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17 교회의 부활의 소망(250420)

lks8284 2025. 4. 20. 18:47

250420부활주일 [교회의 부활의 소망]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살전4:13-18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부활의 소망안에 서 있다.

 

만약 교회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의 모든 것들이 다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교육하고, 섬기고, 우리 신앙의 삶의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늘도 그 소망안에 서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우리는 그 소망을 갖고 사는 것이다. 그 기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자기를 관리하며, 거룩한 모습으로 주께서 남기신 길을 따라 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부활의 소망은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기대어 있지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의, 업적, 나의 거룩함에 의해서 얻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활의 소망은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는 것에 의지하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어떤 것에 의해서 부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 속한 자로서, 오직 그를 따라감으로써 그분 자신이 부활로 여신 길을 뒤따라 가는 것이다.

 

[죄가 없으면 죽어도 살아난다?]

 

어떤 이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그가 죽으셨지만, 죄가 없으셔서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한다.

죄 없으신 분으로 판명되어, 그를 살리셨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기 추측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이치라면, 누구든지 죄가 없으면, 죽어도 살아난다고 오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어떤 원리가 잘못된 것을 고치므로, 살아난다.

이것은 내가 예수 믿는 것과 무관하게, 내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한다는 것 같다.

아니다.

 

[그리스도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세]

 

이 세상은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어떤 이치나 법칙은 없다.

죽으면 끝이다.

이미 죽었는데, 죽으면 안되니까, 되돌려야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 살아나셨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신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 드린 제사에 그가 만족하셨기 때문이다.

 

10:5,12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자신을 제물로 드린 제사를 아버지가 기뻐하시면서, 예수를 살리신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전체적인 골격이다.

예수를 살리신 것은 아버지만의 권한이다.

그가 하시길 원하셔서 하신 것이다.

예수를 살리신 것은 그의 억울한 사정이나 법칙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살리신 것이다.

왜 살리셨는가.

예수께서 하신 일이 그의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성취해서, 아버지께 드렸다.

자기 목숨을 다해.

아버지가 예수를 살리신 것은 그가 죄없으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가 예수를 살리신 사실 안에 우리의 부활의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우리가 예수께 속하여, 그의 죽음에 참여했으니, 아버지가 예수를 살리시듯, 우리를 살리실 것이다.

이것은 주님도 약속하셨다.

우리가 주께 속하였으니, 그가 죽으실 때, 나도 죽음에 참여하고, 그가 부활에 참여할 때는 나도 거기에 참여할 것이다.

이것은 약속에 의한 것이다.

마지막 날 너희를 버리지 않고, 반드시 살리실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셨다면, 아들 안에 속한 자들도 살리실 것이다.

 

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고전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살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여야 한다.

또한 그의 죽음에 참여한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 때문에, 처음 예수 만날 때부터 침례를 받으려 했다.

침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믿음을 고백하는 행위다.

 

2: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동시에 우리가 침례받을 때, 물에 들어갔다가 올라오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도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일생일대에 한번 드리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대표하는 고백이 침례다.

침례 자체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상징성이 있다. 인간의 결단이다.

 

[사망의 권세를 깨심]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소유된 자로서 그가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신 길을 따라간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사망하더라도 살아나게 될 것인가?

사망은 예수께서 경험하셨고, 우리는 결코 사망을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사망을 경험하지 않는다.

예수는 사망을 경험하셨지만, 부활하시므로, 그는 사망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동안 무섭게 세상을 휘둘렀던 사망과 죄의 권세를 물리치고 일어나셨다.

그는 부활하시므로 사망이 휘둘렀던 권세, 누구든지 죽은 자는 살지 못한다는 벽을 깨버린 것이다.

온 세상과 온 우주를 휩싸고 있던 원칙을 깨셨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 것은 육신의 죽음인데, 이것은 진정한 사망이 아니라, 잠자는 것에 불과하다.

예수는 완전히 죽으셨다. 그러나 다시 사심으로써 사망의 권세를 깨셨다. 그러므로, 다시는 사망이 예수께 어떤 권세도 발휘하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에게도 사망이 권세를 부릴 수 없다.

죽는다고 해도, 진짜 죽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는 것 뿐이다.

원래 죽음은 사망과 같다. 다 끝이다.

불신자의 죽음이 그렇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영적 존재가 소멸되지 않으므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불신자는 믿지 않고 죽었으므로, 죽음 자체가 사망을 완성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을 때, 사망의 권세가 역사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자고 있기 떄문에, 사망이라고 할 수 없다.

깨어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육신은 죽었지만, 그들은 잠자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 부르실 때, 일어날 것이다.

일어나는 자들은 이미 육신으로 죽었던 자들이다.

장례도 치렀지만, 새육신을 입고, 주가 부르실 때, 살아나서 주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필히 발생하게 될 것인데, 그가 부르실 때, 아직 지상에 살아있던 사람들은 육신이 변화되어, 이들도 역시 끌어올림을 받는다.

공중에 올라가 거기서 주님을 영접한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대장관이 펼쳐진다.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마지막날이 오기 전에 끌어올림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밟는다.

그런데, 우리가 고대하고 고대하는 것은 이 재림이다.

끌어올림과 마지막 날의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시간차도 상당히 있다.

마지막 날은 심판날인데, 그 때는 불신자들이 심판받기 위해 살아날 것이다.

형벌을 받을 육체가 필요하다.

그 때 살아난다고 해서, 사망을 이기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사망이 백프로 얽혀 있는 상태에서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그 사망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망을 이기는 자들이고, 사망을 이기는 권세 안에 있다.

그러므로 안심해도 된다.

안심하는 자들 되자.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제 다 되었으니, 죄를 마음껏 범하자고 하면,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죄가 사망으로 이끈다.

성경 여러곳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짐짓죄를 범하면 사망에 다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한주간 살펴본 주의 죽으심과 사심을 확실히 알 때, 우리의 소망은 더욱 견고해지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더욱 분명하게 될 것이다.

 

[예수의 부활]

 

예수께서 진짜 죽으셨다.

육신이 죽어, 버려졌다.

그가 죽으시던 날이 바로 안식일이 시작될 2-3시간 전이었다.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사지낼 수도 없다.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어서, 예수님은 버려져 있다.

발만 동동 구르는 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용감하게 아리마대 요셉이 나타나,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다.

그는 부자였는데, 자기 무덤에 향품을 하지 못하고, 세마포에 그냥 싸서, 주님을 안장했다.

안식일이 다가오니까, 다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위로만 무덤을 닫았다.

그리고, 그 날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안식일까지 예수님은 무덤에 계셨고, 그 다음 주일 새벽에 해당되는데, 안식일 끝날 무렵,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런데, 돌이 비켜있고, 무덤은 비어있었다.

여인들은 너무 놀라서, 사도들에게 전했다.

사도들은 놀라서, 뛰어와 무덤에 들어갔다. 가보니, 거기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다.

잘 개켜진 세마포를 보면, 도둑질 당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주일 저녁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제자들은 너무 놀랐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믿었다. 그러나, 거기 있지 않던 제자도 있었다.

예수께서 며칠 후에 다시 나타나셨다. 그 때,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를 보이셨다.

이후에도 몇번씩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이 살아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완벽하게 증거되었다.

제자들은 절대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예수께서는 디베라 바다에서 먹을 것을 잡수시기도 했다.

예수께서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신 것을 제자들이 알았다.

사도들은 그 때부터 부활만 전했다.

 

[주의 강림과 성도들의 부활]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살아나심을 알게 된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확실히 본 자들이 책을 쓰고, 충실히 알려주었다.

한세대도 놓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알려주어 오늘 우리가 알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바울이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잘모르지만, 분명히 아는 것이 있다.

초신자이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 강림하실 때, 부름받을 자임을 명확히 알고 있다.

 

살전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가 부르실 때, 부름을 받은 자들은 장래의 노하심에서 건짐을 얻는다.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언제 부르실지 모르기 때문에, 매순간 준비해야 한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동안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먼저 돌아가신 분들은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에 대한 믿음]

 

바울은 그 때 엄청난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잠잔다는 표현이 나온다.

 

[잠잔다]

 

잠자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죽은 것을 말한다.

이것은 완전한 죽음이 아니라, 몸이 죽은 것을 말한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자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완전히 죽으셨기 떄문이다.

그는 맨몸으로 사망을 다 받아내셨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를 외면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이 전혀 없었다.

그는 완전히 죽으셨다.

그렇게 죽으셨지만, 그의 죽음은 신자들의 죽음을 자는 것으로 바꾸셨다.

주께서 그렇게 죽으셨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닥치는 죽음은 자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세상에서나 할 일이다.

사랑하는 자가 떠나는 것은 슬픈일이긴 하다.

그러나, 진짜 절망은 아니다.

불신자들이나 절망하는 것이다.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예수 안에서 자고 있고, 때가 되면 일어날 것이다.

 

살전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이 다시 부활하게 되는 근거가 무엇인가.

교회의 머리되신 역사적인 주님의 죽으심이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

왜냐하면 주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의 죽음이요, 그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하는 성도들의 부활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죽은 자들 뿐 아니라, 살아있는 자도 하늘로 올리실 것이다.

이것이 휴거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버지가 그의 제사를 받아들이신 것]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버지가 그의 제사를 받아들인 것이다.

예수의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있을까.

바로 예수의 부활에 있다.

이치적으로 예수의 제사가 부족했다면,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살리지 않으실 수도 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죄와 사망을 정복한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가 사망을 이기심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망을 이기는 기대를 갖게 한다.

신자들의 사망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그들을 다 살리셔서, 그리스도 앞에 오게 하실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주위로 모이게 될 것이다.

살아있던, 잠자고 있던.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시듯, 그들도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신자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사실은 주님이 미리 말씀하셨다.

우리 중에 사랑하는 자가 소천하여 슬프지만, 걱장할 것이 없다.

휴거 때, 함께 만날 것이다.

 

[끌어올림(휴거)]

 

그가 부르실 때, 주께서 데려오시는 무리 중에 있을 것이다.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끌어올림의 원어가 있는데, 한자식으로 휴거다.

휴거 때는 갑자기 끌려가는 것을 말한다.

두종류의 신자가 주님의 예비하심에 있기 때문에, 살던지, 죽던지 예수는 우리의 주시다.

 

[휴거 시간순서]

 

살전4:16-17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찾기 위해 강림하셔서, 외치실 것이다.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그 때다. 그리고, 천사의 호령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명령이 먼저 들리고, 천사의 호령이 있고, 나팔소리가 있을 것이다.

나팔을 불면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영화롭게 된 몸을 입고, 예수의 형상과 똑같이 된다.

그분처럼 완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발생할 부분은 지상에 남아있던 자들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난다.

갑자기 어느날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채여 올라가게 될 것이다.

모든 신자들이 육체의 변화를 입고, 영화로운 몸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옮겨지게 된다.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게 되고, 지상에 있던 자들이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은 완전한 연합이다.

아직 육신이 있을 때는 방해요소가 많지만, 그 때는 진짜 연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원수의 손에서 완전히 구출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체된 상태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최후의 심판은 있다.

물론 휴거되지 않은 자에게 오는 기회가 또 있긴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바울이 계시를 받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살전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원래는 감추어져 있던 것인데, 비밀을 말한다.

휴거는 추측에 의해서 한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데, 이렇게 될 것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주의 말씀으로 말한 것이다. 계시다.

휴거에 의한 우리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에 근거하고, 이것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확실하게 증거된다.

 

[서로 위로하라]

 

살전4: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그러므로, 서로 위로하라.

이 땅에서 머리 잡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몸이 완전히 구속된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이것이 마라나타다. 아멘 주여 오시옵소서.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오늘 우리 자신을 점검하자.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자는 교회를 어렵게 하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자,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내 교회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평생 애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세와 능력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히 역사하기 바란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한 미래의 소망이 충만하기 바란다.

죄와 사망이 역사히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