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사랑과 책임으로 보존되는 우리 교회(연합240211)

lks8284 2024. 2. 17. 05:44

240211연합 [사랑과 책임으로 보존되는 우리 교회] 김성현감독

 

(4:1-23)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숫군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16.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9.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20.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21.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찌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23.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섬기고 있는 이 교회는 우리가 사랑함으로 또 충실함으로 책임을 다하여 돌봄으로써 보존될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속성을, 그분 내면에 그분만 유지하고 있는 아주 귀한 그분의 특성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시고 내려 주셔서, 그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이 그룹, 우리의 정체는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하고 유일한 영역으로서 이 땅에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존재는 평범하게 그냥 하나의 인간단체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능력이 역사하는 교회,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될 수도 있지만, 교회라는 겉모습만 있고 하나님은 없는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땅 전역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목표를 생각할 때, 그런 껍데기만 유지하는 교회라도 부분적으로 그 사역의 노력을 인정을 하실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신앙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고, 생각에 하나님의 뜻을 새기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우리 진심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들은 그 진실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내면에 있는 그 진실함 없이도 겉으로만 진실한척 모양을 낼 수 있습니다. 그걸 잘 하는 (Species)’입니다. 내용은 없는데 껍데기만 있는 것이죠. 대단히 간사합니다. 그런 간사함은 우리가 타락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본성으로는 하나님과 너무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같이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같이 치사하고 교활하고 거짓말을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마음의 진실함 없이 겉으로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교회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교회라는 곳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우리 중 누구에게든 교회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자신이 교회에서 경험한 것들, 교회에 대해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입니다. 저처럼 '교회는 하나님이 진짜로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교회도 있지만, 하나님을 모실 능력이 없어서, 모실만한 책임감과 사랑이 없어서 하나님 계시지 않는, 교회라는 껍데기만 모시는 교회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이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에 동의하더라도 그리 기쁘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저는 껍데기만 교회 노릇하는 교회가 있고 진짜 하나님을 모신 교회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 믿음의 조상들, 신앙을 우리에게까지 전달해줬던 자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무지무지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배반하고 달려온 인간들입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인류를 대신해서 유대인들이 저렇게 해왔습니다. 본문의 말씀에 나오듯, 그들은 유배되었다가 돌아와서 율법을 다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잃고 재앙의 벌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빼앗겼습니다.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유배되어 갔다가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을 다시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속에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비록 그들 가운데 소수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지만, 그들은 오늘 우리에게 믿음을 견인해준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그들은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자기 마음 속에 모시기 위해서, 하나님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되찾기 위해서 저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이 같은 싸움을 몇 번씩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한마디로 이처럼 하나님을 되찾기 위한 정말 대단히 호된 싸움일 것입니다. 이 땅에 온 자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의미는 하나님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 투쟁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는 몸부림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이 진실한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겉이 아니라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 회개해야지.’ 하고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고 나서 목사님, 제가 두시간쯤 눈물 짜면서 기도했습니다. 이제 된 거죠? 아 됐어요? 다 됐대요. , 일어납시다.”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으로 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이런 자였습니까? 당신은 나를 미워하지 않으십니까? 왜 미워하지 않으십니까? 왜 나를 지옥에 던지지 않으십니까?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만나야 될 것입니다.

 

위기에 처해진 자가 유일한 구원자 앞에 서면 자기의 약점을 다 고하며 그에게 목숨을 맡길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평생 목숨을 맡긴 자들입니다.

 

예수를 믿고 안 믿고는 겉모습만 보고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물론 겉에 있는 것들이 우리 내면에 있는 내용들을 반영해주기도 하지만, 사람은 마음이 없는데도 겉으로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렇게 애써서 자기를 꾸며도,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가증스러운 모습을 더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성경에 계시록을 읽으면 , 주님께 충성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성경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계시록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시록은 앞으로 우리에게 있을 일들의 시간적 무대를 간결하게 간추려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충성입니다. 충성, 곧 변치 않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 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한 자는 그냥 불의한 채로 있게 해라. 더러운 자는 그냥 더럽게 놔두어라. 그러나 의로운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자신이 없을지라도, 비록 환경은 그에게 나쁘고 불리해지는 것 같아도 계속 의를 계속 행하게 하라. 의를 행할수록 더 손해보는 것 같고, 그다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도 계속 거룩하게 되어라. 내가 다시 올 때에 반드시 그에게 상을 주리라. 그가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1]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 말씀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말씀대로 되리라고 확신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소망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여기가 끝이니라.’ 이 말씀이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신,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적 계시의 제일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충성하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죽은 어린 양이다. 어린 양들은 알지 않느냐?’ 하고 히브리식 개념으로 믿는 자와 주님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신부라. 내가 반드시 돌아오리라. 나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내 아내를 찾으러 오리라.’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임하시게 할 것입니까? 목회자가 ,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 이런다고 누가 알아?’라고 하며 스스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정당하지 않은 구조로 교회를 이끌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예쁘게 보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 희망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저는 그냥 각자 성도님들이 다른 교회에 찾아 가시든지, 알아서 자기 영혼을 구하세요.” 하고 책임을 완전히 버려야 될 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노련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노련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저는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쏟아져 내려서 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는 우리들을 그가 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기안하신, 고안하신 교회가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다, 저쩧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인가? 이 교회는 무슨 힘으로, 어떤 손으로 받쳐져서 가고 있는 것인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들,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늘 찬양드리고 우리의 완전히 변화된 모습으로 평생 모두 함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어느 정도 소용은 있겠지만, 그것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우리 마음에 30초마다 나쁜 생각을 넣어주는 그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그런 원수의 소리가 들릴 때 싫어! 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돼!” 담대히 선포하며 우리의 정체에 따라 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속에 하나님의 모든 걸 심어주옵소서. 하나님의 성품을 심어주옵소서. 본질은 하나님같이 안되겠지만, 내게 하나님의 옷을 입혀 주옵소서. 하나님을 닮은 옷을, 하나님이 입으신 그 유니폼을 입혀 주옵소서.’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영적 세계에 나는 하나님이 사준 자다! 이 유니폼을 보면 알지 않느냐? 나는 피로 구원받은 자다. 나 건드리지 마!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다.” 하고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안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있고 자기 배만 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도전이 만만치 않습니다. 겉으로만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과연 계시느냐, 우리가 회개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와 연결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의 상태로는 교회를 보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체 내에 교회를 파괴하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자기 교회를 때리는 사람, 자기 교회를 폭파하고, 자기 교회를 가르고, 자기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나마 갈라진 것은 다행인 것 같습니다. 그런 성향을 하나님이 싹 구분해주신 것은 너무 다행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계속 메꿔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나쁜 심보가 있는가 봅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을 흉보기 좋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보면 두 사람만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흉을 봅니다. 희생양을 계속 찾습니다. 어디서든지 그렇습니다. 재미로 다른 사람 흉봅니다. 남편과 아내가 집에서 TV를 볼 때도 아이고, 저기 보기 싫은 사람 또 나왔네!” 하면서 욕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평생의 대화가 누구를 까 내리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합니다. 좀 낯선 사람과는 그런 대화를 잘 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좀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저기 저 집사 말이야하면서 흉을 봅니다. 남을 헐뜯고 나서는 시원해 합니다. 재미있어 합니다. 그러면서 또 어디 없나?’ 하고 희생양을 찾습니다. 너무나 가증합니다. 인간의 제일 더러운 것이 남을 헐뜯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왜 교회에서도 나오는 것이지요? 우리는 다 주님의 십자가에 올라가 있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에 올라가서 주님에게 욕할 것입니까? 남을 흉보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자꾸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저도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안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남을 헐뜯는 사람이 더이상 없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들 다 지워버립시다. 훈련합시다.

 

우리 교회는 오랜 시간 자기 교회를 파괴할 수 있는 공격성을 계속 나누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가장 부실한 면 중의 하나는 어디에서 간부직을 자주 맡고, 장을 맡다 보면 교회에서도 자기를 높은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교회를 차지해 보자.’ 하는 식의 생각을 나눕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 말고는 모든 사람이 동급입니다. 영적으로 동급입니다. 다만, 여러분을 양육하기 위한 하나님이 보내주신 종들이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 있는 것을 그대로 교회에 있게 하고 하나님의 것은 뒤로 물어가 있게 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에서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 빼놓고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아시안컵 축구를 보니 우리나라 축구에 눈에 띄는 약점이 있습니다. 공간 운영에 있어서 조직력이 부족합니다. 특히 수비가 약합니다. 마치 뒷문을 열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약점이 있으니 모든 팀이 그 부분을 노립니다. 말레이시아도 이 부분을 노려 대성공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사정이 그와 유사합니다. 우리 교회를 파괴하겠다고 여러 해를 준비해온 자들이 갑자기 등장하여 예배당 나눠줄게.”라는 암시를 주니 많은 이들이 배신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걸까요?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요? 우리 교회는 그동안 각 예배당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것이 고질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각 예배당에서는 각자의 상황을 본부에 알려주세요.” 하고 외쳐도 대부분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양들아, 내 말이 들리니? 너희들 거기에 있니?” 하고 아무리 불러도 음메에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에서 큰 분란이 일어나서 싸움이 진행되어도 나중에 모든 것이 망가진 후에 나타나 서로 치고받다가 눈알이 빠졌대요.” 하는 소식이나 전해주지 제 때에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왜 진작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죠?”라고 물으면 보통은 벌써 알려줬습니다.” 하는 반응인데, 어떤 데에서는 알려드리면 제가 저희 예배당 목사님을 욕하는 것이 되잖아요. 이르는 것이 되는데, 저는 목회자에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저희 목회자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되잖아요. 저는 목회자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감독님,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하는 식의 반응을 합니다. 후자의 경우, 목회자가 교회에 막 불지르면 옆에서 같이 불 쬐고 있을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막아야 합니다. 교회에 불을 지르는 자를 밀쳐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의롭습니다. 그래서 ,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교회 사람이 교회 건물을 지금 다 뜯어 부수고 있네. . 내가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내가 말하면 우리 예배당 목사님을 반대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일일이 사례를 다 가르쳐 드려야겠습니다. 이런 것은 막아야 합니다. 주님도 의로운 화를 내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혈을 만들고 있느냐?” 하시면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본부에 말해주어야 합니다. 지예배당이고 어디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부목사님들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별로 상관하지 않지만, 제발 우리 교회에서, 협력실이나 누군가가 교회를 잘 정리해주고 잘 지도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목사님들도 본부에 예배당 상황을 얘기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습니다. 예배당에 이런이런 일이 있고일주일에 몇 자라도 써서 본부에 알려주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얘기하리라고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저에게 얘기해주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제게 말할 때 다 아시겠지만하고 말하는데, 저는 모릅니다. 하도 그런 소리를 들어서 제 이름이 다 아시겠지만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저도 모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목회자들이 본교에 얘기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직접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진짜로 말하는 것입니다. 각 예배당의 소식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에 다소 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고 전체가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회개해야 되고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심령이 중생한 순간부터, 침례받은 순간부터 예수님처럼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자가 되었다면 그 이전에 있던 과거의 흔적들을 조금씩 제어해 나가야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모두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고 겉은 죄인의 모습이지만 속은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빌려 입고 서 있습니다. 참으로 지옥에 가지 않는 자로 서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부 지옥에 가지 않을 자로 서 있고!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은혜를 받은 자들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가 돼야 됩니다.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 신앙에 도덕성도 확실히 중요하고 연관이 돼 있지만, 우선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교회를 돈으로 보고 교회를 어떻게든 우려먹으려고 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하도 많이 보아서 이제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확실히 굳혔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의 슬픈 과거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자는 것입니다. 개선하여서 참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우리의 진실한 사랑으로, 진실한 책임으로, 진실한 충성으로 보존되는 우리 교회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사랑받자는 것입니다. 가증스럽게 겉으로만 교회 모양을 만들어 놓고 교회를 뜯어먹으려 하지 말고, 사랑하는 자 됩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교회를 위한 자들 됩시다. “너는 이 땅에서 뭐하다가 왔느냐?” “나는 내 모든 성취도 있고 세상의 일도 있지만, 주의 교회에 꾸준히 저의 사랑을, 제 인생의 80%이상의 애정을 다 교회에다가 쏟고 왔습니다.” “그럼 너는 가진 게 없겠구나.” “없죠. 다 드렸으니까요.” “내 사랑아, 너는 의롭도다. 너는 의롭도다. 너는 거룩하도다. 너는 내 상에서 함께 영원히 먹으리라.” 할렐루야! 그렇게 되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까? 믿지 않아도 나는 주의 약속을 믿고, 나는 효험 있는 주님의 결정으로 이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 믿음에 참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도무지 쓰러지지 않는 우리 교회, 사랑으로 보존하고 잘 돌봐주어서 책임 있게, 무너지지 않게, 우리가 썩지 않게, 시험들지 않게, 연약해지지 않게 협력하여서 하나가 되어서 잘 보존되는 우리 교회를 이루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주님을 머리로 둔 우리들, 우리 머리 되신 주님을 자랑스럽게 우리 어깨에 메고 우리 주님의 하신 일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소망은 오직 주님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주님의 만족하심입니다. 우리 진실함으로 변화되고, 진실함으로 교회를 돌보고 사랑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의 몸과 뜻을 다하여 교회를 사랑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역사하시고, 많은 위로를 주시고, 또 용기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녹취 :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