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거짓말’ – 김성현 목사님
[요한복음 8:43~47](강석준집사님 정리)
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던 이유는 우리를 마귀의 지배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던 목적은 우리를 마귀의 하는 일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셨다가 보호하시고, 잘 보전된 우리를 하늘에 데려가려 하심이다. 그래서 우리를 원수에게서 빼내 주시고 우리를 보전하시고 계시는데, 우리를 어떻게 보전하시느냐 하면 진리로 보전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실행하도록 하신다. 그렇게 하여서 우리가 진리로 먹고 진리로 행함으로써 거룩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마치 과제를 두고 따라올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임의로 두지 아니하시고 정성을 다해 길러주신다. 몸을 찢어 주듯이 하늘의 양식으로 먹게 하고, 하늘에 것에 익숙하게 하고, 주님의 성질을 닮게 하고, 생각을 주님과 같게 하고, 모습도 주님과 닮아가도록 하신다. 그렇게 해서 주님은 이전의 죄와 사망에 빠져 소망이 없었던 상태에서 구원해 주셔서, 마귀의 노예에 있었던 상황에서 완전히 끊어주시고, 마귀의 세상에서 주는 나쁜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려 한다. 그래서 아무 문제없이 하늘에 데려가시려는 것이다. 진리로 그렇게 하시는데, 진리는 성격상 진실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날 때 타락한 영혼으로 났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중심이 이미 더럽혀진 상태였다. 이와 더불어 우리 육신이 그런 행위들을 해 왔다. 거짓된 것들을 보고, 익히고, 행하고, 계속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가 살아왔던 것은 우리 육체의 욕심과 마음이 원하는 것에 끌고가는대로 끌려왔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 반면 진리는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한다. 진리는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모습, 하늘의 모습, 주님의 모습 그대로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내용이 진실하다. 하늘에는 온통 진리로, 진실한 것으로, 사실 그대로 있다. 하늘은 진실 그 자체인데, 모든 사실들이 진실이다. 진리는 이 세상을 지배하던 것과는 확연한 반대적 성질을 보여준다. 이 땅에서 주님이 기르시는데, 진리를 주시면 그 진리는 우리 속에서 우리의 행하는 것을 통해 열매가 맺어진다.
육신은 영에게 부여되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만약 육이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영이 자기 본분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거룩하게 지켜지지 못한다. 결국 영을 망하게 한다. 육이 일해야 영도 일하는 것이다. 육이 일하지 않으면 마치 양식이 있는데 먹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든 먹어야 산다. 육이 일해야 산다. 영 혼자만 알아서 영의 일을 하라는 것은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영의 일은 육신이 성품으로 마음으로 들어가고 실행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진리의 속성을 통해 잘 발을 맞춰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담고 있는 세상과는 많이 달랐다. 그 당시에는 이 세상에 거짓만이 있었다. 세상에 거짓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거짓은 진리의 정반대이다. 진실한 것의 반대이다. 마치 어둠이 빛의 반대인것과 같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빛으로 오셨다 말하는데, 어둠이 빛을 보고 깨닫지 못했다 했다. 또 주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는데, 지으신 자가 세상에 왔는데 백성이 알아보지 못했다 했다. 또 진실을 거부하는 강한 성질이 이 땅에 있었다. 오직 몸이 익숙한 대로 움직이는 성질이다. 몸이 싫어하는 것은 극도로 싫어한다. 심판은 어떻게 오느냐 하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어둠을 좋아하고 빛을 싫어한다, 자기가 하던대로 자동적으로 어두운 쪽으로 틀어진다, 이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으려는 반사적 행위라고 말씀한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거짓이 상당히 활발한 영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이 세상은 거짓말 덩어리다. 이 세상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거듭나지 않은 인류의 공통적 특징이다. 옛날부터 가져온 모습은 지금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 많이 있는데, 크게 불편함을 못 느끼고 산다. 그런데 사흘 동안만 거짓말하지 않고 살자 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게 안 된다. 이 세상의 거짓말이 서로 엉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로 보호되고 견제되고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어느날 거짓말을 안하게 된다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질서 등 모든 분야가 붕괴된다. 세상에서는 이게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사람들은 이 옳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계속 지내오는 것이다.
사람은 잘 속는 성질이 있다. 거짓에 대해 취약하다. 이렇게 취약하다 보면 당연히 우리가 보는 사회 모습으로 발전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누가 자기에게 거짓말하면 이 내용이 자기 상황에 유리해지면, 이익이 있다면, 특히 물질적 문제나 나와 내 가정이 잘 되고 명예의 문제가 오면 그것을 거절하거나 방어하려는 의욕이 약해진다. 어떤 거짓말이 오는데 자기 유리한 점이 크고, 자기 양심의 가책이 감당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사람이 아무 말에나 속지 않는다. 예수 믿으라는 것은 대단히 안 듣는다. 미리 문을 닫아서 열고 대화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에게는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또 남이 잘못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려는 의지가 약해진다. 성경에는 교회에도 어려움이 있다, 귀가 가려운 사람들이,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받고 싶은 자들이 그런 역할을 하는 선생을 좋아한다 말한다. 마귀는 이런 데 틈타고 들어간다.
사람은 잘 속고 마귀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알고 있다. 사람은 욕심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야겠구나, 사람은 불만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야겠구나. 마귀가 사람에게 심는 모든 것의 결과는 궁극적으로는 거짓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옳은 소리로 시작한다. 유혹을 그렇게 한다. 들으면서 점점 방어를 늦추면 영혼이 망하게 된다. 마귀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악한 일을 하라고 제안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말하여 작업을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너에게 좋지 않겠니? 억울한 일을 풀어, 괜찮아 하는 것이다. 옳은 소리인것 같은데 맥락이 안 맞는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옳은 소리인데 맥락과 환경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일단 마음을 열고 반응하면 작업을 계속 진행한다.
어려운 점은 마귀가 전하는 것은 사람이 거부하기 어려운 자극적이고 마음이 끌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질적, 명예와 연관이 되면 거부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귀가 주는 생각을 사람이 받게 되면 당장 육신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영혼은 멸망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작업에 끌려서 멸망으로 손을 잡고 가는 것이다. 물론 매 건마다 멸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것이 양심의 반대를 무릅쓰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반복되면 양심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그래서 거짓된 것을 쉽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영적으로 메마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속게 되면 진리의 흐름이, 진리의 역사가 방해받는다. 진리가 흘러야 하는데 흐를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은 어느덧 진리와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판단 능력이 약해진다. 심지어 한 때는 뜨거운 신자였는데도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일을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데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귀의 생각에 빠져들어 교회의 일을 어렵게 하는 주역이 되기도 한다. 진짜 범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 일을 행하는 자만 거기 있어서 하나님의 정죄의 심판에 처하게 한다. 마귀가 사람의 생각과 습관에 파고들면 그 사람이 거짓에 있는 동안 하나님과 멀어진다. 진리에 대한 이해, 감각, 가치에 대한 판단이 없어진다. 마비가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힘을 내는데 자기를 사용한다. 영혼은 철저히 망쳐진다. 성령은 더 이상 그를 그릇으로 사용하기 원치 않게 된다.
하나님이 이미 떠나 있는데 자기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다. 마귀가 건네준 생각을 따라 마귀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힘을 내 마귀를 돕는다. 그런 중에 잠재 의식은 빼앗겨 있다. 돈에 대한 욕심에 빼앗겨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예수 모시고 성령을 모실 때에 끊어 버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내온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아무 변화 없이 그대로 가면 어디까지가 마귀의 소리이고 주님의 소리인지 모른다.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데 대충 빠져나온다면 그렇게 되지도 않거니와 언젠가는 되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더 문제는 빠져나올 필요성을 못 느낀다. 자기가 얼마나 잘못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신자가 믿기 전에 마귀 아래 있었다. 거짓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잠시 놀러왔다는 식으로 왔다 가면 충분치 않다. 뒷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마귀의 영향력에 대해서 상당한 취약한 점이 있다. 자기 연약한 부분을 메꿀 수 있어야 한다.
마귀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것이다. 죽이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떠나 있고 하나님을 붙잡지 않는데 괜찮다 한다. 영원히 죽는 것이다. 그런데 마귀는 이런 것을 잘 한다. 마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속이면 된다. 마귀는 자신을 속이면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항상 자기를 숨기고 남의 뒤에서 조종한다. 조종하는데 사람을 자극해서 사람이 자기 의지로 하게 한다. 사람의 의지를 이용한다. 한 마디로 다시 말하면 마귀는 자기를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마귀는 보이지 않는다. 숨어 있다. 나타나더라도 착하게 나타난다. 주님은 이것을 궤계라 하셨다. 이 단어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단어 자체가 되게 궤계스럽다. 즉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아담과 하와를 속여서 불순종의 죄를 범케 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즉시로 자기 직분을 빼앗겼다. 하나님의 일을 망쳐 버렸다. 그 뿐 아니라 사망하여 영원히 죽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자기 자손들에게 사망을 물려주었다. 처음에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소리를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간단히 시작했는데, 진짜 범인을 찾는데도 나오지 않는다. 보니 아담도 하와도 범인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수사관처럼 겨우 찾았다. 뒤에 숨어 있었다. 마귀는 미혹하는 자이고 천하를 꾀는 자이다.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가둬 두면 그 동안 미혹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나와서 미혹할 것이다.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에는 거짓 선지자도 있다. 거짓 선지자는 열심히 마귀의 일을 한다. 같이 유황 못에 던저진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를 멸하려 하심이라 하셨다.
마귀는 인간에게 범죄하게 하는데 사람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 병들게 하고, 근심을 주고, 걱정케 하고, 억압케 한다. 교우들과 이간되게 하고, 가정과 이간되게 하고, 세상에 이대로 살 수 없게 생각하게 한다.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망치도록 접근한다.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한다. 이런 일을 하는데 잘 한다.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그 방법은 거짓이다. 마귀가 가장 강력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거짓이다. 그래서 마귀는 인간을 속임으로써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망친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고, 이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한다. 그래서 영생에 이르지 못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신자와 같이 친다. 불과 유황불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다. 거짓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맞지 않다. 거짓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인과 논쟁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주님이 물러나지 않으시고 맞서서 하신다. 바리새인과 유대인의 버릇을 고치려고 호되게 야단치시고, 영적의 기준을 두시느라고 강력하게 대항하셨구나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맞는데 그것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유대인과 논쟁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에게 호감을 갖고 조금은 따르려 했던 자들이다. 주님은 마귀의 일을 폭로하고 마귀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마귀의 행태에 대해 밝히시고 마귀를 정죄하셨어야 했다. 거짓과 궤계로 역사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로구나. 주님이 마귀는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의 아비다 하셨다. 인간들을 사주하는 것이다. 고도의 테크니션이다.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며 살인자라고 하셨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는 남의 종인 적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자를 공경했어야 했다.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방법은 그 아들을 공경하는 것이다. 주님이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셨으면 나를 사랑했어야 했다 말씀하셨다. 거기서 주님과 그들은 반대였다. 그들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님이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구나 하셨다. 주님은 사실을 진리를 이야기하셨는데, 진리를 부인하고 거짓을 주장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이다, 귀신 들렸다 비방하고 성령을 모독했다. 주님은 진리를 말하신다. 그의 말씀을 들으면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그런데 진리를 부인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살해하려 하는구나 하셨다. 그들에게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가 들어갈 수 없으니 반발로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하셨다. 진리를 말한 사람을 죽이려 하는도다 하셨다. 이제는 주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 하였다.
여기에 주님이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있다. 너희는 마귀의 거짓을 행하고 있구나. 너희 아비 것을 따라 너희는 마귀처럼 살인하고 있구나라고 마귀의 속성과 행태를 말씀하신다. 마귀는 진리를 파괴하는 자, 진리를 막는 자이다. 마귀는 또한 진실 자체를 파괴하고 왜곡하는 자이다. 그런 반면 우리 주님은 충신과 진실이라 했다. 또 성령이 교회들에게 편지하시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라고 말씀한다. 이제 주 예수 이 땅에 오셔서 이 세상의 거짓말을 근절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며, 도덕적 인간을 만들려 오신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려 오신 것이다. 마귀의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살려주시고, 구원해주시고, 보호해주시려는 것에 목적이 있으시다. 마귀의 궤계로부터 보호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하지 않으면 진리에 접근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옳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인이 되었든 교회가 되었든 진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다.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진실로 말해야 하고, 의도가 진실함을 계속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 사람들은 각 성도의 지체이기도 하다. 몸이 자기 기능을 해야 한다. 자기 기능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지지 않는다. 머리가 신호를 잘못 보내면, 차가 쌩쌩 달리는데 머리가 오른쪽으로 틀라 하면 몸이 트는데 거기는 트럭이 달리는 곳이어서 부딪히게 될 것이다. 또 뜨거운 것이 있는데 손을 대봐라 하면 손이 대어 타게 될 것이다. 추운 날 옷을 잘 입으라고 해야 하는데 잘못된 정보를 주면 웃통을 벗고 나가 자게 된다. 눈이 보고 구불구불한 대관령 고개를 내려가는데, 오른쪽 왼쪽을 잘 봐주어야 하는데 하기 싫다, 길이 잘 뚫렸다 하면 운전자가 공중으로 날아가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받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한다. 함께 하기 위해 주님이 불러주신 자들이다. 각자가 합당한 그릇이 되어주고, 진리로 철저히 양육받고, 원수를 대적해야 한다. 주님은 오늘도 성령으로 먹이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씻기시고, 용기를 주시고, 예수의 옷을 입히시고, 평안, 낙관, 승리를 말씀하신다. 진리는 세상에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를 능히 이기고 갈 수 있게 한다. 어려움이 있고, 병이 있고, 난관이 있을지라도 진리는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진리로 행하고,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한다. 우리 성락교회는 진리로 보호받는 교회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진실하여서 진리를 영원히 영접하자. 거짓이 우리 중에 발 디딜 틈이 없도록, 어느 순간에도 진리가 소홀히 취급받지 않도록, 진리가 모욕받지 않도록, 배반당하지 않도록, 내동댕이쳐지지 않도록 하자.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을 버려 진리를 주셨던 것처럼, 그가 진리로 영원히 인도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8:43~47](강석준집사님 정리)
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던 이유는 우리를 마귀의 지배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던 목적은 우리를 마귀의 하는 일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셨다가 보호하시고, 잘 보전된 우리를 하늘에 데려가려 하심이다. 그래서 우리를 원수에게서 빼내 주시고 우리를 보전하시고 계시는데, 우리를 어떻게 보전하시느냐 하면 진리로 보전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실행하도록 하신다. 그렇게 하여서 우리가 진리로 먹고 진리로 행함으로써 거룩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마치 과제를 두고 따라올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임의로 두지 아니하시고 정성을 다해 길러주신다. 몸을 찢어 주듯이 하늘의 양식으로 먹게 하고, 하늘에 것에 익숙하게 하고, 주님의 성질을 닮게 하고, 생각을 주님과 같게 하고, 모습도 주님과 닮아가도록 하신다. 그렇게 해서 주님은 이전의 죄와 사망에 빠져 소망이 없었던 상태에서 구원해 주셔서, 마귀의 노예에 있었던 상황에서 완전히 끊어주시고, 마귀의 세상에서 주는 나쁜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려 한다. 그래서 아무 문제없이 하늘에 데려가시려는 것이다. 진리로 그렇게 하시는데, 진리는 성격상 진실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날 때 타락한 영혼으로 났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중심이 이미 더럽혀진 상태였다. 이와 더불어 우리 육신이 그런 행위들을 해 왔다. 거짓된 것들을 보고, 익히고, 행하고, 계속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가 살아왔던 것은 우리 육체의 욕심과 마음이 원하는 것에 끌고가는대로 끌려왔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 반면 진리는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한다. 진리는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모습, 하늘의 모습, 주님의 모습 그대로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내용이 진실하다. 하늘에는 온통 진리로, 진실한 것으로, 사실 그대로 있다. 하늘은 진실 그 자체인데, 모든 사실들이 진실이다. 진리는 이 세상을 지배하던 것과는 확연한 반대적 성질을 보여준다. 이 땅에서 주님이 기르시는데, 진리를 주시면 그 진리는 우리 속에서 우리의 행하는 것을 통해 열매가 맺어진다.
육신은 영에게 부여되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만약 육이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영이 자기 본분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거룩하게 지켜지지 못한다. 결국 영을 망하게 한다. 육이 일해야 영도 일하는 것이다. 육이 일하지 않으면 마치 양식이 있는데 먹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든 먹어야 산다. 육이 일해야 산다. 영 혼자만 알아서 영의 일을 하라는 것은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영의 일은 육신이 성품으로 마음으로 들어가고 실행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진리의 속성을 통해 잘 발을 맞춰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이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담고 있는 세상과는 많이 달랐다. 그 당시에는 이 세상에 거짓만이 있었다. 세상에 거짓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거짓은 진리의 정반대이다. 진실한 것의 반대이다. 마치 어둠이 빛의 반대인것과 같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빛으로 오셨다 말하는데, 어둠이 빛을 보고 깨닫지 못했다 했다. 또 주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는데, 지으신 자가 세상에 왔는데 백성이 알아보지 못했다 했다. 또 진실을 거부하는 강한 성질이 이 땅에 있었다. 오직 몸이 익숙한 대로 움직이는 성질이다. 몸이 싫어하는 것은 극도로 싫어한다. 심판은 어떻게 오느냐 하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어둠을 좋아하고 빛을 싫어한다, 자기가 하던대로 자동적으로 어두운 쪽으로 틀어진다, 이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으려는 반사적 행위라고 말씀한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거짓이 상당히 활발한 영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이 세상은 거짓말 덩어리다. 이 세상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거듭나지 않은 인류의 공통적 특징이다. 옛날부터 가져온 모습은 지금도 있다. 우리 사회에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 많이 있는데, 크게 불편함을 못 느끼고 산다. 그런데 사흘 동안만 거짓말하지 않고 살자 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게 안 된다. 이 세상의 거짓말이 서로 엉켜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로 보호되고 견제되고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어느날 거짓말을 안하게 된다면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질서 등 모든 분야가 붕괴된다. 세상에서는 이게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사람들은 이 옳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계속 지내오는 것이다.
사람은 잘 속는 성질이 있다. 거짓에 대해 취약하다. 이렇게 취약하다 보면 당연히 우리가 보는 사회 모습으로 발전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누가 자기에게 거짓말하면 이 내용이 자기 상황에 유리해지면, 이익이 있다면, 특히 물질적 문제나 나와 내 가정이 잘 되고 명예의 문제가 오면 그것을 거절하거나 방어하려는 의욕이 약해진다. 어떤 거짓말이 오는데 자기 유리한 점이 크고, 자기 양심의 가책이 감당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사람이 아무 말에나 속지 않는다. 예수 믿으라는 것은 대단히 안 듣는다. 미리 문을 닫아서 열고 대화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에게는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또 남이 잘못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려는 의지가 약해진다. 성경에는 교회에도 어려움이 있다, 귀가 가려운 사람들이,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받고 싶은 자들이 그런 역할을 하는 선생을 좋아한다 말한다. 마귀는 이런 데 틈타고 들어간다.
사람은 잘 속고 마귀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알고 있다. 사람은 욕심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야겠구나, 사람은 불만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야겠구나. 마귀가 사람에게 심는 모든 것의 결과는 궁극적으로는 거짓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옳은 소리로 시작한다. 유혹을 그렇게 한다. 들으면서 점점 방어를 늦추면 영혼이 망하게 된다. 마귀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악한 일을 하라고 제안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말하여 작업을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너에게 좋지 않겠니? 억울한 일을 풀어, 괜찮아 하는 것이다. 옳은 소리인것 같은데 맥락이 안 맞는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옳은 소리인데 맥락과 환경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일단 마음을 열고 반응하면 작업을 계속 진행한다.
어려운 점은 마귀가 전하는 것은 사람이 거부하기 어려운 자극적이고 마음이 끌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질적, 명예와 연관이 되면 거부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귀가 주는 생각을 사람이 받게 되면 당장 육신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영혼은 멸망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작업에 끌려서 멸망으로 손을 잡고 가는 것이다. 물론 매 건마다 멸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것이 양심의 반대를 무릅쓰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반복되면 양심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그래서 거짓된 것을 쉽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영적으로 메마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속게 되면 진리의 흐름이, 진리의 역사가 방해받는다. 진리가 흘러야 하는데 흐를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은 어느덧 진리와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판단 능력이 약해진다. 심지어 한 때는 뜨거운 신자였는데도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일을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데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귀의 생각에 빠져들어 교회의 일을 어렵게 하는 주역이 되기도 한다. 진짜 범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 일을 행하는 자만 거기 있어서 하나님의 정죄의 심판에 처하게 한다. 마귀가 사람의 생각과 습관에 파고들면 그 사람이 거짓에 있는 동안 하나님과 멀어진다. 진리에 대한 이해, 감각, 가치에 대한 판단이 없어진다. 마비가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힘을 내는데 자기를 사용한다. 영혼은 철저히 망쳐진다. 성령은 더 이상 그를 그릇으로 사용하기 원치 않게 된다.
하나님이 이미 떠나 있는데 자기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다. 마귀가 건네준 생각을 따라 마귀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힘을 내 마귀를 돕는다. 그런 중에 잠재 의식은 빼앗겨 있다. 돈에 대한 욕심에 빼앗겨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예수 모시고 성령을 모실 때에 끊어 버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내온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아무 변화 없이 그대로 가면 어디까지가 마귀의 소리이고 주님의 소리인지 모른다.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데 대충 빠져나온다면 그렇게 되지도 않거니와 언젠가는 되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더 문제는 빠져나올 필요성을 못 느낀다. 자기가 얼마나 잘못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신자가 믿기 전에 마귀 아래 있었다. 거짓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잠시 놀러왔다는 식으로 왔다 가면 충분치 않다. 뒷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마귀의 영향력에 대해서 상당한 취약한 점이 있다. 자기 연약한 부분을 메꿀 수 있어야 한다.
마귀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것이다. 죽이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떠나 있고 하나님을 붙잡지 않는데 괜찮다 한다. 영원히 죽는 것이다. 그런데 마귀는 이런 것을 잘 한다. 마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속이면 된다. 마귀는 자신을 속이면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항상 자기를 숨기고 남의 뒤에서 조종한다. 조종하는데 사람을 자극해서 사람이 자기 의지로 하게 한다. 사람의 의지를 이용한다. 한 마디로 다시 말하면 마귀는 자기를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마귀는 보이지 않는다. 숨어 있다. 나타나더라도 착하게 나타난다. 주님은 이것을 궤계라 하셨다. 이 단어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단어 자체가 되게 궤계스럽다. 즉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아담과 하와를 속여서 불순종의 죄를 범케 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즉시로 자기 직분을 빼앗겼다. 하나님의 일을 망쳐 버렸다. 그 뿐 아니라 사망하여 영원히 죽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자기 자손들에게 사망을 물려주었다. 처음에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소리를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간단히 시작했는데, 진짜 범인을 찾는데도 나오지 않는다. 보니 아담도 하와도 범인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수사관처럼 겨우 찾았다. 뒤에 숨어 있었다. 마귀는 미혹하는 자이고 천하를 꾀는 자이다.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가둬 두면 그 동안 미혹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나와서 미혹할 것이다.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에는 거짓 선지자도 있다. 거짓 선지자는 열심히 마귀의 일을 한다. 같이 유황 못에 던저진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를 멸하려 하심이라 하셨다.
마귀는 인간에게 범죄하게 하는데 사람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 병들게 하고, 근심을 주고, 걱정케 하고, 억압케 한다. 교우들과 이간되게 하고, 가정과 이간되게 하고, 세상에 이대로 살 수 없게 생각하게 한다.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망치도록 접근한다.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한다. 이런 일을 하는데 잘 한다.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그 방법은 거짓이다. 마귀가 가장 강력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거짓이다. 그래서 마귀는 인간을 속임으로써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망친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고, 이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한다. 그래서 영생에 이르지 못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신자와 같이 친다. 불과 유황불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다. 거짓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맞지 않다. 거짓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인과 논쟁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주님이 물러나지 않으시고 맞서서 하신다. 바리새인과 유대인의 버릇을 고치려고 호되게 야단치시고, 영적의 기준을 두시느라고 강력하게 대항하셨구나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맞는데 그것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유대인과 논쟁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에게 호감을 갖고 조금은 따르려 했던 자들이다. 주님은 마귀의 일을 폭로하고 마귀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마귀의 행태에 대해 밝히시고 마귀를 정죄하셨어야 했다. 거짓과 궤계로 역사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로구나. 주님이 마귀는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의 아비다 하셨다. 인간들을 사주하는 것이다. 고도의 테크니션이다.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며 살인자라고 하셨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는 남의 종인 적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자를 공경했어야 했다.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방법은 그 아들을 공경하는 것이다. 주님이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셨으면 나를 사랑했어야 했다 말씀하셨다. 거기서 주님과 그들은 반대였다. 그들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님이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구나 하셨다. 주님은 사실을 진리를 이야기하셨는데, 진리를 부인하고 거짓을 주장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이다, 귀신 들렸다 비방하고 성령을 모독했다. 주님은 진리를 말하신다. 그의 말씀을 들으면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그런데 진리를 부인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살해하려 하는구나 하셨다. 그들에게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가 들어갈 수 없으니 반발로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하셨다. 진리를 말한 사람을 죽이려 하는도다 하셨다. 이제는 주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 하였다.
여기에 주님이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있다. 너희는 마귀의 거짓을 행하고 있구나. 너희 아비 것을 따라 너희는 마귀처럼 살인하고 있구나라고 마귀의 속성과 행태를 말씀하신다. 마귀는 진리를 파괴하는 자, 진리를 막는 자이다. 마귀는 또한 진실 자체를 파괴하고 왜곡하는 자이다. 그런 반면 우리 주님은 충신과 진실이라 했다. 또 성령이 교회들에게 편지하시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라고 말씀한다. 이제 주 예수 이 땅에 오셔서 이 세상의 거짓말을 근절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며, 도덕적 인간을 만들려 오신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려 오신 것이다. 마귀의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살려주시고, 구원해주시고, 보호해주시려는 것에 목적이 있으시다. 마귀의 궤계로부터 보호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하지 않으면 진리에 접근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옳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인이 되었든 교회가 되었든 진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다.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진실로 말해야 하고, 의도가 진실함을 계속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 사람들은 각 성도의 지체이기도 하다. 몸이 자기 기능을 해야 한다. 자기 기능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지지 않는다. 머리가 신호를 잘못 보내면, 차가 쌩쌩 달리는데 머리가 오른쪽으로 틀라 하면 몸이 트는데 거기는 트럭이 달리는 곳이어서 부딪히게 될 것이다. 또 뜨거운 것이 있는데 손을 대봐라 하면 손이 대어 타게 될 것이다. 추운 날 옷을 잘 입으라고 해야 하는데 잘못된 정보를 주면 웃통을 벗고 나가 자게 된다. 눈이 보고 구불구불한 대관령 고개를 내려가는데, 오른쪽 왼쪽을 잘 봐주어야 하는데 하기 싫다, 길이 잘 뚫렸다 하면 운전자가 공중으로 날아가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로 양육받는 자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한다. 함께 하기 위해 주님이 불러주신 자들이다. 각자가 합당한 그릇이 되어주고, 진리로 철저히 양육받고, 원수를 대적해야 한다. 주님은 오늘도 성령으로 먹이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씻기시고, 용기를 주시고, 예수의 옷을 입히시고, 평안, 낙관, 승리를 말씀하신다. 진리는 세상에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를 능히 이기고 갈 수 있게 한다. 어려움이 있고, 병이 있고, 난관이 있을지라도 진리는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진리로 행하고,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한다. 우리 성락교회는 진리로 보호받는 교회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진실하여서 진리를 영원히 영접하자. 거짓이 우리 중에 발 디딜 틈이 없도록, 어느 순간에도 진리가 소홀히 취급받지 않도록, 진리가 모욕받지 않도록, 배반당하지 않도록, 내동댕이쳐지지 않도록 하자.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을 버려 진리를 주셨던 것처럼, 그가 진리로 영원히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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