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3 종들을 섬기는 그리스도인 상전들(250601)
250601주일 [종들을 섬기는 그리스도인 상전들]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6: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인 상전들에게 종들을 부당하게 취급하지 말고, 인자하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대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명하시는 가운데, 상전의 그러한 자세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반적 자세의 한 부분이라고 가르치고 계신다.
[자기의 높은 지위를 남용하는 자들]
이 세상에 사장들이 있다. 고용하는 사람이다.
사장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이 자기를 과시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자기 회사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덧 습관이 되어, 어디서든 자기의 지위를 권위를 통해 나타내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우월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동물적이다.
생존이 가능해진 것에 대해서 과시하는 모습이다.
그러한 자세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가치관이 정욕적이고, 타락한 인성에서 기반된 것이다.
누구든 비슷한 상황에서는 비슷한 행위를 할 것 같다. 누구든 그런 잠재성은 있다.
자기가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내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이 남에게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일쑤다.
누가 자기를 우월하다고 할 때, 남은 정말 그렇다고 보기보다는 꼴불견이라고 볼 것이다.
자기 우월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사람들을 차별한다.
그 결과 계층간 반감과 갈등을 계속 조장한다.
그러므로, 나쁘다. 자제해야 한다.
정말 나쁜 것은 자기 부하직원을 학대하는 것이다.
부하에게 자기 권세를 마구 휘두르므로, 자기 권세를 즐기는지 모르지만, 부하들에게는 대단히 슬픈 일이다.
이런 학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부하에 대한 예절개념이 없기 떄문이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다.
지위가 있다고 함부로 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저급한 사람으로 만든다.
사람을 우월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가 높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 진실한 것에 있다.
조금 자기를 낮춘 겸손한 모습, 남을 배려하는 모습, 긍휼의 마음을 항상 품고 있는 모습.
그런 태도가 우월한 사람의 표다.
그런 것도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상전들은 그런 것들도 다 알아야 한다.
먼저 신앙인으로서 알아야 할 것은 이 땅에서 권세를 자랑하던 상전들은 언젠가 책임을 물을 날이 온다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고 있던 사장이라는 직분은 굉장히 무거운 책임을 가졌을 뿐 아니라, 값진 기회였다.
그것을 너무 늦게 알고, 후회하게 될 수 있다.
단순히 내가 누리는 문제가 아니다.
매우 중요한 일을 했어야 했다.
[미워하기 위해 미워하는 부하들]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부하직원이 자기 상전을 무조건 악한 자로 간주하는 것도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이것도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사원급이 사장급을 미워하는 것은 옳게 볼 수 없다.
상전을 무조건 악한 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
상전된 자 중에는 남보다 더 아픔을 겪으면서, 자기를 제어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싸우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 같은 상황에서 더 견디고, 더 참은 사람도 많이 있다.
그리고,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도 많다.
사장들 중에는 회사를 위해 진정 애를 쓴 사람도 많다.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은 자기가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누가 거기에 매여서, 붙들고 서 있어야 한다.
그 회사의 존립을 위해, 그가 짊어질 책임은 무거운 짐이다.
많은 사장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사원들이 하고 있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그런데, 사원이 고군분투하는 상전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화가 날 것이다.
그것은 너무 당연하다.
누구는 세우려고 애를 쓰는데, 누구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당연히 화가 날 것이다.
회사에 대해 진정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원은 문제거리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회사를 사랑하는 사원이다.
소수라도 그들에 의해서 회사가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다.
물론 사원중에서 진실하게 애정을 다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실을 사장이 모를 수도 있다.
설령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가 고용을 받았다면, 회사의 성공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원도 사장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존립과 번영을 위한 동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직원이 회사를 자기의 기회로만 보고 있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관심이 없다면, 그는 이미 회사에서 부정적인 요소다.
세상에는 사장과 회사를 미워하는 일이 쉽게 나온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운명공동체인데, 왜 저렇게 할까.
노동현장에서도 회사는 악하고, 노동자는 선하다는 시선은 부덕하게 정치몰이로 가는 것이다.
반드시 사장은 누군가 해야 한다.
반대 입장은 필수불가결의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장을 하면서,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데, 그 존재 자체를 미워하고, 부정하면, 정상이 아니다.
부정적인 폭동이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발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행동이다.
사회가 존재하려면,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무조건 싫다. 방해를 위한 방해. 괴롭히고 망하게 하기 위한 비협조.
억울한 것은 주께 맡기라. 주가 갚으시리라.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하시는 말씀이다.
로마서12장에 정확히 나와있다.
주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오늘은 상대를 대항에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살이도 하나님의 영역]
교회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 세상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교회는 세상을 엄청나게 큰 시각으로 보는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역장이다.
이 세상에 그를 위해 쓰여질 일꾼이 필요하다.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고, 예나 지금이나, 그가 자기 세상을 돌보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가 당장 악인들을 멸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그가 구원하시고, 사용하실 자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사는 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값지게 살아야 할 자들이다.
그렇다고 철저한 도덕과 절제로 살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과 똑같이 살 수는 없다. 값지게 살아야 한다.
우리 삶은 그래서 열심히 살 것이 요구된다.
죄에 굴복하지 않고, 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열심히 산다고 범죄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준 기회가 있고, 이 기회는 우리의 삶이다.
이 세상에서는 사단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망가진 본성에 자신을 맡기게 유도하고 있다.
나 자신을 타락한 인성에 맡길 수 없다.
지금은 어지러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주님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깨끗케 하실 것이다.
오늘은 참아야 한다. 참으면서, 증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신앙과 별다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동시적으로 영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주님은 최후의 승리를 확정하시고, 우리를 이끌고 가고 계신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승리를 일구는 자들이다.
영적 영적 하면서, 세상을 버리기 보다는 주의 뜻이 이루어 주옵소서 항상 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 삶도 거룩한 것이다.
교회에 있을 때만 거룩하고, 나머지는 떨어지는 삶이 아니다.
물론 항상 충만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삶 전체가 오늘 그의 자녀로서 그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본문]
지난주는 당시 노예로 있던 종들에게 상전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순종하라고 말씀을 주셨다.
억울해도, 상전에게 순종하라.
오늘은 그 반대방향으로 말씀이 주어진다.
[종들에게 마찬가지로 대하라]
세상은 어떻게 하든, 그리스도인 상전들은 종들이 상전에게 하듯, 같은 방식으로 하라.
엡6:6-9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상전을 대할 때, 하나님을 대한다는 자세로 하고, 단 마음으로 하고, 주께 하듯 하라고 순종의 자세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 명령이 상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당시 노예들에게는 엄청 가혹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라.
사람들이 보는 시각과 주님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다르다.
여기서 포인트는 결국 주님이 한분이라는 것이다.
종들의 주님이나, 상전의 주님은 같은 주님이다.
동일한 주님을 섬기는 자세를 기초로 갖는 것이다.
종과 주인이 서로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 당연히 동일한 행위의 기준이 있다.
그들 위에는 공통의 주가 계시기 때문이다.
하늘을 섬기는 자세로, 상전을 섬기고, 상전도 종에게 하는 것이다.
자기 위에 상전이 있다는 사실이 내 모든 행위의 근본을 결정한다.
그리스도인 피고용인과 고용인은 근본적으로 피차 같이 나누는 것들이 있다.
같은 동기와 목표로 가고 있다.
정말 주님께 순종하려는 욕망, 소망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방향이 비슷해야 옳다.
여기서는 고용인이 그의 권세를 사용할 때, 자기 독립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하듯이 해야 한다.
이 사람에게 하는 것은 결국 주님을 섬기는 일의 연장선임을 알고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전에게 일꾼들이 순종할 때, 그들도 주님께 복종하여 하듯이, 상전들도 그들에게 그렇게 대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상호교환적인 태도가 있다.
[공갈을 그치라]
공갈은 요즘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위협한다는 말이다.
종들은 상전이 대하는 태도로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
상전이 화를 내며 종을 위협하면, 종에게는 굴욕적일 수도 있고, 감정도 상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 사장이 화를 내며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종들은 그의 꾸중을 감당할 수 없어서, 눈가림만 하거나 아첨하게 된다.
사장이 그런 상황을 만들게 된다.
그런 사장에게는 주변에 아첨하는 사람이 많고, 눈가림만 하는 사람이 자꾸 꼬인다.
자기 권세를 나쁘게 누리는 행위다.
이런 것을 자주하면, 사장에게 마음으로 우러나는 순종을 하기 어렵고, 회사를 순종할 의지가 상실된다.
매사에 화를 내면, 사장을 순종하기도 싫어진다. 싫은데 해야 한다.
회사가 잘되는 것을 기뻐하면서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상전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세가 기능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사장에게는 그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고, 임시적이다.
사장 직분 자체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도 아니고, 사원이라는 위치가 취약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타락한 인성을 회사 안에 그대로 들고와서 반영하기 때문에 문제다.
인간을 늘 따라다니는 것이 타락한 인성이다.
하나님은 권세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꾀가 있어서, 어떻하든 자기만의 이익을 구한다.
탐욕으로 늘 거짓말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고, 상황을 바꾸면서 기회를 엿본다.
타락한 인성이 자기 인생을 계속 인도해 간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비록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 당장 내게 유리하게 삶이 펼쳐지지 않아도, 그래도 내가 참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순리에 순복하므로, 그가 우리를 통해 성공하시길 바래야 한다.
상호순종, 권세는 역할이 있다. 권세에 대해 인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권세는 악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서 사장들이 갖고 있는 권세는 그 사람의 우월성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우월하기 때문에, 지위가 높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세계다.
하나님은 청지기의 직분으로 권세를 주는 것이다.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권세는 임시로만 있는 것이다.
그 권세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도록 주신 것이다.
그 권세는 합리적이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당한 범위안에서 사용하도록 주어졌다.
권세를 마구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용된 범위 안에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권세는 나를 위해 일하도록 나타난 자들을 섬기기 위해 있다.
그렇다고, 회사의 목적은 직원을 섬기는 것은 아니고, 회사의 일을 할 때, 그들의 행복을 함께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권세가 함부로 짓밟히고 있다. 질투심, 정치적인 수단으로 침해를 받고 있다.
세상은 권세의 역할에 대해서, 무조건 질투심으로 대하고 있다. 누가 있으면 끌어내자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풍조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상전들의 권세는 하나님의 뜻 안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 종들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사장도 종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사장도 무모하게 자기 권세를 휘두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자기 사원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은 대단히 수준 낮은 짓이다.
상전은 그의 권세와 힘을 종들에게 마구 휘두르는 자가 아니라, 종의 행복을 같이 도모하는 자다.
그러므로, 배려심이 많아야 한다.
최상의 상전, 그리스도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종이다.
상전과 종의 관계가 영원하지 않다. 이 관계에 대해서, 주님 앞에서 해명할 때가 온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심]
이 세상에서는 자기가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병적인 수준으로 확장되어 있다.
자기가 받을 대접에 대한 기대치가 습관이 되어 있다.
이것은 착각이고, 뜬구름잡는 이야기다.
너희는 진짜 상전이 아니고, 진짜 상전은 하늘에 계시다.
그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나오는 말인데, 어떤 외적인 요소로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높으니까 감안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든 심판대 앞에 그대로 서게 된다.
골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오히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롬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인 고용자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떄, 자기가 고용한 일꾼 중 가장 작은 자와 비교할 때도 절대 더 높지 않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심판의 공평성]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롬2:9-10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것은 최후의 심판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찾아다니며 행하는 자가 아니다.
예수 오래 믿었으니까, 가산점이 있지 않겠는가. 아니다 없다.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되고, 열심히 하지 않았어도, 그의 선도 좋게 보신다.
하나님은 그냥 지나가지 않으시고, 율법이면 율법 아래서, 양심이면 양삼 아래서, 어느 쪽이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심판하신다.
그의 심판은 공정하시다.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심판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상전들은 종들에게 공갈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같은 상전을 모셨고, 그 행위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전들은 자기 종을 대할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 사장들이 종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높다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엄청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권세는 값을 요구받을 것이다.
심판 때, 삭감이 많이 될 것이다.
누구는 편안한 인생을 부여받았고, 누구는 괴로운 인생을 부여받았지만, 다 감안이 된다.
많이 받은 자가 오히려 많이 요구받는다.
그러므로, 누구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억울해도 자기가 심판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오늘 견디는 자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심판의 잣대는 정밀하고, 공정하다.
결국 많은 사람에게는 위로가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부류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후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일들이다.
[주님께 마음에서부터 충성]
이 모든 것은 주님께 마음으로 충성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마음으로 드리는 자에게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결혼, 가정, 직장에서든 주님을 모신 자들은 옳게 할 수 밖에 없다.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가고, 가는 길에 주님을 계속 나타낼 것이다.
그런 자는 자기 사원들에게 정당하게 대하는 자들일 것이다.
[상호복종]
상호복종의 원칙이 있다.
엡5장 마지막부터 계속 말하고 있다.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가정이든, 직장이든 상호복종의 원칙이 계속 되고 있다.
이것은 오직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만 할 수 있다.
[자유, 권세, 복종]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은 자유롭게 선한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 세상처럼 정욕적 자유는 없겠지만,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본성은 모든 것을 망친다.
사회는 갈등으로 치닫고, 어디든 사장이 나쁘고, 사원이 나쁘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주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다.
[주의 나라를 준비하는 기독교인들]
오늘 우리는 이 땅의 한 존재로서,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받고 있고, 우리는 기여하는 자다.
사회가 어떻든 우리는 신실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
교회에 속한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큰 그림안에서 역할을 맡고 있다.
증인이다.
우리는 잠깐 왔다가는 인생에서 온 세상을 회복하려는 주님을 만나고 간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 울고 불고 불만하고 갈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감사하고 가야 할 것이다.
주께서 평가하시고, 위로하시고, 영광으로 북돋우실 것이다.
영원히 주께 기쁨이 되는 거룩한 그리스도인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