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교회를 성공하게 하는 성도(연합230122)
230122연합 [하나님의교회를 성공하게 하는 성도] 김성현감독 by KT
230122연합 [하나님의교회를 성공하게 하는 성도] 김성현감독
이사야 5: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이사야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이사야 5:3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이사야 5: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사야 5: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이사야 5:6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곧 옛날 구약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구약 교회에 최고로 베푸실 것을 다 베푸시고 그들의 성공을 북돋으시며 격려하셨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못 미친 것에 대해 분히 여기시며 그들을 품고 도우셨던 무한한 지지를 끊을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돕던 것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들의 앞길은 가시밭으로 뒤덮이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형벌을 예고합니다. 이는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 구약교회 전체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또 인류와 하나님의 관계를 말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경고하시는 지도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류가 이스라엘 안에서, 아담 안에서 이러한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자세를 매우 신중하게 판단을 하여 우리를 개조하고 변화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의 백성, 또 그의 성도, 또 그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인간은 굉장히 강한 변화를 해야 합니다. 교회를 마치 자전거 동호회, 베드민턴 동호회 등 하나의 친목회 비슷하게 여기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다른 교회의 환경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같은 독립 교회, 한 교회만 따로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친목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그 은총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교인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사태가 있으나 없으나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런데 사태까지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 교회 성도들 100프로가 교회를 위해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마치 사회의 친목회라든지, 또 사회의 민주주의적 협의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조직체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임금이 곧 법인 왕정 국가에서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심기대로 이끄는 하나님의 왕국의 질서가 적용되는 곳입니다. 소위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밀면서,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견제와 질투와 욕심이 팽배하고 있는 가운데 움직여가는 이런 세상 조직체와 성격으로, 그런 조직체를 보는 같은 눈으로 교회를 보면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보면, 어떤 환경에 맞추고 또 그러한 스타일로 해 온 바가 있습니다. 우리의 걸어온 스타일을 앞으로 우리 교회의 모든 것에 다 적용해야 하는 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매일 심각하게 우리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우리의 자세를 돌이켜 보고, ‘지금 내가 원수의 방해를 받는 것인가?’ 하는 것도 체크하면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켜 나가고, 버텨 나가게 하는 요소 중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참으로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더 쉬운 말로는 사심없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아껴주는 그들의 그 간절한 소원이, 그들의 어떤 거룩한 소원이 담긴 그 열정으로 인해서 교회가 잘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성도들마다 또 돕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그런 어떤 열정은 천군천사를 부르듯 하늘의 영향력을 불러주어서 악한 원수들의 기운과 역사도 밀어내기 때문에 교회가 좀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사람들만 살피고 가는 사람들이라든지, 혹은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 교회에 대해 갖고 있던 잘못된 관념을 여전히 갖고 있는 자들에게는 교회가 우리와는 다르게 그저 어떤 욕심을 채울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보기도 합니다. 사태를 당하면서, 신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우리가 많이 느꼈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빼앗기면 영원히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속죄는 받았되 하늘로 올라갈 길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성도들이 지켜서 이렇게 오고 있습니다. 제가 가끔 지나가다 보면 성도들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또 격려해주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들의 사랑이 교회의 발전과 안전을 위한 역동적인, 실제적인 힘이 되던 것을 많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너무 고맙다는 마음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 성도들, 너무 훌륭합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성도들의 신앙의 질을 판단합니다. 그런 것을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겉모습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그 진실성을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통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적으로 판단하고, 배척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택하심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어, 이상하다. 왜 저 사람이 안 된다 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중 마지막을 택했습니다. 일곱 번째 선택을, 인간이 취할 마지막 선택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보는 것은 하나님의 것과는 반대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험한 길을 헤쳐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재정적 문제나 우리의 세력을 불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군대의 장이 군병들의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저는 성도들이 영적으로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경고해야 하고, 그들의 영적 안위를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군인들이 깨어 적들과 싸울 수 있도록 “일어나세요! 졸지 마세요! 싸우세요!” 하고 경고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서 성도들로 하여금 우리 교회 지키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단순히 겉모습으로만 본다든지, 또는 교회를 자기 욕심을 채우는 기회로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 생활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겉으로만 신앙이 있고 기도만 세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회개한 심령, 상처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오전 성경 말씀에도 나왔지만, 인자께서 천사들의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데, 그때 사람들이 그를 보고 통곡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통곡은 ‘후회의 통곡’이기도 하고 ‘회개의 통곡’이기도 합니다. 둘중 어느 하나라고 말할 수 없이 두 가지의 의미가 다 포함돼 있습니다. 교회는 회개하는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망각한다든지, 또 변화된 심령에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저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함께 힘을 주고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자기에게 이점이 하나도 없는데, 이익이 없을지라도 교회를 위해 섬깁니다.
베드로전서 3장 16절에도 보며 그 진심으로, 선한 양심으로 교회와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기를 위한 신앙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선한 양심을 가지면 손해를 봅니다. 선을 행하면 당연히 고난을 받습니다. 인간이 잘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손해를 계속 봅니다. 그럼에도 불행히 여기지 않는 것은, 예수께서도 손해를 보셨고, 또 우리가 손해 본 것에 대해 갚아주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교회는 ‘손해 보는 자’라고 명찰을 달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손해 보는 자들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7)
손해 본다고 치면 저도 남들 못지 않습니다. 저도 인생을 바쳤습니다. 일주일 내내 들볶입니다. 저에게는 ‘나’라는 정체가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삶을 이어 가는데에도 바쁜데 교회의 일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교회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처음부터 교회에 접근을 그렇게 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새가족 목양아카데미’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재를 준비해서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느닷 없이 교회에 오게 되어서 예수 믿기 시작해서 두어 주 교회에 나온 사람이라도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 하는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그 영혼에 ‘너의 진심은 무엇이냐!’ 하고 질문을 받았어야 합니다. 한번도 그런 질문을 받지 않고 교회생활 하는 사람이면 교회에 분란을 시키고 어려움을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세게 그의 인생에 대한 질문을 하고, 또 신앙생활 하는 중에도 계속 그런 질문을 해주어야 합니다. “엇! 아차! 아니었다!” 하면서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계속, 매일.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섰다가를 일보전진, 이보후퇴, 이렇게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평생 할 일은 회개와 자기 성찰입니다. 평생 우리는 자기를 죽여 인내하며 주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지금 눈 앞에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가 방향성을 똑바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 방향이란 모호하게 안개 속을 뛰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저 너머에 있는 큰 산을 넘어가자는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저 구름 너머로 뭐가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곳을 향해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암만 한들 남산을 넘을까 말까 하면서.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설정해서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는 곳에 가서 실질적인 능력을 가지고 목표를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 것인데, 과정이 목표가 돼 버리면 안 됩니다. 목표는 목표로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한테 “너 공부해!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해? 너 공부해야 된다. 안 하면 너 죽어!”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부 안 하면 취직도 안 되고, 뭐도 안 되고, 뭐도 안 되고 하다가 속상해서 죽어!’ 아이에게 공부는 죽지 않기 위해 하라는 것인데, 사실 공부 안 한다고 죽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목적을 제대로 알려 주어야지, 현실적이지 않은 강조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목표를 도달할 수 있는 실제적인 목표와 우리를 살게 할 수 있는 목표를 갖고 가야 합니다. 성공 가능성이 있는 목표, 실제적인 목표를 갖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해서 과거에는 엄청나게 어려운 인들이 생겼습니다. 엄청 별 세계에 있는 아이디어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부 영혼들로 인해서 교회가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외국에서 돌아왔을 때, 오늘날 ‘세베연’, 교단연합의 옛날 전신인 ‘기베연’ 목사들이 저에게 와서 몇 년 동안 하소연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우리는 죽어가는데 성락교회는 뭘 하고 있느냐? 왜 책임을 안 지느냐?’ 사실 저는 ‘내가 안 그랬는데…’ 하고 싶지만 계속 들어주었습니다. 너무 시달리다시피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많은 성도들에게서 어려운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된 거냐?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는 거냐?’ 그런데 정작 교회에는 아무런 해결책도 없거니와, 그들에게 그런 식의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제 위험을 다 벗어나고, 안정세에 들고 교회 새롭게 재정비하고 부흥을 도모해야 될 때가 이르면, 우리는 급하지만 꼭꼭 밟는 식으로 진행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배경이 되게 많습니다. 그냥 꾹 참고 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속좁은 인간이 이걸 다 감당하려니 참 어렵구나.’ 싶기도 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류탄을 품에 넣고 있는 듯합니다. 폭탄이 팡 직전인 것 같은 심정이 듭니다. 그러나 참고 가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회개치 않는, 양심이 없는 마음으로 교회의 활동에 임하거나, 그렇게 해서 교회가 베풀어준 봉사의 기회를 악용하면 안 될 것입니다.
분열 세력들이 교회를 향해 법적 대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가?’ 싶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것은 절대 안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사태를 오래 겪다 보니 교인들이 지금은 그런 것에 너무 당연한 일로 훈련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태 다 끝나면 이런 모습들도 다 지워야 헙니다. 절대 교회를 상대로 고소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하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소홀히,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우리가 단 한 가지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은 주님을 향한 그 신실함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길 바랄 뿐입니다.’ 하는 심정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그 하나입니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회를 내가 우려먹을까?’ 한다면, 그 개인적으로는 멸망을 거의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교회에도 어려움을 줍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교회가 조금 잘못되거나 했을 때, 목회자들이나 성도가 어디 데 갈 데가 없습니다. 이렇게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우리 성도들이 100프로 하나가 되어서 우리를 살려야 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살려야 합니다. 보이는 목표를 가지고, 신앙의 기쁨을 가지고, 100프로 복음적이며 100프로 성경적이며 100프로 하나님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친히 인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00프로 회개된 심령들이 간절한 한 가지 목소리로 하나님의 뜻으로 간구하여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물론 다른 교회에서는 그런 공격들에 대해 우리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또 우리 교인들의 경우 다른 교회로 옮겨가기도 어렵고, 목회자도 우리 교회 떠나면 다른 데 갈 데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으면 내가 예수님을 사랑했듯이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 보면, 예수 믿은 다음부터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개 교인이라도 주님을 진실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진실함으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당신이 죄 짓고 안 짓고는, 이거는 제 문제도 아니고 교회 문제도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이 교회를 사랑하느냐 마니냐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직분자가 되면, 어떤 임무를 맡게 된다면 사랑을 다 쏟기를 원합니다. 겉으로만 훌륭한데, 속으로는 ‘교회를 어떻게 우려먹을까?’ 하며 탐내는 마음을 수년간 품어온 사람들에 의해 분열 같은 일들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품었던 것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인물도 오랫동안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가 결국 일을 냈습니다. 우리 교회에 위기가 있습니다. 그런 영혼들이 언제 일을 낼지 모르니,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일들을 맞닥드려야 되는 뼈아픈 위기가 있습니다. 교회는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은 자기가 압니다. 자기 속에 파묻혀서 온전한 판단을 못하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교회에서 무슨 유익을 차지하려는 마음을 품고 계속 그것을 계산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서 계속 계산을 합니다. ‘이렇게 내가 해온 것은 뭐고…’ 그런 생각은 성경에서 절대 안 된다고, 그런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은 버려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종이 돼야 된다. 평생 주의 일을 하여 살라. 육신을 따라가면 너희 멸망한다.’ 우리는 이런 전제를 갖고 여기 함께 있습니다.
우리 이웃에 있는 나라에도 성도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 설교를 그대로 듣습니다. 제가 주일설교 때에도 말씀을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하는 것은 외국으로 그 설교가 나가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단어 하나도 신경 써서 설교를 해야 번역이 쉽고 통역이 쉽고 전달이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보다 설교 준비가 열 배 이상 어려운데도, 일부로 그렇게 합니다. 왜 그러느냐? 저 이웃에 있는 성도들 때문에. 그들은 너무너무 순수합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합니다. 우리 성도들 못지 않게 저를 사랑합니다. 진짜로 사랑합니다. 물론 그들이 저를 사랑한다고, 여러분 앞에 나를 높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성도들이 저를 사랑해도 불편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불편합니다. 다만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쳐서 시궁창에 넣으신들 뭐라 할 수 없는 아무 가치 없습니다. 그러나 제 직분은 가치가 있습니다. 직분은 도전해서는 안 되는 무서운 판단이 따라다니는 그런 높은 직급입니다.
외국에 있는 그런 성도들을 보면 너무 훌륭합니다. ‘이 교회가 핍박에서 견디고 있는 것은 저 순수함 때문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목사님 통해서 계속 듣습니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너무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데도 신앙 고백을 반듯하게 합니다. 신앙 고백을 하지 않으면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무너집니다. 그런데 그들은 신앙 고백을 철저하게 합니다. 너무 순수합니다. 그 순수함에 대해 저는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가 ‘mother church’입니다. 그러면 그들보다 훨씬 나아야 되거든요? 우리 성도 여러분, 더욱더 순수하고, 더욱더 회개한 모습으로 우리 교회를 섬기고, 우리 교회 성공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처음부터 자기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도 세상에서 하던 것 같이, 같은 말이라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살짝 뉘앙스를 바꾸고. 또 누구를 한번 속여보니까 잘 넘어가는 것 같으면 계속 속이고. 이런 흉악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자기의 사랑을 다 쏟아주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지금 해야 합니다. 하라고 할 때 지금 하고 가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돈도 잘 못 벌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사랑은 하고 가셔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가세요! 하나님 마음에 각인은 찍어야 될 거 아닙니까? 나는 우리 교회가 회개한 교회이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당신의 회개한 인생의 역사를 단 얼마만이라도 보여주라 이겁니다. 교회를 상대로 법적 대응하려고 애쓰지 말고요.
우리 학교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겨우 엄청난 고난을 가지고 이겨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을 돕고, 운영자금을 얻기 위해 펀드 같읕 것도 불러오고 해야 되는데, 오히려 교회에 어려움을 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학교가 간신히 운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학교도 교회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우리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사태가 일어나고 나니까 더욱더 어렵습니다. 분열됐고, 선동돼서 떠난 사람들도 엄청 많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 학생이 될 잠재적 인구도 엄청 많이 줄었고, 나라가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현재 지방의 많은 대학이 문을 닫았습니다. 시골에 있는 학교들 중에서 문 닫은 학교도 굉장히 많습니다. 학생들이 없습니다. 어느 학교든지 이것이 어떤 공포의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도 애를 써서 교회를 도와줘야 합니다. 교회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필요한 것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능상 그렇습니다. 재정적 어려움과 더불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중에도 교회가 학교를 돕고 있다면, 학교는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지금 여기 현실에서, 당장의 위험에서. 이럴 때 학교가 교회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전부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한 저는 학교가 우리 교회를 도와줄 수 있는, 진짜 도와주는 기구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학교가 없으면 교회가 너무 불편하다. 학교야, 어디 있냐? 우리 도와다오.’ 하는 것으로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학교야, 마음 대로 해. 우리는 돈은 계속 부어줄게.’ 이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살리고 학교도 살려야 합니다.
이런 판에 이렇게 사랑이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을 끊지 않은 모양입니다. 지난 옛 사람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언젠가는 모두가 지금보다 훨씬 순수해져서, ‘주여, 내 영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소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나를 버리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하는 순수한 심령으로 교회에 사랑을 바쳐 하나님께 영광, 영광 돌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비난하는 영혼이 다른 성도보다 더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런 영혼의 상태가 더 건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는 진짜 하나님의 원수 된 자들이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덮어서 주께 묻혀가고 있을 뿐입니다. 주의 이름을 의지하여서 묻혀 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예를, 주의 이름의 모든 권세를 깎아가면서, 흠을 내가면서 묻혀 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비난하는 자를 주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 교회의 성공을 위해 마음 속부터 돕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인생 몇 년, 10년, 이렇게 바라본다면 이런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영원을, 만 년, 백만 년, 억년, 그 이상을 바라본다면 제 말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결단하고 원수가 당신의 신앙을 망치지 않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그때까지 참는 우리 심령, 회개하는 심령 다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우리의 형제 된 순순한 외국인 교회들이 기쁨으로 우리 교회를 따라오고 배우고 할 수 있는, 가르쳐줄 수 있는 훌륭한 교훈들을 만들어가는 교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를 받아주시옵소서. 주님에게 신실한 마음으로 다가가게 하옵소서. 내 더러운 것은 주께서 가려주고 계시오나, 우리의 본질에 대한 자각을 하고 이제 주님께 참으로 의지하고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진정한 사모함과 섬김이 있도록 우리를 역사해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도와주시고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이 이끄시려는 성공으로 인도하는 그 길을 따라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우리 교회, 성공적으로 주님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께서 예비하신 성공을 쟁취하게 도와주시고, 모두가 순종하는 마음, 모두가 무엇보다도 진실로 주의 일을, 주를 사랑하고 순종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를 이용해 먹거나, 또 겉으로는 주님의 의로 무장하고 주님의 명예를 핑계 삼아, 빙자하여 오히려 주께 아픔을 주는 자가 하나도 없게 하시고, 이렇게 하나로 통일 되어서 진정한 신앙의 결실들을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