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부활절연합예배 [죽은 자의 부활] 김성현 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데살로니가전서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부활에 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다 중요하게 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부활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에 있다.
결국 우리가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이 정해졌기 때문에, 견고한 기둥이 되어서, 다른 것에 대해서도 소망을 갖게되고, 계획을 갖게 된다.
우리는 부활 때문에 애를 쓰고, 부활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일한다.
부활 때문에 목숨이 아깝지 않고, 내 삶이 아깝지 않고, 내 명예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것에 많은 제약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을 주장할 수도 없다.
연약한 자를 위해서 부활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주신 부활의 성격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믿음이 강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의지가 강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부활을 자기 속에 담을 수 있다.
주님이 제시하신 부활은 우리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생명이 없었던 것이 생명을 받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로 없던 생명이 생긴 것이 아니고, 신령한 몸이 살아나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교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영혼의 거룩함과 신실함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고정관념이 있다.
그래서 영혼만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너무 강조하면 주님이 제시하신 부활과는 멀어진다.
영혼만 살아난다고 하면, 주님이 주신 부활의 기쁨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영이 썩지 않는 육신이 될 것이다.
영만 살아나고, 육은 살아나지 않는다면, 사모할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종교인들은 영혼만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영혼만 살아나서, 감각도 없을 것이다.
감각은 없고, 생각만 떠다닌다고 생각하면 부활한다고 해도 답답하고 괴로울 것 같다.
천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랑받기 위해 지음받은 자가 아니라, 일하기 위해 지음받은 자 같을 것이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죽어서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영혼만 나온다면, 영혼이 불 가운데 들어가도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어준 세계는 천사도 모르고, 유대인도 모르는 부활이다.
우리가 육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육신을 가지셨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것의 기준이 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원판이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면서, 하나님처럼 육신을 갖고 살게 될 것이다.
실제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육신.
이스라엘은 영적인 삶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들은 육신으로만 살았다.
그들은 오래 살고, 고난 없이 살고, 자손들이 잘되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제한적인 행복이다. 하늘의 그림자만 있는 삶이다.
주님이 제시한 삶은 차원이 다르고, 규모가 다르다.
이 땅에서 있는 행복이 아니라, 영원토록 행복한 삶이다.
조건은 주님과 같은 썩지 않는 육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육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육신, 모든 고통과 반대에 있는 육신이다.
모든 것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행실에 대해서 엄청 중요하게 여기신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묻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 하셨다.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잘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 땅에서 핍박받고, 고통당할 때, 기뻐하라, 하늘의 상이 큼이라. 이 개념을 유대인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한복음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죽어서 몸과 영이 분리 되었는데, 왜 무덤을 말하는가.
육신으로 살아나는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1: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는 잘 모르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주안에서 죽은 자들도 마지막날 주님이 부르실 때, 살아나오리라 하시는 것이다.
또, 그 날 살아있는 자는 육체가 영원한 육체로 바뀌어서 영원히 산다.
이것을 마르다가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또, 주님이 처소를 예비해서 데리러 오시겠다 하실 때, 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날 육체를 위해서다.
바울은 주님을 다메섹 가는 길에서 만나셨다.
인자 자신이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이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생선도 드시고, 벽을 통과하시기도 하였다.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히 사는 육신이다.
초대교회가 전한 것은 유대인이 죽인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활을 전하니 하루에 오천명이 구원받기도 하고, 바울은 아덴에서도 전하고, 총독앞에서도 전하고, 핍박을 받아도 부활을 전했다.
고린도전서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린도전서 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린도전서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린도전서 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고린도전서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부활을 하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심판의 부활을 받는 자가 있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부활을 받는 자도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때, 행한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오늘 하루의 행실이 내일의 결실을 만들줄 알고, 지금 모양을 잡아야 한다.
여기서 불의한 자는 거기에서도 불의한 자로 판명될 것이요, 여기서 게으르면, 거기에서도 게으른 자로 판명될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의 상태는 그 날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날 완벽한 행복으로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곳에서 우리는 근심이 없이, 상실함이 없이 살려는 욕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도들로부터 부활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면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자들 되자.
지금 생을 다 포기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로마서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얼마든지 가치가 있다.
옛사람을 완전히 버리고, 우리는 의의 병기로 사용되는 자들 되자.
주님께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다.
주님은 주를 위해 목숨을 잃는 자에게 백배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부활의 기쁨이 충만한 성락인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아래서 주님의 신부가 되어, 살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부활의 약속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부활의 조건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며, 반드시 부활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자.
반드시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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