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를 알자

자기 십자가

lks8284 2025. 12. 29. 01:55

자기 십자가

(마태복음 16:21-28)

201772일 성락교회 주일예배

 

김기동 감독 설교

 

하나님은

완전무결하시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시니 세상이 조롱하지만

십자가는 믿는 자들에게 능력이 되었다(고전 1:18)

해산의 수고 없이는 아들을 볼 수 없음같이(3:16)

하나님께서도 해산의 수고를 초월치 않으셨고

그가 사랑하시는 성도들에게도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명하셨다

십자가는 저주의 나무요 부끄러움의 극치이다(3:13)

이는

예수교회가 겪어야 하는 해산의 의무이다(16:24)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의 영광을 보리니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신앙의 푯대이다(3:14)

십자가의 수고는 육신의 아픔보다 더한

마음의 아픔이다

육신이 받는 세상의 영광은 다 배설물 같으니

오직 영혼만이 살아서 승리하는 것이다(3:8)

성령이 이를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8:11)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보는가

이는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길이었다

십자가의 고통을 보라 이는

주 예수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시는

거룩한 길이었다

 

우리 각자가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통하여 그 문으로 들어가자

주님께서 그 길과 그 문에서 환영하신다

 

환언하는 베뢰아운동은 순탄치가 않다

 

임신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수고를 거쳐

 

반드시 성공하고 승리해야 한다 (찬송 365, 138)

 

하나님은 완전무결하십니다. 세상에 많은 신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 신들과 다른 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취급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는 사람이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든 우상과는 다릅니다.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그 말씀이 이 땅에 오실 때에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친의 태중에 잉태되어 출생과 성장을 경험하고,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과정을 피할 수 없는데, 어찌 보면 사람은 모태에 잉태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29절은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은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은 여자의 몸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인생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는 이 땅에 태어나 33년간의 생애를 사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가 "다 이루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육체로 오신 목적의 성취를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죽는 날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빌립보서 26~8절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을 뿐만 아니라 복종하셨습니다. 순종과 복종은 그 개념이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릅니다. 순종은 지시 받은 일에 대하여 동의하여 따르는 것이지만, 복종은 이해되지 않지만 지시하신 분을 신뢰하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모두 공감한 것은 아닙니다. 그랬기에 그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하나님의 의()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람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로마서 102~3절은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는 자신의 의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사람을 영원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6:31~33).

 

 

 

사람이 자기 의를 쌓으면 그로 인해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는 있어도,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누누이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라고 경고합니다. 사람들이 간혹 저는 공로 없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자기 의를 의지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공로가 전혀 없고, 따라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의지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의를 의지했기 때문에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의 의를 의지했기 때문에 거룩한 직분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과 가정의 안위를 구하는 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들, 어찌 신앙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힘써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당시 로마제국이 사용하던 극형의 도구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죄질이 너무 나빠 누가 봐도 긍휼을 입을 수 없는 범죄자였습니다. 사람이 십자가에 달리면 몸의 피와 물이 빠지면서 서서히 죽어가기 때문에, 그 광경은 매우 참혹했고, 그래서 그것을 목격한 사람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나칠 때 고개를 젓고 침을 뱉고 거기에 매달린 사람을 저주했습니다.

십자가는 그야말로 저주의 나무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굳이 십자가에 달고자 한 것은 단지 예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아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밥을 먹고 있는데 누가 똥에 대해 얘기하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누군가가 갑자기 십자가를 언급하면, 사람들은 그 참혹한 모습을 떠올리기 싫어서 왜 갑자기 십자가 얘기를 하고 난리야?” 하고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고, 그러므로 누구라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얘기는 꺼내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망각의 도구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을 누가 기억하겠습니까? 더구나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고 증거한다면, 과연 누가 그 말을 믿어주겠습니까? 십자가는 예수를 지울 목적으로 사용된 도구입니다. 반면에 성령은 예수를 기억나게 하십니다. 이는 예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섣불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게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셔야 제자들이 권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결코 예수를 증거할 수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장사 잘되고, 아들 취직도 잘될 겁니다. 교회 나오세요.” 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권면하는 것은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점진적으로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본분은 십자가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신 것은 누가 그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계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10:17~18). 예수께서 너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와라!”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 죽을 계명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금방 집도 살 수 있어요.” 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것은 기복신앙에서 나오는 모습으로서, 우리가 반드시 지양해야 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잘될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도리어 그를 따르겠다는 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먼저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해라!” 하는 계명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기막힌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줄곧 나는 이미 명예를 버렸다.” 하고 얘기해왔지만, 이번 일을 통해 그동안 제가 여전히 명예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제 명예는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땅에 떨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지금 제게 남은 것은 오직 영혼뿐입니다. 제가 지금 설교하는 것은 어떤 권위나 명예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육체가 매를 맞는 것도 고통스런 일입니다.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더욱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와야 한다.” 하고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십자가가 얼마나 무거울까? 십자가에 매달리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예수께서 가지셨던 고민에 비하면 그런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때 얼마나 괴로우셨던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나아가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간구하셨습니다(26:38~39).

교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교회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의도를 순수하게 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그들의 계획이 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첫째, 시무언 지우기입니다. 그들은 시무언이 사라져야 성락교회가 살 수 있다!” 혹은 시무언을 우상화하지 마라!” 하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우상이라는 것은 피조물을 신격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무언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이 시무언을 지우려고는 것은 결국 시무언이 하는 일을 없애려는 것입니다.

시무언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무엇입니까? 베뢰아운동이라는 환언운동입니다. 기독교회는 교권과 교리의 탄생과 더불어 성경이 본래 증거하고 있는 신앙의 모습으로부터 많이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 하고 주장하면서 신앙의 본래 모습을 되찾자고 하는 것이 베뢰아운동입니다. 그런데 이미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기성 교단들이 베뢰아운동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뢰아운동이 지금까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그만큼 이적과 능력이 우리에게 많이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개혁을 외치는 자들이 지우려는 두 번째의 것이 바로 베뢰아운동입니다.

셋째는 성락교회라는 이름입니다. 저들은 개혁을 성공시키면 성락교회라는 이름부터 바꾸겠다고 합니다. 베뢰아운동이 시작된 교회를 지우겠다고 합니다. 과언 이처럼 시무언을 지우고, 베뢰아를 지우고, 성락교회를 지우는 것이 개혁입니까? 시무언과 성락교회와 베뢰아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시무언이 지워지면 베뢰아운동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한낱 전설로 기억되다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베뢰아운동을 시작한 시무언이 역사적 존재로서 분명하게 기억되어야 합니다.

저는 평생 온갖 거짓된 말로 공격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견뎌온 사람입니다. 개인에 대한 공격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락교회와 베뢰아운동을 지우려는 시도가 성공하도록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락인과 베뢰아인 모두의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너도 죽어야 한다.” 하는 계명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합시다! 베뢰아운동의 성공을 위하여 성락인 모두가 단합합시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신 말씀처럼, 시무언이 사라지면 성락인들은 우왕좌왕하다가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해 끝까지 견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교회를 지키는 일에 마음을 다해 주십시오. 특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하신 히브리서 1023~25절 말씀대로, 온 교회가 힘써 모여주십시오. 성도 각자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의 길을 갑시다!

 

 

 

정리 : 이기택 목사

 

 

 

 

 

 

 

 

 

 

 

 

목회서신

 

"기도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성락인 여러분, 사랑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말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러한 시험을 일으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는 공중권세를 잡은 마귀입니다. 우리 교회는 누구보다도 마귀의 일을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교회입니다. 우리는 근심과 걱정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충성된 신앙심과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범사에 하나님께 엎드려 이 사실을 고하고 기도하면서 이기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위기가 있을 때마다 간절히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분부하시기를 너희는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와주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있듯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라 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까? 우리에게 닥쳐오는 수많은 일들이 있으나 그 같은 큰 일들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와서 이 문제를 보고해야 합니다. 그에게 기도로써 보고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을 참관케 하고 하나님으로 참여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빠진 어떤 모임에도 하나님은 영광이 없으시니 그 일에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셔 놓고 하나님으로 참여케 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지혜나 분별력만 가지고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모셔 드립시다. 크고 작은 일이라도 상관이 없이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무시하지 맙시다. 우리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시험에 대하여 각 사람이 알고 느끼는 대로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기도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범사란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항을 다 포함한 말씀입니다.

 

 

 

나 시무언은 일평생 기도로 일해 왔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모셔 놓고 일하지 않은 것은 큰 시험을 자초하였으나 하나님을 모셔 놓고 그에게 맡긴 일들은 다 승리하였습니다. 물론 병든 자도 기도해야겠지만 범사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믿음입니다. 어찌 압니까?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들을 보내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내 스스로 하는 일이 없이 오직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더 많이 합시다.

 

 

 

 

성락교회 김기동 감독

 

[출처] 20170702 자기 십자가(16:21~28) <성락교회 주일예배 김기동 감독 설교> |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