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4 성령이 몰아내심(210117)

lks8284 2021. 1. 17. 13:42

200117주일 [성령이 몰아내심] 김성현 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마가복음 1:12~13)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의 삶은 공생애이며, 사명으로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사명을 받아 사는 것이다.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우리가 과거의 삶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삶을 살아야 한다.

설령, 우리 삶의 환경이 매우 험난하고, 고난스러워도, 육신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하며, 육신에게 양보하는 일을 계속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육신에게만 양보한다면, 하나님이 제시하신 삶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우리 존재의 목적을 벗어난 삶이 될 것이다.

구원을 받아, 우리는 사단에게서 벗어났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이 새 삶은 하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인도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인도해주셔야 한다.

우리 인생이 하나의 사명이다.

그렇게 볼 때, 공적 직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삶을 이루어가는 삶.

성령을 부어주심도 그런 이유가 있다.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직접 이끄시려 하시는 것이다.

각 사람의 인생을 공생애로 여기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계획하신 일들을 우리 인생 가운데 차례를 따라 가게 될 것이다.

이 인생을 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육신이 이 땅에 남아있어서 어려움이 있다.

이 땅은 황량한 광야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언제든지, 해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자기 공생애를 무사히 지나가기 어렵다.

무엇보다 시험이 가깝게 있기 때문에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도와주심을 전적으로 힘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다.

마귀가 가까이 있다.

마귀는 육신의 약점을 잘 노린다.

그래서, 신앙에 흠집을 내고, 마침내 멸망시키려 한다.

마귀의 시도를 이기도록,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신뢰하고, 그가 인도하시는대로, 담대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전의 삶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끄심에 순종하는 것에 힘써서 노력해야 한다.

노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일단 먼저 노력해야 성령이 도우실 수 있다]

 

성령은 노력하는 자에게 힘을 주신다.

성령이 무조건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작할 때까지는 성령이 도우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단을 보시고, 하고자 하는 자에게 더욱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 과정에서 하는 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신다.

결과로써,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삶을 만들어간다.

갈수록 확신이 굳어지고, 보람이 있고, 기쁘게 갈 수 있다.

이런 삶을 반복하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공생애를 견고하게 해 내가는 자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공생애는 영광스럽게 마무리 된다.

 

[시험에 빠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절대과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쩌면,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이겨가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성령이 거하시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인치시지 않은 자다.

이런 자는 넘어가기 쉽다.

반대로 성령이 거하시는 자는 자녀로서 마귀가 함부로 할 수 없다.

다만, 성령을 받은 자라도 자신을 마귀에게 내어주면 문제가 생긴다.

일단 유혹에 빠지면,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마귀의 지배 안에 들어가게 되면,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속은 마귀의 생각을 갖고 산다.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 마귀의 생각을, 분명히 아닌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기를 원한다.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는 교회를 해치려고 하는 마귀를 돕는 자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말은 성도이지만, 말뿐이지, 마귀의 하수인으로 역할을 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예수께서 자신을 죽는데 내어주시고, 그 목숨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넘겨주셨다.

이 생명은 주님이 안전한 손에 맡기셨다.

성령의 손에 위탁하신 것이다.

이전에는 우리가 우리 생각으로 살다가 망했다.

이제 주님이 목숨을 버려 사준 인생은 옛날같이 살게 하지 않으려 하신다.

옛날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의지를 여전히 마귀에게 준다면, 하나님이 베푸신 큰 은혜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과거로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비록 상황은 나쁠지라도 해야 한다.

사람은 환경이 나빠지면, 마음이 쉽게 변한다.

그래서, 자주 시험에 빠진다.

 

[성령께 삶의 인도를 맡겨드려야]

 

어려운 일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믿는 순간부터 자기의 삶을 예수께 맡긴 자들이다.

자기의 삶을 성령에게 맡기지 않고, 그냥 삶을 이어가는 자들은 마귀의 시험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다.

과연 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성령을 받지 못한 자.

이런 사람은 마귀가 마구 짓밟을 수 있다.

그를 보호해줄 어떤 보호장치가 없다.

 

둘째, 성령이 임하시긴 했으나, 성령께 순종하기를 더디하는 자.

이런 사람은 유혹에 일단 넘어가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을 가기 어렵다.

재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순종하지 않는 길을 여러차례 겪게 되면 결국 공생애를 이룰 수 없다.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설령 돈을 잘벌고, 삶이 잘되가는 것 같아도, 영적으로 실패다.

겉으로는 즐거우나, 마지막은 어두움이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욕심 때문에 자기를 내어주어 그렇게 된다.

욕심이 있으면 죄를 짓게 되고, 죄로인해 마귀가 죽이려고 하는 일에 끌려가는 것이다.

영혼을 완전히 망치는 것이다.

 

셋째, 성령 충만한 자. 성령이 준비하신 삶을 무사히 해 가는 자.

우리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

성령 충만한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의 뜻이 내 뜻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태다.

하나님의 뜻이 쉽게 동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렇게 성령충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령충만한 자는 육신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마귀에게 쉽게 신앙의 양심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삶을 무사히 성공시킬 수 있다.

나는 우리 성도가 모두 그렇게 성공하기 원한다.

상황에 따라, 신앙이 변하고, 원수의 시험에 빠지는 것에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철저히 시험에 대비하기 원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준비하신 삶을 살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결단은 우리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해 배운 교훈이다.

 

[마가의 글은 왜 짧을까?]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가복음은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왕으로서 권위가 있도록 잡스러운 것을 다 뺀 것이다.

큰 굴직한 윤곽으로서 왕의 모습이 분명한 것을 확인하려 한 것이다.

예수께서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하늘이 승인한 왕으로서, 그가 이루셔야 할 일을 큰 윤곽속에서 주어진 순서대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거침없이 시행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마가복음은 그리고 있다.

아버지가 미리 준비하신 계획을 예수께서 성취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왕이 하셔야 할 일로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은 생략했다.

본문에서 예수께서 시험받으시는 내용도 단 두절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배열한 것이 아니다.

마가복음 1장은 철저하게 임금의 행보를 날카롭게 엮어놓으므로, 예수가 메시야, 왕이심을 설명하고 있다.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심]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그가 임금이심을 증거해주셨다.

세상이 그것을 보았다.

다음에 성령은 즉시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다.

주님이 큰 영광을 받으셨는데, 느닷없이 예수는 광야로 몰리신다.

그 영광을 느끼실 틈도 없이 험난한 곳으로 당장 내몰리신다.

거칠고, 어둡고, 험난한 시험대에 오르신 것이다.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거기서는 이끄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가의 표현은 가장 강하다.

이끄시는 정도가 아니라, 몰아내셨다.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계획에 맞추어, 다음 순서로 하셔야 할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것이다.

성령의 몰아내심에도 조금도 저항하지 않으셨다.

이런 것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계획을 순수히 성취하고 계셨다.

메시야로서 그가 거쳐야 할 과정을 거절하지 않고, 잘 받으셨다는 말이다.

몰아낸다는 말은 강한 말이다.

원어의 뜻 자체가 쫓아낸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끄심을 전혀 저항하지 않으셨다는 암시일 뿐 아니라, 성령이 예수님의 사역의 주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계획이 순조롭게 성취될 수 있게, 성령이 강력하게 이끄셨다.

시험받는 것도 주님이 임의로 하지 않으셨다.

중요한 점은 침례 받으신 사건 다음에 시험받으신 내용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누가복음도 마찬가지다.

마태복음에서는 그 때에라는 표현으로 연결하고, 누가복음에서는 그리고표현으로 연결하고 있다.

한국어 성경에는 생략되어있지만, 영어성경에는 접속사가 있다.

그렇게 침례받는 사건과 시험받는 사건을 연결하고 있다.

침례 후에는 시험을 받으라는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의 사명과 신분을 승인받으시고, 시험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다.

 

[사단의 정면 공격 앞으로 내몰리심]

 

예수께서는 광야로 시험받으러 가셨다.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예수가 직접 사단을 만나셔야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하늘로부터 인정된 분이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를 대면하여 싸우셔야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요구된 사항이었다.

마귀의 시험은 마귀로 하여금 예수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의 시험대는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도 엄청 부담을 느끼셔야 하는 상황이다.

방금 영광스러운 대관식을 했는데, 갑자기 적지에 들어가서, 연약한 육신을 가진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사단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엄청 위험한 상황이다.

만약 예수께서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큰 문제가 일어난다.

그러면 예수는 마귀를 넘어뜨릴 수 없다고 판명된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결국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문제가 된다.

그렇게되면 예수의 공생애는 그대로 끝나게 된다.

시험에 지면, 당장 아버지의 계획에서 벗어나게 된다.

예수는 뱀의 머리를 깨야하는 임무를 가지셨다.

이미 창세기에 예고가 된 것이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에 대해 구약성경에서는 반복해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분으로 말하고 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는 광야에서 우주를 포함하여, 모든 물질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 가장 악한 자, 가장 교활한 자, 가장 잔인한 자를 만나셔야 했다.

겉으로는 뭔가 있는 것 같지만, 가장 악한 자다.

말을 잘해서, 잘 속이는 자.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독이다.

말을 잘하지만, 속여서 멸망시키는 자다.

예수님의 시험이 있던 곳은 광야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곳이다.

행복과는 반대인 곳이다.

황량하고, 메마르고, 위험한 곳이다.

평탄하지 않고, 험난하다. 바위산, 계곡, 절벽.

광야는 전통적으로 악한 영이 출몰하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본문에서도 광야는 사단의 본거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 하나님을 배반한 자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일을 서슴치 않는 자다.

말로 인류를 망치게 한 자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시면서, 40일 지낸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셔서, 마귀를 만나게 하셨다.

가장 악하고, 가장 교활한 자의 공격을 맨 몸으로, 홀로 받아내게 하셨다.

첫째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살았다. 좋은 환경에서 시험을 받아서 넘어갔다.

그래서, 인류의 운명이 엄청나게 망했다.

이제 마지막 아담이 나타나셔서, 아담과는 정반대의 환경, 아주 나쁜 환경에서 시험을 받았다.

낮에는 사막의 타는 열기, 밤에는 얼어붙는 추위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편하게 누울 수 없다.

기력이 다 고갈되는 상황에서, 금식까지 하시면서 매우 쇠약해지셨다.

성경은 주님이 들짐승과 함께 계셨다고 하였다.

그만큼 육신적으로 위협을 받을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40일동안 음식을 잡수시지 못했다. 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도 저항할 에너지가 없는 상태였다.

살아있어도, 누구에게나 짓밟힐 상황이다.

사람이 두주만 금식해도 상태는 굉장히 나빠진다.

광야에서 있는 것, 그 자체가 지치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는 정신도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주께서 가장 연약해 지셨을 때, 가장 강한 적을 만나셔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가능한 도전을 그가 맞아들이셨던 것이다.

이 시험은 그저 40일 지나고 나서, 마귀가 나타나, 두어시간 괴롭히다가 떠난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간단했다면, 성경에 언급되지도 않았다.

이 시험은 장시간동안 이루어진 것이다.

40일간 마귀의 손에 쥐여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교활한 자가 가장 효과적으로, 계획을 가지고 접근했다.

주님의 가장 연약해진 상태를 보면서, 어떻게 요리할지 계획했다.

그렇게 마귀의 손에 쥐여진 40일이었다.

사람으로 계셔야 하는 분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함부로 쓰도록 하고, 사람의 연약함을 인질로 삼아, 사람의 요구를 듣고, 행동하도록 부추기고 자극했다.

당장 육신이 필요한 것을 위해,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자극하였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계획을 벗어나도록 유혹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가장 연약하실 때, 또 환경이 나빴을 때, 그렇게 했다.

시험만 있던 것이 아니라, 상황이 나쁠 때였다.

 

[시험에서 승리하심]

 

예수는 마귀의 가장 강력한 공격에서 이기셨다.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주님이 전투에서 완전히 승리하셨다.

악조건 속에서 진행된 힘겨운 투쟁에서 그가 승리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마귀는 주님을 쓰러뜨리려고 온갖 힘을 다 썼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천사들이 도착해서, 수종들었다.

새로 즉위한 왕으로서 광야에 예수는 단신으로 들어오셨고, 이제는 세상을 구원하실 왕,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분으로 광야를 떠나셨다.

이후로는 예수는 마귀에게 절대 지지 않고, 승리하셨다.

원수는 예수를 계속 유혹했다.

그러나, 그 날 예수의 승리가 정해졌다.

승리의 못을 확실히 박으신 것이다.

예수께서 시험을 이기시므로, 사단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한 분임을 나타내셨고, 준비도 갖추셨다.

예수께서 고난스러운 환경, 아무런 의지할 힘이 없을 때에도, 이기셨다는 모습은 우리에게 모범이 된다.

우리도 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모습을 하도록 친히 그가 몸으로 보여주셨다.

우리는 따라가면 된다.

, 중요한 것은 주님은 성도들이 시험을 당할 때,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주님은 우리가 시험속에 있을 때, 도와주신다.

주님은 홀로, 권능없이 싸우셨지만,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능히 도우신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시험을 이기라고 능히 명하실 수 있다.

 

[우리도 똑같은 전투에 임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오는 시험은 시험만 따로 오지 않는다.

저항할 힘을 빼놓고, 시험을 한다.

요즘 같이 코로나사태와 교회사태, 가정문제, 자녀문제, 직장문제, 경제문제, 모든 문제가 겹쳐 와서 깜깜하다.

시험이 들어오면, 순간에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다.

마귀는 어려울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달려든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피할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삶의 성격이다.

인간은 연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타락한 인성이 우리의 연약한 점을 결정하고 있는 취약한 부분이다.

이 연약함은 마귀에게 쉽게 노출되어 있다.

그러면서 싸워가야 한다. 굉장히 불리하다.

마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해치려고 한다.

믿는 자들을 유혹하여, 세상으로 몰고가려고 한다.

그렇다해도, 내게 생명을 주시고, 내 생명을 성공시켜가려는, 복을 주시고, 성공을 주시는 주님을 버리지 말자.

첫째, 성령충만으로 이기자.

항상 성령충만하라.

예수를 순종하려는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육신의 생각을 제할 수 있다.

둘째, 순종을 훈련해야 한다.

순종은 생각만으로 충분치 않다. 아무도 돕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한다.

그래서 훈련해야 한다.

훈련해서, 성령의 이끄심에 감이 익숙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를 신뢰하시고, 도우실 수 있게 해야 한다.

순종을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상태가 성령충만한 상태다.

셋째, 각자 위기가 있고, 궁핍함이 있을 때,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공생애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다.

우리의 고난속에서, 우리의 인내와 충성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도 이용한다.

우리 육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사용한다.

성경도 취사선택해서, 자기에게 맞게 사용한다.

그래서, 죄를 향하는 마음을 부추긴다. 판단을 빼앗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자는 그런 것에 속지 않는다.

그러나, 사단은 쉬지 않는다. 인간으로 하여금 육신을 따라가게 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을 다스려야 한다.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육신이 있는 동안 죄의 정욕이 계속 역사하여, 사망으로 끌고 간다.

 

[우린 성령을 의지하여 함께 싸우는 한 몸]

 

주님은 우리가 시험을 이기기 원하신다.

이 세상이 시험을 받기 좋은 환경이다.

예수께서 이것을 다 경험하셨고, 오늘 우리가 이기게 하신다.

상황이 좋지않아도, 이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힘겨운 환경속에서도, 이제는 예수 신뢰하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담대하게 이기자.

세상을 이기려면 개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한다.

우리의 자세는 교회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공생애는 주님의 공생애와 마찬가지다. 교회 전체의 공생애다.

하나님은 교회 전체가 이기는 것이다.

함께 싸우면서, 다른 성도들도 이기게 하자.

세상 사람처럼 이기심으로 가득차서,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안에서 사랑이 충만하여 마음이 강력하게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마귀가 역사할 수 없도록, 교회가 용기를 주고, 행복을 주는 곳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시험을 이기는 자로 가득하게 하자.

다 뛰지 않아도 된다.

몇 사람만 뛰면 오히려 나머지는 낙오자가 된다.

보조를 맞추어 함께 뛰어야 한다.

전체의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될 것이다.

이 승리를 통해 최후에 하나님의 승리로 확인시켜 주실 것이다.

우리가 힘을 합해, 같이 기도하고, 같이 시험을 이기고, 같이 훈련하고, 같이 성령충만하여, 주님과의 행복을 만들자.

성령의 내몰으심을 기쁨으로 알고, 승리하자.

 

환난이 있을 때, 더욱 더 승리하는 성락인되자.

 

설교요지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아들을 세상에 나타내셨으니 이는(3:16)

아들로 하여금 뜻과 말씀과 사랑을 나타내심이다(요일 4:8~10)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와 그의 언행심사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시고(12:48~50)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심이다(15:9)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임의로 행치 아니하시고(16:23)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나타내셨으니(3:11)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완전케 하시는 이요

하나님도 아들과의 관계를 절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하려 하신다(15:2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계신 동안

성령의 적극적인 감시를 받으셨으며(10:38)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1:12)

이것이 삼위일체이신 이의 의()

하나님의 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 중심에 있으니

성령도 아버지도 아들도 의()와 함께하신다(16:10)

이를 공의(公義)라 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거역함은 아들을 거역함이요

아들을 거역함은 아버지를 거역함이 된다(12:30~33)

예수의 공생애는 무슨 일이 있든지

성령이 강력히 역사하심이다

성령 없이는 신유도 이적도 행하실 수가 없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도 함께하셨다

이는 우리 신앙생활의 모범이요 신앙은

하나님의 의()와 말씀과 성령으로 한다

우리는 침례를 받음으로써

육체와 함께 정욕을 다 장사하였으니

성령의 몰아내심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視無言)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6 권세 있는 교훈(210131)  (0) 2021.01.31
No5 복음을 믿으라(210124)  (0) 2021.01.24
No3 예수 기름 부음 받으심(210110)  (0) 2021.01.10
No2 복음의 시작(20210103)  (0) 2021.01.03
No1 복 있는 자(20210101신년감사)  (0) 202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