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언베뢰아특강

환언베뢰아특강198(210813)

lks8284 2021. 8. 14. 00:51

210813환언(강석준집사님 정리)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진리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예수 이름에 무릎 꿇게 하시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종도 기운이 없고 여러 가지로 임박함을 알고 있사오나 하나님께서 내게 숨 쉬게 하시고 또 입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니 순종하였습니다. 오늘도 종의 입술을 기름 부으사 성령의 말씀, 곧 진리를 증거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내가 거듭 여러분에게 권하면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 우리 신앙은 내 생명, 내 영혼을 위하여 갖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갖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주님 앞에 보여드리기 위해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여러분 자신이 감동이 없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메마르고,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받은 자는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령의 말씀이라도, 성령에 감동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지만, 가룟 유다는 이미 주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단의 소리를 들었다.

사단이 예수를 팔려는 마음을 가룟 유다의 마음에 넣었다고 했다.

마귀가 주는 말은 받아들여지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는 가룟 유다에 대해 저는 마귀니라 하셨다.

그가 재정을 맡고 있지만 훔쳐간다. 저는 도적이다.

내게 속한 자가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자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 마귀의 생각이나 지혜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네 생각대로, 네 신념대로, 하라 하셨다.

그날 밤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

가룟 유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상이 있었다.

예수가 무죄라고 목숨걸고 주장한 사람은 가룟 유다뿐이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다. 베드로도 부인했다.

그래도, 재판정까지 쫓아가서, 예수의 정죄받는 것을 보면서, 무죄라고 외쳤다.

자기는 무죄한 자를 팔았다고 했다.

가룟 유다는 견딜 수가 없어서, 번민하다가 게헨나에 가서, 목매달아 죽었다.

그만큼 자기 목숨을 내놓고, 예수가 무죄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예수가 무죄한 것을 마귀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마귀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어주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죄가 있다면, 가룟 유다를 시킬 것도 없이 당장 정죄받아 심판받게 할 것이다.

가룟 유다는 가장 예수 가까이서, 예수의 생활을 돕고 있는 직분을 가진 자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아는 것은 마귀가 준 사상으로 아는 것이다.

그는 예수를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긴다.

죄인이라는 것은 당시 노예를 말하는 것이다. 노예는 이 주인에게서 저 주인에게 팔린다.

가룟 유다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예수를 팔아넘긴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빌라도 앞에서 예수의 무죄가 드러나기 바랬다.

마귀는 율법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예수를 흠잡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노예로, 죄인으로 파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가룟 유다에게 은 삼십을 주고 예수를 샀다.

이제 예수는 제사장들의 노예다.

당시는 노예를 죄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채찍질도 하고, 그를 끌고가서, 빌라도에게 죽여달라고 한다.

자기들 법도 있지만, 가이사의 법으로 다루어달라고 했다.

자기들이 이미 죄인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 법으로는 할 수 없으니, 당신의 법으로 판단해달라고 빌라도에게 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해도 무슨 이야기인줄도 모르고, 멍하니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을 알지니, 그것이 영생이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아무도 볼 수 없다.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므로,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오늘날 왜 예수가 욕먹는가.

예수가 무죄하다고 수천 년간 증거 했지만,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 받은 것만 기억하지, 예수의 무죄를 기억하지 않는다.

2천년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까지도 예수가 사람들의 핍박을 받는다.

주님은 만인이 보는 가운데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하는 것까지 보았다.

이는 이 세상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고, 당연한 절차다.

사람이 죽고, 죽으면 무덤에 장사지낸다.

그 다음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은 사랑하는 열한제자와 모친과 이모와 막달라 마리아와 나중에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자들 500여명뿐이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다. 유령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나셨다.

손의 못 자국을 보아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아라. 만져보게 하시고, 먹을 것도 제자들 앞에서 잡수셨다.

그는 살아나셨기 때문에 물도 마시고, 떡도 드신다.

곧 하나님이신 말씀은 우리가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요, 귀로 들은 바라.

말씀은 실존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아멘 하지만, 과연 듣는가.

들었으면 예수를 욕 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베뢰아가 욕을 많이 먹는다.

베뢰아가 무엇인가.

내 이름은 김기동인데, 내가 60년대에 진리를 알고, 하나님의 의도를 안후에 모진 핍박을 견디기 위해 시무언이라고 표호를 지었다.

월산은 내가 신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하는 가치를 주장하기 위해 만든 표호다.

베뢰아는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자들을 이름하여, 표호한 것이다.

그런데, 왜 베뢰아가 욕을 먹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베뢰아 사람들 다 귀신 쫓을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 70명이 둘씩 가서 전도하며 귀신을 쫓았다.

그 때, 귀신들이 복종하고 떠나는 것을 보고, 돌아와서 예수께 보고했다.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그 때, 예수께서 귀신이 나감으로 인해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있음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하셨다.

귀신은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때가 다되어서 그런지, 이 세상에 미련도 없고, 세상에 가질 것도 없다.

내 눈에는 오직 낙원을 통해서 공중에서 주님이 재림할 때, 신부의 자격으로 뵙는 꿈이 충만하다.

혹이 당신 같은 불의한 자가 어떻게 그의 신부가 되냐고 할 것이다.

나는 불의하고, 내 속에 하나님의 의로만 충만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오늘 그 말씀 또 한다고 할 것이다.

의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해서, 여러분 속에 마음에 불평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의 의에 대해 얼마나 많이 말하는가.

의가 없으면 망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의()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더니,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해석한다.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뜻 의가 아니라, 옳을 의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면, 그리스도의 신자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러나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가.

그래서 율법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그들은 육신만 대접받는다.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면, 뭐하러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겠는가.

오늘날 진리를 모르는 설교자들이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믿으면 순종하게 되어있고, 복종하게 되어있다.

복음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서 율법이 있어도, 예수가 오셔야 하고, 피 흘리셔야 한다.

예수께서 오셔서, 너희가 율법을 지키면 구원 얻는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더 깊이, 마음으로 미워해도 살인한 자라 하셨다.

더 강화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더라도, 물론 행함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야 한다.

행함은 율법과 함께 하는 것이다.

율법은 행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구원은 율법으로부터 구원이다.

여기서 행하지 않은 자들, 곧 죄인이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인간은 행함으로 구원받을 자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예수로만 구원받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의로만 구원을 허락하셨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

그러니까, 행함으로 구원 얻는 줄로 오해한다.

육신은 행함으로 된다.

앉은뱅이에게 일어나라 할 때, 행함으로 일어난다.

육신은 행함으로 복을 받는다.

그러나 영혼은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영혼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예수께서 나는 진리라 하셨다.

진리는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하였다.

아바는 시작과 끝이다. 그 이상은 없다.

오직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아바라 한다.

그는 영이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을 뵙는 것은 영으로만 할 수 있다.

행함으로는 절대로 그를 뵐 수 없다.

구약과 신약의 의무가 좀 다른 것이 그것이다.

구약에서는 행함이 없으면 돌에 맞아 죽는다.

그러나 복음은 강도라도 살아난다.

살인강도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어떤 죄인이라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죄를 망각하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전능하시기 때문에, 못 하실 일이 없다.

인간은 생각을 망각하지 못한다.

원죄는 사람이 선악을 기억하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회개했어도, 더 센 목소리로 회개하라고 하면, 또 다시 생각이 살아난다.

인간의 양심은 망각할 능력이 없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그 양심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망각이 안 된다.

그래서 심판받는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다시 자기 양심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짐짓 죄를 범한 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나는 우리 성락 교인들은 오늘 죽어도, 오늘 원자탄이 떨어져 한 번에 죽어도, 다 낙원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충만한 영혼들이 되길 바란다.

그런데, 몇 사람이나 낙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

예수란 이름이 무엇인가.

죄에서 구원이다.

예수 이름을 믿느냐. 죄에서 구원.

예수를 믿는 순간, 고백하는 순간, 침례 받고, 예수에게 옮겨온 사람은 그 사람의 죄를 기억도 안하신다.

사람은 기억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망각하신다.

요즘 인간들의 큰 걱정은 치매다.

치매는 모든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치매와 건망증은 좀 다르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까 말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은 거의 다 건망증이다.

한참 있다가 다시 기억난다.

나도 나와 함께 하는 장로 이름을 하룻 동안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머리가 벗어져서 문어머리 같이 생긴 것으로 기억이 살아났다

내가 하나님께 약속하고 기도하는 몇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치매는 그런 것도 포함하지만, 자기 밥 먹은 것도 모른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우리 죄를 다 사하시고, 사하신 증거로 피를 흘리셨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대신 자기가 죽어주셨기 때문에, 자기 피로 대신하여 모든 것을 망각하신다.

그런데, 당신의 양심으로 이미 버렸던 죄가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작년에 회개했던 것을 오늘 또 회개한다.

회개는 이미 지난 것을 또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진리에 속했느냐, 원죄에 속했느냐 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당신 영혼은 첫째 부활의 영생에 들어가게 하지 못하고, 심판받아 겨우 종의 구원이나 받는다.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5: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인자의 음성을 들어야,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

이것을 믿느냐하는 것이다.

왜 자꾸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다. 그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이상이 없다. 그래서 아바 아버지시다.

나를 낳으신 하나님이 아바시다.

그가 어디서 오신 분이 아니라, 그가 시작이시다.

그래서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할 수 없다.

입으로 말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바시다.

그래서 아들도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오신다. 하나님의 의에서 나오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하나님의 의에서 나오셨다.

 

의를 모르면, 하나님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곧 하나님의 의이시다.

이것이 진리다.

진리는 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바가 진리시다.

율법이 그렇게 훌륭한 이스라엘백성을 만들려고 했지만, 율법으로는 그들을 의롭게 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의가 있는 자가 아니라, 자기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자들이다.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자들이다.

그런데, 믿음이 있노라고 행함이 없으면, 그렇게 믿는 것도 헛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원로감독이 강의하는 베뢰아특강이 어려워서 어떻게 하냐고 한다.

이게 뭐가 어려운가.

물론 처음 교회 나온 사람은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여러분이 성경도 많이 읽고, 신앙생활도 오래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자기 속에서 예수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

교회에서도 에수의 의만 나타나게 해야 하는데, 자꾸 자기 의를 행하게 하므로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

온 천하를 다니며, 한 영혼을 구원하려 했는데, 오히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한다.

자기 의는 없어지고, 하나님의 의만 있게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의는 없고, 자기 의만 있다.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열심이 있어서, 율법을 잘 지킨다. 자기 의를 잘지키고, 자기 의만을 간증한다.

여기서 잘 들으라.

어떤 사람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세상에 오셔서, 대신 죽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다.

여호와는 후회도 했다.

사람을 지은 것을 후회하고, 근심하고, 야곱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 이스라엘이 사람 왕을 달라고 하니까 뒤로 물러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우리 하나님의 의는 변동이 없고, 후회가 없기 때문에 진리다.

 

하나님의 의는 영원히 완전무결하기기 때문에 진리다.

 

89: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의가 하나님 보좌의 기초다.

보좌가 흔들리면 되겠는가.

여기서 잘 들으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다.

전지하신 분이 그 이유를 모르시겠는가.

아담아, 어디 있느냐.

두려워서 숨었나이다.

원죄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양심가책은 두려워서 그렇다.

계시록에도 두려워하는 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두려워 숨었다.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왜 벗었음을 인하여 두려워했는가.

 

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벗었어도 부끄럽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타락하니까 금방 두려워진다.

이것을 통일교에서는 아담이 하와를 범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 잎으로 하체를 가리고 부끄러워했다고 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원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 사람이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는가.

그것이 원죄다.

하나님께서 몰라서 물으셨겠는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선악과를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어도, 그가 기어코 선악과를 먹을 줄 아신다.

그런데, 왜 물으셨는가.

다 아신다.

나는 장로교의 예정설을 십년간 배웠다.

그들의 예정설은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지옥간다는 것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장로교 신학을 했어도, 장로교 간판을 달지 않는다.

오늘날 장로 교인들이 베뢰아를 핍박해도, 끄덕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핍박하는 유대인들에게 항복하지 않으셨다. 빌라도 앞에서도 살려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들의 고백대로 하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의를 배신한 사람이요, 내 영혼은 망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60년간 고집피우며 견딘 것이다.

큰 바위에도 시무언 성역 반세기 추억이라고 적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추억할 뿐이다.

여러분이 정말 성령이 원로감독의 심령에 역사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김목사는 혼자 은혜 받은 사람이요, 영리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당신이 망하는 것이다.

내가 월산 문학을 통해 나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이 내게 그런 말을 하게 하셨을까.

성락 교회에서 누구든지 지식을 말하면, 그 사람은 망한다.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신령한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런 소리를 듣지 않는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

나를 60년간 돌려놓은 자가 없다.

다시 묻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들을 보내사, 피흘리게 하셨는가?

그러면, 예수가 왜 죽으셔야 했는가.

여러분 잘 들으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다.

신적작정이라고도 말한다.

하나님이 영원 전에 작정하신 일이다.

집을 지을 때, 집을 지어가며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를 만들고, 집을 만든다.

하나님께서 아직 아들을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을 때, 이미 작정하셨다.

 

1: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자동차 하나 만들려면, 부속이 3만가지 이상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 부속 만드는 회사들이 엄청 많다.

다 그것만 만든다.

우리 건축할 때도, 철골을 제작하는 회사도 있고, 땅에 기둥 박는 회사도 따로 있다.

그런데, 조립할 때, 딱 맞는다.

그들은 자기 할 일만 한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이 각양각색의 말로 말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여러 가지 부분적으로 말한 것이다.

마지막 날에 그것이 아들로 인해 조립이 되었다.

만유, 여러분 몇 번 들었을 것이다.

만유는 하나님의 본체 안에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도 있고, 보좌를 지키는 천사도 있고, 수많은 것들이 있다.

하늘의 책들, 나무도 있고, 다 영으로 있다.

만물은 우주 안에 있는 자연을 말한다.

하나님이 만유를 지으시고, 예수를 만유의 머리가 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자연세계도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해서 하신 것이다.

예수는 만유의 머리되시고, 그가 곧 만유시다.

그러나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신 분이시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하늘을 지으셨다.

땅에 있는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다.

선지자나 율법을 통해서 말한 것은 모형이요, 선지자 입으로 나오기 전에 지어진 것들은 그림자다.

소를 만드셨는데, 하늘에도 소 같은 것이 있다고 계시록에 말하고 있다.

땅에 책도 있다고 하는데, 하늘에도 책이 있다고 하였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그림자다.

계시로 사람들에게 명한 것은 그 모양을 만든 것이다.

이미 만유를 지으신 것은 아들을 위해서다.

아들은 이로 인하여, 만물을 지으셨다.

여호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이미 하늘에서 죽음을 맛보시려고, 사람이 되셨지,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라 하였다.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는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자기를 포기하고, 하늘의 천사보다 더 낮은 육체를 가진 사람이 되신 것은 그가 아버지께 순종하고 복종하여, 영광 돌리려 하심이다.

왜 이 성경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아버지와 아들은 나눌 수가 없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빼낼 수가 없다.

원래 동등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셨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둘이었는데, 하나를 포기하여,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자기를 포기하고, 아버지와 하나가 되셨다.

그가 육체로 오신 것은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다.

죽음을 맛보려하시는데, 자기가 자기를 죽이면, 어떻게 하는가. 생명이신데.

아담이 생기기 전에, 타락하기 전에, 이미 그는 죽음을 맛보시려, 영원 전에 정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셨다고 한다.

베뢰아에서는 하나님의 작정한 뜻에 의해 아담이 타락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하나 더하기 하나는 셋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잘 들으라.

당신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가.

아담의 생령이 범죄 하여 죽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대신 죽으셨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내 목숨을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다.

예수가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다 얻는다.

그런데,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실 때, 두려워 말라 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다 율법 앞에서 두려워한다.

자기 양심 앞에 두려워한다.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선악과를 먹는 순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한다.

선악을 아는 지식을 얻었기 때문에.

양심은 자기 의다.

하나님의 의에서 자기 의로 돌아가니까 망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성도들의 영혼을 생각하지 않으면 마귀의 종이다.

베드로가 예수여 죽지 마소서 하니까, 사단아 물러가라 하셨다.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뜻을 거역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다.

이미 예수께서 죽으신다는 것은 아버지가 작정하신 것이다.

그의 죽으심은 아담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여기서 잘 들으라.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자다.

그런데, 그를 내가 지시한 곳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대로 순종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려다가, 모리아 산에 단을 쌓고, 칼로 잡으려 한다.

이미 죽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손대지 말라 하시고, 수풀에 갈린 양을 대신 죽게 하시고, 이삭을 살게 하셨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자손을 자기 손으로 죽인다.

여기서 이삭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마지막 단에서 그를 대신하여 다른 양이 죽었다.

예수가 유대인의 손에 죽었는가, 로마인의 손에 죽었는가. 유대인의 손에 죽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손에 의해 죽으셨다.

아브라함에 의해서 이삭이 죽는다.

예수가 이방인에 의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에 의해서 죽는다.

이미 그것이 예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죽였다고 하지만, 산양이 대신 죽은 것처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양이 대신 죽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죽였다고 하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산양이 죽었다.

이와 같이 예수의 죽음도,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볼 때, 이방인, 살인자들에 의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다고 하며, 하나님께 복 받는다고 하는 그들에 의해서 죽으셨다.

죽음을 당하시되, 더럽게 죽지 않으시고, 인류에게서 성별된 아브라함의 자손, 그중에서도 유대인에 의해서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거룩한 죽음을 죽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고, 법대로 산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서 예수가 죽음을 당하신다.

예수의 죽음이 보통사람처럼 병들어 죽거나, 길가다 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계획된 죽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과 그가 죽으심을 다 예표로 보여주셨다.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자손을 자기 손으로 죽인 것처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사람들에 의해서 죽으셨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기 손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죽였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양이 죽었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다. 이미 요단강에서 선언하셨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의의 죽음이다.

힘없어서, 할 수 없어서, 무지몽매한 놈들에게 맞아 죽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을 네 손으로 바쳐라 하신 것 같이, 아브라함의 후손, 유대인들에 의해서 그가 죽음을 당하셨다.

그래서 예수를 의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의의 죽음이다.

영원 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법대로 죽으셨다. 그 의의 뜻대로 죽으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죽음보다 예수의 죽음은 다르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은 유대인의 법에 의해 죽었지만, 예수는 이미 예정된 하나님의 의의 죽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다.

예수의 부활은 의의 부활이다.

여러분이 부활을 믿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믿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못가르치니까, 지도자들도 소경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니까, 사람의 의, 행함을 자꾸 강조하므로, 자기보다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더 확실하게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종을 데려가시기 전에 종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지혜와 지식으로, 진리로 말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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