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언베뢰아특강

환언베뢰아특강227(220322)

lks8284 2022. 3. 23. 00:15

220322환언(강석준집사님 정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ㅇ늘도 우리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성도들의 심령을 정말 위로하시고 복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제자들에게 두 손을 들고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리워 가시더라 하는 말씀처럼 주님의 하신일이 다 끝나고 가르치신 말씀이 다 끝나고 명하신 말씀이 끝난 후에 축복하시고 하늘로 가심같이 이제 그 말씀이 다 저들이 깨달을만하기만 하면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것을 더 자세히 듣기 위하여 시무언이 저서한 저술을, 책을 다 읽게 하시고 우리 전 교인이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 읽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하권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하권이 나올 때 아주 중요하니까 먼저 나온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 읽으셔야 그 다음에 그것이 잘 영혼에 소화될 줄 저들이 알고 정말 읽게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종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내가 강의하면서 계속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말씀을 꼭 기억하라.

과거의 교회 생활하던 방식이나 교인들 모아놓고 주일예배나 드리고, 하나님께 복달라고 하는 기복신앙으로 일관된 위험한 일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잘 들으라.

아까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말씀드렸지만, 나도 얼마나 계속 할지 알지 못한다.

여러분 책을 좀 읽으라.

여러분이 책 읽기를 싫어하면, 육체적으로도 손해다.

사람의 뇌세포는 스무 살만 넘으면 하루에 십만 개씩 소멸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분이 깊이 기억해놓지 않으면, 사라져서 다시는 안돌아온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더한다.

그리고 자꾸 건망증이 생긴다.

건망증이 심해지다가 치매도 온다.

치매의 첫 번째 증상이 자기가 아침을 먹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만 잡는다.

치매예방을 위해 뇌에 많이 기억 시켜야 한다.

그런데 성령으로는 확고하게 영혼 속까지 들어간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만은 치매 걸리는 일이 없다.

어떤 사람은 아주 훌륭한 기독교인들은 치매를 안 걸린다고 한다.

찬송 많이 하고, 기도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성령 충만해서 그런 것이다.

치매가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식들 속 썩일 것이다.

나는 밤에도,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책을 쓴다. 나는 쉬지 않는다.

내가 나이 들어서 치매 걸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꾸 머리를 사용해야 한다.

머리 사용하는 것은 다른 것이 없다.

머리가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머리가 일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주 성찬하면서, 주님을 기념한다.

계속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다.

예언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렇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우리에게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야기로 되어있어서, 기억하기 쉽다.

아브라함 이야기, 야곱 이야기, 다윗 이야기, 이야기로 되어있기 때문에, 기억하기 아주 좋다.

그냥 말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 되어있어서, 아주 기억하기 쉽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기억하게 만든다.

수만 가지의 사건을 다 이야기로 써서, 다 기억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여러분, 열심히 정신을 차리고 들으라.

 

예전에 베뢰아아카데미에서 강의할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4복음서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묻기를 4복음서가 유사하면서, 왜 다르냐고 한다.

어디는 두 렙돈이라고 했는데, 어디는 세 렙돈이라고 하고, 숫자도 틀리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틀림이 없이 정확해야 하는데, 유사하면서도, 말이 왜 다르냐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나온다.

이와 같이 4복음서는 각각 방향에서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 사람을 가운데 두고, 카메라를 한 바퀴 돌리면서 찍는 장면이 있다.

이와같이 사방에서 봐서, 딱 맞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완성한다.

 

오늘도 잘 들으라.

매 시간마다 약60-70프로는 했던 것을 반복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여러분이 들을 때, 지난번에도 들었다고 하면 놓치고 만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연결해 가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도, 화면이 전환할 때, 화면이 서로 섞이면서, 화면이 바뀐다.

그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그런 일을 했었기 때문에 잘 안다.

필름을 양쪽 끝을 어떻게 자르면서, 연결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면이 겹쳐 나오게 한다.

이처럼 내 강의를 잘 들어주기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성령으로 신앙생활 하도록 분부하셨다.

예수를 주신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다.

계시는 하나님이 내보내신 선물이다.

왕의 명령을 내릴 때, 반드시 이루듯이, 그렇다.

자연계시도 있지만, 모든 자연이 하나의 비유다.

그런데, 예수는 비유가 아니라,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계시)이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이 말은 계시라는 말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의도요, 하나님의 결심이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세상에 나타나셨다.

예수는 하나님이 특별하게 명하신 특별계시다.

예수가 오셔서, 아버지가 명하신 일을 마치시고, 하늘에 오르사,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은 우리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 아니다.

너희는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다.

성령을 받기까지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성령이 오신 다음에 증인이 될 것이다.

성령을 받으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이지, 담임목사의 취향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의 머리 위에 있더니,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 광경을 생각해보라.

엄청나지 않은가.

하나님의 특별계시, 특별지시다.

계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말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이렇게 반드시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반드시 받고, 성령 충만 해야 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실 때, 성령으로 하셨다고 하였다.

그가 요단강에서 성령받기 전에, 착실한 보통사람이셨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침례 받고, 성령이 임하시자, 순간에 변해버렸다.

충만하다.

우리 신앙은 예수께서 침례 받기 이전과 침례 받은 이후와 전혀 다르심 같은 것이다.

침례 받기 전에는 나사렛사람 목수의 아들이다. 그러나 침례 받고 나서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인정하셔야 한다.

내가 말한 것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 안에서 시키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의 계시(계명)가 곧 영생인 줄 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와야 한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당신보고, 언제 이해하라고 했는가.

믿으라고 했다.

다볼 산에서 이제까지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내려온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게 하셨다.

여기서 구름은 수증기가 아니라, 하늘구름 곧 천사들이다.

천사들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만 남았다.

저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렇게 우리에게 특별계시를 주셨다.

듣고 믿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안된다고 하는 사람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기의 똑똑하고, 명석한 머리로 판단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믿는 것이다.

믿을 때, 그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깨달았으면, 순종하는 것이요, 이해 안 되면 복종하라는 것이다.

전에 농부 할아버지가 이제까지 과일을 잘 맺던 나무를 손자보고 다 자르라고 했다.

올해도 농사를 지어야 할 텐데, 왜 자르라고 합니까.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무가 수명이 있어서, 몇 년이 지나면, 과일을 맺어도, 좋지 않다.

그래서 새나무를 심으려고 뽑으라고 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할아버지 명령이면 그대로 복종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는 순종하고 복종하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하신 특별계시다.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우리 속에 이미 하나님께서 썩어질 육체에도 기억할 수 있는 기능을 주셨다.

그런데, 20세 넘어서 하루에 십만 개씩 세포가 죽는다.

나중에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치매 걸린 사람을 보면, 공부하지 않고, 무식한 옛날 사람이 많이 걸렸다.

옛날에는 망령 났다고 표현했다.

애들이 무서워서 그 앞에 지나가지도 못했다.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너희는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인자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도 다 인자다. 그런데, 예수께서 인자라고 강조하신 것은 능력이 있으시니까, 예수를 별난 사람으로 여길까봐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저는 귀신들려서 하는 것이다,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다고 하였다.

그게 아니라, 예수가 인자라 하심은 너희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다.

돈도 없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보통사람이다.

신이 아니고, 인간으로서 완전히 표준의 사람을 말한다.

사람으로서 완전하다.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을 놓고,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이다.

목수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 나사렛 사람, 그 이상 알아낼 것이 없으면 그냥 끝나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니이다.

당신은 보통사람인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혈육이 일러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러주신 것이라 말씀하시고, 아무에게도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성령으로 말하지 않고는 절대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도록 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도 예수 믿고, 성경을 꽤 많이 읽었어도, 설교 들으면서, 예수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들어본 적이 없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하니까, 그저 기독교 교리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교리도 아니고,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이 물건 살 때, 내가 마음에 들면 비싼 돈을 주고도 사는 것처럼 확신이란 것은 내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피로 사셨다.

완전히 사야만 자기 소유가 된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

제사장이나 장로들이 예수를 시기해서 죽이고 싶어도, 어떻게 죽일지 몰라 연구했다.

예수에게 어떤 흠이 없다.

그 때, 가룟 유다가 돈을 받고 팔았다.

당시는 사람이 팔려 가면 노예라고 한다.

노예라는 말은 죄인이라는 말이다.

노예는 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의 노예, 죄의 노예라는 뜻이다.

이미 율법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값을 지불해서 사야한다.

대제사장이 삼십 냥을 주고, 예수를 샀다.

그래서 예수는 대제사장 앞에 팔려온 자가 되었다.

예수를 사야만, 그들이 예수를 결박할 수 있고, 빌라도에게 넘겨서, 죽여 달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정식으로 팔려갔고, 그는 피 흘리셔서,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값 주고 사셨다.

 

사람과 산자의 어미가 합해진 것을 생령이라 한다.

육체만 있을 때는 식물을 먹어야 산다.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으로 산다.

마귀가 예수에게 너는 돌로 떡 만들어 먹으라 할 때,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다.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돌로 떡 만들어 먹으라는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사단이 믿고 말한 것이 아니다.

마귀가 예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때는 원어 상에 고유명사가 아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아니냐 하는 것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통명사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체 하니까, 돌로 떡만들어 먹으라는 뜻이다.

아직까지 영을 모르는 것이다.

예수는 그 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산다고 하셨다.

사마리아 동네를 지나갈 때, 누가 예수에게 잡수실 음식을 주었는가 할 때, 내 먹을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 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육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셨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살아날 수 있는 조그만 틈도 없이 완전히 죽는다.

마귀는 하와에게 접근해서, 하나님은 죽는다고 하셨지만, 죽지 않는다, 하나님이 거짓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먹는 날에는 너도 선악을 아는 자가 되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먹었다.

탐스럽기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여 따먹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

원죄는 사람 속에서 죄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법이 있다. 법이 있어야 죄가 있다.

율법의 권능은 죄요, 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그래서 원죄가 있으면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원죄는 인간의 근본이 죄인이 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죄인으로 인간이 출발한다.

먹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므로, 그 때부터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난다.

그 다음 하와는 뱀과 원수가 되어, 뱀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아담은 식물을 얻기 위해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고,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죽옷을 입혀주셨다.

전에는 한 생령 안에 있었던 것을 이제 가죽옷을 입혀서,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처음 생령에게서 태어난 자가 가인과 아벨이다.

원죄의 정체가 나타난 것이다.

심판 때, 이렇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 검사하는데, 겉으로는 몰라도 딱 드러난다.

안 드러났어도, 이미 죄인인데, 그것이 드러난 것이 가인과 아벨이다.

몇 대가 지난 것도 아니고, 처음 가죽옷을 입혀서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어,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이렇게 드러난다. 이것이 원죄다.

태어날 때, 누구나 근성을 가지고 나온다.

사람의 근성이 있기 떄문에, 태어나자마자 짐승노릇하지 않고, 사람짓을 한다.

서서 걷는 동물은 사람뿐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걸으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근성이다.

사람에게는 다른 동물들이 갖지 않은 심성(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짐승은 마음이 없다.

짐승은 살아있는 정신만 있는 것이지, 마음은 없다.

하나님은 마음을 갖고 계시다. 사람도 하나님처럼 마음을 갖고 있다.

개나 돼지, 소가 새끼들이 잘 돌보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본성이다.

동물들은 감각적으로 동작을 한다.

사람에게는 심성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만들어서 그렇다.

가인이 아벨을 질투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네게 있는데, 너는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가인은 이것을 다스릴 능력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다스릴 법이 없다.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가 문에 엎드려졌다는 말은 피가 문지방에 묻었다는 뜻이다.

본래 죄인이니까, 마음이 악해진 것이다.

심성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선악과를 먹으므로, 타락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선악을 아는 양심의 율법이 자기 본성이 되었다.

그래서 죽게 되었다.

 

선악을 아는 법아래 언제나 죄가 있다.

법이 있으면 죄가 있고, 법이 없으면 죄가 없다.

 

양심은 선악을 아는 법이다.

 

사람은 태초부터 선악을 아는 양심()을 갖고 태어난다.

선악을 아는 법이 원죄다.

선악을 아는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 하시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의다.

하나님 보좌의 기초는 의다.

아기가 태어날 때, 이미 양심이 있다.

개나 돼지는 양심이 없다.

그러니까, 죄도 없다.

본래 잡혀먹기로 작정하고 태어났다.

사람은 양심을 갖고 태어난다.

하나님의 심성을 가져야 하는데, 선악과를 먹으므로, 심성이 양심이 되었다.

원죄는 선악을 아는 법을 가진 것이다.

네가 선악을 아는 법을 가지면 정녕 죽는다.

그 법 아래서는 살아날 길이 없다.

인간은 잉태할 때부터 태중에서 인간으로 자란다.

그러니까,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난다.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 하였나이다

51: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 하리이다

51: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

 

죄를 시인해야만 살아난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갓난아이가 무슨 죄가 있냐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이 양심이다. 양심은 선악을 아는 법이다.

누구든지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뱃속에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근거가 확실하다.

 

에덴에서 쫓겨날 때 가죽옷을 입혀, 각각 남자와 여자, 육체가 되었다.

이전에는 자기 속에 영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투명한 인간이 드디어 가시적인 존재가 되었다.

선악을 아는 양심의 사람이 처음 에덴 바깥으로 나가서 시작한다.

이들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하나님이 어떤 계명을 주지 않으셨다.

아담이 선악을 아는 자가 되어, 거기서 태어난 자녀들도 양심을 가진 자로 시작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율법을 받았는데, 그것은 원죄를 아는 법이 아니다.

그중에서 열 가지 계명만 주신 것이다.

아주 짐을 가볍게 하신 것이다.

이것으로 안 되기 때문에, 요한이 회개하라고 하였다.

십계명으로는 가나안 땅까지 왔지만, 천국에 비하면 가나안 땅은 저주받은 땅이다.

침례 요한이 침례를 주어, 회개하니까,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원죄로 돌아온다.

침례 요한이 침례를 주어, 율법에서 벗어났지만, 해방이 아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

원죄를 깨닫게 하려 하신 것이다.

살인하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미워해도 살인한 것이다.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겁게 하려고 오셨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하여 더 무겁게 하셨다.

간음하다가 잡혀 온 여인을 데려오니까, 예수께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다.

뭐라고 쓰신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마음으로 미워해도 살인한 자...이렇게 써내려 가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돌을 내려놓고, 다 도망갔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아벨의 제사가 상한 심령이다.

피 흘리기까지 하는 것이 얼마나 상한 것인가.

본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선악과를 먹기 전에 아담은 자기 속에 영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부로 살지 않았다.

나중에 갈라놓고, 에덴 바깥에서부터 인간이 시작된다.

 

인간은 양심을 가진 동물이다.

본래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틀린 말이다.

죄의 소원이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려라.

그러나 다스릴 능력이 없다.

선악을 아는 양심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이다.

그래서 사람은 죽기로 작정된 것이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산다 해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어떤 피할 방법이 없다.

선악을 아는 양심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인간에게 심판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를 모른다는 것은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는 것이다.

예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이 땅에 의인은 없다.

죄인을 불러, 하늘로서 거듭나게 해서, 하늘로 데려가신다.

 

1. 예수를 안 믿으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미 끝난 것이다.

육신을 떠난 순간 귀신이 된다.

 

2. 예수 믿고, 생명을 얻었지만, 지속하지 못하고 타락하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사랑을 잃었다고 경고하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였다.

주님이 너와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예수를 알고도 짐짓죄를 범하면,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

자기 나름대로 달란트를 잘 간수하고, 주인이 돌아와서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자기 생각뿐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죽도록 충성하고, 나중에 주인이 와서 다섯 달란트를 더 받았다.

그러나 땅에 묻어둔 자는 주인에게 무익하다 하고, 달란트도 빼앗기고 쫓겨났다.

우리는 어렸을 때,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4.19혁명 후, 나는 자유를 제일 많이 느꼈다.

육신은 제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자유를 많이 느꼈다.

그러나 요즘 자유라는 말을 쓰는가.

자유가 쏙 빠졌다.

자유는 방종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시니, 우리는 농사도 짓고, 여러가지로 사용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으니, 누구든지 부지런하면 성공할 수 있고, 게으르면 못한다.

그런데, 오늘날 국민들은 정치가들에게 속아서, 일 안해도, 죽어라 일하는 사람과 평등하려고 한다.

성경은 평등이라는 말이 없다.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이 다르다.

기독교만이 은혜, 축복을 말한다.

은혜는 거저 받는 것이다.

이렇게 무한한 것이 있어서, 이것이 자유다.

우리 헌법은 자유대한민국이다.

자유가 사라졌을 때, 기독교는 전멸할 수도 있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헌법에서 말하는 자유대한민국, 이 권리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신령해도, 정치적인 사상이 들어오면 돌아서는 사람이 많다.

자기 영혼에 유익하지 않다.

우리는 정치와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종교는 은혜도 자유도 없다. 자비만 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비를 찾아야 한다.

어떤 정부가 들어와도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자유가 없으면, 그것이 적그리스도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려 하심이다.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하려 하심이다.

 

3. 예수 믿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죽어도 영생에 들어가고, 낙원에 들어간다.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다.

그가 하늘에 가셔서, 하늘보좌에 계시다.

우리가 동일하게 후사로서 영생에 들어간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 진리가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

무슨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의는 다 털어버리고, 십자가에 달린 강도처럼 나는 의가 없으니, 주님의 은혜로만 들어갑니다.

은혜로만 들어갈 때,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가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연합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양심을 법이라 했는데, 여기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들어와야 한다.

성령의 법은 은혜다.

그런데, 은혜를 경히 여긴다.

그러면 심판받는다.

나는 심판받지 않으려고, 내 공로 다 털어버리고, 주님의 은혜로만 살려고 한다.

은혜를 받아야, 죽으면 낙원에 가고, 낙원은 주님을 만날 신부의 대기실이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은혜의 법)이 들어오시니까, 우리 속에 법이 두가지 법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법과 반대하는 법이 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야 한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지고 만다.

성령으로 양심의 법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또 말씀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깨닫고 정말 우리가 은혜! 은혜! 예수 믿지 아니하면 망한 것이요, 예수 믿어도 그 생명을 지속하지 못하면 심판을 받고 예수 믿어 그 은혜! 그 은혜로! 영생이신 예수 안에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사람은 낙원에 간다는 것을 믿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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