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연합240519)

lks8284 2024. 5. 24. 14:18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디모데후서 1:9~12)

2024519일 주일연합예배(설교: 김성현 감독)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디모데후서 1:9~1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험난한 세상을 가고 있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만 힘겹게 가야 되는, 불행 가운데 버려진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오늘도 내어 주셔서 우리를 견인해주시고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지막 시간을 다할 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의 신앙은 실패합니다. 그것은 부실한 신앙으로 나타납니다. 행실과 신앙이 맞지 않고, 신앙도 없으면서, 믿음도 없으면서 또 하나님께 대한 신뢰함도 없으면서 그래도 그리스도인의 모양새가 있으니까 괜찮아.’ 하면서 긴 세월을 지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자기가 잘못된 길을 걸어왔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든지 받아 주려 하십니다. 다만,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아서, 의심해서 하나님을 뵐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확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믿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신앙이 그냥 껍데기만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믿는 힘이 있는 것처럼, 그 동안 기도를 많이 쌓아온 바, 자기는 신앙의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하고, 영적인 일들을 쉽게 성취해 가고 있다고 여기는, 자기에게 신앙의 무슨 실력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전혀 만나본 적 없는 아주 악인 중의 악인을 그 마음을 보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냥 구원하셨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정죄된 악인이었습니다 신앙의 훈련을 받은 적 없는 자입니다. 그런 자였지만 주님을 구주로 여겼고, 또 주님도 그를 맡으신 것입니다. 결국 이처럼 어떤 신앙의 높은 경지가 사람을 천국 길 가까이로, 쉬운 길로 인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심령이 주께 완전히 신뢰하는 것으로 드려졌는가, 아닌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또 구원하기로 결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그분이지만, 그런 분과 우리가 만남을 갖게 되는 지점은, 자기 갈 길을 가시는 하나님과 헤매던 우리가 만나게 되는 곳은 내 마음이 그를 신뢰하는 바로 그 시간, 그곳에서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그런 의심이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고난을 받게 되면 반발하면서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고난이 오더라도 고난이구나.’ 또 어려움이 오면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도 받아들여야 되는, 사람으로서의 겪어야 될 과정이구나.’, ‘이런 험난한 일 가운데 주께서 나를 성장시키려 하시는 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이고 견뎌갈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종교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는 여기 영등포 지구에 사니까 영등포 사람입니다.’ 하는 식으로 해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난이 오면 하나님께 반발을 합니다. 세상에서 고난이 오고, 또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오면 그것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속이 망가져 있어서, 이미 데미지(damage)를 상당히 입어서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삶이 힘든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볼 때에 신앙이 뜨겁지 않은 자나 뜨거운 자나 다 똑같이 힘듭니다. 주님의 사도들이 어땠습니까? 예수께서 친히 뽑으시고, 교회의 역사상, 지구 마지막 날까지 계속 기념될 그 사도들도, 하나님과 사귀었던 사람들, 하나님이 열 두 명으로 최고로 남겨 두었던 그들도 이 세상에서 계속 고난을 받다가 고난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들이라고 해서 삶이 편안하고, 삶이 잘 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물론 신앙생활 할 때에 하나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정당합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털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소원이 이렇습니다.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정당합니다.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사도들도 주님께 간절한 그런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기도를 아버지께서 들어주지 않은 것처럼, 사도들의 기도도 주님이 들어주시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어려움을, 시련을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데 주님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도들도 다 그렇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진짜 오른팔, 왼팔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으로 죽어 나갔습니다. 그들은 아주 더 구체적으로 예수 이름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예수의 명예를 위해서, 그의 교회를 위해서 죽은 자들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내가 교회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고난 받고 죽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당시 사도들이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을 향한 칼날이 거꾸러져서 상대방의 배를 찌른 것이 아닙니다. 적들이 칼을 들고 달려오는데 그 칼날이 저절로 방향을 바꾸어서 적들에게 향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향하여 더 정확하게 잘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 그 누구도 예수님을 주로 섬긴 이후로 내게 다가오는 고난은 견딜 수 없이 내게 짐이 되었도다.’ 하지 않았습니다. 다 주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신앙생활 하는데, 지구의 멤버인데, 다 고난을 받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고난을 받으면 화를 냅니다. 그래서 남을 치거나 공격을 해서 고난을 이겨 나가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고난이 오면 남을 치면서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데, 신앙의 그 기반이 약해서 붕괴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느 세대의 성도들도 다 그렇겠지만, 오늘 젊은 세대들도 아름다운 줄만 알았던 세상이 자기를 치고 가면 세상을 보는 눈이 탁 트이고 할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 보면 , 세상이 너무 잔인하다. 너무 힘들다.’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50, 60될 때까지 사람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속아본 사람이라면 더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라고 해서 날아오는 화살을 하나님께서 다 쳐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자기를 구하시는 하나님은 자기만 압니다. ‘그가 나를 구원해 내셨구나. 나를 살려 내셨구나. 이렇게 더 큰 차원에서 나를 보호해 주셨구나.’ 본인들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보기에 사도들은 고난을 잔뜩 받고 갔는데, 저들의 마음은 오히려 주님이 나를 보전하셨고, 우리를 인도하셨구나.’ 하고 인정했습니다. 본인이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누구도 모르게, 그러나 내 마음에는 신앙의 참 주인으로, 우리의 미래의 주인으로, 우리의 영원한 꿈의 주인으로 계십니다.

 

고난 받을 때 꺾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삶에 고난이 오면 꺾여버리는데, 삶에 너무 기대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이 거기 많이 가 있었던 것이죠. 여기는 잠시 있다가 가는 곳입니다. 우리 육신은 과감하게 버리고 가야 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육체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힘들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께 책임을 묻거나, 또 하나님 계시지 않다고 하거나 하는 식으로, 정말 무엄한 자세까지 갖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안됩니다.

 

이 세상에 살면 다 고난 받습니다. 누구는 더 고난을 받고, 누구는 덜 고난을 받는데 사실 다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덜한 자는 그만큼 세상에서 더 너그러움을 입은 것인데, 그 너그러움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더라도, 또 많이 불리한 위치에 있더라도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했던 자들은 그만큼의 더 큰 상이 있습니다.

 

이제 젊은 청년들도 세상을 보게 되겠지만, 이 세상은 불공평 천지입니다. 이 세상을 다르게 이름 짓는다면, 이 행성의 이름을 나는 불공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음 스테이지로 옮겨 가실 때 불공평 했던 그 일들은 그냥 싹 없어질까요? 아닙니다. 다 계산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그래서 세상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나에게는 잘해줄 거야.’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고난이 많고, 실패가 있고, 억울함이 있고, 아픔이 많더라도 나는 이 세상 지나가겠다. 그것이 내 인생의 노래다. 나의 이런 굴곡진 아픔들은 That’s my song~’ 이런 마음을 갖고 가야 될 것입니다.

 

다만, 세상에서 한 가지 굴복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세상은 이렇지만, 나의 주는 나를 견인해 가신다.’ 이 땅에서 내가 갖는 시련, 내가 가지는 어려움,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내게 시험으로 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시험받지 않는 사람은, 고난이 없는 사람은 타락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단 돈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사람들은 사실 타락하기 좋은 환경에 빠지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 타락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 타락했으면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 아브라함이니, 이삭이니 다들 부자인데, 그 사람들을 다 나쁘다고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준 것입니다. 그러나 부유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타락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히려 적응이 안 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가까이 가서 그들에게 더 분발할 수 있는, 더 나은 영혼이 될 수 있는, 더 인내하고 더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세상은 어렵더라도 일단 지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을 판단하고서 하나님의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기준의 위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쉽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나는 이제 내 꿈을 펼치겠다.’ 하고 꿈을 잘 펼쳐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 세상이 다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존재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처지에 있던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어느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걸 의심하면 자기는 원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원래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험을 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교회 계속 다니고 이 정도 되면 내가 천국에 가겠지?’ 이렇게 했던 것이지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짜 믿었다면 진작 헌금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렸을 것이고, 진작에 하나님을 위해 많이 봉사했을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악을 행하고 싶을 때 자기가 참고, 더럽혀졌을 때에 자기가 더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한 조심스러운 마음, 교회를 향하는 사랑하는 마음, 성도들을 향하여서 희생해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 신앙은 고쳐야 됩니다.

 

오늘 이 어려움을 갈 때에 어려움이 이거보다 두배로 더 쏟아져라! 쏟아지려면 쏟아져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이 있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고 그러면 부모가 마음이 약해집니다. ‘아이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꼬? 나는 그렇다 치고나는 그냥 바닥에 내쳐져도 되지만 해도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물론 약점이긴 합니다. 그러나 견뎌 나가세요. 그들도 어느덧 여러분같이 클 것입니다. 오늘 성가대에서 한 찬양도 70년도에, 제가 중학생 때에 불렀던 노래입니다. 70년도면 45, 50년 가까이 됩니다. 이런 것을 보니 세월의 흐름을 진짜 느끼게 되는데, 조금 있으면 이 아이들도 50 됩니다. 빨리 이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려운 것은 일단 극복할 것으로 결정하시기 바라겠습니다. 내 고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는다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의 나라로 이끌어갈 것으로, 데려갈 것으로 그가 결단하셨다면 나는 행복한 자인 것입니다. 힘들어도 쓰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면 힘든 것입니다. ‘내게 더 좋은 걸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셨구나!’ 이렇게 해야지, ‘, 내 인생은 정말 기구하구나. 다 망가졌구나.’ 하고 포기하지 마세요. 얼마든지 나보다 나쁜 상황, 나쁜 환경, 나쁜 운명, 나쁜 주어진 인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견인해 간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뻐야 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삶은 하나님께 의탁 되어졌다.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끌어 가신다. 그에게 나는 부탁 된 바 있다. 나는 그에게 나를 드린 바 있다. 내가 부족할지라도 나는 그분이 내가 가진 유일한 참 내 재산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주님이 얼마나 인정해 주실까? 나 이렇게 많이 하지 않았으니 인정 안 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내 하나님은 내 생명보다 귀하고, 내 영원한 나의 소망입니다. 나는 당신만을 의지합니다. 나는 부족함이 많지만 주께서 나를 씻어 주시고, 당신의 품에 안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부터 나를 당신에게 맡길 것이니 나를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아무리 고난이 있고, 괴로움이 있지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길 원합니다. 이 세상에 고난이 있고 나를 넘어뜨리려 하고 나를 쓰러지게 하고 견뎌갈 수 없는 앞에 광풍이 불지만, 뒤로 쓰러져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밀고 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신 이 귀한 주님의 주신 이 생명, 이 땅에 숨쉬는 요 잠시, 힘겹지만 이 잠시 시간 동안에 하나님과의 동행을 누리고 싶습니다. 당신을 신뢰하는 것을 즐기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소망을 두고 그 소망의 즐거움을 갖고 싶습니다. 잘난 사람, 잘 받은 사람, 뭔가 잘 되어 가는 사람보다는 나는 주께서 더 나를 붙들고, 더 나를 움켜 쥐고, 더 따뜻한 손으로 나를 품어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기죽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의 실질적인 나의 인도자, 나의 주님이십니다.’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험을 극복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고난들에 대해 하나님은 알았어. Let it happen.’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알았다 하고 허락하시는 일들입니다. 원수가 치더라도 허락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받게 하시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원수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부족함도 깨닫고, 무조건 그냥 나는 잘못이 이만큼도 없는데 이 세상이 정말 뭔가 약을 먹었나 봅니다.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나?’ 이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도 잘못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가 잘못하고 모든 것을 다 귀신 짓이야!’ 이렇게 하는 것, 저는 싫습니다. 다 자기가 해놓고서 귀신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죄인이 아닙니다. 귀신이 죄인입니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이렇게 하면 신앙의 근간이 깨집니다.

 

우리가 시험이 올 때에 나는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오는 죄는 우리 인간들로서 아담 안에서 우리가 다 겪는 고난입니다. 우리의 대가란 말입니다. 우리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대가. 그러나 나는 100프로 완전히 무능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뭘 잘 해서, 잘 싸서 포장해서 드릴 것도 없어요. 무식하고, 완전히 무능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냥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구주의 도우심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영원하신 당신의 아들로 또 딸로 정해 주었음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안주하는 사람은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다. 안주하지 말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주신 복을 소유하고 뺏기지 않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의 도전을 이기시는 우리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시련을 당하는데, 그냥 나 쳐보세요.’ 이렇게 하지는 말고요.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시련이 좋아졌는지 몰라요. 조금 더 수위를 높여 보세요.’ 그렇게는 말고요. ‘하나님, 이걸 피해 주십시오. 이걸 나에게 제거해 주십시오.’ 시련도 있지만 놀랍게 하나님은 나를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앞을 지나가다가 ?!’ 많은 것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보호해 주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쪽에서 방망이로 맞을 수 있었던 것을 여기서는 그냥 꿀밤 하나로 맞고 말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해서 주님이 나를 도우시는 그런 손길을 추적해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합시다. 우리는 어려움이 와도 거꾸러지지 않고 어려움이 온다고 누굴 탓하거나 불만을 공중에다가 쏟아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이겨가는 사람, 능히 이길 수 있는 사람, 하나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 그리스도인이 받을 고난을 능히 잘 겪는 자 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를 감당할 수 있는 자, 시험을 참는 자,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자, 시험을 이기고,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자 됩시다. 우리에게는 생명력이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믿음으로 계속 그렇게 또 격려하시고 자극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시험이 올 때에 오히려 믿음을 더 굳건히 하고, 주를 향한 그 신뢰를 견고하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도와 주옵소서. 우리 부족한 믿음을 도와주시고, 우리의 부족한 신뢰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부족한 하나님께 맡긴 것을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영혼들을 다 도와주시길 원합니다. 세상에 올 때에 마땅히 견뎌가야 될 그런 고난들도 있습니다. 또 고난이 많다 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을 더 신뢰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절망에 빠뜨리고 절망에 던지고 또 의심에 던지지 아니하고 시험이 올 때마다 더 주님을 견고하게 의지하는 우리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의 임재하심을 깨닫는 자가 되게 도와 주시고, 시련 속에서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믿음의 크기를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함께 이 고난을 겪을 때에 정말 우리의 절망이나, 교회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더 발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더욱 더 더 견고하고, 더욱 능하게 되는 자로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시고, 영원한 하늘을 무리 없이 얻어내는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우리 모든 영혼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힘을 합하여 서로 도우므로 이런 역경에서 서로들 견뎌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게 도와주시고, 서로에게 에너지를 부어주는 자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40519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디모데후서 1:9~12)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 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