를 말하고 계셨다.

주께서 승리를 확신하시며,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말씀하신다.

이 짧은 구절이 모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전생애를 담아, 사역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놓으며, 마지막 일을 할 것을 아뢰고 계신 것이다.

그는 충실하게 일해왔다.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해나갈 것이다.

이 때, 아버지께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원하신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일은 성취되어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명성이 완전히 위기에 몰려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패배같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최고의 일이 달성된다.

제자들의 눈에는 최고의 비극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았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의 여정 전체를 보고, 판단하고 계셨다.

완전히 비극적이고, 자기를 소모시키는 일이 남아있는데, 주님은 승리를 보고 계셨다.

주님은 더 하실 일이 없고, 마지막에 다 소모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모든 것을 보고 계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제자들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하나님의 입장은 이렇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을 반란하고, 떠나게 될 것이다.

인류중 소수는 구원하리라 영원전부터 약속하셨다.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런 속죄하는 일은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

영원전에 그가 택하신 자를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주셨다.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누구에게 약속하셨을까. 창조전인데.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이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주셨다.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예수를 통하여.

이들은 신부다.

하나님이 아들을 향한 사랑을 신부를 주시겠다 약속하시므로 표현하셨다.

성경의 표현대로 신부라고 한 것이다.

이 구속받은 자들은 아들의 명예만을 높일 자들이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을 자들이다.

행실이 깨끗한 자들이다.

 

요한복음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하셨다.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다.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로 주시도록 정하셨다.

다만, 그들이 예수께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연결하시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 닮는 자들이다.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예수는 하나님의 맏아들, 나머지는 형제다.

이들은 항상 아들의 형상을 닮으려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만큼 거룩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고, 아들같이 영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발전한 그들을 볼 때, 하나님의 아들이 만들어낸 최상의 작품이다.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려드리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멸하고, 아버지께 돌린다.

 

고린도전서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고린도전서 15: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시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나라를 드린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베풀고, 화답이 되는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은 완전히 마무리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다.

아버지의 우선적 관심은 아들이고, 아들의 우선적 관심은 아버지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영화롭게 되기에 부끄럼이 없는 거룩한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안되도, 정신만은 돌이킨 자, 육신은 무능해도, 변화된 열매로 드러나야 한다.

이런 목적을 두고, 우리가 변할 것을 기대하시고,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전날 밤, 마지막으로 결단의 말씀을 하셨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의 소원은 아버지의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영광으로 높여지는 순간]

 

그래서, 십자가 최악의 순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 되었다.

본문의 예수님의 첫번째 기도,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는 것은 자기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죽을 때, 아버지께 다 드리오니,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만물이 나를 실패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의 실제적인 증거로 보게 하옵소서.

아들의 희생으로 아버지가 영화롭게 되도록 하옵소서.

이것이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이렇게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일은 완벽하게 성공하게 된다.

영원전부터 달려오신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였고, 하나님의 공의가 판명되었다.

 

[아버지의 뜻대로 완주하도록 나를 도우소서]

 

요한복음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이어서 말씀하신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도록, 권세를 주셨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것은 주님이 직접 기도하신 내용은 아니고, 사도 요한이 해석을 붙인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삶속의 교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직 십자가에 오르지 않았지만,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 돌아가기 원하는 소원을 아뢴다.

 

[성도의 마땅한 자세]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많다.

우리의 모든 삶도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그가 십자가에서 견디셨던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우리 자신의 승리와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를 사주시고, 우리의 참 주인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가 신실하기를 기대하셨다.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들에게 영생이 있게 하신다.

이것은 예수 십자가 이후의 사람뿐 아니라, 이전의 사람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건을 보지 못했지만, 회개한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주어지게 된다.

그의 구원의 은혜는 회개한 자가 받는다.

하나님의 긍휼을 평생 소원하다가 삶을 마친 자들에게 구원의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주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영화롭게 되는 일에 우리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 바란다.

그리스도에게 영광이 되는 신앙생활이 되기 바란다.

훌륭하고, 성취하는 자가 아니라, 돌이킨 자, 주께 속한 자, 겸손히 회개한 자가 되기 바란다.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고,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모든 결과로 나타나기 원합니다.

 


설교요지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그가
사랑하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7:28)
이는 그만큼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요(3:16)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시고(17:5)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심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구원받은 자들을
사랑하심같이(요일 4:9)
아버지도 아들의 것을 아들과 같이 사랑하신다(17:10)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때에 그 자격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알고 믿어야 한다(17:3)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랑이요 그러므로(요일 4:8)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심을 믿어야 한다(10:30)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5:23)
아들을 공경치 않는 자는 아버지를 사랑치 않고(7:11)
아들을 사랑한다 하면서
아버지를 공경치 않는 것은 아들을 사랑치 않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의 뜻이요(6:39~40)
아들의 뜻은 아버지의 뜻이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나오신다(15:26)
예수께서 자신을 보내신 이의 아들이라 하심은
아버지를 믿는 것같이 아들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아들을 믿는 것같이 아버지를 믿어야 한다
성령은 아들을 증거하심같이 아버지도 증거하고
아들과 아버지가 동등하심을 증거하신다
성령의 증거가 진리이다
이 진리를 믿는 것이 영생이니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것처럼
성령을 믿어야 한다
성령을 거역하면 성삼위일체를 거역함이니
그 죄가 가볍다 할 수 없으므로 금세도 내세에도
사함이 없으니 성령 훼방이 무서울진저 (視無言)

 

요한복음 7: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요한1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7: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한1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7: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