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4연합 [마음으로 섬기는 신앙]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요한복음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요한복음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한복음 16: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 마음이 진정 잘못되었던 과거를 돌이키고, 죄속에서 살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처분에 맡겨서, 살려주시도록 간절히 원하며, 우리를 드리므로 이루어진 것이다.
구원 자체가 나의 개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은 거기 있는데, 뉘우쳐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우리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로 전가된 것이다.
하나님께 맡긴 바 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로 책임지시는 것이다.
우리 실제 의는 더러울지라도, 이미 하나님께 속한 바되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이 땅에 살고 지나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까지 올릴만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무언가 굉장히 향상되어, 이제는 목에 힘을 주고, 큰 소리치고 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어처구니 없는 무지한 처사이다.
구원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면, 신앙의 모양이 굉장히 어색하게 된다.
죄인이 와서, 호령하고, 그 욕심을 그대로 가져와서, 원래 속성을 펼쳐내면서, 육신이 원하는대로 그대로 살고 있다면, 절대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 존재를 결정하는 원래 나, 곧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서 뉘우치는 것이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잘못을 꼬집는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 물든 네가 뉘우치며, 통회하는 심령으로 깨닫는 것을 원하신다.
회개하지 않는 심령이 문제다.
우리가 왜 침례를 받는가.
침례 받아서, 내 양심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고 나서는 것이다.
매일 살려주소서, 회개하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이다.
구약신앙과 오늘날 신앙의 큰 차이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더러움을 하나님이 꾹 참는 것으로 지내왔다.
옛날 시대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는 당장 하나님의 진노를 참는 것으로는 되었지만, 양심을 깨끗케 하지는 못했다.
이제 예수 앞에 올 때는 양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라는 가장 정직한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깨져야 한다.
이런 본질을 잘못 이해하면 큰일이다.
최고로 중요한 것은 내 양심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처분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양심을 따지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접촉점을 잘라버리자는 것이다.
양심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우리가 피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는다.
인간의 속에 들어있는 것은 일분안에도 여러 죄악을 떠올린다.
우리 성도들 많이 극복한 것이다.
죄의 성질이 있어도 참는다.
넘어가지 않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우리는 피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침례로 씼었다.
완전히 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완전히 정화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없을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적어도 자신을 속이면 안된다.
우리가 아무리 의롭고, 거룩한 자라고 해도, 죄에서 벗어날 자가 없다.
율법중에 하나만 범해도, 모두 범한 범죄자와 다르지 않다.
다만, 죄를 아무 느낌없이 범하는 자와 조심하는 자는 다르다.
조심하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국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 느낌없이 죄를 범하는 자는 천국갈 수 없다.
우리 삶속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사람들이 주장한다.
그러면서, 남을 비판하거나, 자기주장을 한다.
악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는 몰랐다고 하면서, 고의로 자신을 속인다.
교회에서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가 그렇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자로서, 새롭게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과거 선지자들도 고난을 받고, 종교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유대종교자들은 자기들이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한다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 때, 자기 양심은 너는 깨끗하느냐고 묻지만, 스스로 자기를 속인다.
분열사태 때, 앞장서서 선동하는 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성경을 왜곡해서 가르쳤다.
그래서, 몽둥이 들고와서, 교회를 부숴도 되고, 머릿수대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유대지도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정해놓았다.
그래놓고, 예수님과 싸운다.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자기도 죄인인데, 누가 봐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분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우리 신앙에서도 이런 일이 많이 있다.
월산문제도 생각을 가라앉히려고 말을 안하려고 하지만, 그동안 그들은 자기 양심을 하나님 앞에서 많이 속였다.
그런 모습을 가지면 안된다.
그동안 사무처에 기안을 올리면, 깊게 고민하고, 절차를 걸쳐 여럿이 사인을 해서, 나에게 온다고 여겼다.
나도 그렇다고 인정하고, 선의를 믿고 사인한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연약한 면이 있다.
그런데, 슬쩍 눈가림하고, 개인이 교회 시설을 차지해서 자기 영업을 하고 있다.
법적으로 내가 손을 댈 수가 없다.
그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월산을 누가 인도하느냐가 이슈가 아니다.
문학을 통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과제다.
그러기에는 우리 교회 이미지가 너무 안좋다.
내가 억울하게 여기는 것은 교회를 악용하는 것이다.
교회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고 있다.
카페소득이 김성현감독에게 간다든지, 사모에게 간다는지 하는 소리도 있다.
그런 소리 진짜 하지 말자.
어떻게 그렇게 엮으려고 하는가.
우리가 사태 때문에, 정말 아픈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안아프니까 하는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잘라지는 것 같다.
이제는 분열하는 것,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자기 죄를 용서할 십자가를 멸시하면, 구원의 염원은 다 놔버린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거룩한 체하면서, 다 거짓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나, 나는 소망없는 죄인입니다, 주님 앞에 너무 부끄럽습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을 교회를 사랑하므로 나타낼 것입니다라고 하는 그런 자를 나는 축복하고 싶다.
나는 축복할 직분이 있다.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하늘의 것을 끌어올 직분이 임시적으로 있는 것이다.
내가 축복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엄청난 역사를 맛볼 것이다.
마음으로 섬기는 신앙인이 되자.
마음으로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슬쩍 집어넣고, 기도 열심히 하면서 의로운 체하지만, 마음을 속이고 있다면, 거짓말이다.
그 사람보다는 어눌해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맡기는 자가 더 낫다.
마음으로 하나님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자.
형식으로 섬기는 자가 아니라, 진실함으로 나가는 자가 되자.
가짜 신앙으로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
회개한 마음, 양심에 피뿌림을 받아,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달려가길 원하오니, 우리를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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