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7주일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리스도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아주 특별한 임무를 갖고 있는 존재다.
교회는 하나님을 온 세계에 나타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아무 근거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충만해야 할 수 있다.
[충만이란?]
우리는 충만하면, 성령충만을 떠올리기 쉽다.
이것도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나, 충만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무엇을 베풀어주기 위해 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성령이 임하시므로, 충만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예수께서 충만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길을 열어주셔서,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방법이지, 우리가 논하고 있는 것은 충만이라는 개념 자체다.
충만은 성경 전체로 볼 때, 하나님이 지배하는 영향력이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임하여서, 그 영향력을 마음껏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인격이 우리 속에서 마음껏 하시고 싶은 만큼 행사하고 있는 상태를 충만이라고 한다.
옛날 사울은 초대왕이 되면서, 성신이 임하여, 선한 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악한 생각이 지배하므로,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사울은 오직 악한 신에 의해 지배되므로, 성신은 그를 떠나시게 된다.
그러므로, 사울은 악한 자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악한 자는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사울은 결국 구원을 받지 못했다.
이렇게 인간이 자기 본성대로 생각하고, 행실로 옮기면, 결국 구원받지 못한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시려고 할 때, 그 마음을 지배하시기 위해 임하신다.
이 때,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가 오셔서 자기 뜻을 성취하도록 내 생각과 마음을 드리는 환경으로 자기를 드려야 한다.
이 때, 이 사람은 비로소 충만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사람 속에서 하나님은 저항을 느끼지 않으시므로, 편안히 거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그를 통해 이루시게 된다.
그 자체로 큰 수확이 생긴다.
그것은 구원이다.
[자신의 신앙적 만족을 위해 성령을 구하는 태도]
하나님이 편안히 거하시는 상태에서 구원이 유지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과 다르게, 자기 생각으로 충만함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우리가 보통 충만하면, 교회에서도 뜨거운 몇몇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저러다가 조금 식으면, 충만치 않고, 어느 때는 충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시간이나 갈까 생각하기도 한다.
충만상태가 어느 정도 가다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운,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그 기운이 나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 자기가 자기에게 충만을 채우려고 한다.
이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내 안에 채울 수 없다.
그가 나를 지배하시는 것이다.
충만을 내가 만들어가는 것은 각도가 맞지 않는 생각에서 하는 시도다.
주님은 당신이 내게 오셔서, 내게서 편하게 계셔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 채워지는 것]
충만은 오히려 내 고집과 생각이 포기되는 것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죄에 억압된 인간이 구원되려면, 충만 자체가 엄청 중요하다.
인간은 타락했으므로, 그대로 두면, 반드시 망하고 지옥간다.
탈선된 인간의 상황을 하나님은 회복시키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회복시키려고 하는데,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채우시려고 한다.
우리가 사는 방법은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통치권을 가지고 계셔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충만은 죄를 이기지 못하는 인간이 죄를 거절하고, 죄의 집요한 공격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을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이 취하신 강력한 대책이다.
인간은 죄에 대단히 취약해서, 악을 행한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대단히 혁신적인 대처다.
그만큼 배려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인간 스스로 죄를 벗어나, 구원받을 방법이 없다.
방법은 그가 임하셔서, 그가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우리에게 자신의 주권으로 왕좌를 놓으시는 것이다.
충만은 죄와 연결되어 살던 원래 성질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복종하고, 모든 것에서 그를 따라 살려고 하는 것, 그런 내적 체제를 갖추는 것이 충만이다.
충만은 죄의 권세를 박멸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충만을 내가 무엇을 추가로 구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잘못이다.
충만은 추가적 선택이 아니다.
우리 모두 충만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가서, 충만을 원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옛날 프레임에 그대로 있어서, 악에 대한 생각을 계속 갖고 있다면, 본질적인 문제에 큰 혼란이 있는 것이다.
충만은 일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충만해지면,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충만이라고 하면서, 악을 어떻게 저지를까 기회를 엿보는 것은 절대 충만이 아니다.
아예 충만에 근접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충만하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너를 구원하기 위해, 너를 채우려고 하는데, 너는 여전히 죄를 붙들고 있다.
자기 신앙적 욕구를 위해 있는 것은 충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지는 것]
충만은 애초에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는 방법이다.
충만은 일시적으로 어떤 성도가 흥분상태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하나님께 항복하는 결단이다.
하나님으로 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용하여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항복한다는 의미다.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대단히 큰 결단으로 행하시는 일이다.
충만은 내가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므로, 내게는 자연히 구원이 이루어진다.
자기 고집이 자리 잡으면 안된다.
성령은 빈 마음에 임하신다.
죄가 제거된 마음, 적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인해 죄가 힘을 못쓰고, 묶여진 곳에 오시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교회 안에서 모두 선해야 한다.
악을 범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모든 성도의 성품은 비슷하다.
그리스도를 닮은 심령.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생각만을 갖고 있고, 죄를 생각하지 않는다.
성령충만한 성도들 되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헬라 문화권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는 환경에 의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헬라 문화권은 다신교 문화다.
여러신을 믿어도 상관이 없다.
그런 인식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니 힘들다.
바울은 그런 개념이 틀리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영광받으셨다. 이 의미는 우주의 하나님을 대항한 반란세력이 끝났다는 것이다.
주께서 영광받으신 것은 유일신 현실을 밝힌 것이다.
유일신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새로운 요소를 설명한다.
그리스도 교회.
하나님의 비밀을 여니까, 거기 교회의 역할이 엄청 크다.
교회의 존재, 입지, 역할이 이렇게 올라가 있다.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주님은 만물의 머리이신데, 교회에 주어졌다.
그래서, 또한 교회의 머리시다.
원래 그의 몸은 온 우주인데, 교회가 또한 그의 몸이 된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급격한 이해의 변화다.
모르던 사실이 드러났다.
원래 헬라사상에는 로고스가 우주를 통치하고 있다고 한다.
온 우주는 로고스가 원칙으로서 지배하고 있다.
바울은 로고스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온 우주를 지배하는 자인데, 교회의 머리시다.
그래서, 상상하기도 어려울만큼 큰 우주와 교회가 동급이다.
머리를 만족시키는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
전 우주가 교회 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교회를 자신의 충만의 원형으로 삼으심]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우주는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그런데, 이제 교회가 그의 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그가 교회의 머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선언하고, 이 체제를 가는 것이다.
교회가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의 몸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니, 부담이 얼마나 크겠는가.
우주의 충만은 우선적으로 교회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우주가 감당하고 있던 임무수행이 작은 교회로 다 쑤셔 들어온 것이다.
기능의 이전이 생겼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 교회는 만물을 대표하는 자 비슷하게 된 것이다.
더 나가서, 교회는 만물보다 높은 느낌이다.
문구 자체가 그리스도 바로 밑에 있는 것이 교회다.
그렇게 되도록 그리스도를 교회에 주셨다.
만물 안에 계셔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를 교회에 주셨다.
하나님이 꽉 차 있으면, 그것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충만하신 상태다.
하나님이 충만하지 않으면, 거기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느 교회든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충만을 말한다.
[내적 연합]
그렇게 보면, 그리스도 교회는 주님의 협력자다.
교회는 주님의 노예가 되어,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내적 연합체가 되는 것이다.
협력 구조 안에서 분담된 역할을 하는 관계다.
상명하복, 명령하면 무조건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교회에 대해서 기대를 갖고 오시고, 교회는 그에 대한 신뢰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가 나를 잘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신뢰다.
여기는 교회의 존엄성이 상당히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의 중대성은 어마어마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의지한다.
그를 믿고, 자기 의지로 그에게 복종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전체로 하는 것이다.
성부와 아들과의 관계와 유사한 형태가 교회와 주님과의 관계다.
주님은 개인에게 임하시고, 우리 가운데 임하신다.
성령이 임하면, 각 사람에게 임하시고, 교회 위에 임하신다.
너희 가운데라고 말씀하신다.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다.
성령이 각인에게 계셔야 하고, 우리에게 계셔야 한다.
우리에게 충만이 부족하면, 부족한 양을 주님으로 채워야 한다.
그는 우리의 보완이시기도 하고, 하나님으로 충만한 우리 자체다.
[충만이란?]
충만은 구약시대에도 그 개념이 있다.
충만은 하나님의 영향력이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주장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이사야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므로, 그 영광이 임재하신다.
주로 성전을 그렇게 표현했다.
에스겔 43: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에스겔 44: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충만은 하늘에만 있고, 물질세계에는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이곳에 임재하시려고 하신다.
그는 물질세계를 거부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오셨다.
그분에게 임한 하나님의 임재는 신자들에게도 함께 한다.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로새서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충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에 이르는 것이다.
그를 닮고, 따르는 것이다.
에베소서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또 그리스도를 위해 이루신 일을 깨닫는 것으로도 충만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말씀을 상고하고, 따르는 것 자체로도 충만이 시작된다.
충만은 내가 정신수련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환영하므로,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 교회는 그리스도 임재를 경험한다.
[교회의 우주적 지위]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을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런 역할에서 교회의 지위는 우주적이다.
원래 주님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왕권을 즐기시기 위함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고린도전서 15: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물을 복종하게 하신 아들이 다 정리하여, 하나님께 드린다.
오직 그리스도로 꽉 채워서 하나님께 드린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원래 우주를 완전히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의 신분은 갑자기 우주론적 하나님의 목적과 동등하게 올라가 있다.
우주에서 하실 일을 교회를 향해 하시고 계시다.
우주의 운명과 교회의 운명이 나란히 있다.
그리스도는 이제 온 우주를 충만하게 하시는 과정중에 있다.
그리스도의 충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서 교회 뿐이다.
주님은 교회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와 만물 사이에 있다.
교회가 오히려 중보자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만물 사이에 중보자]
교회가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배반자, 악한 자다.
능력이나 거룩함이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목적이 부여되어 있다.
그렇게 작업하고 있는 동안, 우주는 부러워서 교회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부러워하면서, 온 우주는 교회를 따라온다.
우리는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드러내는 존재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순조로운 성취가 우리 안에서 기대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강제로 대하지 않고, 성령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인자하심으로 보듬고, 일어켜 주신다.
우리가 특별한 존재라서가 아니다.
우리를 항복시키고, 그를 의지할 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가려주지 않으면, 추악함 뿐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가 이렇게 베푸실까.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배려하셔서, 우리 머리로 다가오셨다.
다만 우리가 그로 충만해지기 바라실 뿐이다.
우주의 모든 무질서와 반란이 끝나고, 회복되는 미래를 앞두고,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가 현재적 시점에서 드러나야 한다.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온 우주는 그의 지배에 따라 온전하게 될 수 있다고 보여주어야 한다.
장래는 온 우주도 교회처럼 될 것이다.
공개적으로 교회가 증명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크신 주님이 얼마나 낮추셨는가.
자기를 낮추시고, 우리를 올려주셨다.
그와 비교할 대상이 없다.
[교회와의 영원한 운명을 결단하심]
그렇게 비할 곳이 없으신 분이 우리의 머리로 오셔서, 자기 몸으로 삼으셨다.
교회가 완전해질 때까지, 그분 자신도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그는 우리의 충만을 바라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
충만히 주님께 연합될 때까지는 자신도 완전치 않다고 보시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완전치 않기 때문에, 자신도 완전치 않다고 보시는 것이다.
그가 가지신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런 것에 충만을 기대하지 않으신다.
우리 안에 그 임재가 충만할 때까지,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원하지도 않으신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 상태가 얼마나 보장되고, 안전한가.
주님이 몸으로 삼아주시고, 머리가 되셔서 달려가고 계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 위의 하늘로 올리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 능력은 그가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동안, 얼마든지 가동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은 당신의 계획 안에서 얼마든지 필요할 때, 발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대단히 가깝게 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을 우리 안에서 사용하신다.
그 능력은 죽지 않고, 가동중에 있다.
우리를 감화하시고,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고, 역사하시는 동안, 그 능력도 우리와 가깝게 있다.
[교회로부터 기대되는 역할, 결단, 자세]
그러므로, 교회에는 기대되는 것이 있다.
이 세상은 아직 그의 임재가 대단히 부족하다.
이 세상은 우리를 굉장히 힘들게 하는 조건이다.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주님의 임재가 없는 곳은 나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내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주님의 충만함을 이루고, 언젠가 모든 더러운 것은 사라지고, 온 우주는 가장 친근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럴 때까지 하늘은 우리에게 집중되고 있다.
온 우주가 하나님의 임재를 교회를 통해 목격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활동은 온 우주적이다.
머리시기 때문이다.
또, 그의 활동의 초점은 그리스도 교회다.
우리는 여기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우주, 그리스도 교회,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움직이는 우리.
우리에게 본분이 있다.
우리는 충만하여, 우리를 그리스도로 채움으로써, 하나님의 충만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자체로도 대단히 중요한 임무를 완성해 놓은 것이다.
충만하고, 유지하는 것은 중대한 임무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구원은 자동적으로 확보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복종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역사하시는데, 적극적으로 순종하자.
우리에게 주어진 기대를 깨달아야 한다.
내가 주님을 확보해서, 내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겠다는 방향으로 가지 말자.
내 입장에서 보지 말고, 주님이 가시는 길에 나를 맞추고 가자.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모두 하나님으로 가득할 때, 우리 속에서 예수님은 충만히 거하시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후회하지 않는 단 한번인 사명을 완수하는 주의 몸이 되자.
우리 주님을 환영합니다.
나의 고집과 옛습관, 다 버리고 싶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주인으로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하나님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하나님 닮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 가게 하소서.
우리 사명 다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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