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고치신다’ – 김성현 목사님
[마태복음 8:14~17](배경동집사님 정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 거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향하여 주어지는데, 우리가 그 말씀을 영접하면 그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가 비록 주셨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마음에 모실 수 없다. 받을 수 있는 자들이 그 말씀을 영접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
거한다는 말은 어디에 머문다는 뜻이다. 원어에도 머물다, 정착한다는 뜻으로 되어 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우리가 깊히 깨닫고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씀이 사람의 안에 거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장 어떤 물리적인 작용을 통해 이루려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 하는 것들로,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하려 하지, 하나님의 경우처럼 말씀으로 하시는 것에서는 이해하는 정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하시므로 말씀에 무한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씀이 마치 공기 중에 떠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후끈한 열기와 떨림을 가져오는, 오감으로 느끼려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말씀과 분리할 수 없다. 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말씀으로 이루신다. 하나님의 참 모습은 말씀에 있다.
하나님의 강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다고 알고 있을 때에, 그 능력 자체가 말씀에서 나온다. 모든 것을 말씀으로 이루신다. 말씀으로 하신 일 중 가장 큰 사건이 천지창조이다.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는데, 세상을 지으신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성품과 원하심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신다. 없는 것을 믿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다.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고쳐주신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신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고, 그 창조는 생명을 말한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이 하나님이 가깝게 나타나셔서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자가 하나님을 알려 주셨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 그 말씀이 오셨는데,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는 생명을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러 오셨다. 그의 말씀을 받는 자들은 만났다.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나는 생명이다. 내가 생명의 떡이로라. 계속 강조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러한 모습을 보고 생명의 주라고 한다.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
그가 주시는 것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귀어야 한다. 우리를 향해 오신 그 분을 만나려면 사귀어야 한다. 요한 사도가 말하기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다 했다. 원래 이 땅에 없었다. 원래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가 이 땅에 왔다. 생명을 친히 보고 사귀었다. 우리와 같이 사귀자. 소개하겠다. 우리와 같이 교제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한다(요한일서 1:1~3). 이렇게 생명이 왔는데, 모든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받고 모실 수 있어야 한다. 그는 기다리시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받아야 한다(요한복음 1:14).
복음서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가 무엇을 하라 하시는가? 주인공은 인자시다. 인자는 누구신가? 아버지가 보내신 자이다. 생명의 주이다. 아버지가 보내셨는데 인자,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육체 자체가 생명이다. 그가 오셔서 자기를 깨서 주셨다. 자기를 포기하고 생명을 내어 주셨다. 이 분이 아버지가 보내신 자 우리 구주시다. 주인공은 자기 생명을 깨고 우리에게 주신 분이다.
그가 무엇을 하셨을까? 사망은 패했고 생명으로 영생에 가자. 모든 사망과 어둠, 절망이 끝났다. 저주는 끝나고, 멸망은 끝나고, 망가지고 멸망하는 것이 근원은 끝났다. 해방되었다. 승리로 가자 하시는 말씀이다. 믿는 자에게 절망은 끝났다. 지금 당장 괴로운 일이 있을지라도 슬픈 일은 끝났다. 그래서 예수께서 병을 치료하셨다. 사람들의 머리에 기억에 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이 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박히셔서 우리 죄값을 치루셨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천국을 얘기하시면서 영생을 얘기하셨다. 계속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고 치료하셨다. 생명력을 부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셨다. 그 생명을 우리가 고스란히 갖게 되었다. 그 생명이 넘치면 영생이다. 우리의 약속으로 남겨 두셨다. 병의 치료, 생명, 영생으로 발전한다. 이 세가지 요소는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치료가 살아 있고, 영혼의 깨끗함이 계속 반복되고, 새로운 영혼이 살아나고 영생의 소망이 계속 살아 있다.
생명을 실행하라.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실행하라. 오늘 생명을 입으라는 것이다. 내가 네 속에서 역사하리라. 옛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희망이 없고, 구약 교회에 주어진 말씀은 네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화를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망과 화는 다 끝났다. 생명과 영생을 취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신약 교회에 너무나 기쁜 소식이다. 우리에게는 희망과 좋은 일만 있는 것이다. 생명력이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살아 있다. 옛날 예수 하신 일을 기억하면 그 말씀이 역사하신다. 주님은 똑같은 일로 역사하신다. 예수 하셨던 일이 재선포되는 곳에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그 말씀이 있어야 한다. 우리 속에 거하셔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재선포될 때 옛날과 격리됨 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역사하신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그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 그 말씀이 이 시간에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 2:13). 우리를 괴롭히는 병들을 주 예수께서 꾸짖어서 쫓아 내셨다. 귀신을 추방하고 몸을 깨끗케 하셨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치료하셨다. 그 말씀이 어느 때에는 꾸짖어서 하셨다. 꾸짖어 귀신을 호통치시니 살아났다. 꾸짖어 그 더러운 영을 뽑아 내시고 병을 제거하시니 그 환자가 살아났다(마가복음 9:25, 1:25~27).
어떤 때에는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중풍병자의 경우 네 상을 가지고 가라 부드럽게 말씀하셨다(마가복음 2:11). 회당장에 딸이 죽었을 때 예수께서 아이야 일어나라 하셨다(누가복음 8:54). 말씀으로 하시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가버나움의 백부장인데, 내 아들이 죽게 되어 예수께 왔다. 그가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하니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셨다. 이는 초월이다. 인간이 생각할 때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이 초월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병과 어려운 것을 얘기하는데, 이 땅의 원수들이 하는 것이다. 우리를 병들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한다. 이것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짊어야 할 짐이다. 하루라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원수가 하는 것이다. 아프고, 병 나고, 멸망하고, 슬프고, 괴롭고, 일이 안 되고, 어려움이 생기고, 마음이 쓰라리고, 상처주는 것은 원수들이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이 땅에 원수가 없다면 어떨까? 병이 없을 것이다.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고생이 없을 것이다. 천년왕국 시대, 마귀가 잠시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갇힌 시대에는 그를 따르는 악한 천사와 귀신들이 없을 것이다. 그 때는 평화와 기쁨이 있다.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없고 수명을 다 채운다. 백 세는 아이이고, 백 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이다.
그러나 지금은 원수가 이 땅에 와 있다. 주님은 이 모든 조직적인 행태를 멈추라 하신다. 우리가 주님과 만났다는 사실, 생명을 가지고 다가오는 분을 만났다는 사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난 시간, 섬기는 시간, 사랑하는 시간으로 이겨내는 우리가 되자. 이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말씀으로 이겨 나가자. 행하라, 생명을 취하라, 원수를 쫓아라, 행복하라는 메시지가 있는가? 감사하라. 우리 안에 거하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영생을 약속하는 승리가 되자.
우리가 원수와 싸우는 문제를 고된 일로 생각하지 말자. 주께서 주신 힘은 주께서 평안으로 주시는 것이다. 평안하라. 안심하라 하시는 것이 포인트이다. 우리가 슬프고 고난할 것이 아니라 평안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겉모습이 온전치 않아도 우리 속을 강건케 하신다. 우리가 말씀이 있는 한 건강은 우리에게 있다. 안심하고 평안한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서 당장 육신이 잘 되는 일에 집착되어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급하다. 그러나 육체의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병들어 가는 세상이다. 이 증상에 꽂혀 싸울 것이 아니라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마음이 치료되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후로 평안이 있다. 길게 보고 싸워야 한다.
우리가 그 말씀이 우리 마음 깊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도 합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임한 곳에 정신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육체와 잘 합하도록 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영이 있으면 정신도 새롭게 만들고 육체도 따라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모두 다른 성도들을 향해 덕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긍휼로 고치시던 부분이 많다. 그가 고치심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이다. 거라사의 광인이 얼마나 난폭하였는가? 사람이 좋아하겠는가? 주님이 그를 치료하시는데, 험악한 사람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얼마나 너를 긍휼히 여기는지를 기억하라 하셨다. 불쌍히 여기심이다. 어떤 모습이든지 긍휼로 치료하시는 분이시다. 너 일단 평안하라.
우리 안의 파괴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 성품이 하나님의 긍휼과 합해야 한다. 세상의 괴로움을 가져오지 말고, 긍휼이 평안하게 정착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 영만이 아니라 정신도 우리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합하여야 하고, 행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이 정착하시고 일하시기에 최적합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몸은 쓰여져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귀신 쫓고 병 고침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을 시험하는 시험대가 아니다. 긍휼이 역사하고 함께 돕고 함께 건강을 만들어 가는, 건강이 꽉 차는 교회가 되자.
평안하고 강건한 교회, 우리 교회는 앞으로 평안과, 긍휼과, 사랑과, 친절과, 배려가 가득차 서로를 채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 곳은 절망과 슬픔이 깨지고 모든 부족함이 없어지고 생명으로 채워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평안하고 진정 강력한 교회, 모든 망가지고, 부서지고, 포기하고, 실망되고, 모든 불만이 주님의 생명으로 가득찬, 계속 순환되고 우리 말씀이 성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치료하실 때 정신과 마음과 영혼과 몸을 모두 살려주시고, 생명 주시고, 영원한 나라를 향해 가는 것을 믿자. 평안이 넘치는 교회가 되고 만들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