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19 그리스도의 긍휼의 일꾼들(230507)

lks8284 2023. 5. 7. 17:58

230507주일 [그리스도의 긍휼의 일꾼들]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태복음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마태복음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우리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래서,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임에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교회의 토대]

 

긍휼한 마음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누구든지 이 부분을 소홀히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 자다.

만약, 누가 사랑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서, 반대하는 태도를 갖는다면,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 하나님이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인 성분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사실상 왜곡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참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하나님을 그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입장이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이유와 어떤 측면에서 하는지에 대해서, 색다르게 해석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입장은 절대 변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걱정해주시고, 그러므로, 멸망하지 않도록 구원하시려 한다.

기독교신앙은 모든 것이 여기에 매달려 있다. 여기가 가장 중심이다.

인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는 하나님께 좋게 보일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죄인이다. 살 수 없는 자인데, 다만 하나님이 우리를 측은히 여기셔서, 살려 주실 길을 열어주셨다.

연민은 우리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다.

그는 육신으로 오셔서, 멸망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셔서,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일꾼들을 부르신다]

 

이 사실을 알려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게 해야 한다.

이 작업을 누군가 해야 한다.

너는 멸망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려주시려고 한다.

이것을 전하기 위해, 장치해 두신 것이 교회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각 조직을 이룬다.

이 조직원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이다.

일단 목자를 세우시고, 교회를 운영하시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사람들이 와 있다.

그러나,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해서, 순종하여 움직인 것이다.

여기는 구원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

목자는 이를 그대로 따라서, 그를 도울 자를 자기가 임용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이루는 사명을 두고, 그가 또 다른 일꾼들을 임용하여, 조직을 구성한다.

그래서, 부목사도 있고, 교역자도 있고, 직원도 있고, 평신도 직분자도 있다.

주님의 품안에 들어온 자들은 지옥에서 건져진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과 같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교회에 들어온 자들은 목회자에 의해서, 교회의 일꾼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비록 목회자의 손으로 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목회자가 한 것이지만, 목회자 본인은 하나님이 그를 임명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하신다고 절대적으로 믿으며 진행한다.

우리 중 내가 주의 일을 할 때, 내가 그냥 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부분적인 것만 본 것이지, 진짜 그림은 못본 것이다.

크게 오해하고, 사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는 더 중요한 면은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오해들]

 

교회 일은 원래 인간의 눈으로 보면 잘못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해도 많다.

교회에서 일꾼된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남의 일처럼 여긴다.

사회의 경쟁구도 속에서 나와 씨름하는 상대로 보는 것이다.

교회의 일꾼인데도,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고, 흠을 잡을 것을 보고, 비판하고, 아니면 그만이라고 하면서, 옳지 않은 소문도 낸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데, 나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자세는 좋지 않다.

, 어떤 이는 교회 안에서 일꾼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벼슬을 얻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세상사람은 그럴 것이다.

그러나, 주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또한 감당해야 할 많은 제약이 있고, 부담이 있고, 두려움이 있다.

오히려 안하고 말 수도 있겠다는 많은 짐을 지고, 주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족한 점을 찾기 위해, 그 사람을 노려보는 일은 주님의 교회에서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하나님은 능력의 많고, 적음으로 주의 일꾼을 부르지 않으신다.

인간의 기준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원래 주님의 사도들은 딱 열세명만 있는데, 능력있는 사람은 없다.

다 일반사람과 같다. 게다가 그들은 약점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필요한 일에 그들을 사용하셨다.

그가 순종하는 것을 주님은 능력으로 보셨다.

목회자가 받는 비판의 시선은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믿을 때, 다 버렸어야 하는데, 여전히 세상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을 갖고, 세상의 안경을 쓰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다.

그럴 것이다 하는 자기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통하여, 판단한다.

나쁘게 되는 것이 진짜였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질투와 시기다.

이것은 예수 십자가 앞에서 너무 놀래서 다 버렸던 것이다.

일꾼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을 드린 자다.

하나님께 중요한 점은 그것이다.

다른 점은 부족해도, 하나님이 부르셔서 일한다는 점을 존중해야 한다.

세상은 이런 자에게 권위를 주지 않는다.

특히 요즘 세상에서 목회자들의 권위는 평균보다 못하다.

세상적 권위는 사실상 없다.

그러나, 그들의 목회생활은 다른 숨을 쉬며,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능력이 부족하다 뭐하다 하는 일에 휘말릴 수 없을 정도로 당장 숨가쁜 사명으로 가고 있다.

세상 눈으로 잘 보여지지 않는 교회의 일을 꾸려가고 있다.

주님이 직접 세우신 자다.

이 일꾼들은 상당히 구체적인 목적을 갖고 산다.

 

[목회적 사명은 하나님의 긍휼이 가져온 결과]

 

종말론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종말이 다가온다. 하나님의 형벌의 심판이 가까워 오고 있다.

그 전에 주의 재림이 올 것이다.

마지막이 임박해 있다고, 매일이 그날이 될 수 있다고, 매일 초조하게 기다리는 자들이다.

임박한 주님을 기다리는 긴장된 삶을 사는 자들이다.

종말을 맞을 때, 나타내야 하는 증거에 매진해야 한다.

그래서, 주의 일꾼이 하는 일은 굉장히 스페셜하다.

이것은 주님의 성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주님은 그것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성품에서 나온 결과다.

하나님은 세상을 미워하지 않으시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구하는데 전념하셨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종교적 시스템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신앙이다.

인도같은 곳은 카스트 계급이 있다. 자비가 없다.

다른 종교의 신자에게 차갑다. 전혀 자비가 없다.

불교도 자기가 자기를 성공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은 일반종교의 틀에서 볼 수 없다.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은 마땅하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복음전파하실 때, 바탕은 거기에 있다.

하나님의 본성이 원인이 되어 시작된 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절대 입장이 되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만약 목회자가 자기 영광을 위해서, 자기 목회성공을 위해서 한다면, 오히려 성령을 훼방하는 자세일 것이다.

 

[모든 성도가 일꾼]

 

그렇게 볼 때, 성도들도 남이 아닌 것이다.

내가 그 목회자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일꾼과 일꾼이 아닌 자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주님은 사실 우리가 다 섬기는 일꾼이 되기 바라신다.

일꾼이라면, 교회에서 서비스 받는 자들이 아니다.

요즘은 교회를 이 세상에 있는 서비스 단체로 보는 경우가 많다.

잘못보는 것이다.

여기는 일꾼들이 오히려 와서 섬기는 곳이다.

목회자는 일을 하고, 일반인은 서비스 받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서비스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고, 일을 주시는 레이더 안에 있는 것이다.

주의 은혜 안에 모두 평등하다.

누가 주의 부르심을 받든, 주의 부르시고, 원하시는 시간동안, 하나님이 그 사람속에서 일하시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일정 수의 공식적 일꾼도 있지만, 주의 교회는 가득한 일꾼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점에 누가 일꾼이 될지 모르지만, 그 정신과 마음과 동기,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들의 바탕은 하나님께 바칠 영광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동기에 참여하는 자들 되자.

 

[예수님의 사역 내용]

 

본문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역사하신 이후에 결말짓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른 장으로 넘어간다.

 

마태복음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사도들을 세우시는 장면도 나온다.

소위 갈릴리 3차 사역이라고 한다.

이 때, 주께서 많이 느끼신 것이 있다. 심경의 변화가 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작동시키는 장면이 오늘이다.

이전의 주님의 자세와 약간 바뀐다.

3차 사역을 하면서, 많이 느끼신 것 같다.

주께서 갈릴리 지역 많은 도시를 다니셨다.

엄청 도시가 많은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200개가 넘는데, 규모도 컸다.

인구도 300만까지 될 수 있는 밀집된 지역이었다.

토양이 비옥하여, 사람이 많았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상당히 많은 사람을 만나신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상황이 된 것이다.

주께서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하셨다.

자기 복음을 전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는 것, 당신을 가르치셨다.

이것은 회당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가르치셨고, 치유하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신적 권세를 보이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 주님이 자기를 엄청 따라다니는 사람을 보시면서, 결론을 내리셨다.

제자를 양성하려 하신다.

 

[그리스도의 본성적 연민]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여기 놀라운 사실이 밝혀져 있다.

왜 주님이 여기서 가르치시고, 치유하실까.

굉장히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민망히 여긴다는 것은 굉장히 불쌍히 여기신다는 뜻이다.

주님이 보니까, 그들은 주님이 어디가든지 따라다닌다.

그에게 매달려 있다.

그중에는 예수님의 신기한 것을 보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를 끊임없이 따르는 자들을 보며, 측은히 여기시는 것이다.

주님께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은 있다.

그들 속에 죄가 가득했다.

그들의 삶, 성질, 사회속에 죄가 가득했고, 영감없는 상태이고, 무엇보다 지옥에 갈 자였다.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절망속에서 어디 갈지 모르고 있는 것을 마음 아프게 여기셨다.

 

[몸으로 아픈 마음의 고통]

 

민망하다는 말의 원래 뜻은 배속의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게 여기는 것이다.

거의 모든 경우에 히브리인들은 뜨거운 감정을 배로 표현한다.

마음의 아픔, 근심은 추상적인 단어가 나와야 하는데, 단어가 배로 표현된다.

정서나 감정의 중심을 창자로 보았다.

우리도 격렬한 감정은 배에 영향이 간다.

너무 속상하고, 괴로운 일은 당장 배가 아프다.

밥맛이 떨어지고, 직접적으로 신호가 온다.

소화불량, 위궤양등은 정신적 충격에서 오는 일반적 경향이다.

유대인들도 그랬다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마태복음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반면, 마음의 생각은 심장에서 주관한다고 보았다.

심장은 생각을 지배하고, 감정은 장에서 받아들여 반응한다.

배에 충격이 오는 아픔을 겪었다면, 그가 의로우셔서 그랬을까.

내가 넉넉하니까, 나누어주겠다고 해도 의심할 수 없지만, 그가 의로우시기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의로운 성품을 따라 베푸실 수 있지만, 왜 아프실까.

진짜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시기 때문이다.

진짜 힘든 일을 당할 때, 소화를 못시키고, 앓아누울 수도 있다.

바이러스나 감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앓아누울 수 있다.

성경 여러부분에 예수님의 이런 모습들이 있다.

 

[긍휼하셔서 항상 아프셨던 그리스도]

 

요한복음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요한복음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주님은 나사로의 죽었다는 것, 자체보다, 다른 사람이 우는 모습을 보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셨다.

굉장히 강한 표현이다.

이 표현은 육신적인 아픔을 말한다.

정신적인 투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비통한 것을 보시고, 주님도 비통하셨다.

예수님은 사실 나사로가 살아날 것을 알고 계셨다.

그가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절망적일까.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그래도, 하나님으로서 아파하신 것이다.

비통히 여기는 이유는 다르지만, 몸으로 느끼는 압력은 같은 내용일 뿐 아니라, 주님은 더 심하게 받으셨다.

거기 있는 사람들이 능력 많으신 주님이 왜 그를 살리지 못했냐고 할 때, 다시 통분히 여기셨다.

 

요한복음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이것은 감정에 시달려서, 몸을 떠는 것을 말한다.

성경의 단어가 굉장히 경제적으로 아껴서 쓰여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단어가 쓰인 것은 거기에 파급되는 영향을 알고 쓴 것이다.

 

요한복음 18: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체포당하실 때, 제자들은 풀어주라고 하셨다.

,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십자가에서 엄청 고통에 시달리는 중에도 오히려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

 

요한복음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복음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그리고나서 안심하고, 자기 영혼을 내놓으셨다.

주님이 환자를 고치실 때, 그는 만질 필요가 없다. 원하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만졌다고 되어있다.

치료요법이 다른 것이 아니다.

씻지도 못한 거지, 더러운 문둥병자의 살을 굳이 왜 만지셔야 했을까.

그는 병과 상대로 싸우는 분이 아니다.

주님은 그들을 진실로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에, 온기를 느끼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에게 오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진짜 공감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본성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의해서 많이 왜곡되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차가운 하나님, 분노하시는 하나님, 무관심한 하나님으로 생각했다.

 

[지치고 내버려진 인간의 현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신 이유는 지치고, 내버려진 현실을 보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병자들을 치료해주셨지만, 병은 당장 고쳐도, 아직 해결되지 않는 저주가 인생의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처지, 사망의 어둠에 갇혀 있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분명하니, 알려주어야 한다.

나는 큰일났다, 어디에 구원이 있습니까 해도 좋다.

알려주지 않아서, 그들은 절망속에 있다.

 

고생하며, 유리하고 있다. 극심하게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개념상 매를 엄청 맞고, 갈갈이 찢길 때를 말한다.

굉장히 고약스러운 단어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단어를 찾은 것이다.

죄를 짊어진 체, 이 세상을 살아가니,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다.

, 유리하다. 완전히 내던져진 상태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오히려 돌보지 않고, 무관심하고, 사랑없이 자기들의 원리원칙으로 엄하게 다루었다.

 

마태복음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들은 하나님을 왜곡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반드시 오게 될,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추수]

 

주님이 걱정하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심판이다.

 

마태복음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추수는 복음으로 인해 영혼을 구원할 날을 말할 뿐 아니라, 심판을 말하기도 한다.

 

마태복음 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태복음 13: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추수는 종말론적인 긴박감이 따라다닌다.

성경의 여러군데,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말이 나온다.

추수 때까지는 자라나게 두라, 그날에 풀무불에 넣어 사를 것이다.

 

요한계시록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요한계시록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요한계시록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았는데, 인자가 낫을 들어 추수할 때, 곡식을 거둘 뿐 아니라, 심판도 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적인 문제다.

급박하게 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데, 심판에 대한 긴급함을 잃으면, 우리 모두 쉽게 망친다.

목회자도 종말에 대한 긴장감을 잃고, 종말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

주님은 우리 중 누구도 망하지 않기 원하시므로, 기다리신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복음전파의 일꾼을 위해 기도부탁]

 

마태복음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마태복음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추수하는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에게 일꾼을 보내달라고 구하라.

심판을 향해 가는 자는 너무 많다.

소수만 제외하고, 전부 심판을 향해 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그들을 구원할 사역자의 수는 너무 적다.

갈릴리 사역할 때, 이미 거기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짜 사역자는 너무 적었다.

죄에 물든 자, 사망에 갇힌 자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가야 할 것인데, 경고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신의 현실을 말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라.

주님은 주의 일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너도 하나님의 일꾼일 수 있다,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사용받을 수 있다.

그래서, 주의 일꾼은 다 하나님의 가족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살았다.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긍휼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 때문에 주님이 얼마나 고통받으셨는지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터져나오려는 연민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목적에 딱 맞는 사역을 이루기 바란다.

 

주님, 우리를 받아주소서.

우리도 하나님의 결정의 처분아래 있음을 압니다.

일꾼을 보내주소서.

 

설교요지

하나님은
목자이시다
그가
인류를 양으로 삼으시고 양을 기르신다(23:1~4)
양은 미련하여 목자 없이는 살 수가 없다(23:6)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혹은 물가로 인도하여
먹여 주어야 하고 물 마시게 해 주어야 한다(10:11)
목자 없는 양은 첫째, 길을 잃게 되고(10:4)
길을 잃은 양은 이리의 먹이가 되고 만다(7: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친히 피로 사신 영혼들을
자기 양이라 하셨고(10:8~9)
제자들에게 내 양을 먹이고 치라 하셨다(21:15~17)
주님을 참사랑하는 자라면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라 하셨다
목자 없는 양이란 그의 생각에도 끔찍하셨다
우리의 믿음은 인도자가 있어야 한다(벧전 5:2~7)
인도자가 없는 양은 위험에 늘 노출되어
언제 어떻게 시험에 빠질지 멸망할지 모른다(6:13)
예수는 친히 목자장이 되셨고
예수의 종들은 목자가 되어 주의 양을 먹인다
신자는 주의 양이 되고 주의 양은 목자를 따른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주의 양의 목자가 있어야 한다
목사는 목자장이 위임하신 목자이다
목사는 주의 양들에게 꼴과 물을 준다
신앙을 가졌다 하면서 자기 신념 때문에
영혼을 위한 목자가 없는 이가 있다
신자라 하면서도 교만하고 혼탁하여
아직도 목자 없는 영혼이 있다
세상은 이리로 가득하니 영혼이 위험하다
목자는 좋은 꼴을 찾아 먹인다
독풀을 먹고 죽어간 영혼이 얼마나 많은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 얼마나 많은가 (視無言)

 

시편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마태복음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요한복음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21: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21: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전서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베드로전서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전서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베드로전서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마태복음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