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2 사랑 안에서 뿌리 내리고 터가 굳어진 그리스도인(240107)

lks8284 2024. 1. 7. 17:21

240107주일 [사랑안에서 뿌리 내리고 터가 굳어진 그리스도인]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행하며 평생 그를 섬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속한 자인데,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그 사람의 삶에 뿌리박힌 사랑이다.

[사랑은 교회가 순종할 최고의 계명]

2천년간 그리스도 교회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랑이다.
교회가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었다.
믿는 자는 처음부터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날까지 계속 사랑을 행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교회다.
그리스도 교회는 여기서 조금도 좌로나 우로 벗어나서는 안된다.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특징이다.
간혹 사랑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 교회도 있다.
사랑하지 않는 교회는 신학적으로 큰 문제점이 있다.
무언가 신학적 구조의 결손이 있는 것이다.
사랑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는 복음 위에 서 있는 교회가 아니다.
그 교회는 복음을 오해하고 있거나, 복음의 핵심 자체를 아직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은 오늘 우리가 의지하고 살고 있는 바, 우리에게 은혜를 준 하나님의 선물이다.
복음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다.
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에게 사랑을 계명하신 것은 그만큼 세상 마지막이 다 달았고, 세상 끝까지 견인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사랑을 성도 안에서 완성하시는 것]

어떤 권세나 어떤 영들도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그리스도인을 끊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도 하시지만,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 안에서 도우신다.
속에서 속사람을 도우신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완벽한 사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우리 안에 심어서, 계속 완성해 가신다.
그럼으로써, 사랑은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하는 이유다.
임재의 원칙을 그 안에 품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다 쏟아 부어, 우리를 구원하신다.

[교회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방법]

사랑은 교회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도를 보호하면, 교회가 보호된다.
사랑은 죄와 상극이다.
사랑은 죄와 싸우고, 죄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사랑은 죄를 물리칠 것이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랑은 그가 속죄하신 교회가 다시 죄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의 영혼을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도들을 사랑하므로써, 최대한 죄 없는 상태를 추구하게 하므로, 그 안에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로부터 지킨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는 동격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의로 우리에게 펼쳐진다.
우리의 자세 자체가 원수를 막아낸다기 보다는 그들이 하나님께 의뢰하는 의지를 하나님께 얹어놓게 하심으로써, 법적으로 하나님이 원수를 상대할 충분한 법적 근거를 갖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죄의 영향력에서 보호되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도를 영적으로 보호하시는 방법이다.
이것은 내적으로 도우시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교회를 보존하시는 방법이다.

[교회를 보전하는 하나님의 방법]

그리스도 교회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불리한 점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사랑은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장치다.
교회를 안전하게 치리하는 것은 사랑에서 나온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 종교적 취향을 통해 만난 공동체가 아니다.
사람이 형성한 모임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 구현된 것이다.
이 기원이 하늘에 있다.
하나님의 구상에다가 하나님의 영향력, 친히 행사하시는 속성과 능력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몸이라는 중대한 무게가 주어져 있고, 하나님의 유업이요, 꿈이다.
온 우주를 향한 그의 마음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교회 위에 실려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망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전 우주적 비전이다.
그런데, 교회는 교인중에 하나가 시험들어,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원수의 앞잡이가 되어, 교회를 해치게 되는 일이 언제든 있을 수 있다.
또한 사회에서도 공격해 올 수 있다.
지금은 별로 없지만, 이전에는 그런 일이 많았고, 다른 세계에서는 밖에서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회는 법이 없고, 전통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다.
정관이 교회를 치리하거나 유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정관이 있지만, 보이지도 않고, 먼지가 가득한 것이었다.
지금 그것으로 교회가 굉장히 곤란을 겪고 있다.
이 세상의 법정도 교회의 입장을 존중한다.
그들은 영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회중임을 알고 인정하지만, 판정하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정관에 의해 운영되지 않기 떄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의 법, 사랑으로 운영된다.
모든 성도들이 사랑하므로, 순종하므로, 운영된다.
순종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 법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사회적 체제가 보유하고 있는 위력이나 물리적인 힘을 상대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스도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으도 세상을 능히 이긴다.
사랑의 힘이 그렇게 강력하다.
그래서, 교회는 사랑이 법이고, 규율이고, 길잡이인 것이다.
이전에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경솔히 여겼다면, 매우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밥먹듯이 먹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소망이 있고, 두려움이 없다.
이 세상에 아무리 험한 고통이 다가와도, 능히 견뎌낼 수 있는 마음에 강직한 믿음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갑자기 우리가 사랑을 따지지 않는 것은 받아먹을 것은 다 받아먹고, 무성의하게 은혜를 모르는 것이다.
복음을 떠난 것으로써,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사랑에 대해서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른 무엇보다 성경을 의지하여, 살기 원한다.
나는 우리 교회를 통해 나의 영광을 받는다든지, 기쁨을 누린다는지 하지 않는다.
내 기쁨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백프로 힘을 받아, 성공하여, 그 나라에 승리자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가 천국 가는 계단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절대 우리 교회는 이전의 수십만의 교회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음으로 잘 무장되고, 모습을 갖추는 것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기 바란다.
마지막까지 갈 길은 복음을 통해 끝까지 견인하시는 좁은 한 길 뿐이다.
절대 좌로 우로 치우치고 싶지 않다.
성령과 성경과 그리스도의 명령은 우리의 살 길이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실천해야 한다.
무엇인지 알아야 실천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동적으로 해야하지만, 여전히 각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는 어쨌든 철저히 성경적이고, 복음적으로서 절충의 여지가 없이, 오염되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감싸야 한다.
하나님을 잠깐 뒤로 미루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음에 거하셔서 사랑을 역사하신다]

본문의 말씀은 지난주와 오늘 드릴 말씀이 합쳐져 있다.
우리 마음에 거하셔서, 사랑하신다.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신 결과로, 성도들이 사랑 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사랑의 터를 견고히 하여 자신을 세운다.
앞의 것이 원인이고, 뒤가 결과다.
사랑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사랑으로 터를 삼아 자신을 세우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서 우리 속사람이 강하게 되고, 이제 기죽었던 속사람을 찾아내 일으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게 되는데, 이렇게 되어 오는 중요한 변화는 성도들이 사랑하는 자로 변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받아, 예수께서 우리 안에 편히 거하시게 되는 결과로 사랑이 나타난다.

주께서 우리안에서 편하게 거하실 때, 통치하실 때는 사랑 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 위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성도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리스도는 사랑이라는 기반위에 통치자로서 위치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어디서 왔는가.
사회에서 남을 위하고, 세우라고 하셨을까.
기원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

[신적 사랑을 부어주심]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래서, 예수께서 새계명을 주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의 사랑같이 하라.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이 세상처럼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만이 하시는 사랑으로 하셨다.
저 사람을 죄에서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져 십자가에서 고문을 받으며 죽으셨다.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보유하신 원래 사랑으로 하듯, 너희도 그렇게 하라.
예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그렇게 순종하셨다.
아버지의 사랑을 순종하면, 세상이 구속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의 사랑을 순종하면, 구속을 성취할 것이다.
이런 면은 다음 말씀에 의해서 분명해 진다.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의 겸손, 순종의 의미로 이해되는데, 전체적 맥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말이다.
성경에 이보다 더 대표적인 사랑의 표현은 많지 않다.
이것은 완전한 형태의 사랑이다.
누가봐도 겸손과 순종으로 나와있지만, 이것은 가장 완전한 형태의 사랑이다.
하나님에게서만 나타난 사랑, 그러나 이제 모든 신자들에게 행하도록 하신 사랑이다.
어떤 특징이 있는가.
자신을 희생하는 신적 자세다.
이기심이 없는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
이것은 신적 성향을 말한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기서 말하는 이 마음이 무엇인가.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자기를 낮추어 죽으셨다는 것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오늘 너희도 행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2:1-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여기까지 한마디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을 풀어서 말했다.

2:5-8

왜냐하면, 이것이 예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것이 원인이 되어, 그의 마음을 본받으라.
그래서, 이렇게 서로 섬기라.
이 말씀이 오늘 에베소서 본문과도 딱 일치한다.
이 사랑은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원이 하늘이다.
오직 그분만 행하셨던 그 사랑을 오늘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다.

5:5,8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를 살리신 사랑은 우리 안에서 여전히 다른 형태로 역사하신다.
여러 말씀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이 사랑은 이 세상에 근원이 없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우리는 아가페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이기심이 없는 사랑이다.
사랑, 느낌같은 사랑이 아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사랑이다.
이것은 느낌,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은 당연히 따라온다. 다만, 이것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다.
희생하지 않는 어떤 충만한 감정이 있는 사랑과 구별되는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내어주는 하나님만의 사랑이다.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주님은 남을 애틋하게 생각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 사랑의 성질 자체를 적나라하게 나타내주셨다.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극단적인 경우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성격 자체가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다.
그 사랑의 근본적 성격 자체를 묘사한 것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자연적 태도]

이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자연스러워야 하는 사랑이다.
예수께서 우리 마음에 평안히 거하실 때, 변화가 생겨서, 우리도 그런 사랑을 갖게 된다.
하나님이 부어주시기도 하지만, 또한 명령으로 주셨다.
대체로 주께서 부어주신 것은 또한 명령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셔야, 어떤 것이라도 명령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성취할 수 있다.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지, 밀어붙이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속에서 사랑을 친히 역사하신다.
그가 통치할 수 있을 때, 그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은 오늘날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고, 우리도 결단을 가지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요일4:9-12,1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신적 기원이 먼저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한다.
9-10절은 원인을 말하고 있고, 그럼으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했다.
바울이 아니다. 그러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명확히 간파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왠만하면 하라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물에 들어가서 숨을 참는 것이 쉬운가.
그것이 사랑을 안하고 있는 상태로 느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계속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상습적으로 숨을 안 쉬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온당한 위치를 갖고 계시면, 사랑하라고 시킬 필요가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하려고 결단한다.
숨을 참고 있으면 불편하듯,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진다.

살후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할 수 있거니와 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사랑 자체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는 마땅히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DNA를 가진 자들이다.
아버지를 닮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과 죄, 순종과 불순종]

이것은 복음의 작동원리의 핵심이다.
사랑과 죄는 완전히 상극이다.
불과 물이 싸울 수 있는가.
, 순종과 불순종도 완전히 반대다.
순종과 불순종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죄를 사랑으로 대적한다.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자들의 반응과 원수의 영향력을 대처해 가도록 복음이 계속 작동하고 있다.
자동적으로 사랑하게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동적으로 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
.

교회는 사랑을 명령으로 받아, 순종하기 시작해야, 비로소 사랑하고자 하는 성질을 자기 속에서 열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점차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가동되고, 적용시킬 수 있다.
사랑하는 것은 순종의 문제다.
사랑의 계명에 불순종할 수 있다.
사랑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 사랑하는 것 같지만, 속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이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계명을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로 멸해버린 죄가 있는데, 새계명을 거역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문제다.
심각하다.
일단 계명을 거역하면, 성령이 일을 못하신다.
이 부분에 관한 우리 영적인 문제는 도움을 주지 못하신다.
그리스도와 성령이 어떻게 하지, 계속 고민하실 것이다.
복음이 약속한 일이 작동이 안된다.
사랑의 계명은 환경에 의해서 갑자기 다들 사랑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단해야 한다.
사랑은 자기 의지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끌려서 아들을 보내어 희생시키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기로 결단하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의지로 결단할 문제다.
예를들면, 부부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유는 많다.
결국 자기가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로 자기가 결단한 것이다.

세상에서 오는 다른 사랑도 있다.
로맨틱한 것, 자동적으로 이끌린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은 자기가 결단하는 것이다.

5:25,28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남편과 아내의 갈등, 성도들간의 갈등, 교회안의 여러 갈등의 원인은 죄의 문제다.
갈등은 육신의 욕망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니까 나타나는 불만이다.
이 불만으로 죄가 발현된다.

주께서 계명을 주셨으므로, 사랑하는 것은 순종,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이다.

요일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새계명을 그대로 풀어서 말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
주께서 명하신 새계명.
이전에는 율법적인 형태로 되어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해.
두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애초에 인류가 망가지므로, 사랑을 잃어서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죄가 있고, 죄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없다.
죄와 사랑이 서로 적이다.
죄와 하나님은 적이다.
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자가 신앙이 없는 자다.
경건한 삶, 신령한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 삶이다.
여러 형태로 나온다.
친절하고, 유하고, 애정이 많고, 희생이 많고, 돌본다.
사랑하는 것은 죄를 극복한 증거다.
죄를 사함받은 사람이 사랑한다.
죄에서 해방된 사람은 사랑한다.
아직 사랑하고 있지 않으면, 여전히 죄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사랑은 죄를 이기게 한다. 복음의 원리다.
진리를 순종하므로, 이제 사랑할 수 있는 상태까지 된다.
주께서 새계명을 주신 이후에는 죄에 대한 문제는 사랑하는지, 아닌지로 다루어 진다.
앞으로 이런 짓을 했다, 저런 짓을 했다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느냐로 판단된다.
죄의 행위는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이다.
평가의 기준이 사랑이다.
신앙이 좋다 나쁘다는 사랑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는 사랑하고 있는 심령에 거하길 목적하신다]

그가 우리 마음에 거하실 때, 우리 연약함을 담당하신다.
죄에 따라갔던 습성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된다.
이것은 우리 결단이 필요하고, 이것은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사랑의 본성이 자기의 것이 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랑을 따른다.
사랑은 초자연적인 이적이다.
하나님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은 할 수 있다.
성령이 제일 먼저 역사하시는 것도 사랑이다.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서도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
성령의 열매가 필요없다고 하면 안된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의 역사다.

신자들은 이 사랑위에 뿌리를 내리는 토양을 갖게 된다.
견고하게 터를 놓고, 세워져야 하는데, 세워질 땅이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임재의 원리]

사랑은 그리스도가 임재해 계시는 원리다.
복음의 약속을 통한 복음의 역동성을 작동시키기 위해, 사랑으로 역사하시고, 보호하시고, 사랑으로 견인하신다.
이것은 그리스도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고유의 성품이 되게 하신다.
이것은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실제 임재하신 것을 나타낸다.

남을 사랑하라고 하니까, 내 삶도 힘들다고 한다.
맞다. 짐이 많다.
인간적으로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힘든 것은 겉사람만 힘들고, 속사람은 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잠시만 있어도, 상처를 팍팍 받는다.
무섭다.
누구도 그렇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에서 다른 성도들의 많은 사랑을 받기 바란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달려가자.
마지막까지 우리를 견인하시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는 사랑을 뿌리로 하시는 것이다.
사랑을 행한다면, 주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신다고 생각하라.
주께서 사랑으로 하시는 일이 역동하도록 순종하자.
그가 구원하시는 일이 영생으로 이끌어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