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1주일 [새 사람을 입으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그 구원이 실질적인 효력이 있도록,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신다.
그 창조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앞으로도 이끌어 갈 수 있다.
구원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구원은 실제적인 변화]
그런데, 구원을 상징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자기에게 특별한 변화는 없는데, 신분적인 변화가 있다고 하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늘에서 인정하는 승인이 끝내 구원이 되길 바라는 막연한 마음이다.
이런 자는 자기에게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신앙을 자주 의심한다.
이것이 진짜일까? 아니면, 실제적인 것이 없는데, 강조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 아닌가?
이것은 완전히 잘못 판단한 것이다.
자기에게 실제적인 변화, 곧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변화가 없는 것은 구원이 이루려고 하는 절차에 자기가 합류하지 않은 것이다.
구원으로 인한 우리의 삶은 단지 상징적이거나, 법적인 승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를 바꾸는 것이다.
[구원의 본질은 죄의 속박에서 구원되어 나오는 것]
구원은 외적 행실의 증거로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죄에서 구원되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출하여 주셔서, 죄의 속박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는 죄를 싫어하고, 거부해야 마땅하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노예가 되어, 억눌려 있었는데, 이제 구원되었다면, 죄에 대한 자세는 강력히 저항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죄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면, 기독교의 구원을 받은 자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상식에 관한 문제다.
기독교인은 죄를 항상 경계하는 자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교회가 경계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구원의 능력이 부족하고, 안되는 것이다.
경계를 해야, 구원이 많은 교회가 된다.
죄에 대한 경계를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자들이 많게 되고, 죄를 쉽게 생각하고, 죄와 함께 동행한다.
그런 교회에 있는 신자는 구원을 말할 자격도 없다. 본질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는 개인도 망하고, 교회도 망하게 된다.
하늘나라의 시민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 그는 비록 이 땅에 있어도, 하늘에 속한 자다.
하늘에서 인정할 정도라면,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고, 죄를 이기는 장치가 분명하다.
이런 자는 성격 자체가 많이 다르다.
그런 자에게는 죄가 힘을 잃고 있으니, 사랑이 많은 자일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곧 주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것이다.
말만 요란하게 하지, 주의 교회를 아끼며, 자기 몸을 던지지 않으면, 외식하는 것이다.
주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에서 죄에서 구원된 증거가 더 명확히 드러난다.
일단 구원받고, 변화되면, 행실의 변화로 당장 드러난다.
[성도의 행실의 변화]
대인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드러난다.
당장 겸손해지고, 인자해지고, 긍휼이 많고, 인내하고, 온유하고, 사랑하고, 자기를 기쁨으로 희생한다.
이 세상에서는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사.친.존.배로 훈련해 왔다.
사.친.존.배는 새롭게 지음받은 자들이 주의 나라에 들어올 때, 갖는 마음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새로운 심성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또,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데,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도, 진실하게 나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장 하기 어려운 부분. 대인관계에서 이런 사랑과 포용과 희생.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
결국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닮아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 안에서 분명히 드러났고, 구약에서도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긍휼하시고, 은혜가 풍성하시다.
또, 그는 정의로우시다. 변덕이 없으시고, 참되시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 부분은 대단히 부족하다.
인간은 진실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나님은 또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시고, 희생이 많으신 분이시다.
인간은 이 부분도 너무 부족하다.
우리 교회에서도 같이 일하는 동역자 중에서 정보를 독점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정보를 빨리 내놓았다면, 전체가 좋았을 것이다. 이기적인 것이다.
교회는 시급한데, 자기만 갖고 있다. 세상에서 하는 일이다.
자기를 위해서는 정보를 사용하는데, 전체를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감춘 것이 없이, 교회 일에 그대로 나눈다.
내가 이렇게 밝히는 것은 내 동료들도 내놓기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를 감추면, 일이 한없이 늦어진다.
나는 답답하다.
확 풀어놓고, 원활히 돌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을 교회가 될 것이다.
결국 진실함이 우리 가운데 많이 부족하다.
이 세상사람들은 대화할 때, 한번 찔러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다.
사회 모든 면에서 그런식으로 많이 한다. 속이려는 마음으로 애초에 시작한다.
남에게 좋아도, 내게 유익하지 않으면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면에서 우리와 다르다.
하나님은 맹세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분 자체가 신실하고, 정확하고, 진실하시다. 그런데, 그분은 맹세까지 하셨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속고, 속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약속을 하고, 거기에 맹세를 해도, 믿을 수 없다.
구원으로 이루어진 우리 신앙의 삶은 변화의 열매를 계속 맺는 삶이다.
이 점을 잊지 말고, 구원의 참 증거, 변화되는 삶을 살자.
[본문]
본문의 말씀은 변화에 대한 말씀이다.
지난주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나서, 일어나는 절차, 우리의 변화에 대해서 말했다.
일단 심령이 변해야 한다.
아무 감각도 없는 영만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하늘에 가는 것이다.
마음의 코어는 심령이다.
우리 마음도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주관하는 진정한 중심인 심령이 변화되어야 한다.
자체로는 되지 않는다. 육신에 완전히 눌려 있어서, 가짜인 내가 주인노릇하고 있었다.
그래서 힘을 잃은 심령은 죽어있었다.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데, 이제 새 사람을 입는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완전히 다른 성질의 사람이다. 이전까지 없던 새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창조다.
개선이 아니라, 완전히 새것이 오는 것이다.
새사람은 하나님이 새로이 창조한 자다.
하나님은 새사람을 입게 하셨다.
우리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은 새사람을 입게 되는 시점부터다.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옛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다]
본문에서 새 사람을 입으라 하였다.
이것은 새 창조의 한 표현이다.
마치 새 옷을 입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창조되는 것은 나인데, 새 사람을 입음으로 나는 새 자아가 된다.
내 심령은 그대로 있다. 그런데, 심령 외에 모든 인격 전체의 성질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우리는 옛사람을 고치지 않는다.
우리는 새사람을 입음으로 새로이 창조된다.
이것을 느낌상 옷을 입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음으로 새피조물이 되었다.
새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나님의 창조로 이루어진 이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자다.
문자적으로 하나님처럼 지으심을 받은 자다.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 의미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원래 인류가 갖고 있었지만, 아담 안에서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류에게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스럽게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고후4:4,6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이 부분은 새사람을 입는 우리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있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
그의 형상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이 빛을 싫어하는 사람은 도망간다. 그러면 그 사람은 계속 어둠 속에 있게 된다.
그러나,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그 사람에게 새겨진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다.
이것도 새 자아의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상황적으로 같은 내용이다.
내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이 내 자신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 것이다.
내 안의 새로운 형상은 그리스도의 모든 특성을 갖고 있다.
성품, 의지, 인격안에 형성된 것을 다 말하고 있다.
예수 믿기 전에도 인간의 형상은 있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게 됨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적 모든 특성을 말한다.
하나님의 성품이 있는 것이다. 굉장히 놀랍다.
새로운 자아는 그리스도의 내면을 닮은 자다.
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내가 입고 있는 새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자다.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진다. 굉장히 중요하다.
마구 뿌려주었다기 보다,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심어주신 것이다.
이제 나는 너를 모른다 하고 버리고 가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이렇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나 자신으로 입혀진다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너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다.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 받음]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달라진다는 것인가.
의와 거룩함으로 성격이 정해진다.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로 이 사람이 새 사람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카테고리 안에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성품이 요약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는데, 이제 우리에게 입혀져서, 우리 자신이 되었다.
이 새사람의 성질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다.
우리가 새사람을 입었다면,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는 성질을 가진 새 자아가 내 자신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 나타난 결과, 나는 새사람이 되었는데, 바로 이 새사람이 이제 나의 자아다.
본문에 자아라는 단어는 없지만, 혼동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
의와 거룩함.
여기서 의는 대인관계에서 품격을 말한다. 율법의 두번째를 반향하고 있다. 십계명의 여섯번째부터 열번째를 말한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있다.
모든 현실을 떠나, 둥둥 떠다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의는 사랑, 온유, 겸손, 착함, 의롭고, 진실함이 다 포함된 것이다.
엡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우리가 자신을 무장하는데, 하나님의 성품, 선하고, 긍휼하고, 진실하고, 신실한 모양으로 무장하여, 죄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속에서 죄를 계속 꾸미고 있다면, 의의 흉배를 두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에 대한 자세다.
십계명의 첫째계명부터 넷째계명까지에 관련된 것이다.
이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너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본문에서 나열된, 구체적인 두 덕목, 의와 거룩함은 누가 보기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윤리적 특질이다.
이것은 새롭게 창조된 우리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덕목이다.
이 특질 자체가 하나님의 특질이다.
신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시145:17-20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구원하시려는 긍휼이 간절하시다.
다만, 그는 최후에는 공의로 심판하여, 악인은 멸하실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선하고 인자한 면을 가르키고 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오래 참으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공의를 붙이면, 하나님을 잘 설명하는 표현이다.
[진리란 참된 것을 의미]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은 속임으로 사는 특징이 가득했다.
잘 속이고, 잘 속는다.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러나, 새사람은 완전히 반대로 진리안에 산다.
유혹이라고 했는데, 속임이라는 번역이 더 맞다.
본문은 진리라는 단어보다, 참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많다.
[참 의와 참 거룩함으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 참 의와 참 거룩함으로 번역하면 더 좋다.
완악했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변했다.
죄를 행하기 위한 체제로 가득했던 우리가 참되고, 거룩한 자로 바뀌었다.
[의와 거룩함은 하나님처럼 창조된 자의 성품]
그래서 이제 평생 성결과 의로 사는 것이다.
눅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하고 의로운 심령이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실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의롭다고 하고, 거룩하다고 주장하면서, 죄의 동기가 가득하고, 이기적이고, 남이 안되길 바라는 삶을 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것은 참된 자와 거리가 먼 것이다.
의와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네 안에 있다면, 그를 모시는 것만으로 너무 영광스러울 것이다.
말은 믿는 자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속성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새롭게 창조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곧 거듭나지 않은 것이다.
옛사람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진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죄는 육체에 남아있다]
죄에 대한 성경의 경고는 굉장히 강력하다.
롬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새 자아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라.
죄는 신자의 삶에서 몸에 위치한다.
롬7:17, 23,25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에서는 죄가 육신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새 자아가 되었다고 해도, 죄는 육신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것을 몸이 아직 구속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내면의 새사람에게 죄책이 전가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도 만만치 않은 투쟁이다.
로마서6-7장에 이 부분이 잘 설명되어 있다.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하지만, 내 자아는 의와 거룩함을 사랑한다.
나는 그것을 위해 창조된 자다.
그래서, 몸도 구속받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 세상 끝날까지 잘 견뎌야 한다.
구원은 변화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단지 법적 인정, 변화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아직 부족함이 많아서, 완전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는 변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마른 뼈와 같은 것이 생명으로 일어나려면, 변화라는 과정을 뚫고 가야 한다.
구원은 인생 전체를 걸쳐 변화하는 것이다.
어제까지 세상사람이었는데, 오늘 하나님 믿기로 했다고 다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다.
이제부터 내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일어난다.
창조는 하나님이 하시지만, 행동은 우리가 해야 한다.
하나님은 강제로 하지 않으신다. 자기가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자발적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지어진 자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피조물들이 자기 의지가 있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한 일에 자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영광받으신다.
새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만, 신자는 이제 새사람을 입고, 자기가 해야 한다.
자기가 행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야]
그러므로, 이전에 갖고 있던 거만, 이기심,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욱 공격적인 자세를 버리고, 죄의 속박을 이겨낼 수 있는 넉넉한 하나님의 은혜, 의와 의로움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닮은 자들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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