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9주일 [그리스도에 의해 너희를 위하여 갇힌 자]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여정을 가실 때, 우리와의 관계를 통하지 않고, 홀로 가시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 기쁘게 희생해 온 자들이 있다]
우리 자신이 여기 있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돕는 자들이 있어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소망을 가지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가만히 나홀로 그 믿음을 지킨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몹시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도와야 한다.
우리 중 누구도 누군가의 도움없이 여기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내일의 소망도 있다.
나를 위해 희생하고, 수고한 사람은 자기의 일을 하다보니까 내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다.
진정 섬겨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은 똑같은 일을 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하기도 한다.
하나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반대편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자를 준비해주신다.
겉모양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딱히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런 자는 간접적으로 우리를 도울 뿐이지,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자는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희생시키신다.
어떤 사람은 신앙의 문제도 경쟁을 통해, 자기 지위를 확보하려고 한다.
그것을 해서는 안되는 곳이 교회인데, 그렇게 하려고 한다.
반대편에는 오히려 신분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하나님이 제어하시면서, 그의 일을 위해 희생시키는 자들이 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가두는 자가 있다.
누구는 자기 꿈을 부풀리는 자가 있고, 누구는 하나님의 제어하심에 갇혀진 자도 있다.
이런 자들은 그런 하나님의 뜻안에 갇혀서, 일을 하도록 하시는 일 때문에 순종해서 일한다.
결국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일한다.
왜냐하면, 교회를 돕는 것은 아이디어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의 사역 안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진 그의 계시를 따라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전해져서, 그 결과로 우리는 교회를 돕고,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돕는다.
여러분과 나를 위한 희생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누군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주어 한 것이다.
사람은 본래 남을 그렇게 돕지 않는다.
이렇게 강단에서 성경을 근거로 말씀을 선포하게 하므로, 그 말씀이 전해졌다.
간밤에 잠을 못자서 피곤한 사람도, 조는 사람도 귀에 들리는 것이 있다.
내 교회를 도우라.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소식이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우리도 모르게 준비해오는 시간을 밟아오고 있다.
결국 우리는 주님의 사역안에 있다.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주님을 돕겠지 하면서, 주님과 별개의 사람으로 여긴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교회를 위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나를 거기 두고 일하기 원하신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많은 고난들이 닥친다.
예수 믿는다고 뭐든지 잘된다는 것은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어려움이 적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예수 믿는 것은 삶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첫째, 하나님이 나를 다듬으시는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어려움을 통해, 나를 개선하고, 바꾸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신다.
누구든지 예수 처음 믿는 날부터, 아무런 고통없이 가지 않는다.
다 겪어야 한다.
우리 옛사람의 삶의 방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육신의 감각에 의존하는 반면, 우리는 육신과 무관한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옛습관을 버려야 한다.
옛사람 나의 버릇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살기에 맞지 않기에,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믿는 날부터 삶이 완전히 바뀔 때까지 많은 아픔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그릇으로 사용하신다고 보는 것이 옳다.
설령 진짜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옳다.
그래야, 하나님이 가시는 길과 맞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꿈을 가지고 목회를 시작한다.
그래서, 영광된 신앙의 역사를 바치겠다고 한다.
자신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가 많다.
원래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사역이 아니라, 주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고, 실제 일하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
순종하고, 일도 하는 것이다.
일의 내용은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헌신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하나님은 사방에서 강권하여 사용하고 계시다.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의 의지를 묻지 않고, 강권하여, 그의 뜻안에 가두어,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그러나, 나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누군가 자기 행복을 빼앗기고, 나는 얻은 것이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섭리는 항상 이루어지고 있는 중]
우리 인생은 하나님과의 상호반응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소위 하나님이 가시는 길,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시고, 이끄시는 운영을 말한다.
경륜은 사람들의 반응과 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때를 말한다.
섭리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인간과 접촉을 시도하시는 것을 말한다.
일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반응을 거쳐간다.
그 때, 인간의 반응을 통해서 가신다. 이것을 섭리라고 한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접촉에서의 반응을 일컬어 섭리라 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섭리를 통해서 가고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나는 나대로 간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절대 못만날 수도 있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끝이라고 정리하면 안된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계속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하는 습관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렇게 살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행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똑같은 상황이 있어도,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있다.
똑같은 사건을 굉장히 다르게 분석할 수 있다.
우리가 즉각적으로 보는 것은 내 감각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겉으로 좋게 보이면, 좋다고 하고, 나쁘게 보이면, 나쁘다고 한다.
그래서, 판단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에서는 어떨까.
내게 굉장히 유리한 것인데, 나는 인간적으로 보고, 그것을 거절했을 수도 있다.
항상 하나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모르고, 십년이상 내 중심으로 생각해서 길을 지나갔다면, 그렇지 않았을 때와 큰 차이가 있다.
평생 하나님을 멸시해왔고, 한편은 평생 하나님을 사랑해왔다.
그 열매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각각이 주인공이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 속의 주역]
겉으로 보면, 감독자만 앞에 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섭리에 관한한 각 개인은 독립적인 하나님의 섭리의 주인공이다.
각인들이 시간이라는 영역속에 하나님과 함께 있다.
여기 주인공이 우리 각 개인이다.
각 개인이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창구이고, 일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섭리를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가는 자들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 유리하리라고 생각하고, 가려고 하는데, 반대쪽 친구는 나를 이용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뿌리치고, 하나님의 경륜을 방해할 수도 있다.
어려움은 섭리를 가는 자들에게는 항상 일어난다.
그러나, 나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나를 위해 택할 것인지, 남을 위해 희생할 사역을 인정하고 갈 것인지, 갈라진 기로에 있다.
하나님 입장에서 봐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삶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계속적인 연결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사역을 이루는 거룩한 도구로 보시고, 이것이 장차 큰 영광을 받을 근거가 된다.
우리 삶을 소중히 해야 한다.
삶에서 하나님이 아무 역할을 못하고, 예배할 때만 계시라고 하면 안될 것이다.
지난 5년간 아무것도 안한 것 같지만, 하나님을 늘 앞세워 왔을 수도 있다.
사랑하고, 돕고, 희생하고, 많이 아팠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묶어서, 당신의 일을 명하셨는데, 그 일의 내용은 교회를 사랑한 것이었다.
경륜을 통해, 섭리를 통해, 우리와 연결하시는 하나님께 철저히 드리고, 충성을 다하자.
우리 모두 그렇게 되어, 생명을 주신 주님 앞에 언젠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할 날,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나타나, 칭찬받는 자들 되자.
[사역자 바울의 배경을 아직 모르고 있는 상황]
본문의 바로 전까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다른 출신의 모든 자들과 합쳐 새몸을 이룬다.
그래서, 하나님과 먼 자였어도, 이제는 하나님의 시민이 되고, 가족이 되고,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
거기까지 선포했다.
엄청난 비밀을 글로 명확하게 진술했다.
그리고 나서, 기도의 내용을 쓰려고 한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려고 하는데, 무언가 언짢은 것이 있다.
성경책에 말하다가 ...이라고 멈추어 있다.
그리고, 엡3:2-13까지 전혀 다른 내용이 열거된다.
엄청 중요한 말씀인데, 원래 성질과 다른 성질의 것이 삽입구로 들어가 있다.
이전에 말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 말하게 된다.
이전에는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썼다.
이것은 사람들이 앞모습만 본 것이다.
사도바울은 여전히 마음에 걸림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 자기 이야기를 한다. 일종의 간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진정 사도바울이 어떤 자인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울의 권위를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이어서 기도를 썼다면, 그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냥 날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바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갑자기 말이 멈추고, 방향을 바꾼다.
[그리스도에게 갇힌 자]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에게 갇힌 자라고 한다.
에베소서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사람들은 바울과 하나님 사이의 섭리를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섭리의 내용을 말하려고 한다.
바울은 엄청난 사람이었다.
성경의 어떤 위대한 인물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다.
구약 때 막혔던 것을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풀어서 가르쳤다.
그는 섭리를 통해 계시를 받은 자다.
그는 또 계시를 선포한 자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 바울이 경험한 섭리만이 그것을 설명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모두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
이 맥락에서 너희를 위해 수고한 나, 그리스도에게 갇힌 나 바울은.
본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라는 표현은 의역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포로라는 말이 더 맞다고 본다.
포로처럼 예수께서 가두어 놓은 자다.
자기가 그런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목적 아래 둔 자다.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직적접으로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옥에 갇혔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갇혔다고 말한다.
바울이 계시를 받아, 선포한 내용이 유대인들에게 분노를 일으켜서, 그는 갇히게 되었다.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가 이렇게 되었다.
그래서, 엡3장을 들어가며, 기도를 시작하려다가, 먼저 하나님과 자신의 섭리를 말한다.
그리고 나서, 원래 하던 기도의 내용을 재개한다.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압력.
바울을 고난 속에 집어넣으신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바울을 도구로 삼아, 희생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바울이라는 인격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기도로 넘어갔다면, 그 기도는 그냥 날라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은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과 상호작용한 섭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대할 때, 내 육감으로만 판단하고 말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과 만난 많은 사연들이 있다.
하나님은 일관된 원칙이 있다.
교회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원칙으로 경륜만 말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는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요한복음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하나님의 일은 모를 수도 있다.
감독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 말씀의 원천이 누구인가.
이 말씀의 근원이 되신 자가 하나님이실 수도 있는데, 모르겠다고 본인이 말한다면, 하나님의 경륜은 섬기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거절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원칙이 아니라, 경우가 다른 특정상황에서 있는 일들이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포로다.
사실 세상적으로 보면, 바울은 유대인들의 죄수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으려고 노리고, 바울이 이방인을 이방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고 가짜로 고발했다.
그가 산헤드린에 의해 심하게 공격받으니까, 도저히 살아날 길이 없었다.
총독에게 재판받고, 아그립바 왕에게 재판받고, 계속 재판을 받는다.
나중에는 자기가 살아날 길이 없다고 생각해서, 황제에게 호소한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갇힌 자가 아니었고, 황제 아래 갇힌 자도 아니었다.
바울은 죄수이지만, 사람들의 죄수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갇힌 자라고 한다.
시각이 사람들과 다른 것이다.
자신을 하나님의 포로로 보고 있다.
바울에게는 이런 일은 불명예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영광이다.
주님에게 갇힌 자.
주님께 속한 자.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다.
가이사의 죄수, 산헤드린의 죄수, 유대인의 죄수, 엄청 비극적일 수도 있는데, 그리스도의 죄수라고 한다.
만약 이 세상의 시각으로 봤다면,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관점을 빌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륜은 그를 거쳐가는 섭리를 통해, 여전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님의 경륜은 진행되고 있고, 바울에게는 고난이 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시험이 있을 때, 오히려 기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을 통해, 그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시험을 기쁘게 받으라.
너희 믿음은 인내가 필요하다.
고난을 견디는 것이 믿음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베드로전서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전서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베드로전서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어려움을 당할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있는가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주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기쁘게 여기라.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 큰일났다고 하는데, 바울은 잘되고 있다고 한다.
빌립보서 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립보서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행전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택한 고난의 그릇이다.
고난 자체가 그가 택하심 받은 증거다.
사도행전 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사도행전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사명을 위해 죽더라도 가겠다고 한다.
그 길은 사람들이 왜 가느냐고 하는 길이었지만, 섭리의 길을 택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들게 된다.
[너희를 위하여 갇힌 자]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희생했다.
골로새서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바울은 너희를 위해,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고 했다.
사도행전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사도행전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미래도 없이 감옥을 전전하는 것을 보았어도, 걱정하지 말라. 이미 영광은 확보되었다.
에베소서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고린도후서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후서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린도후서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린도후서 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에베소서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골로새서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께 갇힌 자들]
옥에 갇혀도 불평하지 않는다.
주께서 쓰시기에 좋다면, 옥에 갇힌 것이 은혜라고 보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누구를 사도로, 선지자로, 교사로 세웠다고 한다.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것은 주께서 주셨다고 하였다.
이들은 주님이 부르신 자들이다.
바울만 그렇게 부르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섭리로 우리 모두를 이끌고 가신다.
교회를 이 세상의 무슨 서비스업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는 목사만 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곳이 아니다.
여기는 모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쓰임받는 곳이다.
우리 모두 주님을 위해, 어려움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주님의 일을 성취하기 바란다.
답답해도, 낙심하지 말고, 억울해도 견디겠습니다.
내 앞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구하셨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내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에게 갇힌 우리 위치를 기억하고, 어려움도 극복하고, 주님을 섬기자.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가장 유용한 것이다.
받은 사랑과 도움, 눈물, 남의 희생을 누리는 우리는 이와같이 남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자.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섭리의 모든 기회 가운데, 나는 주께 기쁨으로 받아들여진, 주의 뜻에 갇힌 자가 되기 원합니다.
나를 받아주시고, 당신의 영원한 일에 사용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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