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8주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막 3: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막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막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인간에게 가족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많은 사람의 생각에 가정은 생산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되고, 가정의 우선적 기능은 서로 사랑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오래 살지 못하므로, 가정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는 것 뿐이지, 생산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 가족이란?]
어떤 사람은 노동 협력 공동체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과거 농경사회의 인식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족은 서로 사랑을 먹여주고, 서로 사랑을 공급받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개념이다.
예수께서 소개하신 탕자의 비유에서도 이런 가족의 분명한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족은 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주신 공통적인 선물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랑을 공급하는 가족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노동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능력, 특기보다 악한 생존 경쟁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역량이 중요하다.
바깥세상에서의 경쟁이 얼마나 힘든가.
이런 것에서 버틸 정신적 힘, 마음의 역량, 처세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사람의 정신적인 힘, 정서적인 힘이 중요하다.
사회 생존 경쟁 현장에서 상처받지 않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지치지 않고, 주눅들어 힘겹게 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기가 약한 사람은 모든 일에 너무 불리하다.
사람들이 무섭고, 사람들이 무서우니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도전을 견뎌나가게 하는 것은 정서적인 안정이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견고한 뿌리가 있으면 저력이 있는 것이다.
저력은 가정에서의 사랑과 신뢰를 통해 만들어진다.
가족은 저력을 주는 원천이다.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
가족은 조건 없이 사랑해 준다.
아무리 친해도 세상은 조건이 항상 달려 있다.
그러나, 가족은 다르다.
거기는 어떤 가식이나 조건도 없다.
가족은 위험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다.
가족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가족은 내가 아무리 부족해도 잘 받아준다.
진실하다.
그 누구도 내 가족이 베풀어주는 것을 해 줄 수 없다.
물론 자기 가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그 가정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모든 가정이 다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가정은 사랑과 신뢰가 충만한 곳이 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대부분 정상에서 조금 못미치거나, 한참 못미친다.
가정에서 아이가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 세상에서 살아간다.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가정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것을 슬프게 생각하면 안된다. 이것은 도와주고 이해할 부분이다.
자녀가 가정보다 다른 것에 빠져 있는 것 같아도, 그만큼 성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계속적인 사랑과 이해를 해 주어야 한다.
가정 바깥에 대해 관심을 가져도 그것은 성장하는 것이니, 부모는 그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자녀의 성공을 빌어주어야 한다.
위기라고 보여질 때, 변함없이 지원해주어야 한다.
이와같이 가정은 가족들이 만들어야 한다.
형제간에도 굉장히 중요하다.
부모가 중개 역할을 잘 해주어, 형제가 세상 마지막까지 끈끈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사랑하도록 맡기신 무한한 잠재성]
사람들은 자녀가 잘되도록 강요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부모가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자기 이기심이 오히려 자기 자녀의 앞길을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녀는 부모가 성질부릴 대상이 아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함부로 대하며, 자기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자녀의 정신을 파괴하는 가장 악한 폭력이다.
자녀에게 훈계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지만, 자기 화를 내는 것은 자녀를 죽이는 것이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포근한 사랑이다.
진실한 사랑이라고 말만한다면 가짜일 것이다.
사랑한다면 알게된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 사랑이 전해지고, 양분을 공급해주고 있다.
자녀는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재다.
자녀는 신과 만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할 자다.
자녀가 어떤 존재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열려서 하나님을 받을 수 있는 자로 준비해 놓았다면, 하나님을 만나기로 된 자일 것이다.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는 꿈을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자다.
하나님이 그와 일대일로 만나고, 하나님이 보이는 준비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자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그 사랑을 맛보게 한 자다.
가정에서 진실한 사랑을 맛보고 자란 자는 이 세상의 도전에도 넉넉히 이길 역량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가정의 사랑은 최고의 잠재력을 갖게 한다.
이 세상의 다른 방법, 교육으로 찾을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세상의 역경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자는 가정이 주는 사랑의 에너지가 있다.
가정으로부터 신실한 사랑을 많이 받을수록, 너그러움을 많이 체험한 자 일수록 세상을 능히 해쳐나갈 수 있다.
이는 많이 사랑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을 말한다.
반대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을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고, 왜곡된 시각으로 힘겹게 산다.
처세의 힘이 대단히 부족하고, 이미 망가져서 어떤 면에서 안될 것을 알면서도 가고 있다.
출발부터 이기지 못할 전쟁에 내보내면서 왜 못이기냐고 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자신감도 없고, 책략도 없다.
세상을 이길 담력도 없다.
두려움이 모든 것을 막고 있다.
갓난아이에게 초유가 대단히 중요하다.
제 때 주었어야 할 부모의 사랑은 갓난아이의 초유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빠의 힘을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자녀가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빠가 아무 조건없이 인정해 주는 것이다.
아빠가 필요할 때, 거기 있어주어야 한다.
돈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위로해 주는 것, 인정해 주는 것이다.
위로만 해 주어도 행복할 것이다.
모든 문제를 이겨낼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자녀들과 사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많이 들여야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아껴주고, 존경해주고, 위해주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가정에게 베풀 최소의 의무는 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심은 가정을 파괴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 가정의 배려는 생각하지 않고, 가정이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도 있다.
이들은 가정에 대해 매우 심각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입장에서 가정은 내가 사랑할 대상이다.
그들은 내 사랑을 먹고 오늘 서 있다.
사실은 내 마음은 그들로 인해 안식하고 있다.
그것을 알았다면, 이전보다 그들을 더 사랑해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을 버렸다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전히 가정을 사랑하는 자도 있지만, 어떤 자는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려 하지만 옳지 않다.
이 경우는 자기 이기심을 둔갑시켜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자기에게 기회는 있다.
자기에게 기회가 올 때, 원래 타락한 마음이 자기 의무를 하지 않게 하고 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정을 사랑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누가 돌을 주겠느냐.
아무리 악해도 이것은 한다.
설마 천륜을 거역하지는 않겠지. 이것이 주님의 입장이다.
나는 대의를 위해 가정을 버렸다고 한다면, 가정을 두번 버리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그런 자를 훌륭한 자로 여길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모든 사람중에 가장 작은 자다.
자기 악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대단히 완악한 것이다.
가정은 자기가 사랑할 대상이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은 가정의 사랑 때문이다.
내가 일찍 쓰러지고, 포기했을 수 있었지만, 이들 때문에 오늘 내가 살아있다.
오늘 내게 힘을 주는 자요, 그들도 나 때문에 잘 견디고 있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다.
[가족을 이해해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가정을 사랑하는 하늘이 심어준 의무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아마 자기가 이해하는 것이 있겠지만, 왜곡된 것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을 벗어나 다른 요소로 매꾸어진 가짜다.
하나님은 자기 가족을 뜨겁게 사랑하신다.
하나님처럼 자기 가족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존재는 없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모르면, 예수님이 소개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자는 교회의 기능, 천국을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과의 대화에도 계속 어긋난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진정한 핵심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하나님을 위해 가정을 버린다고 하지만, 성경을 잘못보고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30년간 가정을 잘 돌보셨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로서 온 인류의 짐을 지셔야 했다.
그래서 인생에서 마지막 십분의 일을 하나님을 위해 전념하셨다.
세상에서 부모의 진실한 사랑을 받은 자는 세상을 잘 이기고, 사랑의 용사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셨던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를 제압하고, 온 세상을 구원하고도 역량이 남는 분이다.
구원한 자를 온 세계에 흩으시고, 마지막까지 이끄시는 저력이 있는 분이 되셨다.
만물을 붙드시는 부담을 능히 감당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로서 주시는 사랑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신으로부터의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아버지와 같지 않고, 모든 아버지의 정수로 사랑하신다.
이스라엘은 천오백년간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세상과 분리되어,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신으로서 섬겼다.
신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실패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모든 지원을 받아도 실패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 어떤 도전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특별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원래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니, 온 세상을 포용한다.
죄인들을 용서하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없는 자를 있게 하고, 이 세상이 감히 할 수 없는 것을 해낸다.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신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대표할 수 있는 자로 만들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철저하게 신뢰를 가지고 아들을 지원하는 자는 없다.
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세상은 주님을 무시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세상에서도 주님을 무시했다.
주님은 너무 많이 모욕당하시고, 죽음의 위협을 갖고 사셨다.
[아버지의 사랑과 신뢰를 자신하심]
세상은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셨다.
나는 너를 기뻐하노라.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힘입어, 아버지를 소개하고 계시다.
요한복음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7: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한복음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 없이는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 예수가 가운데 계셔서, 풍성한 사랑을 연결하신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모든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아들이 하실 때 기뻐하신다.
[사랑이 변치 않는 아버지]
아버지는 이간자의 말에 이간당하지 않으신다.
누가 아들을 이간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가 귀신들렸다고 사람들에게 생각을 심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귀가 무겁고, 영원히 이간당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도 걱정없이 안심할 수 없다.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으시니, 우리가 갈 천국도 흔들리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누가 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일하고 계시다.
빌립보서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립보서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지배의 대상이 아니고, 아버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이다.
마귀는 지금 예수를 흔들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자꾸 흔든다.
이 땅에 있는 동안 계속 할 것이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던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흔들 수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락교회만은 절대 이간당하지 않고, 성령 앞에서 악한 것들이 두려워 떠날 수 있게 하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가정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참 현실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자로서, 행복이 넘치는 여러분의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받았다.
마태복음 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스라엘은 주님이 나타날 때,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할 것이라 하셨다.
그들을 아버지와 만나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하신다.
[누가 내 가족이냐?]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 사람들이 당신의 모친과 형제가 찾는다고 하였다.
마가복음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영적인 가족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가복음 3:34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세상의 가정이 있지만, 하나님의 가정이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 하나님의 가정으로 초청하셨다.
절대 완벽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행복을 나누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1: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누가복음 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시급한 구원문제]
‘하나님의 뜻대로’라고 하면 너무 다르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당시 현장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긴박한 상황에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구원이 가장 급했다.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교회가 생기기 전이니 가장 시급한 것이다.
1. 구원받는 것
2. 성도의 의무와 도리실천
3. 사명감당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모친과 형제가 예수를 찾아왔다는 부분에서 가족들이 영적이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주님을 찾으러 온 모친과 형제들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예수를 구하려고 한 것이다.
예수님도 가정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받으신다.
우리는 하나님과 가족관계에 있다.
우리가 진짜 이스라엘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이면 아멘하라.
세상과 음부를 능히 이기고,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천국으로 이끄실 것을 믿는다면 아멘하라.
하나님은 성도를 지원하시고, 영원한 가정으로 부르시고, 영원히 사랑하실 것이다.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자.
설교요지
하나님은
공의(公義)이시다
그가
뜻하신 것을 의(義)롭다 하는 자는 의(義)롭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불의(不義)하다
예수는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 오셨으나
하나님의 뜻대로 오신 이요(요 1:13~18)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마 1:23)
비록 한 모친에게서 태어난 형제라도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와
하나님의 계시와 뜻으로 나신 이는 다르니
이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신 이요(요 8:58)
하나님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계신 이다(요 1:1~3)
우리의 믿음이 이것이니
예수가 인간이냐,
하나님이시냐를 분명히 고백해야 한다(요 20:31)
예수는 사람이시나 인간은 아니시다(마 22:4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이다(요 1:14)
그러므로
예수의 가족들이라도 마찬가지로(롬 1:2~4)
예수를 시인해야만 주의 가족이라 하셨다(막 3:34~35)
○ 자기의 덕(德)과 양심만 의지하고
예수가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면 구원이 없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 종교의 양심으로는 절대로 영생이 없고
오직 복음을 믿고 신앙고백 해야만 영생이 있다
성령은 신앙고백 한 자들에게 인치시고 보증하신다
○ 예수가 인간이라면 그의 죽음은 그 하나만을
위한 죽음이요 구주가 될 수가 없고
그가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임을 믿으면 산다
※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종교적 양심도 가족의 연고도 소용없고
오직 하늘로서 오신 구세주이심을 믿어야 한다 (視無言)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마 22: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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