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4환언(강석준집사님 정리)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진리 앞에 무릎꿇게 하시고 또 진리의 말씀을 들어 깨닫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말씀을 명심하여 듣고 흘려버리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 귀를 기울이는 베뢰아 사람들 하나님의 의도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송죽암에 이미 말했지만, 여러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믿어 실천하는 자, 믿어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제발. 그래서 복음은 전파된다. 기독교의 믿음은 전파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3년간 열심히 제자들을 얻으셨다. 수만 명에게 듣게 하셨지만,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자는 몇 백 명이었다.
그 중에 열한제자는 예수와 동거 동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아는 자가 되었다.
이들에게 주님께서 간곡히 부탁하셨다. 평강이 있으라. 성령을 받으라.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이렇게 명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다.
모든 사람들에게 제자 삼으라는 것이다.
잡풀도 꽃을 피웠다가, 씨로 변하고, 그 씨가 바람에 날려 자꾸 퍼져 나간다.
큰 씨는 다람쥐나 새들이 먹고, 멀리 가서 배설하므로 거기서 자란다.
이렇게 전파되듯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명하신 것이다.
그런데, 꽃꽂이를 한 꽃은 씨를 맺지 않는다. 화려하다. 응접실에 장식되어 있고, 꽃다발로 만들어 사람 품에 안기지만 씨는 없다.
사람 품의 꽃다발처럼 세상에서 존경받고, 칭찬받아도, 그렇게 되면 결국 자기의 씨는 없다.
본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씨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두고 맹세하사 저는 씨라 하셨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씨라 하셨다.
자연계시를 통해 씨를 알게 하신 이가 씨라 하셨다.
우리 복음은 씨다. 그래서 옥토에 뿌린 씨처럼 몇 배의 결실을 해야 한다.
여러분 적어도 30명의 제자는 나와야 한다.
시골에서는 보리이삭이 30배, 60배, 백배를 맺는다. 이 이하는 쟁기로 갈아버린다.
그것은 아무 쓸모없다.
여러분의 제자가 적어도 30이 나와야 하고, 더 열심히 하여 오십이 나와야 하고, 더 열심히 하여 백 명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를 듣고, 그저 기독교인의 도리, 상식으로만 소화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늘 안타까워하는 것이 그것이다. 복음을 들어야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어야 체험이 있다. 체험이 있어야, 믿음의 자녀를 얻을 수 있다.
목회자들은 설교만 잘해서, 한주간의 일을 다 한 줄 알지만, 예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하셨다.
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고, 사랑합니다 하니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셨다.
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고 사랑합니다 하니, 내 양을 치라 하셨다.
하나님의 양,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의 양을 치라는 것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양을 치는 자다.
우리 교회가 한 때 수만 명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주셨기에 내가 양육한 것이다.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엉겅퀴에 떨어지고, 더러는 자갈밭에 떨어졌다.
옥토에 떨어진 씨로 인해 남은 자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지만, 추수 때 쭉정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 침례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키를 들고 타작하러 오시는 분이라 하셨다.
요즘은 기계화 되어 볼 수 없지만, 과거에 타작할 때 보면, 참 힘도 많이 들지만, 거기서 알곡을 골라내기 위해 키질을 하면, 쭉정이와 검불들은 날아가고 알곡만 남게 된다.
반드시 키질을 해야만 곳간에 들어간다.
뒤에 오시는 예수는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 오셔서, 키질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알곡을 찾으시는 분이다.
여러분 쭉정이가 열매 맺지 못하는 것 잘 알지 않는가.
우리가 이 세상을 본다.
하늘의 달도, 해도, 별도, 나무도 풀도 다 본다.
그래서 다 아는 것 같지만, 그 이름을 다 아는가?
자세히 그것에 대해 관심 있게 살피거나, 그에 대한 상식을 취하지 않으면, 풀이 많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것들이 다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자연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족하여, 만물을 보고, 아름답고 하지만, 거기서 하나도 취하지 못한다.
산에 가서 잣나무와 일반 소나무를 보면,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잣나무, 소나무 겉으로 보면 똑같다. 그러나 솔잎 자체가 다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연을 보고 아는 것처럼 하지만, 단 한 가지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기왕 시간을 내서 이 강의를 들으니, 잘 듣고, 여러분 자신이 체험하도록 들으라.
그리고 제자를 삼을 수 있는 능력, 사명이 여러분 속에서 불이 붙어야 한다.
하나님은 무리의 다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 하셨다.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하시는가.
설교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먼저 가장 큰 책임이 있고, 중요하다.
예수께서 비유로, 임금이 타국에 갈 때, 청지기에게 일을 맡기고 떠나는 말씀을 하셨다.
그 청지기가 주인의 일을 잘 맡아서, 종들에게 갑질 하지 않고, 일을 잘 처리했다.
야곱이 자기 외삼촌의 양을 몇 배로 늘렸다.
이렇게 늘리라는 것이다.
양을 맡았으면 늘리라는 것이다.
임금이 돌아와서 때를 따라 주인의 양식을 나누어준 청지기의 행한 일을 칭찬하신다.
그 집의 종들은 주인이 나갔을 때, 청지기가 다스리지만, 청지기의 종은 아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지만, 주인같이 된 사람이다.
요즘 교회 주인 같이 라고 하니까, 갑질 하려고 한다.
그것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나와 40년을 같이 한 장로님이 있는데, 잊지 못할 분이다.
정말 이분은 교회의 주인처럼 내가 무슨 부탁을 하지 않아도, 그 일을 다 수습했다.
정말 고생 많이 했다. 그런 청지기를 또 볼 수 있을까.
우리 교회 많은 기관이 있고, 임원이 있지만, 임원 자랑하지 말고,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주인이 되어야 한다.
80년 중반에 보일러실에서 불이 났다.
시커먼 연기가 바깥까지 나는데, 그것을 어떻게 헤치고 들어가는가.
모두 너무 숨이 막혀서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
불이 솟고, 새까만 연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끄지 않으면 교회는 다 타버리고 말 상황이었다.
나는 거기에 목숨을 걸고 들어갔다.
사람이 숨을 몇 초나 참을 수 있는가.
나는 거기에 들어갔다. 숨을 쉬면 죽으니까, 숨도 못 쉬고, 까만 연기 속에 볼 수도 없었다.
거기 간신히 들어가 보일러 밸브를 잠갔다.
간신히 빠져나와서, 변소 앞에서 주저앉았다.
나는 청지기다.
주님이 내게 자기의 것을 맡기셔서, 내가 세상에서 숨쉬고 있는 동안 바로 그 일의 주인으로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급하면 손 떼고 다 도망가지 않는가.
의인은 국어사전적으로 장군, 장군의 부인을 두고 말한다.
나라가 침략을 당할 때, 장군이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전쟁에 나갈 때, 그 나라는 임금의 것이다.
그래서 장군이 임금에게 가서, 맹세하고 싸우러 나간다.
목숨을 이미 임금에게 바친 것이다.
목숨을 임금에게 바치고, 전쟁에 나가서 살아 돌아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죽겠다고 하고 나간다.
계백 장군 같은 경우는 자기 가족을 자기가 미리 처치하고, 목숨을 내놓고 전쟁에 나갔다.
그래서 의인이라고 한다.
또, 부인이 살아있다 할지라도, 장군이 싸우러 갈 때, 장군에게 살아서 돌아오지 말고, 기어코 전쟁터에서 죽으라고 한다.
이것을 임금이 의인으로 삼는 것이다.
급류에 쓸려가는 사람을 건지기 위해, 자기가 죽을 줄 알면서 물 속에 뛰어들어 사람을 살리고, 죽는 사람이 있다.
목숨을 내놓고,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자를 의인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의에 대한 순종을 하셨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뜻은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나는 죽을 계명을 받았다.
누가 나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죽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께로부터 죽을 계명을 받았다고 하셨다.
베드로가 이 때, 그리 마옵 소서 하니, 사단아 물러가라 하시고, 네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죽으라고 보내셨으니, 십자가에 죽으러 가시는 것이다.
이것을 막는 것은 인간의 감정으로 하는 것이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내 눈에 보이지 않도록 뒤로 떠나버려라.
그래서 그리스도를 의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때는 예수가 의가 되신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 가므로, 다시 보지 못한다 하셨다.
예수가 의이신데, 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다.
내가 아버지께 가면, 이 땅에 다시는 의인을 볼 수 없다.
심판에 대하여는 마귀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
예수를 향해 어떤 사람이 선한 분이라고 하니, 예수께서 어떻게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셨다.
선한 분은 하나님뿐이시라 하셨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거나, 동정할 수 있는 선심쓰는 사람을 선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항상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 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인은 단번에 목숨을 드린다.
주님은 겉옷을 달라 거든 속옷까지 벗어주라 하셨다. 이런 것이 구제다.
우리 교회 분란 일으키는 자들은 교회가 구제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이는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 각 사람이 하는 것이다.
교회는 구제하는 곳이 아니다.
의인에 대해 국어사전에 있는 대로 말한 것이다.
양심에 대해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하셨다.
하나님의 양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네 성품이나 인격이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
자기 의를 얻기 위해, 자기가 과시하기 위해 하는 것도 있다.
나도 장학금을 40여명에게 주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이는 의인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인이 하시는 것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모친이 말할 때,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다.
간청하니까, 예수께서 한번 포도주를 만들어주셨다.
그가 포도주를 만들어주러 오셨으면, 온 기독교인들이 다 술장사 할 것이다.
오병이어나 물로 포도주 만드신 것은 그 때 그 때 상황 따라 하신 것이다.
예수는 사람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볼 때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아버지를 볼 때, 의로우신 아버지여 라고 하신다.
사람들은 직접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예수를 통해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의는 영이므로 볼 수 없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다.
진리는 오직 예수뿐이시다.
예수만 볼 수 있고, 예수만 알 수 있고, 예수만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은 아무도 본 자가 없다.
오늘날 한국에 기독교가 생긴 이래,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한 자가 150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중에 문선명도 있고, 박태선도 있고, 신천지 이만희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에 속아나간다.
신천지 이만희씨는 믿느냐는 말 한마디 안한다. 그저 내 말이 맞죠. 내 말이 맞죠 한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맞는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뿐이시다.
박태선은 구원자가 동방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예루살렘에서 보면 한국이 해 뜨는 곳이다.
정동진이 서울 세종로에서 직선으로 동쪽이다.
이와 같이 한국이 그렇다고 하면서, 자기가 구주라고 한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으로 예배할지니라.
누구든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볼 자가 없다.
예수께서 하늘에 가셨기 때문에, 동쪽에 나타났다, 서쪽에 나타났다고 하면 지옥 갈 사람이다.
그가 오실 때는 이미 심판이 시작된다.
우리는 그가 오셔도, 공중에서 그를 뵙는 것이지, 이 땅에서 주님을 뵙는 것이 아니다.
공중은 지구보다 무한 배 넓다.
거기 나타나면, 해가 온 세계를 비추듯, 온 세계 다 비춘다.
해가 비추는 것은 반쪽만 비추지만, 그가 오실 때는 온 세계를 비춘다.
주를 공중에서 뵙지 못하면, 백 보좌 앞에서 뵙게 된다. 백 보좌 앞에 가면 심판을 받아야 한다. 공중에서 주님을 뵐 것인가, 백 보좌 앞에서 주님을 뵐 것인가.
주님이 오실 때, 첫째 부활한 자는 공중에서 뵙고, 함께 내려온다.
그 나머지는 백 보좌 앞에 나와서, 그들이 행 한대로 심판받는다.
내가 60년간 정말 예수를 알고 증거했다.
내가 사역을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귀신이 먼저 알고 떨었다.
기독교 역사에 없던 일이 처음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기성 교회에서 엄청난 핍박이 왔다.
핍박이 두려운가.
주님은 빛으로 오셨다. 때로는 사람들이 칭찬하기도 했지만, 핍박받았다.
베드로도 두려워서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
나는 육신으로 미련해서, 영적으로는 신앙이 있어서, 그 박해를 견뎌왔다.
나는 후회가 없다.
아주 만족한다.
네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마침내 우리 교회를 설립했다.
침례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동안 많이 설명했지만, 앞으로도 더 배워야 한다.
나는 그래서 침례교회를 세운 것이다.
침례 교단에 들어갔지만, 그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독립 침례교회로 다시 시작했다.
우리 교회는 50년간 굵은 그루터기로 오늘까지 왔다.
핍박이 두렵고, 세상과 조화가 안되어 억울한가.
예수께서 유대교와 조화하지 않으셨다.
예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끝없이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마침내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는 아버지가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그대로 나타내야 하는 사명만 있으신 것이다.
그런데, 성락 교인들 너무나 핍박이 많다고 말한다.
여러분 불속에 들어가면 당연히 타 죽는다. 말할 것도 없다.
내 나이가 찼기 때문에, 내가 떠난 다음에, 여러분이 가룟 유다처럼 되도 내가 간섭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이만희가 자기를 보혜사라고 하는데, 그를 따라간다.
그는 내 말이 맞죠 하면서, 자기 말로 만든다.
성경을 믿느냐, 예수를 믿느냐가 아니라 내 말이 맞죠라고 한다.
그런데, 베뢰아 한 사람도 따라간다.
그런 사람은 주님이 없는 사람이다.
잠시 네가 근심하나, 잠시 후면 기뻐하리라 하셨다.
세상은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아나니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이라 하셨다.
자기 안에 있는데, 어디를 따라가는가.
어떤 유혹이 있어도, 그 의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성령으로 그 의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신다.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의 신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도, 여기 저기 말하니까, 여론을 따라 그 말이 맞나보다 한다.
예수 오셔서, 예수 혼자 처음 복음을 말씀하셨다.
지구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어도, 그들과 상관이 없으시다.
예수 혼자만 있다.
고독하다.
씨 하나만 있다.
의인은 다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신자는 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살전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살전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7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계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계 20: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계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첫째 부활은 둘째 부활보다 천년 앞서서 공중에서 주를 뵙는다.
성령이 찾아오셨다.
예수께서 성령을 기다리라 하셨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은 주가 우리 안에 계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어디로 찾아다니는가.
우리 교인들은 앞으로 택한 자라도 미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열심이 있는 자를 미혹하여, 목사가 부정하다고 한다.
우리 교회는 이미 키질 했다.
그래서 엉성한 것은 나가고, 알곡은 남아있다.
다시 다른 짓 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
핍박받는 것, 여러분이 빛이기 때문에 질투하는 것이다.
이는 가인이 아벨을 질투하듯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살았고, 아벨은 죽었다. 이 땅에서는 손해가 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받으셨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요한계시록이 복음인줄 알고, 예수를 믿는 자가 그것을 읽고 벌벌 떤다.
믿는 자가 다시 두려움이 있다면 뭐하러 믿는가.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가 이미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시다.
성령이 믿는 자 속에 들어와 있는데, 성령이 벌벌 떠는것인가.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
계시록은 선견이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전에 잘 믿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죽는 사람들이 계시록에 있는 그런 무서운 일을 보는가.
신자도 마찬가지다. 상관이 없다.
요즘 어떤 사람은 믿음이 좋은 체하고, 코로나19에 대하여, 백신을 맞으면 믿음이 약한 것처럼 말한다.
우리 교인은 그런 사람 없기를 바란다.
신자라고 밥 안 먹으면 사는가.
밥 먹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
우리 교인들은 신청하라고 하면, 신청해서 접종 받으라.
갓난아기를 낳으면, 여러 가지 예방주사를 많이 맞는다.
내가 어린 시절, 홍역 때문에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천연두로 곰보 된 사람도 많았다
요즘은 예방주사 맞아서 그런 사람이 없다.
백신을 신앙과 연관하지 말라.
그래서 자유 하라는 것이다.
오직 내 영혼이 예수를 모시고 살고, 그 의에 순종하고, 그 의에 복종하라.
어떤 사람은 신앙이 좋은 것 마냥 약 안 먹는다고 한다.
약은 안 먹었지만, 밥은 먹지 않는가.
약이 영양소를 추출하여, 정제한 것이 아닌가.
우리의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속에 하나님의 의만 거하셔야 한다.
내가 우리 교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시대가 어쩔지 모르지만, 내가 쓴 책은 그냥 쓴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쓴 300여권 중에서 월산문학과 다른 책을 구분하고 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예수는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30년간 사람과 같이 자라며 목수로 지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배우지 않았지만, 말씀을 잘하신다.
시골에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있지만, 농사 이야기하면 아니까 잘 말한다.
신앙은 배우지 못했어도, 자기가 아니까 잘 말한다.
체험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체험했기 때문에 말을 잘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공부 많이 해서 그렇게 책을 잘쓴다고 한다.
나는 자랑할 만큼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은 예수 믿을 때까지의 예수 바깥에 있을 때와 예수 안에 들어와 산 것, 두 인생뿐이다.
오늘날 이런 글을 쓰고,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성령이 하게 하신 것이다.
너희는 왕들 앞에 설지라도 근심하지 말라,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네가 말할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신다.
지식과 권세, 모든 영광이 정상에 있는 자 앞에서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진 것은 왕들보다 크다.
너는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모셨고, 그가 네 혀를 주장하신다.
내가 쓴 270권은 성령으로 감동되어 쓴 것이다.
이것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20-30권, 월산문학으로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담의 후손 돌감람나무였는데, 거기서 찢겨 나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참감람나무가 되었다.
그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의 후손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배우지 않았어도, 수천 년간 그들이 말하고 증거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진다.
당시는 인쇄기술이 없어서, 제자들의 말을 사본으로 배껴 써서 오늘까지 이어온 것이다.
그 말을 믿고, 오늘까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가.
여러분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말을 안쓰지 않는가.
벧후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벧후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벧후 1:17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벧후 1: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벧후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벧후 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는 세상 떠날 날이 임박하므로, 떠나기 전에 강조한 것은 우리가 쓴 말은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한 것이라 하는 것이다.
자기는 배우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성령이 역사하신대로 쓴 것이다.
이처럼 내가 월산문학을 통해, 나는 배우지도 못한 자요, 능력도 없고, 무식한 자임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진리에 대해 무식하지 않다.
이는 성령에 의해 들었고, 성령이 역사하신다.
장작이 한개만 있으면 타지 않는다. 장작이 여러 개 쌓여 있으니까, 탄다.
앞으로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시무언 저서의 가치를 더 있게 하려면, 먼저 월산문학의 그루터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월산문학에는 신앙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인간 김기동이 세상을 체험한 이야기뿐이다.
월산문학과 베뢰아서는 완전히 구분된 것이다.
월산문학은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한 일이요, 다 알고 있는 것을 시대상황에 따라 글로 쓴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책부터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의 책을 높이기 위해 월산문학을 쓴 것이다.
세상이 난리가 나서, 다 불타서 없어질 수도 있다.
우리 교회 장로 한분은 교회의 자료를 박물관처럼 모아놓으신 분도 있다.
내가 쓴 책을 300권을 다 보관하길 바란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고, 여자에게서 태어나셨다.
그의 친척도 있고, 자라는 것을 본 자도 있다.
성경 외경 중에 도마복음을 읽었는데, 그것을 한번 읽고, 다시 읽지 않고 내버렸다.
도마복음을 보면, 예수가 일곱 살 때, 친구를 옥상에서 밀어서 죽었는데, 살렸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는 억지다.
그 때까지 예수는 인자시다.
예수가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는 임마누엘 하셨지만, 분명히 사람으로 오셨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침례로 다 장사지내고, 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영광 받으셨다.
바울도 자기는 누구보다 율법에 열심인 자였지만,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다.
바울도 성령이 지시하시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여러분,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책을 갖추라.
계획적으로 쓴 것이다.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것은 성경을 보는 안경이다.
자동차를 만들어도, 수백 개의 공장에서 만든 부품을 모아서 만든다.
베뢰아 아카데미 2년 공부하면 안경을 보는 것이다.
성경의 비유와 모형으로만 보았던 것을 복음으로 이해시킨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다 알지 못한다.
부속을 만드는 것이다.
교인들이 그것을 다 알면, 목사가 영감으로 설교하기 좋다.
교인들이 바탕이 없으면, 목사가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교인들은 아무 변화가 없다.
종교인, 선한 사람은 만들 수는 있어도, 의인은 만들 수 없다.
설교단에서 설교자는 조립만 하면 된다.
각자가 부속을 가지고 있으니, 조립된다.
그런데, 부속이 없으면 조립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못 알아듣는다.
너희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온 천하를 다니면서, 찾았다가, 결국은 너보다 더 악한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하셨다.
복음을 말하지 않고, 비유를 말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너무 해석을 많이 하면 안된다.
예수에 대해 그대로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부속이 없기 때문에 조립이 안된다.
우마차는 부속이 몇가지 안되지만, 자동차는 일만개 이상의 부속이 있어야 한다.
배 만들 때도, 실제 우리나라 제품은 30프로도 안된다고 한다.
다 사다가 조립한다.
부속을 만드는 것이 베뢰아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설교자가 설교할 때는 다시 부속을 말할 필요 없이 조립만 하면 된다.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사람이 될 수 없다. 성령충만해야한다.
그런면에서 책을 잘 준비하라.
앞으로 어느 시대가 와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가 곧 진리다.
나를 알아야 너희가 자유하리라.
하나님 아버지는 아무도 볼 수 없다.
의는 볼 수 없다.
의는 영이시다. 보지 못한다.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분이시다.
요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를 보아야 아버지를 본 것이라 하셨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 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아버지를 보려면 아들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아들만 본다.
아들은 의에 뜻으로 순종하고 복종하신다.
아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나타나셨다.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안다.
예수께서 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잘 알라.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만 자기를 나타내셨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신령한 하늘보다 크신 이가 의다.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다.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예배하라.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을 뵙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공로로만 하나님을 뵙는다.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뵙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다.
하나님을 뵈오려면, 신령과 진정(진리와 하나님의 의)으로 뵙는다.
자기가 착하니까,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라.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의다.
예수 그리스도로만 하나님을 뵐 수 있다.
예수로만 내가 의롭다함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예수 믿으면 죄지어도 되느냐고 한다.
언제 죄지어도 된다고 했는가. 자기 공로로 하나님을 뵐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하나님을 뵐 수 없다.
롬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뵐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진리를 알게하시려고 성령으로 종을 감동하사 역사하셨으니 저들이 제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뜻을 예수로부터 잘 들어보고 배워서, 그래서 그 공로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교인들, 어떤 핍박이 와도 그것을 부끄러운 줄 알지 않게 하시고 영광으로 알고 하나님이 복과 겸하여 주시는 큰 체험이라는 것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