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8주일 [어두움의 일을 책망하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은 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셨다.
그가 빛을 비추실 때,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속이 얼마나 타락으로 가득한지, 다 망가진 상태를 발견하여, 죄의 길에서 벗어나겠다는 결단을 갖게 하여, 그리스도께 자기를 의탁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구원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가 가진 전도의 원리가 되었다.
[죄악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우리는 이 일에 보냄을 받은 자들로서, 구원을 전파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는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현장에 나갔을 때,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직접 말로 당신은 죄인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거기서 나는 죄인이라고 말하는 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기분 나쁘게 한다고, 야단을 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행동 때문에, 교회의 이미지는 나빠지게 되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에 대해서 하는 복음의 일은 막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어둠은 어떻게 드러낼까.
이것은 교회 바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유사하게 교회 내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할까.
어떤 사람은 그냥 품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사람은 뭔가 많이 들은 것은 있지만, 엉켜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고의적으로 교회에 악을 끼치는 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교회를 아프게 하는데, 그냥 방관하면, 그 교회는 그냥 망한다.
그런 것을 그냥 받아들이자, 참자고 하면, 어느덧 습관이 되어, 너도 나도 그런 일을 해도, 다 방관하게 되고, 애초에 어두움은 누룩처럼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교회는 영적으로 타격을 받아, 영적으로 생명을 잃게 되고, 죽은 교회가 되게 된다.
그러면, 교회에 악행을 하면서, 어렵게 하는 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성도들이 일어나, 그 사람을 처단하자고 해야할까.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다.
교회의 안위를 파괴하려는 경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경우, 한시적으로 그런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주 한시적이고, 극단적인 경우에만 하는 것이지, 매사에 교회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우선 사단이 좋아할 것이다.
원수는 항상 교회를 노리고 있는데, 그런 방법을 편하게 쓰고 있다면, 원수가 사용할 것이다.
원수는 대표적으로 거짓으로 사람을 속여서, 움직인다.
그래서, 속은 사람을 통해, 파괴의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마귀는 세상의 방법을 자꾸 동원한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데모하게 하고, 거짓선동으로 들끓게 한다.
사람들이 탐욕으로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조건이 교회안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들고 일어나서 대항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교회에서 누가 잘못을 행할 때, 그 신자를 훈육하는 것은 전적으로 목회자에게 주어진 임무다.
절대적으로, 독점적으로 목회자에게 주어진 권리다.
설령, 교회가 어떤 성도를 억제하고, 꾸중해야 할 일이 불가피하게 생겼어도, 반드시 담임 목회자의 지도 아래 시행되어야 한다.
실제 우리 교회는 과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런 방법으로 위기에서 교회를 구한 일이 몇차례 있었다.
그렇게 되어야, 교회가 정상적이고, 안정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일단 옳지 않은 생각으로 옳지 않은 시스템이 들어오면 안된다.
교회에 어려움이 있다면, 거기 있는 목회자가 일을 해결할 책임이 있고, 권리가 있다.
어려움이 있는데, 목회자가 그냥 품어주자고 하면, 교회를 망하게 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직무유기다.
주님도, 모세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세의 경우는 그냥 수천명을 살육했다.
다윗도 베드로도 그냥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교회는 어떤 시대 목회자도, 옳은 목회자라면, 그냥 품어주자고 하지 않았다.
회개하는 자는 품어주어도, 돌이키지 않는 자는 품어줄 수 없다.
양들을 치는 목자는 양이 병들면 돌봐주고, 양들이 일치가 되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대인들 뼈속에 적혀 있는 법이다.
어느 시대에도 자기 교회가 악한 요소에 의해서, 해를 당하고 있는데,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적어도 자기 것도 아닌데, 주 예수의 교회에 대해서 보존할 의무가 있다.
목회자는 하늘의 권위를 갖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어떤 일에 대해서, 엄히 꾸중하고, 교회 전체에게는 동시에 경고하므로, 그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목회자가 반드시 할 책임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황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은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침묵의 저항이다.
이것이 교회의 성도에게 주어진 자세이며 의무다.
악행하여, 누가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면, 성도들은 그 사람이 하는 일에 참예하지 않으므로, 그 악행이 잘못된 것임을 노출시켜야 한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자세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거절하므로, 그 사람이 하는 잘못된 일을 폭로해야 한다.
그래서, 더 퍼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 원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바깥에서 하는 선교방법의 중심이다.
우리 임무는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가서 강제로 할 수 없다.
사람들을 굴복시켜서, 죄를 버리게 강요할 수 없고, 그들이 죄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그 결과 그들 자신이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 전체에 대해, 사람들이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로서의 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모습.
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을 발견한 자들이 자신의 본모습과 다른 것을 봄으로써, 그의 죄성이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주의 교회는 그래서 세상의 빛이다.
주님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주셔서, 그 때, 빛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고, 죄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빛이다. 빛으로서 감당할 역할이 있다.
죄에 빠진 세상에게 죄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병이 있다면, 견딜 수 없이 아플 것이다.
의사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을 때, 어디가 아픈지 모르면, 고치기 어렵다.
증상을 말해주어야, 원인을 찾고, 치료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본인 상태가 어떤지 모르고 있다면, 절대 고칠 수 없다.
빛의 자녀들로서 가득해야 할 교회에서, 어둠이 있다면 어떨까.
이것은 영적으로 너무 나쁜 것이다.
어둠은 영으로 사망한 상태를 말하는 성경적 비유다.
어둡다고 하면,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말한다.
어둠이 있다면, 교회 전체에 악영향이 활개를 치게 된다.
제어하지 않는 모든 순간 퍼져나간다.
그러다보면, 사망한 자가 생명의 교회 전체를 심판하는 결과까지 이른다.
그런데도, 상황적으로 손을 쓰지 못한다.
어둠이 이미 장악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대항할 자가 없다.
만약 이런 것을 묵과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첫째, 펼쳐지는 어둠의 영향력 때문에, 교회의 소임 자체가 방해를 받는다.
교회는 어떤 특정한 일을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교회가 할 일을 못하면, 교회가 있을 필요가 없다.
교회가 서 있을 이유가 없는데, 서 있게 되는 것이다.
또, 교회의 생존마저도 위협을 받는다.
어둠이 활개치게 놔두면, 음부의 권세에 의해서, 교회가 흔들리다가, 기어코 교회가 무너지게 된다.
교회 건물에 사람들이 왕래한다고 해서, 교회가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기없이 그냥 껍데기만 있는 교회도 많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지배하면 안된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하는 최소한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교회는 첫째 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교회 안에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견고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도도 열심히 하고, 교회를 지키는 것도 열심히 하자.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라]
지난주에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라고 했다.
엡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빛의 자녀는 악한 행실에 참여해서 함께 하면 안된다.
참여하는 일 뿐 아니라, 참여하는 자와도 함께 하지 말라.
심지어, 그들과 교제도 하지 말라.
엡5: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일단 그들이 하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마음 자체부터 하나님과 원수였다. 그 때는 모든 것을 육신이 원하는대로만 했다.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이런 모든 것은 죽은 행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히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죽은 행실은 사망을 초래하는 행실이다. 죽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을 초래한다.
롬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예수 믿기 전에 너희가 무슨 일을 했느냐. 지금 그 때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그 때로 머물러 있었다면, 결과적으로 너희는 다 사망의 결과를 맞을 것이다.
행위 하나하나가 사망으로 이끄는 것이다.
당시 우리가 어둠안에서 행한 것은 빛과 반대되는 것이다.
빛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다.
어둠에 속한 자들이 행하는 악행을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이라고 했다.
어두움은 열매가 없다.
그냥 열매가 없는 중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즉 생명이 있는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열매가 없어서, 영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도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
어두움은 계속 어두움을 퍼뜨린다. 그리고 사망으로 이끈다.
어두움을 받아들이면, 계속 끌려가는데, 결국 영원한 사망으로 간다.
그래서, 어두움과 함께 있으면 안된다.
교회 안에 어두움이 있으면 안된다.
어두움의 특성이 무엇인가.
사람에게 다가와서, 하지 말라고 한 것, 해도 된다고 한다.
유1:12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그리스도 교회는 밥을 같이 먹는다. 애찬이라고 한다.
밥을 먹는데, 어두움이 같이 와서 참여한다.
죄의 역군이 접근해서, 나를 끌여들여 오염시킨다.
주님의 피와 살을 함께 나누는 성찬에서 이들은 암초가 된다.
배가 암초를 만나면, 깨져서 가라앉게 된다.
이들은 네가 생각하는 자가 아니다. 애찬의 암초다.
시적인 표현이지만, 궁극적인 정체를 드러내는 표현방법이다.
너무 서늘하고, 공포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문구다.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은 빛의 열매를 맺고, 둘째, 열매 없는 어둠을 거절하는 것이다.
어둠과 빛은 본질상 양립할 수 없다.
같이 있다면, 나는 어둠에 있는 것이다.
어두운 자들에게 참여하지 말라는 것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한다.
[어두운 자들에 참여하지 말라]
우리는 어두움 자체였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그냥 어둠속에서 해맨 수준이 아니라, 내 자체가 어둠이었다.
신기하게도 어두운 자들은 어두운 자끼리 어울린다.
잠언은 영적인 통찰력을 열어주는데,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했다.
나쁜 친구는 너를 속여서, 망친다.
또, 어둠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불순종하는 자에게 참여하는 것이다.
엡5:6-7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불순종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끝이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
공개적으로 교회를 괴롭히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신자라고 해도, 접촉해서도 안된다.
고전5:9-11
9.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그냥 보듬어주라는 것은 다른 환경에서 있는 일이지, 아무 것에나 붙이면 안된다.
만약 누가 이런 일을 하면, 그 사람과는 밥도 먹지 말라고 했다.
본문은 아주 명료하고 직접적이다.
빛의 자녀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묵인하지 않고, 책망하라]
참여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데, 더 나가서, 그들을 책망해야 한다.
엡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대놓고, 너는 악하다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본문의 책망하다는 원어는 유죄를 입증하다, 드러내다는 의미가 있다.
징계하는 것까지 의미가 확장되기도 한다.
본문은 드러낸다는 의미가 있다.
번역은 책망이라고 했지만, 그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의미가 드러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망신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성도들이 말로 지적하기 보다, 오히려 그 사람과 반대되는 성결하고, 거룩한 빛으로 행함으로써 그 사람의 죄가 드러나게 해서, 그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라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그런 일을 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
그냥 방관하다가, 나중에는 거기에 합류하기도 한다.
분별력이 없고, 죄를 반대하는 성향 자체가 없다.
지옥과 천국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능력 능력 말하지만, 원수를 이길 능력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개인적 친분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악행을 해도, 계속 대화하고, 공유한다.
이것은 인간적 관계 때문에, 영혼까지 상처를 입는 것이다.
한번 영혼에 상처를 입으면, 되돌리기 힘들다.
그런데, 친분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나눈다. 그러다가 자기가 그 사람의 연결점이 되기도 한다.
죄를 묵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태도가 아니다.
고전13:5-6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은 온당치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대항하는 것이다.
악을 무시하는 것은 오히려 악을 격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고, 악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들고 일어나서, 대놓고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책망으로 맞서야 한다.
성도에게 공개적 책망의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공개적 책망은 목자에게 주어진 일이다.
특권이 아니라, 목회자에게 주어진 거부할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이다.
목회자는 절대 이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주의 교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이루어야 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기초장치를 세우지 않고 가는 것이다.
고의적 악행은 교회의 본질적 성질과 반대다.
교회에서 악은 저지되고, 제압되어야 하는데, 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자기 본질을 해하는 요소를 내부에 품고 있어서, 끊임없이 존속에 위협을 받고, 붕괴를 향해 달려가게 된다.
성도들이 물이 들어, 어둠에 정복되어 있으면, 교회는 껍데기만 있는 것이다.
딤전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그래서, 공개적 책망은 목회자에게 기초 위임된 사항이다.
범죄한 사람을 모든 사람에게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다 같이 꾸중하라는 의미다.
딛1:9,13
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형제가 교회에 대해서, 반발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쳐라.
마18:15-17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참됨을 보여 거짓과 악의를 책망]
누군가의 악행을 드러내기 위해, 신사적으로 자신의 악행을 보게 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라.
악한 자 옆에 진실한 자가 옆에 있으면, 드러날 것이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된다.
진실한 사람에게는 마치 광채가 빛나듯, 하늘의 위력이 있다.
[참예 거부로 책망]
일단 악행에 대해서, 참예하지 않는 것으로 그들에게 책망이 될 수 있다.
그 자체가 강력한 마음의 두드림이고, 마지막 질문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자체가 모든 잘못된 악행에 대한 책망이다.
남을 굴복시키고, 쳐서 내 이익을 구하는 것보다, 나는 손해보면서 남을 돕고, 선한 말을 하고, 진실한 태도 자체가 마음이 어두운 자들에게는 강력한 책망이다.
그들의 악행을 간접적, 신사적으로 노출시켜라.
혼자 선동하는데, 아무도 동조하지 않으니까, 죄가 드러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죄에 빠진 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어두움의 일은 마로 꺼내기도 부끄러운 것]
본문에는 없지만, 다음절에 왜냐하면이라는 단어가 원문과 영어번역에는 있다.
엡5: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어두움의 일은 너무나 끔찍하고 더럽기 때문에, 입에 거론하는 것도 삼가라.
너무 더럽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이다.
[오염되지 않게 극도로 경계해야]
악을 저항하는 영향력이 되어야 하는데, 악을 책망하지 않으면, 그 일을 실패할 뿐 아니라, 오히려 내가 오염되고, 나를 통해 오염도 퍼지게 된다.
한번 넘어갔더니,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방관은 암묵적 승인으로 오해가 된다.
그렇게 악의 확산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처음 악한 일을 어떻게 다루는가.
악한 행실이 있을 때, 내가 처음에 자르지 않았다면, 이후에는 나도 모르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고, 나도 가끔씩 이야기하기도 하고, 살을 붙이기도 하고, 행실로 옮기게 되기도 한다.
누가 그런 일을 했대 하면서 자기가 즐기고 있다.
거기에 살도 덧붙인다.
핵폐기물에 접근할 때는 보호장구를 다 차고 해야 한다.
교회는 영적인 악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철저히 해야 한다.
굳이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누구의 심령에도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심령에 상처받아서, 교회 절대 나오지 않겠다는 사람, 나도 여럿 알고 있다.
나도 초신자였다면 안나올 것이다.
교회에서는 절충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춰서,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라.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지금은 전도를 할 수 없지만, 세상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오염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더러움에 오염되지 말고, 교회를 지키고, 선함으로 더러움을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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