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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언베뢰아특강74(20181207)

lks8284 2018. 12. 8. 00:56

181207환언특강(강석준집사님 정리)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린도전서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복음중재로서의 인물

 

 

우리나라의 현역 목사들이 약 8만명이다. 대개 훌륭하다. 공부도 많이하고, 봉사도 많이했다. 그런데, 목사는 많으나, 목회자가 별로 없다. 목사와 목회자는 다르다. 큰 부자집에 종들이 많아서, 그 종들이 다 주인의 명령에 순종한다. 그러나, 그들을 다스리고, 먹이는 큰 종, 청지기는 하나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마음을 알고, 똑같은 사상을 가진 자다. 이 청지기도 종이지만, 그는 다른 종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주며, 일을 나누어주는 자다.

 

목사는 그냥 종과 같이, 일을 맡기면 순종하는 자다. 그는 개척을 해도 교회당 세우기 어렵고, 성도도 늘어나지 않는다. 4만여 교회가 자기 예배당도 없다고 한다. 이미 있는 예배당도 기독교가 들어와서 이미 지어진 교회 포함해서 8천여 교회만이 자기 예배당을 갖고 있다. 예배당을 세우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목회자는 우리나라에 천명도 안될 것 같다. 목사는 자기가 스스로 될 수 있다. 그러나, 목회자는 하나님이 택하셔야 한다. 자력으로 되지 않는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종자는 따로 구별하여, 기른다. 이것은 세상없어도 먹지 않는다. 이와같이 목회자와 목사는 같은 목사지만, 구분된다. 목사는 지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많지만, 목회자는 지적으로 부족한 사람도 많다. 목사가 목회자를 보고,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하여, 목회자가 되는 시늉을 하지만, 나중에 보면, 다 쪼그라들어버린다.

 

우리 교회도 꼭 그와 같다. 루시퍼가 보좌를 지키는 천사를 질투하여,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반역하다가 쫓겨난 것과 같다. 하나님이 택하심과 우리가 택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택하신 자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자다. 그는 사람이 보기에 공부도 별로 않했고, 인물도 별로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이 꼭 필요해서 준비하시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죄다.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래서,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보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않으며, 능한 자가 많지 않다.

 

 

고린도전서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린도전서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린도전서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전서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난 예전에 어떤 장로교 목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나를 볼 때, 수천년동안 학자들이 찾고 찾아도 찾지 못한 것을 어떻게 당신이 알았는가 궁금해했다. 산속에서 도닦고 온 것도 아니고, 배움이 많은 것도 아닌데, 24세 청년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아는가 너무 부럽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 지식이 자기 노력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것을 아는 것이다.

 

말씀 듣는 모두가 청지기 같은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마음에 원하는 자를 택하신다. 예수님의 제자중에 한사람도 바리새인, 서기관이 없다. 한사람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없다. 그저, 어부, 목수, 석수 이런 사람들이다.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석수 노릇 했다고 한다. 다들 말단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도적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무얼 한 사람이 아니고, 남이 가진 것을 질투하고, 시기한 사람이다. 우리가 그냥 와서 듣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교회 일을 해도 신기하게도 교회의 일을 훼방놓는 사람이 있다. 나중에 보면, 그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개척자다. 없는 것을 만드는 목수나 석수, 어부처럼 만들어 내는 자다. 자기 속에 개척정신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남이 차려놓은 상을 먹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기가 상을 차릴 수 있는가. 남이 만들어놓은 것을 짜다. 시다 말할 수 있는 자는 많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천사와 싸워 이겼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이길 자가 어디있을까.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가 아니고, 천사와 싸워 이겼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나 천사와 싸워 이길 정도의 도전적이고 개척적인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이스라엘의 후손도 다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개척자라는 것이다. 이미 33왕이 자리잡고 있는 가나안 땅을 들어가 31왕을 멸하고 다 뺏는다. 다윗의 때에 그 땅을 통일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래서, 다윗을 메시야의 모형으로 여긴다. 메시야를 고대하는 것은 다윗과 같은 왕을 원하는 것이다.

 

다윗은 소년 때부터 아버지의 양을 키울 때, 사자가 양을 물어가면, 사자의 입속에 있는 양을 빼앗아왔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다. 그는 신앙으로 일하는 자다. 골리앗은 9척, 210센티미터라고 했다. 그렇게 큰 사람이 무장까지 하고 있는데, 다윗은 무기도 없고, 물맷돌 다섯개 들고가서 싸웠다. 누가봐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는 그것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눈으로 보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믿음이 있고, 정신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해서, 여러분이 도전자, 개척자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이 아니면, 여러분 자녀들이라고 그렇게 하라. 이 세상에서 큰 기업하는 사람들도 아무나 하는거 아니다. 정주영씨나, 이병철씨 같은 사람도 개척자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특별히 택하심을 알고 받을 수 있도록 하자.

 

 

그래서, 복음중재로서의 인물, 하나님이 인물을 어떻게 쓰시는가.

 

 

요한복음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랑과 자유'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중요하다. 다른 책은 내 영감을 그대로 썼는데, 이 책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썼다. 오늘 기독교인들이 자유를 잘 모른다. 자유를 모르면 기독교인이 아니다. 자유는 기독교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유하면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이 없고, 억압받지도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그러면,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 자유인가? 그것은 아니다. 예수는 자유하시지만, 철저히 그 질서,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지 않고, 자기 뜻을 포기하신다. 그가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기도하여 내 뜻대로 되기를 구하셨으나, 마지막에 아버지의 뜻대로 하길 원합니다 하고 존중하셨다. 예수는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성령을 존중하셔서, 성령이 하실 것을 예수께서 침범하지 않으시고, 존칭을 하시며 존중하신다. 지금 가르치지 않으시고, 내 뒤에 오는 이가 가르치실 것이라고 하신다. 삼위일체라고 하니까, 성령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이 성령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삼위일체는 질서가 있다.

 

질서는 유지하고 자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이 자유다.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가. 우리가 억압되어 있어서 자유케 하시려 함이다. 율법에서 자유, 양심에서 자유.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달리심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는 불신자도 믿는 것이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것이다. 부활과 십자가가 비슷하다고 여기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십자가는 땅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부활은 하늘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자꾸 십자가를 신앙의 푯대로 여기는 것은 카톨릭으로부터 왜곡된 신앙을 받은 결과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십자가는 내 죄가 죽은 내 무덤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서 말구유에 누우셨다. 거기서 벗어나서 목수의 일을 하시다가, 떠나셔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수모를 당하시고, 거기를 벗어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가셨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예수를 찾을 수 없다. 다 지나가신 길이다. 왜 산자를 죽은 자에게 찾느냐 천사들이 말했다. 오늘 자기들의 신앙이 예수를 찾지 않고, 예수께서 이미 지나가신 흔적을 찾는 자들이 많다. 예수는 부활하셨다.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의 피가 우리 영혼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성령으로만 우리 영혼속으로 예수의 피가 들어온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부활을 가진 자들이다. 그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평강, 성령, 자유를 주셨다. 나는 죄를 다루는 자가 아니다. 자유, 곧 부활을 다루는 자다. 음부는 이미 지옥이다. 이 땅에는 천국이 없다. 이 땅에 경치 좋은 곳을 천국같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이 천국이다. 자기 입의 말로 자기 정체를 말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만 엄마라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엄마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어린 아이만도 못하면 하늘에 가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정죄를 받으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무서워한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두려워지 않지만, 자기 양심의 정죄를 받는다.

 

 

요한1서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1서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예수안에 있을 때는 예수 바깥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성령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께서 하늘로 가신 이후에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제자다. 성령이 가르쳐주시고, 알게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마태복음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태복음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태복음 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성령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정죄받는다. 율법아래 있던 사람이 자유한 것은 율법의 말을 안듣고, 성령이 오셔서 자유자가 된 것이다. 모든 죄와 주를 훼방한 것도 사함받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함받지 못한다고 했다.

 

 

요한1서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한1서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요한1서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지옥은 안가지만, 상을 빼앗긴다. 예수를 부인하거나, 의심하거나, 성령을 의심하거나, 부인하면 사함받지 못한다. 예수믿고, 품행상 자범죄를 지은 것은 얼마든지 사함받을 수 있다. 이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지말고, 이는 주기도문에 나온 것처럼 매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주신 최고의 선물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심이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함께 역사하신 작품이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라고 하심은 자유하라 하심이다.

 

 

여러분, 전도하지 않으면서 거리낌이 없고, 십일조 하라는 말이 짜증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면 그 말이 옳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가? 그거 심판받는다. 성령의 말씀은 예수가 하신 말씀이요, 예수가 하신 말씀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여러분 과연 진리를 사모하는가? 오직 성령에 의해서 하신 말씀만 진리다.

 

 

요한복음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복음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누가복음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누가복음 11: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누가복음 11: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누가복음 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요나보다 큰 예수께서 회개하라 하셨는데도, 사람들이 가책이 없다. 솔로몬보다 더 큰 예수의 진리의 말씀을 무시한다. 하나님이 내게 뭐라고 계시하시는가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감상만 하려한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는 율법과 양심을 떠나서, 자기의 신앙에 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고, 편하게 지나간다. 니느웨 사람의 심판과 남방여왕의 정죄에서 자유하려면 자기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열심히 따라가고, 진리를 사모하라. 자유치 못하니까, 항상 불안하다. 자유가 없어서 그렇다.

 

 

요한복음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님이 원하시는 자유

 

율법(죄)에서의 자유

 

양심에서의 자유

 

니느웨, 남방여왕의 심판에서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