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언베뢰아특강

환언베뢰아특강230(220412)

lks8284 2022. 4. 13. 00:09

220412환언(강석준 집사님 정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도록 불러주시고 신령한 길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들을 성령으로 역사하사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그들을 깨끗케 하시고 그들 속에 역사하는 이 바이러스가 다 물러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종을 주장하사, 입술을 주장하사 말씀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금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

신본주의인가 인본주의인가.

이것을 모르고 있으면 큰일이다.

신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

첫째 부활에 들어갈 수 있고, 심판을 받지 않지만,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은 주여, 주여 하고 불러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

자기의 사상에 따라서, 심판을 받고, 안 받고 길이 갈라진다.

그래서 설교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를 꼭 들어야 한다.

다볼산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셨다.

저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예수께서는 내 말을 믿으라 하셨다.

,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니, 요한의 때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를 당한다고, 하시고, 귀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다.

계시록에서는 일곱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데, 일곱 교회는 세상의 교회들의 모형이다. 이 교회들에게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하고, 전하는 자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말씀은 로고스라고 하는데, 하나님이신 말씀을 말한다.

이라는 것은 귀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본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들어서 믿도록 하셨다.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믿는 것은 보지 않은 것을 듣고, 그 말을 믿는 것이다.

보는 것으로 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 알기 때문에 믿지 않아도 다 안다.

본 것은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믿음은 보지 않은 것을 듣고, 믿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 중에서도 믿음이 없는 것을 꾸짖으셨다.

예수의 부활을 먼저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으므로, 분히 여기셨다.

믿음은 듣는 것이다.

눈에 안보이고, 만져본 적도 없어서, 귀로 들은 것을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믿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면서 살지 않는다.

오히려 노파심으로 자식에게 꾸짖기도 하고, 경고도 한다.

그것은 사랑해서 하는 말이지, 야단하는 말은 아니다.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훈계는 사랑이다.

그런데,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전달받는 사람에게 기분 나쁘게 들리고, 화나게 들리니까, 오해한다.

전하는 사람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단강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하나님은 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아도, 사랑하고, 기뻐하지만, 말씀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 기뻐하는 자라고 아는 것이다.

자기가 가난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의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심지않은데서 거두신다고 하였다. 그와 같은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다. 그 말씀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예수를 두고, 하나님 아버지가 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다.

하나님의 입에서 처음 선포가 나왔다.

그 때, 성령이 예수에게 임하셔서, 예수를 인치셨다. 아주 보증하셨다.

성령은 진리의 영인데, 그는 자의로 말씀하지 않고,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서, 저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신 말씀을 성령이 들으셨고, 성령이 가르치시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요, 예수가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만 강조하시는 것이다.

언어를 여러 가지로 사람에게 납득이 되도록 말하는 것뿐이지, 말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성령이 들으시도록 말씀하신 것을 성령이 들었기 때문에, 들으신 것을 말씀하신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 예수의 영광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요, 기뻐하시는 분이시라고 성령이 증거하신다.

지금도 성령이 우리 속에서 증거 하시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기뻐하시는 자가 되려면, 예수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육체와 정욕을 침례로 장사지내고, 예수와 연합한다.

예수와 연합한 자는 하나님이 예수를 향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도 똑같이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들이라 하신다.

여기서 사랑하시는 자와 기뻐하시는 자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는 그가 순종하여 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받으신 직분이다.

그 직분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심부름을 시켰는데, 아버지 뜻대로 잘 순종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기뻐한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종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와 똑같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면, 하나님이 구하시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제사는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받으신다고 하셨다.

회개는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신다.

회개가 없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받으신다.

예배는 하나님을 뵙는다는 의미다.

제사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예배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 뵈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 와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이 뭐 하는가 쳐다보고, 목사의 설교 들어나 보자 한다.

사람보고, 물건보러 왔지, 하나님의 얼굴을 뵐려고 하지 않는다.

이방인들도 제사하지만,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제사하면서, 죽은 조상을 찾는다.

종이에 제방을 써 붙인다.

현고학생부군신위.

인간은 평생 배우기 때문에 죽은 자에 대해서도 학생이라고 표현한다.

주님은 나는 겸손하고, 온유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 하셨다.

배울 때는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 하셨다.

주님이 사람 앞에 겸손하다는 말이 아니고, 아버지 앞에 겸억 하시다는 것이다.

무엇이 온유하신가.

사람들에게 온유하시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사람 앞에 온유하게 나타나신 자신을 배우라 하셨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부모의 얼굴을 알아본다.

나는 아들을 낳고서도 부흥회를 다니느라, 아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서워했다.

배워야 하는데, 배울 틈이 없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는 아버지 앞에 겸손하시고, 세상인류 앞에 온유하시다.

선생이 제자 앞에 온유하지 않으면 제자가 나올 수 없다.

사람들은 선생이 무조건 때리는 줄 안다.

옛날 부흥회 다닐 때, 어떤 장로는 우리가 못났으니, 많이 혼내달라고 했다.

집에서 사랑받는 아이들을 글방에서는 때리면서 가르친다.

글방 안에 싸리나무 회초리, 뽕나무 회초리, 참나무 회초리, 세 가지를 둔다.

어떨 때는 싸리나무로, 어떨 때는 뽕나무 회초리, 어떨 때는 참나무 회초리로 때린다.

어떤 매를 들었느냐에 따라서, 자기가 어떤 꾸지람을 받는지 안다.

어려서, 선생님이 때리면, 핏줄이 죽죽 생겼다.

그런 문화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선생에 대해 때리는 사람, 엄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한문을 가르칠 때는 엄해야 기억난다.

맞으면, 일생 잊지 않는다.

글방에서 매로 배운 글은 일생 잊지 않는다.

다른 공부는 못해도 그것은 잘한다.

그것이 한국의 풍습이어서, 오늘 사람들은 선생이라면 때리는 사람으로 안다.

그러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사납다고 생각한다.

온유해야 한다.

온유는 선생의 성품이다.

너희는 내게 와서 배우라.

주님은 아버지 앞에 겸손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고, 사람 앞에서는 온유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 앞에 겸손 떤다.

성경은 일부러 천사들 앞에서 겸손한 체하면 상을 다 잃는다고 하셨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은 겸손치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하는데, 버틴다.

교만하다.

사람 앞에 겸손은 겸손한 체 하는 것이다.

사람 앞에 고개를 숙이지만, 속으로는 자기 자존심을 꺾지 않으려고 한다.

교회에서 겸손하라고 하는데, 목표를 사람 앞에 두고 있다.

사람 앞에서는 온유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다 형제다.

성경에 겸손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서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기초는 예수를 배우는 것인데, 예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요, 기뻐하시는 자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직분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를 배우라.

그를 배울 때, 가장 기초는 겸손과 온유다.

나는 겸손하고, 온유하니, 내게 배우라.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사람 앞에서는 온유하다.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시다.

우리에게 기초다.

오늘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워야하는데, 일부러 겸손한 체한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핑계로 불순종한다.

배워도 모른다는 핑계로 성도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도, 정말 겸손해야 하는데, 겸손한 체한다.

사람뿐 아니라, 천사 앞에서도 일부로 겸손한 체하면 상을 다 잃는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순종하는 것이 겸손이고, 사람 앞에서는 온유한 것이다.

온유는 참을성이다.

엄마가 아무리 성질이 나쁘고, 고약해도, 자식에게는 무한히 참는다. 온유하다.

가슴이 타들어가도 참는다.

시골에서 어렸을 때보면, 하도 답답해서, 네 어미 잡아먹으라는 소리를 한다.

그렇게 참아가면서, 자녀를 위해서 하는데 속을 썩이느냐 하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성품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드린다고 할 때, 정말 겸손한가.

어떤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앞으로 자리를 옮겨달라고 하니까, 성질내면서 나가는 사람도 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뵙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의 목적이 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있다.

그분 앞에 겸손하면, 끝까지 그 말씀을 듣는다.

그가 내게 뭐라고 훈계하시는가.

열심히 힘을 내어 듣는다. 이것이 순종이다.

그런데, 그냥 앉아있다.

나는 손자들에게 학교에서 선생님의 입을 보라고 말한다.

입을 보면, 가르침이 다 들어온다.

그런데, 선생님 뭐 입고 왔는지, 다른 아이들이 뭐하고 있는지 보면 공부 못한다.

아이들이 머리가 나빠서 공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지 않아서 공부 못하는 것이다.

책을 읽어도, 글 앞에 겸손하면 다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집 지을 때도 집터를 닦고, 다지고,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다.

이와 같이 터를 닦아야 한다.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아무도 이 터 위에 다른 터를 세울 수 없다.

우리는 기초부터 잘해야 한다.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말이다.

다음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심판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심판 없이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

주님 앞에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 내가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 믿는다고 해도 알고 믿는지, 모르고 믿는지 나뉜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만 천국에 들어간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귀신이 되지는 않지만, 심판을 받아야 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의 제자이지만, 믿지 않으므로, 저는 마귀라 하셨다.

우리는 분명히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알아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일 때,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셨다.

그 때, 하와, 그 영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 주매, 남편도 먹고, 먹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다.

이 때, 하나님이 그들을 각각 분리시키셨다.

남편, 곧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는 이마에 땀을 흘려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간다.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므로 끝이 난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너는 뱀의 원수가 된다고 하셨다.

하와가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 주었지만, 하나님은 아담에게 누가 너에게 먹으라 하였느냐 하셨다.

아담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가 먹으라 해서 먹었다고 하였다.

여자는 뱀이 나를 꾀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뱀은 저주를 받았다.

뱀은 여자(산자의 어미) 때문에 저주받은 것이다.

여자가 뱀을 정죄했다.

그래서 뱀은 여자와 원수가 되었다.

그 때, 여자는 뱀과 싸운다.

육체와 영이 할 일이 있다.

육체는 땀을 흘려 수고해야 한다.

무엇을 심어야, 심은 대로 거둔다. 일을 해야 먹고 산다.

오늘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면서, 일은 않고, 기도하면 누가 먹여주지 않는다.

신앙이 아주 좋고, 성령 충만하여, 은사가 있고, 귀신을 쫓을 수 있어도, 육체를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해와 비와 바람을 주셨다.

육체는 수고해야 한다.

오늘날 목사들이 교회 간판을 붙이고, 기다리고 있으면 교인이 오지 않는다.

부흥 안 되는 교회는 목사들이 땀을 흘리지 않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교인들을 위해 예배당을 각처에 만들어놨지만, 그것만 지키고 있다.

양육해서 더 크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우리 교회 지 예배당을 해마다 돌아다니면서 점검했다.

백 가정을 시무하는 목사가 3년이 지나도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죽을힘을 다해 땀을 흘려야 한다.

그러다가 육체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영은 마귀와 싸워야 한다.

우리는 마귀에게는 시험 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속지 말아야 한다.

마귀는 우리를 원수로 여긴다.

누가 더 공격적이겠는가.

마귀가 하와를 원수로 여기기 때문에, 원수 갚으려고 적극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가 역사한다는 것도 알고,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불신자를 지배하고, 역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격적이지 않다.

주기도문에도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였다.

우리는 영적으로 시험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귀가 공격할 때,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가 마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한 자에게서 구원해 주소서.

 

시험 들지 않도록 방어해야 한다.

마귀는 적극적으로 공격하는데, 방어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크고 강한 러시아는 막 공격하고, 우크라이나는 방어한다.

마귀는 절대 쉴 수 없다.

우리의 영이 마귀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마귀를 원수로 여겨서 하나님이 공격하신다.

마귀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공격하지 못하지만, 사람을 원수로 여겨 공격한다.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뱀의 짓이라고 고발한 자가 하와(산자의 어미).

하나님이 모르시겠는가.

아담에게 물으시고, 하와에게 물으시고, 하와가 고발했다.

하와의 고발로 인해서, 마귀는 저주를 받았다.

저주받은 마귀에게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셨다.

마귀는 원수를 갚으려고 막 공격한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마귀에게 원수 갚으려고 하지 않는다.

교인들도 얼마나 태만한가.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 공격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공격이 오면, 방어만 한다.

성경에 화전(불화살)을 막아낼 방패를 가지라고 하였다.

우리는 방패를 가져야 한다.

철저히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조는 것을 보시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하셨다.

기도는 방패와 같다. 원수를 방어하는 것이다.

마귀는 끝까지 사람의 영혼을 원수로 여겨서, 공격한다.

 

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친에게 보소서 아들이니이다하시고, 제자에게 네 모친이라.’하셨다.

오늘날 성도는 여자의 후손이다.

마귀는 예수를 공격하고, 신자들을 공격한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북한은 핵무기를 잔뜩 가지고 있고, 어느 때 공격할지 모른다.

우리 정부가 방어개념이면, 이기기 어렵다.

핵폭탄 던지면, 일단 절반은 없어진다. 수습도 못한다.

그래서, 지난번 대통령 당선자가 선제공격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절대로 맞는 말이다.

이쪽을 공격하려는 낌새가 있으면, 먼저 공격한다는 것이다.

공격하지 않으면, 방어는 참 어렵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격하셨는가, 당하셨는가.

그는 계속 당하셨다.

그는 마귀를 멸하러 오셨는데, 초림은 멸하시기 전에 사람들을 먼저 구원하는 길을 만드신 것이다.

마귀를 먼저 멸하면, 마귀 속에 있는 인류도 다 죽는다.

마귀를 멸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억압된 자들이 살 길을 만드시고, 재림하실 때, 마귀를 멸할 권세를 가지고 오신다.

목적은 처음부터 똑같다. 마귀를 멸하시는 것이다.

멸하시기 전에 피난시키고, 공격하시는 것이다.

마귀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공격적이고, 원수로 여긴다.

그런데, 우리가 방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기초다.

오늘 사람들은 마귀가 보이지 않으니까, 어떻게 할 줄도 모르고, 입으로만 마귀와 싸우자고 한다.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12: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는 일곱을 데리고 온다.

그렇게 심하게 계속 공격한다.

정신 차려 들으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스템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멸해야 하기 때문에, 하와가 마귀를 멸할 수 없다.

유다서에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 마귀와 다툴 때, 감히 훼방하는 말을 못하고, 주께서 너를 꾸짖기 원한다고 하였다.

주님만이 마귀를 멸하시지, 천사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우리가 믿음이 좋아도, 마귀를 멸할 수 없다.

마귀를 지옥 보내는 것은 주님만이 하신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마귀를 지옥 보내러 오신다.

주님의 초림은 인간을 피난시키려고 하신 것이다.

피난시키지 않으면, 마귀 속에 있기 때문에 함께 망한다.

마귀에게서 끄집어내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거기 남겠다는 사람은 그냥 놔두고, 다시 오실 때는 마귀를 멸하신다.

 

하나님 아들의 초림의 뜻은 예수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이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이름으로 오셨다. 그는 그리스도 직분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대신 죽으셨다.

그래서 음부의 대문을 열어놓으셨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시고, 음부의 대문을 깨셨다.

첫 언약은 이삭에게 맹세하셨다. 네 씨에게서 대적의 문을 밟을 자가 나오리라.

사망권세, 곧 사망의 대문을 부수신다.

재림은 예수라 하지 않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인자라 한다.

초림 때는 말씀이 오셨다.

재림 때는 말씀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인자가 오신다.

 

7: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처음에는 말씀이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육신이 되어오셨다.

그가 오셔서 인자가 되셨으니, 다시 오실 때는 그대로 인자로 오신다.

인자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이시다.

우리나라 자동차들은 운전석이 좌편에 있다. 우리나라는 좌측이 높은 사람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영국은 운전석이 우편에 있다. 일본도 우편에 있다.

왕이 있는 나라들은 운전석이 우편에 있다.

 

예수가 우편에 계시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그가 심판하러 오시는데,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러 오신다.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안믿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고, 주여, 주여 하는 종교인들을 심판하러 오신다.

 

인자가 오실 때는 하나님의 백성은 심판하러 오시고, 마귀는 멸하러 오신다.

 

예수 이름으로 오시는가, 인자로 오시는가.

예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말씀이 육신으로 오시고, 다시 오실 때는 못자국을 가지신 인자가 권세를 받아서 오신다.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가셔서,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

처음 오실 때는 예수 이름으로 오셨고, 다시 오실 때는 예수란 이름을 갖고 있지 않고, 인자로 오신다.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못 박혀 십자가에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그 못 자국을 가지고 하늘로 가신 인자가 심판하러 오신다.

사람들이 심판이라니까, 마귀를 심판하는 줄 안다.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이 세상임금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주여, 주여 하는 종교인들, 짐짓죄를 범한 자들은 아직 정죄받지 않았다.

그 때 오셔서 심판하신다.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지도자들은 알고 설명해야 한다.

알고 있어야, 엉뚱한 설명하지 않는다.

 

예수 초림은 예수 이름으로 오셨고, 재림은 인자가 권세를 가지고 오신다.

 

초림과 재림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한다.

예수가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란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니까, 예수란 이름은 그리스도라는 직분을 가지셨다.

인류를 먼저 피난시키시고, 그가 다시 오실 때는 마귀를 멸하러 오신다.

그 때,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다.

 

[신본주의 사상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다.(요일3:8)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를 멸하려 하심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다.

아담부터 인류가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다. 우리는 속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원수는 마귀다.

하나님은 마귀를 원수로 여기신다. 그러니까, 원수를 공격하시는 것이다.

마귀는 방어할 능력이 없다.

음부의 열쇠가 인자의 손에 들려있기 때문에, 그가 열면 열리고, 닫으면 다시 열자가 없다.

 

[인본주의 사상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사람을 위하여 오셨다.

사람중심으로 한다.

 

본래는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러 하시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구원하려고 하신 것이다.(3:16)

 

성경을 어떻게 시작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이름으로 오는가, 인자로서 철장권세로 오시는가 하는 것이다.

신본주의는 요일3:8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로서 철장권세로 오셔서 마귀를 멸하신다고 한다.

이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빨리 해방시키고, 멸하신다.

인본주의는 요3:16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위해서 오신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재림에 대해서 희미하다.

재림이 원 목적이다.

초림은 중간에 오셔서 피난시키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감사한 말인데, 마치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이 죽으셨다는 것만 생각한다.

이것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인간을 사랑하사, 구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상에서 시작하는가.

마귀를 멸하려 하심.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대단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마귀는 자신이 멸망할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그리스도인을 해치려고 한다.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마귀는 계속 참소하여 정죄받게 하려고 한다.

선악을 아는 양심을 충동시켜서, 계속 죄짓게 한다.

그러면서 예수의 피를 부정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목숨을 내놓고, 끝까지 증거한다.

예수를 죽였어도, 부활하시니까, 마귀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주님이 사망을 이기셨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제자에게 네 어미라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여자의 후손이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

마귀를 멸하러 오셨는가,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는가.

마귀를 멸하시는 것이 우선한다.

마귀를 멸하기 전에, 인간을 사랑하사, 같이 망하지 않도록 먼저 구원하러 오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사, 마귀에게 속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 사람은 그를 도운 자다.

아들의 목숨도 세상에서 낳아주었으므로, 한 형제다.

성경의 첫눈을 요일3:8에 두는가, 3:16에 두는가.

아주 큰 차이다.

우리 신앙은 신본주의다.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마귀가 공격해도 싸울 힘이 없다.

관심도 없다.

신본주의여야만 마귀를 경계할 수 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여러분의 신앙사상이 신본주의인가, 인본주의인가.

 

예수가 오셨다니까, 하나님이 다 해주시겠지 원망만 한다.

신본주의는 원망이 나오지 않는다.

나갔던 귀신 일곱이 더 올 수 있구나, 더 경계하는 것이다.

끝까지 견뎌야 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으니 깨닫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신본주의 사상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본주의 신앙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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