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23주일 <죄사함을 얻으라> 김기동 원로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사도행전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사도행전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사도행전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옳을 의를 말한다. 의는 하나님도 부정할 수 없고, 고칠수 없는 헌법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공의가 하나님 보좌의 기초라 하셨다.
대통령의 권위가 대단하지만, 헌법 안에서만 권한을 행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헌법을 위반하면 그 직책에서 물러나야만 한다. 이와같은 것이 의다.
하나님은 의를 중심으로 높이시고, 존중하신다. 하늘도 하나님의 의를 기초로 창조하시고, 만물도 그와 같이 의를 기초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도 변개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무흠하고 완전무결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생명도 되시지만, 심판자도 되신다. 그가 공의이시기 때문이다. 이를 알지 못하고 하면, 자기의 생각이나 욕심, 마음을 신앙생활의 규칙으로 생각해서 열심히 한다. 이를 신념이라고 한다. 예수 안믿는 사람도 신념을 갖고 태어난다. 어린아이들도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을 믿고 산다.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 장사하면 돈 벌 수 있다.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확신이 신념이다. 이는 마음에서 밀어주는 힘이다. 여러 종교가 있는데, 이것이 신념이다. 그들은 신념가지고 종교생활한다. 내가 이렇게 종교생활하면 마음이 깨끗해 질 수 있다. 복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산다. 이는 약속도 보장도 없다. 왜 실망하는가. 자기 신념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침례받아서 종교를 장사지냈다. 예수 안믿을 때 가진 신념이 자기의 종교다. 우리는 운명을 침례로 장사지냈다. 우리는 무종교도 아니고, 아예 종교와 관계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 의를 순종하는 것이다. 축구선수가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데, 그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헌법이다. 모든 국가가 헌법이 있어서, 나라를 지탱한다. 헌법이 없으면 그 나라를 지탱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의로 말미암고, 의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래서, 신앙생활 잘하려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보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그러나, 오늘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들어도 무시한다. 그러니, 나중에 주앞에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능한 일을 했다고 해도, 주님이 모르신다고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주님이 모르신다는 것이다.
예수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내가 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지성드리면 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철학과 사상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가 없다. 전부가 개인신념일 뿐이다. 이것은 당신을 구원할 수 없다. 종교도 나름대로 교리가 있다. 교리를 만들 때, 어떤 의가 있다. 불교는 불교의 교리가 있다. 거기에는 석가모니의 사상이 있다. 오늘 우리는 내 신념이나 사상으로 신앙생활하지 않는다. 아테나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있었는지 바울도 놀랐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을 찾는다. 무엇이 의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의 감정, 자기의 신념으로 신앙생활을 하니 신비주의자일 뿐이다.
예수께서 다볼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 하셨다. 이것은 성경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의 이야기로 엮어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모세를 따라가는 것이 의라고 생각했고, 엘리야를 따라가는 것이 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남으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것이다. 설교에는 모세의 말이나, 선지자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로고스만 전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가장 완벽하게 확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태초이전 영원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곧 하나님, 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이를 보았다. 그는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시다. 그분이 하나님의 의다.
사람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인은 이 땅에 오직 예수뿐이시다. 이를 성령이 알게 하셨다. 예수가 하늘에 가시므로, 지구상에 다시는 의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 속에 그 의가 있는가. 그 의가 있으면 구원받고, 첫째부활에 참여한다. 그러나 의가 없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의만이 우리의 생명이시다.
말씀은 계명, 곧 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다. 말씀은 레마(율법), 포네(선지자), 로고스(예수) 이렇게 있다. 생명은 오직 로고스에만 있다. 로고스만이 하나님의 의요, 생명이요, 구원이 된다.
율법은 비난받을 것이 아니다. 훌륭하다. 그러나, 로고스앞에서 율법이 사라져야 한다. 율법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 심판 앞에 나와 있는 것이고, 예수 앞에 있는 자들은 구원앞에 나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앞에 나와야 하는데, 자기 신념 갖고 나온다. 신념은 신비주의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거한다면, 그런 것을 다 초월하고 극복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에 두시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 하셨다. 선악을 알게하는 것은 양심이다. 옳고 그름을 양심으로 판단한다. 자기 육체도 자랑하고 싶은 것도 있고, 숨기고 싶은 것도 있다. 이것이 선악을 아는 지식이다. 바로 율법이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다. 양심이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 양심에 의해서 좋고 그름을 판단하게 된다. 기쁘고, 자랑스럽고, 부끄러운 것을 양심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것이 너를 구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되면 정녕 죽는다. 은혜받은 사람도 진리아래 있지 않고, 어느순간 실족하여 허물을 가졌다면 그가 다른 사람앞에서는 행복한 체해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 벌써, 선악이 그 속에서 역사하여 마침내 심판받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완전한 신앙은 선악을 알게 하는 법이 내게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법이 나를 주장해서는 안된다. 종교는 그것을 안다. 그것밖에 없다. 도덕과 윤리를 강조한다. 그들은 선악을 아는 법을 가지고 있으니, 심판받는다. 이 세상사람들도 선악을 아는 양심으로 사니, 죽게 되어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켜도 한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다 무효가 된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죽는다고 하였다. 아무리 몸부림쳐서 율법을 다 지켜도, 마음으로 범한 죄까지 따라온다. 마음으로 미워해도 살인한 자요, 마음으로 탐심을 가져도 도적질한 자요,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자다. 육체는 속여도 영적으로는 속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게 하려고 애쓰시는 것이다.하나님도 우리를 구원하시려면, 하나님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뜻은 감정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네가 대신 빚을 갚으라는 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하지만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예수만이 빚을 갚아주실 수 있고, 사랑이시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의 빚을 떠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주를 의지하는 것이다.
성경에 분명한 두가지 이치가 있다.
죄짓지말라하는 것과 죄사함받으라는 것이다.
에덴의 선악과는 먹지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이를 먹었다. 그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물으셨다. 누가 네게 먹으라고 했느냐. 마귀가 아담을 직접 속이지 않았다.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가 내게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하였다. 마귀가 속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를 속였다. 이 세상은 상대가 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다. 또 하와에게 물으셨다. 그 때는 뱀이 나를 속였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뱀과 여자를 원수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권세를 주셔서, 여자를 원수로 삼게 하셨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다. 그 때부터 인류는 마귀로부터 계속 공격받는 것이다. 죄 때문에.
우리가 율법에서 배운 것은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안져야 산다. 죄를 안지려니 얼마나 고행을 하는가.
내가 어렸을 때, 여자한번 보고 이쁘다 마음품고 두번 봤다가 일주일을 고행했다. 친구는 예수 믿으면 왼편 뺨을 때리면 오른 뺨도 대어준다면서 때렸다. 계속 억울하고 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예수 믿다가 맞아죽겠구나 생각했다. 죄 안지으려고 몸부림치며 고행했다. 예수 믿는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 고행 때문에 의로워지는가. 그 의는 자기 공로는 있어도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 율법은 고행을 가져온다.
두번째는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 그 죄는 내가 담당할 것이니, 너희는 죄사함받으라 하신다. 죄짓지 말라는 계명과 죄사함받으라는 계명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그런데, 끝없이 죄 안지려 노력하지, 은혜받으려 하지 않는다.
하와를 속였던 마귀는 뱀이다. 그러나, 말세에는 용이 대적한다. 우리의 싸움은 용과의 싸움이다. 죄사함은 용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용의 참소를 이기는 것은 예수의 보혈 뿐이다. 끝까지 이기는 것은 죄사함받는 것이다.
내 영혼아 죄사함받자.
율법아래 있던 자들이 우리는 어찌할꼬 한다. 죄 안지려고 할 때는 성령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죄사함받으면 성령이 임하신다. 죄를 지어도 좋다가 아니다.
죄사함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 두가지 계명, 죄짓지말라는 것과 죄사함받으라는것중에서 성령이 임하신 것은 죄사함받는 것이다.
이 땅에서 착한 사람도 병에 걸린다. 자기 의는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은혜받으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의는 죄사함받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느냐. 내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령을 받았느냐. 죄사함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의인이다.
아무리 자기가 애를 써도 의인이 될 수 없다. 오직 죄사함받는 자가 의인이다.
우리 신앙은 죄 안지려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오직 죄인을 부르신다. 죄인들아 와서 사함받으라 하신다.
일생동안 죄 안지으려 수고하는 자가 되려는가. 죄사함받는 자가 되려는가.
항상 죄사함받으라는 것이다.
대박이라는 말에서 박은 선물을 잔뜩 싣고 온 배를 말한다. 이것이 대박이다.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