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4주일 [강건케 되어야 할 속 사람]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내어주셔서, 이 세상에 오게 하사 죽게 하신 것은 우리들의 진짜 내면의 실체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희생하시면서까지 구원하려 하신 우리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자신이 자신인줄 아는 오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자신인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려운 사람을 능히 도울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사람도,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고, 가족안에서도 욕심을 부리는 그런 자가 진짜 나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자신이 자기인줄 알고 있다.
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하루 종일 자기가 자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를 그냥 놔두고, 또 내일을 맞고, 그 다음날을 맞고, 계속 갈 수는 없다.
우리 자신으로 행세하고 있는 나는 진짜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이긴 하지만, 나의 한 부분일 뿐이다.
사실 나를 진짜 구성하는 중심은 따로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존재는 거의 드러내지 않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짜 중심이 아닌, 외적인 일부가 나의 전부인 것처럼 행세할 때, 우리는 그의 기세에 눌려, 진짜 자신은 어둠에서 외면당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빛을 보지도 못하고, 그 존재마저도 인식되고 있지 않다가, 어느날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영원한 책임을 질 자는 나의 본 주체]
진짜 나는 자기가 한 일도 아닌 것을 책임지고 멸망에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때, 열심히 돌보고 있던 것은 사실은 내가 아닌 것이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게 붙어있는 육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의 본 주소를 두고, 오늘의 삶을 그와 함께 살고 있다면,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나의 진정한 중심은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내면의 나가 누구인지 관심은 조금 있다.
이것을 정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이라는 영역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본부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정확하지 않다.
사회에서 말하는 정신은 여전히 얇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악을 행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나쁜 영이 들어와서, 그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를 부리는 것이다.
이 때, 노예가 된 그는 사실 원치도 않았지만, 악을 행한다.
그것이 나는 아니다. 외부에서 온 존재다.
[진정한 주체인 나를 구원하시려]
진정한 나를 알지 않으면 구원받기 어렵다.
하늘에서는 진짜 나를 구원하시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그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그의 영원한 삶을 심각한 영원한 변화에 놓으셨다.
우리 육체는 우리가 두고 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정말 나를 위해, 희생하셨고, 구원하시므로 기뻐하셨고, 그런 나를 성장시키고, 하늘로 데려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찾아야 하고, 진짜 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진정한 나에게 갈 길을 열어주고, 마땅히 찾아야 할 행복한 여정을 가게 해주어야 한다.
[속히 결단해야 할 갈림길 : 육신적 자아와 영생의 자아]
우리는 솟구치는 감정이 나라고 생각해서, 내 인격을 그렇게 인식한다.
이것은 자기를 심하게 조작하는 것일 수 있다.
자기를 잘 돌봐야 한다.
진정한 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어두운 곳에 있는 불쌍한 자신을 끌어올려야 한다.
또, 욕망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풍성한 영광을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간구함]
지난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옛처지와 달라진 처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대담하고, 강력한 마음을 담아, 매우 장엄한 호소를 했다.
이전에는 그런 엄청난 기도를 인류가 했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인류의 역사에 한획을 긋는 강력한 기도였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을 내려주셔서, 성도를 도와달라고 구했다.
영광의 풍성은 엄청난 것이다.
하나님은 영광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완성된 성격을 표현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한다.
가까이 갈 수 없는 찬란하고, 위대한 모습을 영광으로 표현했다.
그의 영광은 우리가 느낄 때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 빛은 능력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영광과 능력을 교차해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능력을 실행하시는 분은 성령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만큼 달라고, 엄청난 양의 능력을 요구했다.
무엇 때문에.
바로 우리 속사람을 강력케 해주시길 바라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속 사람을 도와주시길]
에베소서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바울서신에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다.
굉장히 반대의 성질을 갖는 존재로서 강조하고 있다.
겉사람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갖고 있는 나의 일부이다.
반면 속사람은 겉으로 볼 수 없는 우리의 가장 중심되는 부분으로서, 인간의 내적 실체다.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성경도 겉사람과 속사람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로마서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속사람은 바로 구원받는 나이다.
그래서, 속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반면 겉사람은 이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존재로서, 속사람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이 둘 사이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이 맞서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는 바로 속사람이다.
속사람은 헬라의 철학에서도 존재를 발견하여 언급하고 있다.
플라톤도 사람속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즉 마음을 그렇게 설명한 것이다.
마음은 한사람의 안에서 생각하는 기능정도가 아니라, 사람안의 실질적인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내면의 인간은 다루고 있지 않다.
[고칠 수 없는 고질적 질병 : 죄]
바쁜 사회에서는 겉사람의 욕심을 매우 급박히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겉사람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이 붙잡혀 있다.
사람들은 속사람에 대해서, 더러는 생각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여, 자기 속을 분석하지만, 사실 그것도 겉사람의 범주다.
진짜 그 안에 있는 자아는 발견하지 못한다.
어쩌다 TV에서 강의하는 것을 보면, 너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할 때, 듣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사실 그 자아는 겉사람이다.
그저 욕망을 이루지 못하고, 지쳐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자기 속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진짜 속사람은 더 불쌍하다.
이 세상에 거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시달린다.
이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게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다.
사회에서는 그런 병을 고치기 위해, 심리의학이 발달해 있다.
정신질환을 고치기 위한 심리의학은 자기들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에서 별로 좋은 결과를 내고 있지 못한다.
심리의학은 자기가 담당이지만, 사실 병을 고치지 못한다.
다만, 병세를 조금 완화시키고, 주변만 처리할 뿐이다.
사람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명예욕과 돈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 엉뚱한 이름으로 병명을 붙인다.
이렇게 인간은 다 조금씩 마음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치료가 되지 않는다.
이 잘못된 것에 숨어있는 것이 바로 죄다.
사실 거기에 걸쳐 있어서, 길을 막고 있다.
이외의 정신병이든 뭐든 사실 증상일 뿐이지, 원인은 아니다.
흠이 되는 죄는 사실 사람의 속사람에 들어있다.
근본적으로 속사람을 다루지 않으면, 비록 그것이 내적인 문제라고 알고 있어도 치료가 안된다.
치료하려면, 그 정체를 밝혀내고, 다루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자기 자신을 치료할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인간을 설명할 때, 신자임에도 이렇게 설명한다.
로마서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로마서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로마서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로마서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구원받고, 영생을 만들어가야 하는 신자임에도 인생이 쉽지 않다.
나를 끌어내리는 힘이 세다.
육신에 거처를 둔 죄에 의해서 우리는 심각하게 방해를 받고 있다.
신자가 잘 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겉사람의 거센 기세 때문에,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고, 거의 굴복되어 있는 상태다.
신자라 할지라도, 새삶을 이겨내기가 어려운 것은 너무 자주 있는 일이다.
속사람은 겉사람에게 계속 밀리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밀리고 있고, 힘을 쓰지 못하면, 그나마 아무 여망이 없다.
구원된 신자 자신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고, 마땅한 권한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면, 인생 내내 시간을 낭비하다가, 인생의 시간이 다할 때, 멸망으로 넘어간다.
구원을 받았지만, 그 사람이 받은 구원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구원이 확실히 임했고, 주어졌지만, 그 구원이 그냥 썩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바울은 겉사람을 이기도록, 속사람을 강건케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인간 속의 실체적 주체]
고린도후서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여기서 마음은 정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여기서도 마음은 속사람을 말한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신자가 된 자는 이 때부터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한다.
본성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속사람은 마음에 해당된다.
로마서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로마서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속사람은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힘에 눌려서 힘을 쓰지 못한다.
바울은 사망의 몸에서 건져달라고 간구한다.
에베소서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에베소서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속사람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우리의 부분이다.
율법 아래 살았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자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들은 겉사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였다.
오늘 그리스도의 구속받은 신자들은 속사람이 구원받았다. 풀려나와서 활약해야 한다.
속사람은 성령께서 강건케 하시는 존재이며, 속사람은 성령이 새롭게 되도록 역사하는 대상이다.
인간의 실제적인 중심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마땅한 첫걸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영광으로 강건케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중대한 첫걸음을 걷지 않는다.
예수 믿으면, 자기 속사람을 강건케 해야 한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 성령충만하라.
그런데, 성령충만으로 힘을 입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능력이 임하니까, 바다가 갈라지는 것만 생각한다.
가야 할 방향이 다르다.
자기 손이나 입에 능력이 임해서, 뭔가 회오리 치는 것만 생각한다.
능력이 가야 할 곳은 속사람이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자기 속사람은 여전히 고난을 받는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겉사람에 의해서, 계속 악한 영들에게 횡포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지만, 그런 자신이 그런지도 모르고, 계속 살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웬지 모를 고난을 계속 겪고 있다.
이것은 교회 전체적으로 예수 믿을 때, 속사람이 강건케 되지 않고, 매우 쇠약한 상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첫걸음을 걷지 않았다.
속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성령이 속 사람에게 힘을 주셔야]
하나님이 역사하고 싶은 자는 속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은 구원으로 시작되는데, 구원하시고 나서도 여전히 역사하실 자는 속사람이다.
그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눌려 있었다.
하나님은 눌린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그 사람을 도우려 하고, 힘을 주어 일으키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생명을 속사람에게 주고, 생명을 자라게 하신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만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위축되어 억눌려 살던 주체를 불러주시고, 기운을 북돋고 능하게 하신다.
성령은 능력자를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의 힘이 역동하도록, 그 영혼이 강건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그 생명이 활성화되고, 성장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힘이 없다. 자라야 힘이 있다.
성장하면 할 수 있다.
능력 주시는 것은 그 영혼이 성장해서, 강건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것은 영생이다.
영혼이 자기 삶을 뚫고 갈 수 있는 동력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해야, 다른 것도 성공한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많이 있다.
그런데, 첫걸음부터 짓눌려 있고, 기죽어 있으니, 살려놔야 한다.
속사람, 나는 너를 지원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일어나라.
로마서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을 좇는 자는 영(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갈등에서 이기려면, 성령께 순종하는 방법밖에 없다.
여기서 문맥상 영은 성령이다.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좇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좇는다는 말이다.
로마서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의 영도 성령이다.
신자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육신에 있는 악한 행위들을 죽일 수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육체에 붙어있는 악행을 구상하고, 행하려고 하는 기세를 꺾을 수 있다.
신자라도 그 속에 있는 겉사람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냥 데리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악한 행위로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도 영은 성령이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성령을 의식하고, 성령으로 채움받아야 하고,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이 자는 영생으로 이끄는 구원의 능력이 그 안에서 활성화 되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을 넣어 속 사람을 강하게]
어떤 사람은 신의 성품을 어떤 좋은 덕목, 추가적 덕목, 그러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는 첫날부터 하나님의 덕목으로 채워진다.
이것은 추가적인 혜택을 제안받아, 원하면 수락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다.
그런데, 본성이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실이 전혀 효력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막혀서, 이제 하나님의 여러가지 풍성한 복을 받을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구원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니까, 그 다음에는 신의 성품이 그속에 깃들지 않는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베드로후서 1:9 이런 것(신의 성품)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성경의 일치된 말씀으로 하고 있는데, 성령의 말씀을 기피하고 있으니,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신의 성품은 속사람에게 있게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노쇠해진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육신이 약해지듯, 속사람이 강해지면서, 겉사람도 약하게 될 것이다.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바울도 성도들의 삶을 안타깝게 여겨 도우려고 했다.
가난한 성도를 위해, 각지에서 돈을 모아, 여기저기 보냈다.
그러나, 그 육신은 썩을 것을 알고 있다.
변함없는 생각은 그들의 속사람, 하나님의 생명이 들은 그 존재는 강건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해야만 강해질 수]
말씀은 구원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기도 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하기도 하고, 많은 부분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한다.
교회의 책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한다.
말씀 듣고, 이해하면서, 근력이 생긴다.
듣고, 행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듣고, 행하는 것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성장이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순종하므로, 강건해지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은 하기 싫어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도, 저것도 힘들다.
그러나, 해야 한다.
말씀으로 받고, 해야 한다.
나중에는 양분을 받으면서, 자기가 강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듣고, 순종하고,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하는 것이다.
[죄의 쇠퇴]
영적인 성장은 죄가 쇠퇴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훈련하면 할 수록, 우리는 성령에게 계속 우리의 통제권을 드린다.
교회에서 어떻게 높아질까 따지지 말고, 하나님의 몸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말씀만 하옵소서, 순종하겠다고 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특하게 보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너는 아버지를 순종한 나를 닮았다.
의로우신 하나님과 조화가 잘되는구나. 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구나.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죄는 소멸한다.
그러면, 죄에서 멀어지고, 이에 따라, 영혼이 잘 보전된다.
처음에는 억지로 하는 것들이 나중에는 즐거움으로 하게 되고, 그 결과로서 나중에 있을 심판이 두렵지 않게 된다.
하늘나라는 심판을 뚫고 가야 하는데, 걱정이 없게 된다.
그러나, 자기 영혼을 방치하는 자는 그 날이 두렵다.
고린도후서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후서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린도후서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하지만,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어려운 일도 문제가 아니다.
옆에서 빵빵 터지고, 난리가 나도, 요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깨지지 않는다.
예수의 생명이 더욱 드러난다.
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은 원수의 일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변화하여 강력하게 지키면,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은 잘 지켜지고, 열매가 맺힌다.
그러면, 교회는 거침없이 승리의 길을 가게 된다.
성령이 충만하고, 뜨겁게 역사한다.
거짓말만 하고, 자기 욕심만 키우면서, 말로만 성령충만이 아니라, 진짜 성령충만한 자가 가득하고, 진실로 하나님께 기쁨으로 영광돌리는 교회, 변화된 자가 가득한 교회, 이 교회는 모두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에베소 교회의 고질적 문제를 고치기 위한 간구]
에베소에도 요즘 교회에서 보이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에베소서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6: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사도는 교회가 성령으로 강건해지기 원한다.
성령으로 강건해지는 하나님의 특성이 지배하기 원한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결과가 그 교회를 지켜주기 원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교회로서의 엄청난 본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속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많은 신령한 복을 꽃피게 한다.
속사람이 강건해지지 않으면, 한발짝도 갈 수 없다.
성령으로 강건하기 바란다.
하나님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소서.
활력을 주시고, 일으켜 주시고, 이제는 말씀으로, 깨달음으로, 순종함으로, 헌신으로, 우리에게 생기를 주시고, 동력을 주시고, 놀랍게 성장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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