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3연합 [좋은 친구로 나를 드림] 김성현감독
요15:14-15
요한복음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우리 각인들이 교회에게 친구로 자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임의의 선택이 아니었다.
전하는 나도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고, 신기한 것을 고른 것도 아니다.
가장 객관적이고, 이상적인, 하나님 말씀의 핵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세상과 절충하지 않을 수 없어서, 지도자들도 많이 끌려다닌다.
우리 나라에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사회적인 요구라든지, 신자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하므로, 많이 절충했다.
교회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위한 처방, 우리 교회 성공을 위한 비밀, 우리를 위한 그의 음성을 듣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런 선택을 말씀드렸다.
이렇게 하자고 말한 것은 내가 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좁다고 했다.
다른 길로는 넓기 때문에 편하게 갈 수 있고, 많은 사람도 가지만, 그것은 성공하는 길은 아니다.
성공하는 길은 좁은길이다.
예수 믿는 것이 쉽게 보이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아무나 마구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카로운 치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밟아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교회에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런 것은 이상적인 교회의 형태를 영감으로 받게 했다.
우리의 삶의 방법, 생각의 방법,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나는 여러분께 강조하고 있다.
과거 아리스토텔레스가 친구란 영혼을 나누어 가진 자라고 했다.
그만큼 가깝다는 것이다.
오늘날 친구와 당시 친구는 개념이 다를 수도 있다.
친구란, 한사람과 다른 사람이 맺어가는 교류관계 이상을 넘어가는 연결이다.
그런면에서 친구는 특별한 것이다.
동료와는 다르고, 옆에 있는 사람과도 다르다.
다른 성도들, 내 형제, 자매와도 다르다.
본문 말씀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갑자기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셨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나오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어떻게 주님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제자들은 그의 마음을 알아내서,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주님이 원하신 것은 사실 친구다.
순종하는 자가 제일이고, 이보다 나은 자가 친구다.
너희는 그저 종으로 순종하는 자 이상이다.
원래 종인데, 내가 보니까, 너는 내 친구가 되어야 마땅하다.
주님이 그들의 지위를 높여주신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나는 친구가 충분하지 않았다.
항상 외로운 일이 많았다.
그래서, 친구가 계속 그리웠다.
마지막으로 사귄 친구가 몇년전인지 기억도 안난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다보니, 친구가 단 한명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게서 친구는 거의 꿈속에 있는 존재였다.
친구란, 억지로 하지 않아도, 내가 요구하지 않은 내 마음의 소원도 꺼내서 실현해주는 귀한 존재다.
친구는 여러종류가 있다.
포괄적으로는 지난주에 뺨때린 친구도 내
친구다.
여기서는 특별한 친구를 말한다.
내가 친구가 아쉽기 때문에, 나는 교회의 친구가 되려고 했다.
나는 친구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놀랐다.
주님이 진짜 바라신 것은 친구였다.
신분상 물론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원래 마귀자식이었다.
신분으로는 너무 부족하지만, 불쑥 나타나서, 주님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너그러운 제안이다.
네가 나의 친구로 능히 기능을 할 수 있구나.
주님께도 친구의 존재는 엄청 중요하다.
친구는 명령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서 하고, 잘못되어도, 나를 오해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실수해서 뺨을 때려도, 오히려 나를 위기에서 구해줄 사람이다.
나도 인생을 이만큼 살아보니, 동료들이 많다.
나는 동료들이 내 친구가 되길 원한다.
나는 나를 성도들에게 친구로 나를 제시했다.
친구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내 스타일이 다른 면이 있다.
내가 우리 교회에게 친구로 다가가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납게 하지 않는다.
여기 어린 사람이 와도 나는 무시하지 않는다.
나는 내 나름대로 제시하는 것이다.
내 유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교회의 분위기가 좋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내 교회에 대해서 좋은 오해를 넣어주기 위한 것이다.
부드럽게 하니까,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쉬운 사람으로 생각한다.
교회안에서 나를 조금만 구슬리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와 박자가 맞지 않는 것이다.
나는 친구가 되려고 하는데, 나를 악용한다.
이런 일은 너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아예 내가 공식으로 알려드릴 수도 있다.
내가 필요할 때는 나를 이용한다.
나는 친구로서 나를 제시하고, 그들도 나의 친구가 되길 원한다.
그런데, 세상의 풍파속에 살다보니까, 교회에 와서도, 세상의 박테리아를 뿌려놓고 살고 있다.
여기는 누룩없는 빵을 먹으면서, 깨끗하게 하여 광야에 나온 자들이다.
그런데, 나를 친구로 내밀면, 다들 거절한다.
그러면서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사태 때 보셨지만, 엄청나게 명예훼손도 당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보다 친구가 더 소중하다.
친구는 배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가 되기 전까지는 배반이 너무 쉽다.
교회에 나타났을 때, 성도들이 그냥 같이 있는 성도,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성도, 언제든지 마음이 틀어질 성도라면, 주님께는 둘중 하나는 절대 친구가 아니다.
나는 둘다 주님의 친구이길 원한다.
어떤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교회에서도 신앙이 약해서, 교회에 대한 책임을 안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가르쳐주어서, 교회의 성도로서, 주님의 동료로서, 주님의 종으로서, 언젠가 주님의 친구로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일이 났을 때, 친구가 아닌 자들은 다 떠났다.
나는 친구로 호소했을 때, 나를 거절하고, 무시하고, 비웃었던 자들도 있었다.
부모도 친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부모는 부모로서 부모만이 갖는 다른 영역이 있다.
부모는 자기 영역에 충실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친구만이 갖는 특징이 있다.
성경에 보면, 이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은 은사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가 있다.
다 사용된다.
그런데, 그 은사보다 더 큰 은사가 있다.
고린도전서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전서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린도전서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친구가 이렇게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랑은 친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은사보다 더 큰 것이다.
교회에서 우리가 움직이고, 미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진짜 심각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얻어내는 자들이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마음이 상하면 떨어지고, 교회의 위기에 무관심하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떠난다.
여기에 큰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쪼그라든다.
주님 앞에 나는 당신들의 친구가 되길 원한다.
친구는 마음을 안다.
말하지 않고 한숨만 쉬어도 안다.
힘을 내, 나도 아프다, 같이 울자.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하지도 않고, 같이 아파한다.
주님의 마음을 좀 헤아리는 자.
나는 친구가 필요하다.
나에게 접근해서,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친구를 원해서, 친구로서 나를 제공하는데, 같이 친구로 와야 한다.
우리 모두 주님의 친구가 되기 원한다.
우리 계속 이단으로 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벗어야 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은사가 있고, 조금 다른 면으로 숫자가 많거나 하는 것 말고, 진짜 주님의 친구가 나오길 원한다.
나는 주님의 형편없는 종이지만, 친구라는 역할로 나를 드리기 원한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친구가 되어, 한계를 넘어, 순종하는 자보다 나은 자가 되기 원한다.
내 마음 깊이 들어와, 내 마음을 헤아리고, 돌보는 자, 소리 없이 같은 일을 동시에 해 주는 자, 호소하지 않아도, 거기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는 자가 되기 원한다.
나는 지난 십여년간 내 친구겠지 계속 바래왔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바라고 살아왔다.
우리는 앞으로 그런 수준으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가고, 보상을 주고, 행복으로 데려다 주실 것은 우리의 실적이 아니라, 친구된 마음일 것이다.
그가 외로울 때, 있어주었던 친구.
원래 죄인이지만, 뜨거운 마음을 나누어주고, 위로해 준 자가 되기 바란다.
이 세상에 왔다가 지옥에 떨어질 자였는데, 예수 만나서, 팔자를 바꾸었다.
우리 교회 모두 이렇게 주님의 친구가 되어야, 진정 은혜 받은 확실한 사람이다.
그렇게 우리 미래를 잘 준비하고, 후배에게 물려주도록 하자.
이 자리에 없어도,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분들이 있다.
이들도 우리와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친구가 되길 원하는 분들 아멘하라.
성도의 친구가 되길 원하는 분들 아멘하라.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이다.
하나님 우리를 붙들어주소서.
우리는 당신의 종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친구입니다.
나를 붙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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