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심(연합250504)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심(에베소서 5:8~10)
2025년 5월 4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정기성 목사
(에베소서 5:8~10)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수다스러우신데 말할 상대가 없어서, 말을 많이 하고 싶으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살라”라고 명령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살라’라는 명령을, 곧 하나님의 소원을, 사는 것과 죽는 것, 빛과 어둠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음부라는 곳은 원래 어둠이 가득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어둠이 가득한 공간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빛과 어둠을 구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공간에 빛을 두신 이유는, 그의 아들이 임할 공간으로 준비하시기 위함이며, 또한 어두운 존재들과 구분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 세상의 물질인 먼지로 지으신 후, 하나님의 영을 생기로 불어넣으신 이유도, 우리가 이 땅의 존재인 악과 어두움에 먹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영으로도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영과 혼과 육, 이 세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에게 이미 영을 불어넣으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법도 한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주일마다 에베소서 말씀을 감독님의 인도를 받아 걸어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은,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 하고 명하시는가? 왜 남편이 해야 할 의무, 아내가 해야 할 의무, 부모가 해야 할 의무, 자녀가 해야 할 의무를 굳이 성경에까지 기록하셨을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성경은 우리의 영과 육체, 그리고 혼이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아무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로 인해 살겠다고 결단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만약 우리의 마음, 즉 혼과 우리의 육체가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어두움에 삼킨 바 되어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의 영혼도 그 구원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주일 감독님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 속에서 우리의 결단이 요구되고, 마음의 중심에 결단을 하도록 요청받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두움을 선택할 수도 있고 빛을 선택할 수도 있는 우리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 봄으로써, 날마다 하늘을 향해, 영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도 단언하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이제 주 안에서 빛이라’고 말하는데, 누구를 가리켜 빛이라고 했습니까? ‘너희는’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부여하신 이후, 우리를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으시기 위해서, 마치 학생들이 자신이 아끼는 볼펜이나 값비싼 물건에 이름을 새겨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듯,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심령에 ‘예수’라는 이름을 새겨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라는 이름이 새겨진 영혼이 이 땅에 걷는 동안 다시 어두움에 삼켜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명기에 “오늘날 너희 앞에 생명과 복과 사망과 저주가 있으니, 너희는 살기 위하여 생명과 복을 택하라”라는 말씀을 우리가 이미 읽어본 바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마음속에서 항상 결정을 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결정을 무의식 중에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결정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뿐, 우리는 매 순간 결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언제가 가장 결정하기 어려우신가요? 저는 점심 메뉴를 고를 때가 가장 난감하더라고요. 여러 사람과 함께 먹을 때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결정이 잘 안 됩니다. 하지만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결정하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전에 ‘훅’ 하고 결정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것일 수도 있고, 영적인 것일 수도 있음을 나중에서야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하고 난 다음에 놀라는 것입니다. 이미 내 몸에 배어 있는 것이, 이미 내 안에 습관처럼 길이 난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빛 가운데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다양한 소리가 존재합니다. 그 소리들이 항상 우리 귀에 들려오며,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환경 속에 둘러싸여 있는 존재가 바로 ‘나’, 즉 연약하고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너는 살아라! 너는 의로워라! 너는 착하여라! 너는 생명을 택하여라!”라고 매일같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매일 선택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그 마음이 날마다 시험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영적인 것을, 당연히 하늘의 것을, 당연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알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 말씀이, 이 선택이, 이 일이 과연 주께서 원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안에 빛으로 두신 예수의 이름을 통하여 성령을 허락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들었던 말씀처럼, ‘성령 충만함’이라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주신 말씀이 생각나고 깨달아지며, 성령의 완벽한 지배를 받음으로써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고, 성령 충만한 길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매 선택의 순간마다 내 영혼의 갈등을 하나님께 옮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오해하듯 ‘영혼의 구원을 이미 받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지금 생각하고, 결정하려 하는 것들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지를 날마다 분별할 수 있는 영감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에베소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항상 선택의 순간이 있습니다. 남편의 의무, 아내의 의무, 부모의 의무, 자녀의 의무, 그리고 착하게 살라는 것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육체적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조차도 선과 악을 결정짓는 중요한 길이라 여기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 그 근본 마음은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지 않으셨다면 침묵하셨을 것이고, 그분이 우리와 맹약하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기에 우리의 어떤 행동에도 관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듣거나, 묵상할 때 우리 마음에 계속해서 “너희는 오늘 생명의 길을 선택하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당연한 일이 무슨 생명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요?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슨 생명의 길일까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근본 된 마음인데, 어찌 그것이 생명이 될까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데, 어찌 그것이 살고 죽는 것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원수, 곧 이 세상의 수많은 소리들은 이 작은 육체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더 크게 더 깊은 골을 냄으로써 마침내 영혼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길을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기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작은 죄를 짓는 것은 쉽지만, 큰 죄를 범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짓기 시작하면 큰 죄를 범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어두움 가운데 태어났고, 어두움을 사랑하며, 이 땅의 물질과 이 땅의 것을 사랑하는 육체가 있기에 날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 하늘의 것, 영적인 것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 순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성경에 집중하지 않으면, 성령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헷갈릴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죄악된 길을 걷고 있음에도 중독되어 그것을 끊고자 해도 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결국은 그것이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내 육체는 행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내 영혼은 정죄감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설 용기를 잃게 되고, 하나님을 뵐 자신이 없어짐으로써 하루, 이틀 교회 생활이 멀어지고, 말씀 듣는 것이 힘들어지며, 마침내 처음에는 구원을 받았으되 마지막에는 멸망으로 치닫는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육체의 삶이라는 것, 우리의 마음의 선택이란 것은 결국 영혼의 구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 감독님을 사랑하는 것, 우리 교회의 질서에 순복하는 것 역시, 단순히 내 마음에 맞지 않거나 내가 싫어하는 일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나의 영혼을 살리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걸음은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바로 마음속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 내고, 신기해 보이거나, 그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 나의 영혼입니다. 상대방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내가 한 말을 분명히 듣기에 그 말은 내 안에 하나씩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입술의 말을 주의하라”고도 말씀합니다. 선한 말을 한 자는 선한 것을, 악한 말을 한 자는 악한 것을 쌓아 간다 했습니다. 의인의 간구에 힘이 있듯, 말에도 힘이 있어서 선한 영향이든 악한 영향이든 내게 쌓이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이 항상 주의해야 될 것은 단지 자기 영혼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내 중심의 생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항상 감찰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의 어려움도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처음에는 아주 작은 발단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누군가를 저울질하고, 누군가의 설교나 행동을 평가하던 마음이 불평과 불만이라는 말로 조금씩 툭툭 튀어나왔는데,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흘러 지나가는 말로, 귀에 담기지 않는 말로 땅에 떨어졌지만, 내게는 쌓이면서 불만과 불평이라는 골이 점점 깊이 뿌리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채석장에서 큰 암석을 채굴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산에 거대한 암석을 어떻게 쪼개는지 봤더니, 암석에 구멍을 몇 개 뚫지 않습니다. 8톤에 이르는 큰 암석임에도 불구하고 구명은 단지 여덟 개 만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나무 꼬챙이를 박고, 거기에 물을 부었습니다. 나무가 물을 머금고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그 단단한 바위에 금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나무를 빼고 거기에 정을 박습니다.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깊은 생긴 균열이 터지면서 한번에 큰 바위가 산에서 뚝뚝 떨어져 나오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우리 말에 주의해야 되는 것, 우리가 날마다 우리 마음의 생각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이 선해야 하고,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세상 윤리가 아니라 영혼의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열매가 어떤 것을 맺을지 늘 주의하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오늘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빛의 열매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모든 착한 것, 두번째는 모든 의로운 것, 세번째는 모든 진실한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빛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8절에서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 안에서 이제 빛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자녀는 이러한 열매를 맺는데, 빛의 자녀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의롭고, 착하며, 진실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너희 스스로 시험하여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이 겸손해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언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조언을 하고, 완악한 자에게는 조언을 그치라. 그가 너를 해할까 두렵도다.” 겸손한 자는 항상 귀를 열고 있지만, 교만하고 강팍한 자는 그 귀를 닫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가 모든 일에 착할 수 있는 이유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늘 귀를 열고 있기에, 그가 말씀하시는 모든 성경의 말씀이 어떤 것인든지 그것을 그대로 행함으로 모든 일에 착함으로, 모든 의로움으로, 마지막으로 모든 진실함으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부르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기 위해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자녀가 있기 때문에 가끔 말을 합니다. 왜 말을 할까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말이 자녀에게는 부담스럽고 듣기 싫고 반복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어도,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제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나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의 일에 관여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든, 어떤 고난을 겪든 제가 상관할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성령을 통해 말씀이 떠오르고 깨달아진다면, 그것은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귀찮게 여기지 않고, 그 음성을 온전히 듣고 반응하여 우리 영혼이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매일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로 인해 빛의 자녀다운 행실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을 행해 나가는 우리 모든 성락인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뜻이,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의 걸음 가운데 이루어지고 성취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번 이렇게 고백해볼까요? 네 번, 함께 고백해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가 내게 요구하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원하시는 것이 마치 하나님 자신을 좋게 하려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요구하시는 그 길을 걸어야, 그가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깨어 있는 귀가 되기를, 깨어 있는 심령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나를 용서하소서.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던 이 완악한 심령을 용서하여 주시고, 내 안에 말씀이 떠오를 때 그 말씀을 묵살했던 교만한 마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제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빛의 자녀답게 행하는 나 영혼, 나의 삶, 나의 인생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시간 합심하여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는 죄악되지 않았다’, ‘나는 의롭다’ 여기고 착각하며 살아온 우리의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는 내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 내게 간섭하시는 것이 못마땅하다.’ 여겼던 그 교만한 마음을 이제는 내려놓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성령을 통하여 날마다 들려질 때, 주일의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단 말씀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그 그말씀이 나를 살리는 말씀임을 우리 모든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로 인하여 각각의 영혼이, 그 육체의 행실뿐 아니라 마음이, 그리고 마침내 영혼 자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생명과 주의 복으로 우리를 온전히 세우시고 인도하실 것을 바라오며,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50504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심(에베소서 5:8~10)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정기성 목사|작성자 태초에 말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