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7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심(230910)
230910주일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일으키심]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에베소서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실 때, 단지 그리스도를 살리는 사건으로 국한해서 하신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의 구조를 바꾸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하늘에 앉으실 때, 그에 딸린 백성들의 운명도 바뀌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교회의 가장 우선적 본분 : 영적 변화 : 죄와 결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때문에 교회가 생겼다.
교회의 정체를 결정하는 부분은 처음 예수 믿을 때의 변화다.
우리 모두 예수 처음 믿을 때 큰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전에는 결코 생각하지도 않았고, 원치도 않았던 광범위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회는 외부에서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태도도 다르고, 마음의 생각이나 관심도 다르며, 대화도 다르고, 우러나오는 내어주되 받으려 하지 않는 친절함이 있다.
이런 변화는 영적 변화다.
우리는 영적 변화라고 하면, 비물질을 생각한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육체를 입고 오셨다.
그리고, 인류에게 육체로 살려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 본질은 정신이어서, 그것만 살리면 될 것 같은데, 육체를 반드시 살리신다고 하셨다.
영적인 것을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의 추구로 생각하면 안된다.
영적인 변화나 성장은 우리 실질의 행실과 마음가짐, 가치관의 변화다.
성령이 육신의 생각과 반대된다는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니까 박자가 맞지 않는다.
육신이 원하는 것, 마음의 생각, 죄를 향해 다가가는 이런 것과 반대되는 것이지, 비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변화는 우리 행실의 변화로 즉각 나온다.
이것은 교회의 성질을 말하고 있다.
교회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우리 태도의 변화다.
점잖은 것이 아니라, 죄와 헤어지는 것이다.
죄는 여러가지로 설명되지만, 악으로 나타나는데, 악을 범치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본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절충하려고, 태도에서도 여전히 세상에서 하던 것과 교회의 삶을 대충 섞어간다.
나는 이해한다.
밖에서도 교회처럼 생활하려면 어려울 것이다.
세상과 교회는 조화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다.
불편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지고 갈 짐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절대적으로 악을 행치 말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랑거리기 때문이다.
전 우주적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회복하려면, 하나님의 의로 조화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발견되어야 한다.
마지막 날,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조화를 불러오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통일되게 하신다.
교회는 거기에 가장 우선되는 협력자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하신 일의 현장이다.
우리에게는 과거로부터 떠난 극명한 변화를 보여야 하는 의무가 있다.
우리는 옛권세에서 돌아섰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내놓으므로써, 비로소 교회의 기능이 그 부분에서 서 있게 된다.
교회 최소의 기능은 악을 몰아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질로 맞는 것으로 해 놓는 것이다.
이 우주가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난 것에서 회복되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무엇보다 죄와 결별하는 것이 우선이다.
암을 떼어내고, 몸을 회복하여, 건강을 유지하듯, 새로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의 노력은 필요하다.
물론 죄를 절대 범치 않을 수는 없다.
굉장히 어렵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악한 계획, 교활함이 어느 정도는 다들 있다.
내가 오늘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그 교활함이 나를 지배하면 안된다.
내가 오늘 버려지더라도, 결단코 참고 하나님의 의를 내 안에서 보존하겠다고 결단을 갖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성도의 의무다.
그것이 성도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
최소한 육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기회를 엿보는 것은 버려야 한다.
죄의 권세에서 돌아서서, 최소한 우리를 깨끗케 하신 주님의 의도에 맞도록 우리를 준비하는 것은 성도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고, 교회 안에서는 가장 중요한 영적 규율이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서 법이 되어, 그가 지배하셔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도덕폐기론 자세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모든 죄가 사함받을 수 있으니, 죄를 범해도 괜찮다고 한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죄의 두려움에 쫓기지 말라, 양심의 가책을 받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울 양심을 버리면 안된다.
우리는 예수안에 있으므로, 성도가 되었고, 우리가 교회다.
우리의 삶은 생명이다.
살고 있는 것과 생명 자체가 나누어지지 않는다.
내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육신은 살아있어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다.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는 목숨이 붙어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느냐는 것이다.
옛사람을 버리고, 죄에 대해 죽어야 한다.
죄와 관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부활하면, 하나님께 대해서 살아나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속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다.
침례가 사람을 바꾸지는 않지만, 결단을 지나온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겠다, 악을 행치 않겠다, 적어도 내 교회에 아픔을 주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산다.
이제부터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나의 현재가 영원한 미래다]
나의 현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어떤 사람은 오늘 자기 신앙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언젠가 잘될거라고 뒤로 미룬다.
그러나, 뒤로 미룬 일을 결국 마지막까지 하지 못하고 가는 일은 많다.
사업이 잘되고, 가정이 잘 정리가 되면 그 때부터 하겠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마지막 날에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사고다.
시간이라는 스케쥴에 맞추어 제출하면 된다는 식이다.
영적인 처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런 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이다.
사형수가 죽기전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영접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또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마지막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미래를 망친 것이다.
그 많은 오늘이라는 날에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그 때, 현재라는 시점에서 주께 자신을 맡겠다면, 영원한 미래는 그 날 확정되었을 것이다.
오늘이라는 시점에 확정을 해야 한다.
확정은 내가 하지는 않지만, 주님 앞에 나를 드릴 때, 하나님이 그렇게 간주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일을 중요하게 여겨, 전폭적으로 지원하시는데,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시간은 하나님이 세상을 조율하시는 시간이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향력을 퍼트리고, 참으시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필요없다고 하고, 마지막 숨 넘어가기 직전에 믿겠다고 하면, 오늘 구원된 바가 없고, 미래도 없다.
오늘 내가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오늘 예수의 운명안으로 들어가야, 내 운명이 예수의 운명과 같이 높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원은 독립적 아닌, 예수 안에서 이루어짐]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예수께서 이루셔야 한다.
이것은 내가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도 말하지만, 예수와 얼마나 강력히 연합되는지를 말하는 표현이다.
구원은 내가 잘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복종하여, 믿음을 유지하므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일이 오늘 내게 적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바라고 계시다.
내 구원이 그리스도의 성공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함께 있으면, 온갖 세상의 가치관, 방법 다 버리고, 주의 피로 깨끗히 씻은 세마포를 입고, 그리스도에게 의지하고, 그가 이루신 일이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바래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기초가 될 영적 변화를 잊지 말아야 하고, 오늘이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판결이 죽고 나서 나면 안된다.
판결은 여기서 나야 한다.
내가 할 수 없다.
예수 안에 완전히 연합되어,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바꾸고, 새롭게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전 우주적인 일이 우리 안에 백프로 혜택이 되고, 우리를 보실 때, 승리의 첫증거가 되기 바란다.
[본문]
본래 우리는 진노의 자식이었다.
나는 육신과 마음의 생각을 따라다녔다.
그 때는 꽉 닫혀서 모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밖에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영적인 삶의 시작]
내 안에 예수가 살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삶은 내게 생명이 임한 것이다.
그것은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바울은 허물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다고 하다가 갑자기 은혜로 산 것이라고 한다.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삶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그를 살리시고, 나를 살리신 것이 아니라, 그를 살리실 때, 나도 살아난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안에서 우리는 그의 운명을 나누어 갖는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 말씀에는 '함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공유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운명을 공유한다.
놀라운 일이다. 조건만 맞춘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먼저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옛삶의 방법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의 운명을 함께 나눌수 있게 된다.
[현재의 구원은 미래 구원의 보증]
본문에 너희는 구원을 얻었다고 한다.
현재완료형이다.
과거에 어느 시점에 무엇을 행한 이후, 오늘 시점까지 해당된다.
구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는 것이다.
구원은 내가 처음 믿을 때, 시점일 뿐 아니라, 지금 현재도 진행중이다.
옛날 구원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 구원받은 자다.
현재 시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를 5년전, 10년전 믿었다고 하지만, 그날부터 오늘까지 구원받았다.
오늘 시점이 구원받은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원래 구원은 육체에서 구원되는 것이다.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미래에 있는 것인데, 오늘 받아야 한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있다.
[미래의 구원 완성의 확실성]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부활을 체험했다.
영적인 부활은 마지막날 육체의 부활을 보증한다.
완성을 위해 이미 시작했다.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완성도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
현재가 미래를 결정한다.
오늘 이 시점에 하늘에 임할 믿음이 있어야 한다.
너희가 구원된 것이라 하는 것은 미래에 잘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 너희가 구원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늘 구원받았다면, 오늘 이후로는 나를 살린 능력(예수를 살린 능력)이 내 구원을 유지시킨다.
예수를 살리는데 사용된 그 능력이 오늘 내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미래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게 한다.
에베소서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함께 죽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앉히신다.
이는 우리가 독립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를 부활하게 하시고, 하늘로 올리시는 것을 그대로 베껴놓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와 연합되어서, 예수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늘에 앉는 것은 미래에 있을 일인데, 여기는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다.
진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확실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 만큼 너는 이미 하늘에 속해 있고, 확답이 된 자라는 것이다.
절대 확실하다는 하나님의 자신감, 확실성을 말한다.
하늘에 앉아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물론 성도들은 육체로 올라가서 그리스도와 만나는 그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앉히셨다.
네가 하늘에 속했다.
[하늘에 속함]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여전히 세상에 있지만, 내 영역은 과거의 사망의 영토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토에 들어있다.
여기는 하나님의 본부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진짜 교제가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 깊은 연합 관계]
'그리스도와 함께'의 포인트는 연합관계다.
주님이 나를 이끌어 가셔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행하신 일은 나에게 행한 일과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사실 그리스도께 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교회를 위해 하신 일이 되어버렸다.
오늘 함께라는 말이 세번 나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로 인해 발생한 사건에 나는 한 요소로 들어가 있다.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골로새서 2: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엡2:5-6에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에 대해서 말한다.
당시 소아시아에 이단적 사상이 있어서, 명확하게 공간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땅에 있지만, 하늘에 앉히셨다.
그냥 자기 생각에 하늘에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다. 우리도 그 사건 안에 포함되어 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새 통치와 질서의 도래]
그리스도의 승귀는 전 우주적인 통치구조의 새로운 모양을 가져왔다.
예수가 죽으실 때, 옛질서는 죽고, 부활하실 때는 새질서가 세워진 것이다.
언제든 죄를 범할 기회를 엿보는 것은 끝난 것이다.
새통치로 이전되었다.
우주의 성격이 바뀌었다.
교회는 여기서 대표가 되어있다.
교회는 새통치에 대한 증거이며, 주님의 본부다.
우리의 과거운명에 비하면 굉장히 상승된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교회된 우리 각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보고 계시다.
그래서, 예수께서 승리하셨는데, 우리 승리라고 주장한다.
[교회는 새 통치의 우월성]
교회는 새통치자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존재다.
과거 공중권세 잡은 자 아래 있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승리와 그리스도의 통치를 누린다.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가만 있는데, 상승된다고 여긴다.
여기는 자기가 먼저 죽어야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죽어야 한다.
[부활의 삶의 현실의 모습]
로마서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로마서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구원을 미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너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로 인해 영광받으셨다.
우리도 그에 편입되어, 오늘 영적으로 우리는 하늘에 앉혀 있다.
이것은 마지막 날 하늘에 앉을 확실성을 말한다.
단 오늘 우리가 침례 받으므로, 예수 죽으셨듯이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나시듯,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어야 한다.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세대들에게 나타내시려]
에베소서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이렇게 오늘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고, 변화를 갖고, 옛권세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시듯, 영원한 미래를 완성하자.
끝까지 순종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자.
그래서, 하나님의 승리, 새통치의 증거가 되는데 모두 기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