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5성탄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의 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누가복음 2: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누가복음 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누가복음 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누가복음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누가복음 2: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누가복음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누가복음 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 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누가복음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누가복음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누가복음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누가복음 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누가복음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여러분에게 구원자가 있는가.
이 세상에는 구주가 없는 사람도 많다.
훨씬 압도적인 숫자가 구주가 없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소수지만, 우리는 구주가 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명확한 구별을 주는 요소다.
우리에게 구주가 있다는 사실은 너무 중요하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간다.
그들이 이 땅에 와서 진짜 느꼈을 것은 궁핍함, 힘겨움, 피곤함, 억울함, 많은 아픔일 것이다.
그 상처를 다 씻지 못하고,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이 땅을 지나간다.
주위에 보면, 너무 거짓도 많고, 나도 거짓말을 하면서 살게 된다.
또,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불의한 일도 해야 한다.
굉장히 불행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슬프고, 안타깝다.
이 세상의 삶에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면, 어떤 의미도 없다.
우리가 사는 삶의 환경에 나를 집어넣고, 아무리 자신의 의미를 규명하려고 해도 답이 없다.
모든 것이 완전치 않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함 속에서 계속 헤맨다.
또, 우리는 궁핍하다. 경제적으로나 많은 것에서 부족하다.
돈도 부족하고, 사랑도 부족하다.
누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줄 수 없다.
사랑을 베풀고 싶으나, 베풀 기능이 있어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너무 아프다.
이 땅에 와서, 어떨 때는 2십년을 일해도, 왜 일했는지도 모르겠다.
먹으려고 사는지, 살려고 먹는지...
맛있게 먹으려고 하면, 누가 그런 말을 해서, 맛이 없게 만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가는데, 노년에 가서는 그런 이치마저도 다 붕괴된다.
노년이 되어, 기력이 없어지고,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인생을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이 세상의 만가지가 다 마이너스 천지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굉장히 마이너스로 치우쳐 있다.
이 세상이 무언가 잘못된 것임을 인간의 지능으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와서 견디고 간다는 것이 용감한 것이고, 슬픈 것은 여기서 우리를 구하려고 애쓰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도 우리의 구원자 없이 살기 어렵다.
그가 우리를 구원해 주셔야 한다.
당장 근시적 시각에서는 물질이 부족하니 물질을 부어주시고, 건강하게 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는 주님이 필요하다.
그런데, 설령 주님이 오늘 돈을 주지 않으시고, 시련을 벗어나게 해주시지 않아도,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주님이 내 위로가 되주시기 바란다.
우리가 아는 주님은 이 세상에 끝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주님과 만날 것이다.
눈과 눈을 맞대고 만날 것이다.
과거 주님의 사도들이 주님을 듣고, 보고, 만지듯,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다.
주님이 분명히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다음에도 우리가 가까이 그를 만질 수 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이미 이 땅에 오신 주님이 확인한 바 있다.
주님은 존재하시고, 오셨던대로, 데리러 오실 것이다.
인류는 복음을 들어야 한다.
2천년전에 이 땅에 복음이 왔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버겁고, 힘겨워도 견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주님만 만날 수 있다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시련을 매일 이겨내는 역사 속에서 산다.
기다리는 것이 나의 전부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굶주린 사람, 심령이 부족한 사람, 아무것도 없는 사람, 목마른 사람, 나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단비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구주가 필요하다.
나는 구주 때문에 살고 있다.
구주는 영어로 그냥 세이비어, 원어로 소테르라 한다.
특별히 구원자를 말한다. 구원자는 메시야로 오셨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오신 것 같지만, 인류를 위해 오셨다.
그런데 그분은 하나님이셨다.
구원자, 그리스도, 그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이미 구약 때, 다니엘서에서 예고했다.
성경에 수도 없이 예고하고 밝히고 있다.
인생을 지나가는 모든 자를 대표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우리는 구주가 필요하다.
그 구주는 우리가 무엇을 잘하면, 당근을 주듯 베푸시는 하나님일까.
신앙을 열심히 쌓았을 때, 받아주시는 하나님일까.
이것도 너무 피곤하다.
나는 능력이 없다.
나는 온전치 않다. 의롭지 않다.
나는 배고프고, 외롭고, 힘이 없고, 세상에 소망도 없다.
믿을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다.
나는 내 마음의 주님만 기다린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불의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매달려야 하는 그분.
능력 많은 자, 훌륭한 자, 열심히 하는 자가 내 주님을 독점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주님은 아무것도 없는 나의 주님, 나의 구원자시다.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기다릴 것이다.
내 인생 적지 않게 긴 시간이나,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나는 나의 구원자를 향해 달려간다.
그는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나를 위해 피흘리셨다고 들었다.
나는 이것을 신뢰하고, 그가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그가 부활하셔서, 나를 데리러 오신다는 복음을 듣고 기뻐한다.
여러분 구원자가 있는가.
이 땅에서 왜 사는가.
먹으려고 사는가. 성공하려고 예수 믿는가. 세상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예수 믿는가.
특별한 능력을 받으려고 예수 믿는가.
여러분의 모든 부족함을 커버해주시는 구주를 만나러 오지 않았는가.
당신의 마음에 평안과 큰 소망과 큰 안심으로 역사해주시는 분을 믿는가.
그분만 있다면, 이 세상을 능히 이길 능력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신앙생활한다고, 멋지게 하겠다,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구주를 마음과 마음 맞추는 자가 되기 바란다.
구주를 심령에 모시는 자들 되자.
확신이 있어야 한다.
소망이 있어야 한다.
기쁨이 있어야 한다.
주는 내 구주시라는 결론만 있어도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여러분이 이 결론만을 얻기 원한다.
주님만 나의 절대 필요한 구주라는 결론이 있는 분은 아멘하라.
우리 주님은 예언을 따라 오셨다.
[예언을 따라 역사 속에 강림하심]
이 분을 못보고 지나갈까봐, 예수에 대해 입체적으로 신상을 반복해서 표현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육신의 모친이된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말을 했다.
누가복음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누가복음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예언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다. 법적으로는 부부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혼해야 할 자기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요셉이 알았다.
이것은 대사건이고, 요셉에게는 치명적인 아픔이었다.
마태복음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 꾹 참고, 마리아와 이혼하려고 했다.
율법적으로 의로운 사람이라면, 처단하라고 고발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불쌍한 정혼녀를 살려주려고, 조용히 헤어지려고 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났다.
아들을 예수라 하라. 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시다.
그 때, 요셉은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기 아내를 사회적으로 곤란당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충분히 성장하시기 전에 죽었다.
자기 임무를 다했다. 그는 예수를 자기 족보에 올렸다.
유대인들은 족보가 굉장히 중요하다.
예루살렘 성전에 수백년전의 족보가 다 기록되어있다.
요셉의 조상은 다윗이다.
예수님은 왕권을 받았다.
아무것도 없는 요셉이 왕권 하나는 갖고 있는데, 그것을 예수께 넘겨주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당시 상황을 누가가 조사했다.
당시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을 했다.
세금을 거두려고 한 것이다.
이 일은 과거 사람이 다 아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했다.
오늘 우리는 모르지만, 당시는 분명한 일을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호적하려고 내려갔는데, 요셉은 아내도 데려갔다.
굉장히 늦게 호적하러 갔다.
집은 원래 갈릴리인데, 베들레헴으로 왔다.
조상이 베들레헴 사람이기 때문이다.
막판에 법을 지키려고 달려가는데, 마리아는 만삭이 되었다.
[초라한 예수님의 탄생]
가깝지 않은 길인데, 만삭중에 베들레헴까지 3-4일 가야 한다.
사관이라고 표현했는데, 여행자가 머무는 숙소 같다.
방이 없어서, 마구간 구유에 아기를 낳고 두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분, 창조주이신 분이 이렇게 오셨다.
예수님은 훌륭한 사람 만나러 오지 않으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궁핍한 곳에 찾아왔다.
나같은 곳으로 오셨다.
냄새 나고, 더럽고, 춥고, 짐승소리로 요란한 곳.
그 때 밖에서 목자들은 양을 지키고 있었다.
[목자들이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들음]
목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하층민이었다.
막말로 천민이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
성경에도 몇번 나타나지 않았는데, 몇백년만에 나타났다.
쉐키나라고 한다.
누가복음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누가복음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거기서 천사가 복음을 전한다.
복음의 내용은 구주가 나셨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후에도 사도들이 계속 언급하고, 기념하고 전파한다.
요한1서 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이 날은 천사가 선포했다.
미가서, 이사야서, 사무엘서에 암시된 구주의 탄생을 성취했다.
온세상의 구주시다.
바로 당신을 구원하러 오셨고, 목마른 자를 구원하러 오셨다.
자신감을 가지라.
[구주, 그리스도 주]
우리는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본질이 망가진 자다.
그러나, 주께서 다 용서하시고, 우리를 살려주시려 한다.
그는 구주, 또 그리스도, 주시다.
그분은 구주시다.
그분은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주시다.
주는 과거 높은 사람을 칭하는 것이나, 여기는 같은 단어이지만, 하나님만 가르킨다.
구약에 여호와라고 번역된 부분이 사실 주다.
하나님을 가르키는 말이다.
가서 보라고 목자들에게 확인하도록 천사가 명한다.
[겸손한 목자들이 구주의 임재를 확인함]
지구상에서 어떻게 보면, 별 볼일 없는 청년들에게 주어진 복음이다.
누가복음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아기가 바로 그분이시다.
이 세상 잘난 사람은 구유에 놓인 아기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가 너의 주, 너의 그리스도, 너의 구원자시다.
이들이 어떤 아이인지 모를 수가 없다. 구유에 누인 아기.
몇십년에 하나 있을까 말까할 것이다.
주님의 인생은 불행했다.
그러나, 겸손한 심령은 거기서도 주님을 발견할 것이다.
[겸손한 심령에게 구주의 탄생을 알리심]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에게 구주가 오셨다고 알리지 않으셨다.
천하고, 영적으로 너무 부족하고, 성품이나 의가 부족한 자에게 오셨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다.
복음, 기쁜 소식.
주님 오시는 것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다.
기뻐하는 정신을 잃어버리면, 신앙도 잃어버린다.
이 땅에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는 자들 되자.
잊지말자.
누가복음 7: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누가복음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세상이 다 망가지고, 아무 희망도 없는 여인.
그녀가 옥합을 깬다. 자기에게 가장 상징적인 것을 내놓으면서 깬다.
사람들은 그녀를 죄인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다 망가져 버린 인생만 있는 여자.
누가복음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또, 세리는 하나님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만 쳤다.
그도 주님을 간절히 원했다.
로마서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하나님은 참으시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거만함은 버려야 한다.
디모데전서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이 세상에 내려준 가장 소중한 하늘에서 온 소식.
지구 안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온 소식.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 구주를 심령에 잘 모시는 분들 되기 바란다.
우리 구주를 여러분의 삶 속에 모시는 분들 되기 바란다.
최소 오늘 결론에 이르기 바란다.
나의 구주는 나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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