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2주일 [구원의 죽음으로 예언을 성취하심] 김성현감독(강석준지사님 정리)
요한복음 19:31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요한복음 19: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요한복음 19: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19: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9: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9:37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구원을 받는 것은 새출발을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임한 구원을 대하는 자세]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값을 치르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새삶을 거기에 맞는 가치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새출발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므로, 이 생을 내 맘대로 엮어가는 것은 옳지 않은 자세다.
하나님의 아들이 모진 고난을 받고, 자기 생명을 값으로 내어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거절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이는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영적인 삶은 이미 실패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런 실패가 다시 있지 않도록,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역사하시고, 우리 마음을 도우셔서, 우리 삶을 새롭게 성공적으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물론 인간은 자기 육신을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왔고, 앞으로도 대체적으로 그런 모습으로 가겠지만, 마음에서는 하나님이 용기를 주셔서, 친히 인도하시려고 한다.
그래서, 인류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로마서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그 몸에 죄를 다 옮겨놓고, 율법의 형벌을 받아내셨다.
그래서, 앞으로 영을 좇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한 것 때문에,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영의 것을 생각해야 살 수 있고, 옛날처럼 육신에 거해 살면 죽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 믿을 때, 처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앞으로도 평생 영을 좇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영을 좇아 행할 때,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 여전히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영을 좇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느닷없이 하나님의 영을 따라 의를 행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새삶은 결코망하게 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는 것이다.
이 삶은 절대 망하지 않게 되는 삶이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이 삶은 여전히 위험 요소를 두고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나’라는 존재다.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보았는데, 어떤 사람에게 기괴한 존재가 들어가니까, 그 존재가 사람을 조정했다.
무엇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사람은 쉽게 지배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자신이 스스로 주인 노릇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너무 의심스러운 문제다.
주님이 주신 새 삶은 내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겸손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평생 교만하게 살았다.
남보다 뒤쳐질까봐 걱정되어, 참을 수 없는 교만이 있었다.
이것은 내려놔야 한다.
또, 소박함이 필요하다. 질투가 없어야 한다.
내가 부족하면 부족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가 출발할 때, 우리 자세를 옳게 잡기 위한 필요 요소다.
그래야,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이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정성을 들여 가꾸시는 가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께 속한 가지가 아니었다.
돌보는 자가 없이 망할 가지였는데, 잘라서 하나님의 나무에 접붙여주었다.
불쌍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나무에 심긴 가지로서, 나를 어떤 목적으로 쓰실지, 단호한 자세의 변화를 결심해야 한다.
나는 나에 대한 사용권은 일단 있다.
그렇지만, 사용권을 갖고 있을 뿐, 소유자는 아니다.
‘나’라는 존재에게 나 자신을 맡길 것인가.
무능하고, 실패의 전적이 있던 존재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아니면, ‘나’의 법적 소유권을 가지신 분에게 나를 맡기고, 내가 그의 일을 하고, 그는 나를 보호하게 할 것인가.
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으로 판단하여, 내 인생을 만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 시작된 인생을 내 주인 되시는 분, 영원을 보시는 분을 위해 나를 순복해 드릴 것인가.
이것이 훨씬 시급한 문제다.
내가 하나님께 순복하겠다고 할 때, 나를 위해서 하자는 동기로 할 것인지, 아니면 주를 위해 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나 자신을 위한 동기로 시작하면, 나는 인류와 함께 그냥 실패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영원히 펼쳐진 계획을 해 나가는 자들이다.
작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모든 것을 펼쳐 보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복음전파다.
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복음전파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중에 교회에서 맡은 다른 역할들이 있지만, 모이면, 복음전파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하나님께 어떻게 드려야 할지, 연구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나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떻게 잘 살까 하는 것은 억제하기 어렵지만, 인간중심의 관점은 많이 교정되어야 한다.
아프더라도 바꾸어야 한다.
한꺼번에 되지 않더라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가고, 나의 성공은 하나님의 간절한 열심으로 지지받고 나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보장하는 우리의 삶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새 길을 훌륭하게 가기를 바란다.
[성경의 증거는 내일에 관한 표적이다]
우리는 애매한 미래를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같이 무능한 자도 성경을 통해 밝은 미래를 자신감을 갖고 갈 수 있다.
성경의 증거는 과거에 미리 예언한 것이 이루어진 사실로 가득하다.
오늘 이루어진 사실도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증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 증거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이후의 사람들도 훨씬 증거를 갖고 갈 수 있도록 하신다.
예언으로 점철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길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그림이 다 그려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구원의 일을 다 이루신 것은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것과 종말이 있고, 영원한 나라로 가야 한다는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왜 예수께서 예언을 따라 오셨을까.
이것은 인류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식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갑자기 누가 나타나서, 하늘의 이적을 행할지라도, 그리스도라고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그리스도를 기다려왔다.
구약의 말씀이 계속 지목하고 있는 인물을 향해 마음이 준비되어 왔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예언을 이루었을 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구약에서 이렇게 예언한 것은 나타나신 분을 절대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천년간 공들여 온 것은 반드시 영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놓치지 말라.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그가 오실 길로 만드셨다.
이스라엘 역사는 증거다.
큰 그림으로 보면, 예수께로 향하게 되어 있다.
예수께서 오지 않으신다면, 이스라엘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이와같이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것을 성경이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떠나야 할 날을 준비하고 있다.
준비하는 동안, 삶의 목표와 내용이 있다.
다음에 있을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목적은 ‘나’ 구원은 아니다.
이미 구원은 이루어졌다. 앞으로 있을 주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의 목표가 끝났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추구할 것이 없어서, 다른 것을 추구한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은 우리를 위한 목적이 달성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종말을 위한 삶이다.
종말 때까지 해야 할 일이 주어져 있다.
다른 일은 부수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나그네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잠시 머물러 있다.
여기 주인이 아니다.
시민권이 다른 곳에 있다.
우리의 삶은 의의 삶인데, 언제 의의 삶이 시작되는가.
이것은 예수를 영접할 때, 시작된다.
예수 믿는 자라면, 의를 이루는 임무가 맡겨진 것이다.
‘나’는 의롭지 않지만, 그 임무는 주어졌다.
일단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가 요구되므로, 결단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
여기서는 반드시 목자의 인도를 받아서 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코치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실패한 인류를 살려놓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도하시는 신비한 방법이 있다.
교회를 통해, 목자를 통해 인도하는 방법이다.
이 신기한 방법은 비록 헐렁한 제도와 법을 가지고 있지만, 2천년 이상 견뎌왔다.
그러므로, 목자를 보고, 자기가 다르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기능이 주어진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은 옳지 않은 지도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회를 치리하시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다면, 오히려 주의 목회자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임의로 방치하고, 뒷짐지고 계시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가서 말뚝을 박아놓고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난 후에 일어난 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이다.
항상 기쁜 일만 있지 않지만, 방치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고 계시다.
우리가 좌로나 우로 비뚤게 갈 수는 있다.
그렇다고 오늘 내가 죽지 않는다.
몇번이나 그 길을 벗어날 것이다.
열번, 백번, 천번?
나는 만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멸망할자이지만,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고 있는지,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하나님을 어기고 가지 말아야 한다. 다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준비하신 길을 순종하고, 겸손하게 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는 순간에 변화하여 살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그만한 정성을 쏟아야 한다.
주 예수께서 오시므로, 분명해진 우리 미래를 인도받는 자들 되자.
본문의 말씀은 바로 조금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일이다.
[죄수의 다리를 꺾어달라고 요구함]
종교지도자들이 거짓증거하고, 선동하여, 선동에 휩쓸린 다수가 로마의 의견을 꺾고 예수를 십자가에 오르게 했다.
그리고, 명절이 오기 전에 다리를 꺾어달라고 요구했다.
요한복음 19:31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이 날은 보통 안식일이 아니라, 명절이 겹친 큰 날이다.
그 날을 위해,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살아있는 죄수를 그대로 내리지 말고, 빨리 죽이라는 것이다.
당시 아직 살아있으면, 다리를 부러뜨려서 내리도록 했다.
유대인들은 저녁에 하루가 시작되므로,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죽여달라고 하는 것이다.
두어시간 뒤에 안식일이 시작되니까, 빨리 내려달라고 했다.
로마인은 원래 죄인을 며칠씩 달아두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신명기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밤새 시체를 나무에 달아두면 안되었다.
다리를 꺾는 일은 급하게 죄수를 죽일 때만 행했다.
관절을 꺾는 것이 아니라, 쇠망치로 쳐서, 다리뼈를 으스러트린다.
십자가에서 다리로 밀어서 호흡을 하는데, 다리가 망가지므로 더 이상 호흡할 수 없어서 금방 죽게 된다.
유대인들은 거룩한 척하면서, 안식일전에 시체를 내려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흉악한 죄를 저질렀다.
[이미 확실하게 죽으신 것을 발견함]
요한복음 19: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요한복음 19: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주님은 보통 십자가형을 받은 자보다 일찍 돌아가셨다.
일반적으로 2-3일까지도 견뎌낸다고 한다.
그런 증거로 예수님 곁에 있던 강도들은 아직 살아있어서, 다리를 꺾어야 했다.
마가복음 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마가복음 15: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주는지라
예수님이 진짜 죽으셨다는 것을 성경이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잠시 기절했다가 살아났다고 하는 자도 있다.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요한이 힘주어 하는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분명히 죽으셨다는 것이다.
[양의 뼈를 꺾지 말라]
출애굽기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성경은 이미 양의 뼈를 꺾지 말라고 말했다.
민수기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러므로, 유월절 양의 뼈를 꺾지 말고 먹으라는 예언이 성취되었다.
불편함을 겪었지만, 2천년간 유월절 때마다 양을 먹었다.
왜 꺾지 않았는지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편 34:20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주님이 일찍 죽으신 이유는 채찍을 너무 많이 맞으시고, 신체가 너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다.
주께서 때를 확실히 맞추고, 아플 것 다 아프고, 스스로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다.
시간을 통제하면서, 정확하게 돌아가셨다.
[창으로 찌르는 돌발사태]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런데 돌발사태가 일어났다. 군병이 창으로 찔렀다.
이미 죽었는데, 왜 찔렀을까.
창으로 찌르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생명의 불씨가 전혀 남아있지 않도록 이미 죽은 자를 찔러서, 죽으셨다는 것을 재확인시켰다.
그렇게 상황이 움직이면서, 예언이 이루어졌다.
예수께서 창에 찔렸을 때, 물과 피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과학적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많이 연구했다.
대체로 예수께서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의 부작용 때문에 피의 농도가 짙어져 피와 물이 분리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창으로 찔려죽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지 우리는 모른다.
요한이 보는 것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으시는 것이다.
희생제사로 예수께서 돌아가셨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수천만 양들이 죽어가듯이 똑같이 희생제물로 죽으셨다.
요한이 본 것은 표적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표적을 본 것이다.
[물과 피는 표적]
요한1서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물과 피는 예수님의 모든 일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심요소다.
그리스도의 임무를 설명한다.
물과 피, 성육신하신 하나님. 인간중에서 나오신 분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최고의 표현이 물과 피다.
에수께서 물과 피로 임하신 분이시다.
그는 침례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죄없으신 분이 왜 침례를 받으셨는가.
그는 죄인같이 들어오신 것이다.
죄악 세상에 물을 통해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피는 속죄함의 표다.
요한1서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것은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죄를 씻었다는 것을 표현한다.
또,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근거를 만든 것이다.
로마서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근거로 우리는 침례를 받는다.
구약에서 죄인은 물로 씻는다.
요한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께서 죽으셨음을 표적을 보고 확신한 것이다.
예수께서 내가 주는 물은 영생을 주는 것이라 하셨다.
앞으로 있을 생명, 미래가 있음을 보고 있다.
비관적이고 망가진 것이 아니라, 새롭게 열린 삶을 보았다.
물과 피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절정이다.
주님의 모든 것, 다 쏟아주신 것은 물과 피다.
[예언을 이룬 놀랍고 실제적인 사실이다]
요한복음 19: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예수께서 성취하시고,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초대교회를 어렵게 하던 이단중 영지주의가 있었다.
이들은 영적인 것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서, 예수님의 육적인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죄를 해결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내 죄를 사했다는 것을 피가 증거한다.
피를 볼 때마다, 내 죄가 없어진 것이 확인되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가져온다.
요한복음 19:37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스가랴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군병이 창으로 찌른 것은 이미 성경이 말하고 있다.
원어에서는 그를 바라보고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을 말한다.
구약에 찔린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스라엘 역사속에 요소요소마다 강조되어온 메시야의 조합을 완성시켰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구약성경의 안내를 따라 오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죄를 속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되지 않으므로, 이전 삶을 극복하고, 새삶을 갈 수 있다고 선포하시며, 하나님이 도우시려는 것이다.
히브리서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자기의 꿈을 이루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고 하는 자가 되자.
우리 교회는 다른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교회임을 잊지 말자.
이런 구원을 등한시 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겠는가.
이제 육신의 남은 때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고, 받아주소서.
예언을 따라 오신 주님은 이렇게 사람으로 오셔서, 자신을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와 죄를 분리하려 함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사용되게 하소서.
설교요지
하나님은
온전하시다
그가
하신 말씀이 온전하여 다 이루셨다(요 1:1~2)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뜻이니(요 6:39)
그의 뜻은 반드시 다 이루신다(히 4:12~13)
하나님을 아무도 본 자가 없어도(요 1:18)
예수께서 이미 하늘로 가심으로 다시 보지 못해도(요 16:16~17)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으나 그를 볼 수 없어도(요 14:16~17)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신 말씀이(요 1:1)
성령으로 함께하시므로 그 말씀이 진리이다(요 16:13)
진리는 반드시 다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이같이 자기의 뜻을 진리로 말씀하시니
말씀으로 오신 이가 다 이루셨고(요 19:30)
성령이 이를 증거하신다(요 16:14, 15:26)
말씀으로 만유가 지어진 줄 믿는 것이
믿음이니 천지창조 하실 때에 오직 말씀으로
다 이루셨다(창 2:1)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작정하심으로
땅에서 다 이루어졌다(마 6:10)
예수께서 하늘로 가셨어도 말씀은 세상에 남아서
성령으로 다 이루신다(마 28:20, 막 16:20)
○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시니 성경을 응하심이다
○ 예수께서 운명하신 후 군병들이 그의 정강이를
꺾지 않음도 성경을 응하였다(출 12:46)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진다
○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아들로 이루심과
성령으로 계속 이루심을 믿음으로 살고
또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으로 소망을 가진다
※ 그러므로 주가 하신 일들과
하나님의 뜻을 말씀책으로 확인하고
성령이 하시는 일을 성경을 통해 믿어야 한다 (視無言)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한복음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요한복음 16: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한복음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복음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창세기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마태복음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출애굽기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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