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36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심(230903)

lks8284 2023. 9. 3. 18:17

230903주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심]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죽은 우리를 살려주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
감히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닌데, 그가 그래도 사랑해주셨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최소한 그 은혜를 감사하고, 조금이라도 갚아내려고 하는 정신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우리 과거의 형편을 잊어버리는 실수]

우리는 자주 우리의 옛모습을 잊고 산다.
옛모습이 사실 우리에게 얼마나 끔찍한지,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나아진 형편에 대해서, 충분한 감동을 유지하지 못한다.
지금도 모라자서, 더 받고 싶어한다.
이미 올라가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잘 실감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잊는다.
그런데, 이것은 신앙에서 굉장히 큰 문제다.
신앙은 감사의 토대위에 있기 때문이다.
감사는 우리 믿음을 받쳐주는 토대이자, 원동력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부터 감사했다.
그 때까지 베푸신 은혜, 앞으로 구원자가 오실 것을 기대하면서 감사했다.
그리스도 교회는 이미 은혜 받은 이후의 사람으로서, 당연히 감사할 자다.
그러므로, 그 믿음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분명해야 한다.

믿음이 무엇일까.
믿음은 비행기 타고 여행할 때, 비행기 티켓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티켓이 있어야,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적어도 티켓은 잘 보관하고 있다가, 비행기 탈 때, 내야 한다.
그런데, 티켓을 잃어버리고, 그냥 들어가려고 하면, 막을 것이다.
이것은 비행기 한번 타고 마는 일이지만, 영원한 운명에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평생 그 한순간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믿음은 무엇일까.
어떤 정보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삶을 바꾸는 결단이다.
굉장히 극적인 새결단이다.
그래서, 믿음은 당연히 따라오는 이후의 삶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믿음은 새사람으로 바뀌는 결단과 따라오는 삶이다.
믿음은 그렇게 가볍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해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맞추는 대결단으로 새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극적인 옛운명에서 구출되었다는 극적인 상황을 믿음 자체가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서부터 대변화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새삶도 실패한다.

[그리스도 안의 새 삶은 하나님과 새로운 인격관계]

그리스도 안에서 새삶을 사는 것은 새영역에서 사는 것이다.
예수 믿기 전에는 빛이 없는 어둠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빛이 있는 곳이다.
장소가 달라졌다.
여기서는 영적 감각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마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공식이나 틀속에 들어가서 통과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일일히 관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 따로 믿는 것이 아니다.
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 하지만, 각인이 하나님과 사귄다.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한다.
그러므로 영감이 있어야 한다.
새신앙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인 영감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인격을 사귀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귐은 순종하면서 살겠다는 것이다.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우리는 무리로서 예배를 드리고, 역할을 하지만, 일일히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해야 한다.

[옛사람과의 과감한 결별]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백프로 순종한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명하시는가.
성령께서 교회를 위해 직접 지도하시고, 인도하신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옛사람과 반드시 결별해야 한다.
그냥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정도는 대단히 부족한 것이다.
사실은 옛사람과 결별해야 한다.
주님이 나를 위해 자신을 포기한 것에 비하면, 나도 그에 준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침례를 통해 옛사람과 결별한다.
침례의 뜻은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당신으로 삽니다, 결단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설령 아직 예수 믿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권유나 감동으로 침례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사실을 알 때, 얼른 옛사람에 대한 과감한 결단을 선언해야 한다.
완전히 옛날의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좌절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거룩함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한순간에 변화되지 않는다.
이 세상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노력이 항상 필요하다.
결국 그 날 온전해 질 것이다.

십자가 너머, 언젠가 그 날 온전케 되리라.
고백한 찬양이 있는데, 굉장히 감동적이다.
지금은 온전치 않아도, 노력을 다하여 가는 것이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훈련이 필요하다.
옛사람을 버리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면,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행동이 있다.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에 나오면, 다른 성도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므로,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옛사람을 버린 자라는 것을 증거한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도 동시에 설명한다.
구원받은 자의 행실을 하라. 성도의 의무다.
진짜 성도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사랑을 계속 하는 자다.
이 사람의 행위 자체가 새롭게 거듭난 정체를 말하고 있다.
새가족 교육도 나는 심각하게 생각한다.
처음에 와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들은 옛사람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침례 받은 후에는 다른 사람을 섬긴다.
이것이 성도의 멤버쉽이다.

우리는 교회사랑의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다.
사랑하라. 다 해결된다.
사랑은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믿음은 언제든지 잃을 수 있다.
구원을 상실하는 것이다.
계시록은 믿음을 상실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심판자로서 마구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하셨다.
하나님이 가지신 부담과 고통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옛사람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기억하고, 마땅한 의무를 행하므로, 천국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전체가 한 유니폼을 입고, 그가 양육하실 때, 백프로 천국백성이 되기 바란다.

[우리의 과거에 대한 진실]

분문에서는 교회성도들이 과거의 처지에서 바뀐 사실을 알고 있느냐 묻는다.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주로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회인데, 소아시아 전체에 들어갈 편지다.
너희도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
우리 말 본문에는 허물과 죄가 있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헬라어로 보면, 너희가 죽었다, 그래서, 죄와 허물에 살았다고 하는 것이다.
죄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살고 있는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허물과 죄의 영역.
너희 본질이 그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그 때부터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영으로 죽은 사람은 죄와 허물 속에 들어있다.
그 속에 사는 자는 속에서 그 죄를 일으키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죄를 범하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너희 영역이 죄와 허물 속에 있다.

마태복음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하고, 악한 사람은 악한 일을 한다.
이와같이 진짜 속이 무엇인지 가리려고 해도 가릴 수 없다.

마태복음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태복음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허물은 무언가 위반하는 것, 죄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죄성 전체를 나타내려고, 두 단어를 통해 포괄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애초에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범죄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
그래서, 당장 육체적 죽음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몸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죽는다.
이것은 심판받아 영원히 죽는 것에 대한 부분적인 맛보기다.
여기서 죽는 것을 보고, 영원히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동시에 일어났다.
영원히 일어날 일에 대해서, 현실에서 부분적으로 체험한다.
지금 멀쩡히 살아있는데, 죽는다니 무슨 소리냐 하지만, 살아있어도 죽을 것이다.

마태복음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디모데전서 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누구는 신자라고 하지만, 신자가 아니라, 죽은 자라고 할 자도 있다.

요한계시록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요한1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반대로 원래 죽은 자인데, 살아난 자로 나타나는 증거도 있다.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사실을 자기가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망 속의 삶의 모습]

그러나, 옛날 삶의 방식이 어땠을까.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 때, 허물과 죄로 살 때,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비참한 처지였다.
이 세상은 불신앙의 세상을 말한다.
예수님도 이 세상을 당신의 세상으로 보지 않으셨다.
경계하셨다.
이 세상의 풍속은 시대, 세대를 말한다.
풍속이라고 번역했는데, 잘한 것이다.
세상, 풍속 같은 말이다.
온 세상을 어우르는 세상의 풍조를 한꺼번에 말하고 있다.
죄로 물든 성격이다.
이 세상에서는 세상 시스템이 있다.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살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명령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삶의 요소 요소에 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삶의 곳곳마다 죄가 뿌려져 있다.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죄를 품고 산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으로 세워진 사회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우기, 이 세상은 공중권세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다.
성경은 공중을 하늘과 동일하게 보고 있지 않다.
공중은 하늘보다 위치가 낮다.
거기는 악한 영들, 사단의 천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다.
사단의 군대는 거기서 진을 치고 있고, 구원받지 않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압력을 주고, 통제하여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위에 우두머리가 있는데, 그가 바로 사단이다.
이들이 있는데도, 땅에 있는 인간들은 자유하다고 한다.
자유하지 않다. 독립적이지 않다.
이 세상은 악한 세력에 의해 조종을 받고 있다.
뿌리를 사단에게 두고 있어서, 결국 사단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죄의 성질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그와 성질이 같다.
하나님과는 반대되는 성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사단의 인도에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자연스럽게 악한 영향의 지배를 받는다.
그들은 영적 주파수가 사단과 똑같다.
거기 거하고 있기 때문에, 사단은 생각을 집어넣는다.
하고 싶지 않은데, 갑자기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으로 알고 저지른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조종한다.
자기들의 의지로 사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 삶의 형태의 전체적 성격은 불순종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을 따르는 것에 뿌리깊게 습관이 있다.
그들은 사단의 자녀들이다.
불순종의 성격이 뿌리깊게 있어서,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다.

허물과 죄의 상태에서 세상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른다.
그들의 마음에 맞는다.
불순종하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
지금도 역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다. 신자들에게도 위협적이다.

에베소서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에베소서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사단은 여전히 자기의 일을 할 것인데, 영적 감각이 없으면 판단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익숙해서 당할 수 있다.
사단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날까지 그는 싸울 것이다.

[육체의 욕심과 마음의 욕망]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믿는 사람들도 과거에는 육체를 따라 살았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로마서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로마서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마음에 원하는 것. 여기서 마음은 깊은 마음이 아니라, 충동적인 마음을 말한다.
heart가 아니라, mind.
생각이 오염된 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본질상, 태어나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생각도 자기 생각이 아니다.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노의 자식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소망이 없다.
오늘 처음 태어났는데, 이미 지옥의 운명이다.

[대반전]

에베소서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 번역에는 없지만, 원어에는 앞부분에 '그러나'를 집어넣었다.
대반전이다.
우리 운명이 이렇게 극명하게 바뀌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 진짜 도와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불쌍히 여겨서, 그가 자신을 내어주셔서 도와주셨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에 대한 오해]

이 사랑은 우리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 또 우리가 하려고 하는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이다.
허물과 죄에 갖혀 있는 우리를 사랑으로 그가 구해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시한 자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기 싫어한다.
넘버원 유전자가 불순종이다.
이런 심각한 죄성이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참으시고, 살 길을 열어주셨다.

그런데, 이 풍성한 사랑에 대한 오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운전하다가 어린아이를 치어 죽이면, 재판을 받고 고생스럽게 값을 치러야 한다.
죄값을 다 치르면, 그는 법으로는 자유하다.
그가 법적 책임을 치렀어도, 그 부모의 아픈 마음은 치유되지 않는다.
만약 그 범죄자와 그 부모가 화목되려면, 부모가 용서하는 길 밖에 없다.
가해자는 화목하게 할 입장이 아니다.
이런 경우가 하나님의 경우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셔서, 그 분이 가진 상처는 씻어지지 않는다.
그가 당한 범죄로 인한 고통은 그가 감당하셔야 할 당신의 짐이다.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다니까, 그가 받으신 고통을 쉽게 감당하신다고 생각하면 잘못생각한 것이다.
그는 많이 견디셔야 했다.
용서할만큼 충분히 견디셔야 헀고, 용서하기 위해, 오히려 자기가 죽을만큼 사랑하셔야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고난을 겪으셔야 했다.
본문의 '그러나'는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인간의 용납할 수 없는 배반과 대조되어, 하나님이 받으신 것을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인간의 행태에 대해서, 나쁜 시각으로 보고 있다.
성경은 단어 수를 줄여서, 인간의 입장을 설명했고, 하나님의 찢어지는 심정은 표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암시되고 있다.
배반과 불순종도 부족해서, 인간은 나락에 떨어져 있는데, 그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야 했다.
하나님이 긍휼이 충만하셔서, 견디는 능력도 많으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가 우리같은 배반자도 용서하시니, 그의 사랑은 아픔을 견디시는 것에 있다.
그 고통을 가슴에 담고도 사실 것을 결심하셨다고 봐야 정확하다.

골로새서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골로새서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고, 주님의 일을 거역했다.
우리는 아직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해 주셨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죽은 우리를 구원하여 살리심]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영원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난 것은 영원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는 새삶을 새생명으로 살도록 주께서 명하신다. 순종하는 자가 되자.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이렇게 형편이 올라왔다면, 거만해서는 안되고, 성도들 앞에서 남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겸손하여, 변화된 자세로 교회를 잘 섬기기 바란다.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기회를 성공시키자.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양육하시는 우리의 삶을 성공시키자.

하나님 우리의 옛모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 자식이었고, 멸망할 자였는데, 하나님의 견디시는 사랑으로 오늘 살아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육신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의 원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하지 않고, 공중권세잡은 자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