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설교 ‘짐짓 죄를 짓지 말라’ - 김기동 목사님(배경동집사님 정리)
[히브리서 10:19~31]
하나님은 참되시다. 이는 진리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아버지시다. 진리시다. 진리는 거짓말이 없고, 두 마디가 없다. 진리는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예수는 진리시니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그의 말씀을 믿는다.
하나님을 아무도 본 자 없으나, 하나님과 영원 전부터 함께 계신 말씀이 하나님을 보고 들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먹고 마시게 하시니,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므로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의이다. 그와 말씀 곧 진리는 하나다. 우리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임을 아니, 그를 증거하는 자가 성령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성령이 오셔서 말씀을 증거하신다. 성령은 오직 들은 말씀,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그가 하신 일만을 증거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성령을 배제하고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을 자가 아무도 없다. 예수는 성령으로만 자기의 말을 증거 받기 원하신다. 성령으로 배워야만 의와 죄와 심판에 대해 알게 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다. 아버지 뜻을 이루는 데에 아들도 번민하셨으나, 순종하시고 죽으시니 하나님께서 사흘만에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셨다. 예수께서 승천할 때에 500여명의 사람들이 보았다. 올라가실때 하늘 구름 곧 천사들이 모시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하늘을 보고 있을 때 천사가 그들에게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 일러주었다.
구원받고 죽은 사람은 낙원에 갔다가 예수께서 공중으로 들어오실 때 순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몸으로 부활하여 공중에서 하나님을 뵙는다. 나머지 땅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한다. 낙원에 있던 자만 부활하여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그 때 땅에는 5개월 간 환란이 온다. 예수가 땅에 있다 믿으면 하나님을 뵐 수 없고 반드시 심판 받는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처소를 다 예비하시고 오신다 하셨다. 그가 아버지께 성령을 구하여 보내겠으니, 성령이 오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어 주를 증거하리라 하셨다. 제자들이 열흘 동안 마가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하며 기다리니 성령이 오셨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다. 우리는 혀가 있다. 혀를 가지고 무슨 일을 했는가? 바벨탑을 쌓았다. 그들은 바벨탑을 통해 홍수가 다시 올지라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깨뜨리고 흩으셨다. 그 곳에 남은 아람어, 곧 히브리어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니, 사람의 혀는 짧지만 흉악하다. 사람을 죽이는 데도 끌고 가고, 사는 데도 끌고 간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니, 방언 곧 새 혀를 주셨다. 이는 사람에게 대화하라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 영이 자기 영의 비밀을 하나님께 직고함이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것처럼, 나의 사정을 아는 것은 나의 영이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를 하는 것은 나의 영을 깨끗하게, 시원하게 하는 것이다. 방언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자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불신자 때는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으나, 예수를 믿으니 교회가 힘들면 내 일처럼 번민한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 그러므로 주일에 교회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난다. 돈을 벌면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성령으로 역사한다. 예수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으나, 침례 받고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한다. 믿기 전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았으나, 침례 받고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이는 성령으로 인함이다.
그가 사람인데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알았는가? 예수께서 침례 받기 전에는 사람들이 나사렛 사람, 목수의 아들임을 알았으나 침례를 받으시니 성령 하나님께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직접 말씀하셨다. 다볼산에서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다윗의 자손이요 목수의 아들임을 사람들이 알았으나, 침례 받으시고 올라오시는 순간 하나님이 아들임을 증거하셨다. 그가 침례 받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다. 그가 물 위로 올라오시는 순간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이적들이 그에게서 나왔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예수를 욕하였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게 되었다. 우리가 영적 존재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에덴 동산과 노아의 방주는 교회의 모형이다. 교회는 예수의 형상이다. 에덴 동산과 노아의 방주도 예수의 형상이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다. 그러나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다. 선한 양심은 예만 하는 것이다. 부정을 달면 선악을 아는 것이다. 율법에 매여 정죄 받는 것이다. 성령 받으라는 것은 이를 이기라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는 예만 있다. 아멘만 있다. 그것이 선한 양심이다. 아니요라 하면 선악을 아는 자다. 그런 자는 쫓겨난다. 생명 나무를 먹을 수 없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우리는 침례로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 예수와 연합하여 예수의 몸이 되었다. 의식이라는 것은 허구이다. 침례는 허구가 아니라 진리이다. 성령은 예수의 사람에게만 임하신다. 성령으로 증거 받음으로 우리의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
교회에서 우리의 믿음이 굳게 되고, 타락하지 말아야 한다. 시험 들면 교회에 나가기 싫어지고 모이기를 폐하는 유혹을 받는다. 선악을 아는 지혜를 얻는 자는 절대로 에덴에 거할 수 없고 내어 쫓긴다. 예수 이름으로 침례 받으면 예수의 사람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예수의 사람이 되었다. 그가 어느 날 시험 들어 교회 밖으로 나가거나, 진리를 아는 지식, 체험, 즉 침례를 받고, 그것을 알고도 옛날 사람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속죄할 제사가 없다. 예수는 한 분 뿐이시기 때문에 다시는 속죄할 제사가 없고, 원수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다.
내 영혼아 시험에 들지 말자.
내 영혼아 성일을 지키자.
연합예배설교 - 김성현 목사님
[요한복음 13:31~35]
우리 신앙에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우리 교회에는 능력과, 충만한 권세와, 그를 기반으로 하는 자신감과 포부가 있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이는 우리를 후퇴시켰고 아프게 했던 부분이다. 이는 하나님을 말로는 사랑한다 하면서 사람에 대해 막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다면 다른 사람을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연약함이 많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똑바르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은 망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다.
예수님이 침례 받으시고 공생애를 하실 때, 가장 반대하셨고 분노하셨던 일이 있었다. 이는 위선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율법은 잘 지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옳은 것 같은데 다른 것은 관심이 없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계셨을 때, 저들은 위선이다, 이제 은혜의 시대를 열 것이라 하셨다. 그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면서 그것을 단절하셨다.
십일조를 하는데 거룩함이 없다. 의도, 인도, 신도 없다. 사람을 살렸는데 안식일에 일을 했다고 비난했다. 간음하는 사람을 돌로 치는 것에는 열심인데, 긴 시간 고생한 사람을 돕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주님은 율법 아래 눌린,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행태, 은혜를 받지 못한 성격을 끊으신 것이다. 주님은 불완전한 것을 끊고 은혜의 시대를 여셨다. 우리는 그 새로운 시대에 태어났다.
주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말씀을 전하셨다. 마지막 구약의 끝을 불태울 때에,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하시며 이로 율법을 대체하셨다. 의로움을 긍휼로 대체하셨다. 그가 받을 영광들은 양보하셨다. 너희끼리 나누라 하셨다. 예수 파들은 서로 사랑한다. 그로써 구분된다. 예수 파들은, 예수가 부활했다 주장하는 자들은 서로 사랑하였다. 한 교인이 다른 교인을 보면서, 그 긍휼의 출처인 예수 그리스도가 반사되었다. 마치 그리스도를 보는 듯했다. 물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하지 않았다. 우리끼리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 그리스도의 표식이다. 주님의 명하신 것은 모두 계명이다. 많은 말씀이 있고, 새 계명이 있다. 새 계명은 선택의 여지없이,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의 제자임을 나타내라는 명령이다. 무조건 해야 하는 삶의 기반이다. 우리는 삶을 살고 신앙생활을 한다. 바탕이 된다. 예수쟁이다. 예수인이라면 예수인의 모양을 내야 한다. 침례는 일회적이나 이것은 매시간 매순간 해야 한다.
새 계명은 우리 생활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 시작으로부터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다른 것은 거절할 수 있다. 유업이므로 거절할 수 있으나 새 계명은 거절할 수 없다. 예전의 유대인 지도자의 모습대로 가면 교회가 무너진다. 의로운 자, 자기만 사랑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교회가 어려워진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다들 괴로워진다. 새가족은 특히 그렇다.
교회는 세상의 시원찮은 사람, 세상이 버린 사람, 위로가 필요한 자를 받아 주시겠다는 것이다. 친절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은혜 받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원래 죄인 중에 괴수였으나, 은혜받은 자인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한다. 예수의 은혜 받은 것을 자꾸 드러낼 때에 확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은혜를 위해 살자.
사랑, 친절, 존중, 배려라도 하여 주님께 나는 예수 파로, 새 계명 곧 대 계명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해 개선해 나갈 것이다. 잊지 않고 주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사명자의 기본 유니폼을 만들어주신 새 계명의 뜻에 순종하고 받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