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31주일 [예수의 권세]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마가복음 11:27~33
마가복음 11:27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마가복음 11:28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마가복음 11: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마가복음 11:30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마가복음 11:31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마가복음 11:32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마가복음 11: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땅에는 하나님의 권세가 임하여 역사하고 있다.
이 권세는 누구에게 배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그 권세를 가지고 역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실 두가지 권세]
하나님이 모든 만물과 만민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
의와 질서를 명하여 세우고, 불의는 심판하여 제거하신다.
이 세상은 특수상황 아래 있다.
모든 인간은 멸망한다.
누구도 죄가 없는 곳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원칙적으로 심판받아야 한다.
심판이 지배할 수 밖에 없는 곳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특수한 형편이 있다.
그런데, 구원이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는 권위를 처음 보여주셨다.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시기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두가지 큰 권세가 있다.
둘중에 하나는 사용하시고, 하나는 유보하신다.
구원하시는 권세와 심판하시는 권세다.
그런데, 지금은 불균형이 발생했다.
원래 내려져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시고, 참으셔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회개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악한 자라도 살려주시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참으시는 것이다.
우리를 참으시는 것 뿐만 아니라, 조금더 시간을 들여 다른 자도 참으시며, 기회를 주고 계시다.
요한복음 12: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요한복음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한복음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한복음 5: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하나님께 생명과 심판의 권세가 있고, 아들에게도 주셨다.
복음은 이것으로 요약된다.
이 두가지 권세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오해말자, 구원할 자를 위해 참으시는 것]
당장 심판이 없으니까, 형벌이 없을 수도 있다고 자기도 모르게 오해할 수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눈에 형벌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진실함으로 정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길 원하신다.
만약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올 것이다.
그러면, 진실한 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따라 나오게 된다.
상황이 불리해서, 꾀를 쓰는 자를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
죄를 갖고 자진해서 나오는 자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리스도로서 원래는 심판의 권세를 갖고 계시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나타나시므로, 형벌을 참고 계시다.
전형적인 역사의 흐름을 막고 계시다.
하나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회개의 촉구에 대해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인간의 결정에 영향을 주려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실로 다가오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은 형벌로 사람을 강압적으로 위협하지 않으신다.
고린도후서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구원하는 권세만 사용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지금은 균형이 깨져있다.
복음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
복음은 구원, 아름다운 소식,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복음이 온 것 자체가 엄청난 무서운 암시를 달고 온 것이다.
복음은 멸망에 대한 다급한 경고다.
원래 백프로 멸망하는데, 살려줄테니 약간의 수라도 나오라.
로마서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약간의 수가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의 흐름을 막으셨다.
이 구원의 권세는 강제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신다.
죄를 간과할 수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지금은 진짜 죄인이 회개하길 기다리는 때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뉘우치는 삶이다.
돌이킨 모양을 계속 가져가야 한다.
죄인이 뉘우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용서할 수 없다.
모든 흐름을 막고, 1프로를 살리기 위해 99프로의 당연한 형벌을 하나님은 오늘 막고 계시다.
아들은 지금 구원하는 권세만 사용하고 계시다.
이런 동안 하나님은 많은 불편함을 당하셔야 한다.
배신도 당하시고, 업신여김도 당하셔야 한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계실만한 어떤 곳에서도 겸손해야 한다.
공식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어디에 있던지, 주님의 손길이 닿을 곳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노력에 누구도 방해의 영향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자신도 모르게라도 방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구원하시지만, 형벌의 권세도 갖고 계시다.
힘들지만 참고 계시다.
심판의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약점삼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구원에만 힘쓰시므로, 형벌에 대해 당장 힘쓰지 않는 것이지, 심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원의 권세 아래 일하는 종들]
주님의 교회는 감독이 있고, 그를 보좌하며 일하는 동역자들이 있다.
주의 종들은 하나님이 부리시고, 평신도들은 자기가 드린만큼 부림을 받는다.
이렇게 그 교회는 구원을 역사한다.
세상은 보지 못하지만, 엄청난 일을 이루고 있다.
온 세상이 힘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을 능히 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기가 서 있는 방향도 잘못 서 있으면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된다.
하나님은 위협해서 일하지 않으신다.
지금은 부드럽게 참으시므로 일하고 계시다.
세상에서는 쓸데없다고 버린 자도 하늘에 올리는 힘이 있다.
하나님은 주의 종을 사용하신다.
주의 종들에게는 권한이 주어진다.
일부 권한이다.
모든 권한을 다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아들도 사용하지 않는 권한을 사용할 수 없다.
주의 종들은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게 못한다.
주의 종들은 공격하면 당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 구원하시는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자는 무서운 심판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사역에 어려움을 주는 것은 우리가 피해야 할 가장 첫번째 것이다.
주님이 일하시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불신앙의 결정적인 것이다.
여기 주의 종들이 일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것이다.
인간의 감각으로도 냄새가 난다.
하나님의 구원의 권세를 무시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사역 현장에서 방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약간의 제스처로만 해도 주님의 구원의 권세를 얕잡아 보는 것이다.
심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구원의 권세는 이레귤러다.
심판의 권세를 막고, 구원의 권세를 사용하시는데, 이 권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자.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이 모독되지 않게 하자.
우리 모든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권세로 버티고 있는 시간이다.
주님이 당신의 종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복음 때문이다.
복음은 주님의 음성이다.
복음은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주님의 구원의 권세는 남아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의 권세를 억눌러야 하는 불균형을 견뎌내며 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에서는 하찮아 보여도 방해해서는 안된다.
감독에게 흠이 있어보여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지 말아야 한다.
거기는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다.
감독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도구로서 쓰임받고 있는 것이다.
주의 종은 주님의 고난의 표현이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종을 혹사하는데서 나타난다.
다 받아내야 한다.
주님이 종들에게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것은 심판이 오고 있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심판 날에는 참지 않으시고, 진노를 퍼부으실 것이다.
숨어있는 것까지 다 꺼내서 갚으실 것이다.
그 날에는 아무도 견뎌낼 자가 없다.
지금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제 설교에 대해 자꾸 이야기 한다.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말해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설교하지 않는다.
내가 그리스도의 스피커가 되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희망도 없다.
나는 요령을 피울 수 없다.
나는 강압하시는 하나님의 압력을 느낀다.
나는 홀로 내 일을 결정할 수 없다.
나는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내가 제발 방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 우리 성도들을 책임지고 살려야 한다.
오늘 한 힘든 작업을 내일 또 해야 한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다할 때까지 해야 한다.
나는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나는 오늘 나를 행할 뿐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외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일에 철저히 쓰여지지 않으면, 내 설교에 구원의 권세를 충만히 담지 않으면, 다른 일 아무 소용이 없다.
주님의 권세를 대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내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을 바꾸어라.
교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이 배려하시고, 희생하시고, 그의 종들에게 짐을 주시는 곳이다.
우리 교회 구원의 권세가 침해를 받으면 안된다.
우리 교회 심판의 권세 아래 맴돌 가능성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심판의 권세아래 떨지 않는, 구원의 권세가 충만한 교회되자.
우리 모두 다른 이야기하지 말자.
사람들의 마음을 뺏는 말 하지 말자.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는 곳에서 자기를 종으로 드려서, 하나님이 강제로 다루시기를 바라는 자가 되자.
교회는 무서운 곳이다.
원래 하나님을 대표했던 권세는 없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권세에 순응하지 않으면, 심판의 권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당신을 구원의 권세속에서 기뻐하시고, 당신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의 아들의 피값을 어떤 방법으로도 찾아낼 것이다.
심판은 오늘 구원을 위해 억눌려 있다는 것을 알자.
오늘 너 구원이 있는가.
아니면 심판이 눈앞에 있다.
이것이 복음의 요점이다.
오늘을 섣불리 넘어갈 수 없는 주님의 계획에 체감하여 협력하자.
구원의 권세가 자기를 덮고 있어야 한다.
많은 분들이 복음의 본질을 모르는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구원의 사역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조심하자.
우리 교회 구원의 권세가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 주의 종들을 고생하게 하신다.
다른 종들은 잘 모르겠다.
하나님은 자기 종에게 마땅한 권리도 앗아가신다.
감독, 평안하지 않다.
[권세 충만해야 할 우리 교회]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종인데, 인생이 엉망진창이 되게 하시는데, 하나님도 부담되지 않겠는가.
일반인들이 잠깐 누리는 기쁨도 누릴 자격도 없다.
주님의 종이라면 그런 것도 기대하지 못한다.
종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무 이슈가 아니다.
주의 종들이 힘들더라도, 진정 믿음 있는 자들을 오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 성도 심판의 권세가 참여할 수 없는 구원의 권세가 충만한 자들 되기 바라시는 것이다.
오늘 심판의 권세를 참으시는 것을 기억하라.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금 교회는 살리는 일만 할 뿐이다.
반대하면 죄를 용서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놔둘 뿐이다.
누구도 훈련이 안되어, 이를 업신여기고, 심판의 가능성을 없애려는 주님의 노력에 걸림돌이 되지 말자.
오늘 교회가 서 있는 것은 주 예수의 구원의 권세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이 참고 계시는 것이 여러분에게 복된 일이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 안에 구원의 권세가 매일 역사하기 바란다.
한시라도, 비뚤어지는 날이 없기를 바란다.
모두 하늘에 계시길 바란다.
[세상 권세 없다고 주님을 얕봄]
본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몹시 얕보고 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화가 나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들어오셨고, 성전을 정화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일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주님은 구원의 권세를 갖고 오신 분이시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권세를 체험하고 있는데,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와서,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성전에서 상인을 쫓아내려면, 유명한 선지자나 대제사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보기에 사회적 지위도 없는 일개 랍비가 와서 하고 있다.
겉으로는 권세없는 자가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고 있지만, 자기 돈줄을 생각하고 있다.
가만 놔두면, 자기들 밥줄이 끊기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1:27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주님이 성전정화를 하시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 다시 성전에 들어오셨다.
그 때, 유대공회 산헤드린에서 보낸 제사장들과 사람들을 만났다.
마태복음 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누가복음 20: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예수께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몰아내고, 가르치셨다.
하루만에 얼마나 깨끗해졌는가.
그런데, 유대인들이 주님을 공격하러 와 있다.
누가복음 19: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누가복음 19: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포인트는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관심을 갖고 있으니까, 함부로 할 수 없다.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
주님은 평안하게 계신 것이 아니라, 살기등등한 곳에서 위기 속에 계시고 있다.
마가복음 11:28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이 말은 당신의 지위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
이것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질문이다.
내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면 잡아가려고 한 것이다.
[질문으로 대답하심]
주님은 다른 누가 보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셨다.
하나님에게서 보낸 자라고 하면 신성모독으로 잡으려고 하고, 내가 한거라고 하면 권위가 없는 자가 했다고 잡아가려고 한 것이다.
마가복음 11: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무슨 말을 해도 걸릴 묘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신기하게도 그들의 사악한 계략을 내다보고 계셨다.
그래서, 주님은 랍비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질문으로 대답하셨다.
그런데, 이 질문은 유대지도자들의 질문보다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가복음 11:30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
요한의 침례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인지물으셨다.
유대지도자들과 요한의 사이가 좋지 않다.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했다.
마가복음 11:31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만약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면, 왜 요한을 따르지 않았는지, 자기들이 하나님을 반대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마태복음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태복음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태복음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또, 요한을 인정한다면, 예수님도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은 침례 요한이 인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말을 못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마가복음 11:32 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
그런데, 요한을 깎아내리면 백성들에게 돌을 맞을 것이다.
마가복음 11: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들은 논쟁에 능숙한 자인데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들은 주님의 권세에 순복하지 않고, 무시했다.
주님이 큰 권세를 가지신 분이지만 낮게 오신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도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이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주님의 권세에 순복하고 따르자.
오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방해되지 말자.
[구원의 권세가 충만한 교회되자]
확실치 않은 말 한마디로, 주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되지 말자.
디도서 2: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구원의 하나님 나를 받아주시고, 심판의 권세를 맛보지 않게 하소서.
설교요지
하나님은
권세와 능력이시다
그가
세상에 아들을 보내셨고 이 아들은 말씀이니(요 1:1)
말씀은 영원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 나타내신(요 1:18)
하나님이시다
예수를 인자라 하니 그를 인간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 신이라 여긴다(막 4:41)
그러나
그는 신도 아니요 인간도 아니요 사람이시다
‘임마누엘’로 세상에 오신 이다(마 1:21~23)
그러므로
하나님처럼 자연을 초월하기도 하시고(막 4:39~41)
사람처럼 자연에 억압되기도 하신다(벧전 2:24)
우리는 그를 누구라고 믿느냐이다(마 3:17)
세상이 아는 것은
예수가 자연을 초월하는 초능력자라고도 하고
사람과 동일한 인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어느 쪽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요(요 20:31)
땅에 계신 사람이시다
○ 성령이 이를 증거하신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 우리가 하늘에 속하여 그의 자녀가 되고
땅에 속하여 인간임같이 두 가지 신분을 가진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이다
○ 우리가 주를 누구냐고 믿는 것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와 그 후사가 될 수 있고
타락한 자요 지옥 자식이 될 수 있다
※ 그러므로 안 믿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 그의 자녀도 되고 영생을 얻는다 (視無言)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마가복음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가복음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마가복음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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