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16 옳고 의로운 부모 순종(250413)

lks8284 2025. 4. 13. 17:31

250413주일 [옳고 의로운 부모 순종]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에 속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신앙이 먼저? 천륜이 먼저?]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육신에 속한 것이므로, 세상의 일이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부차적인 것이다. 일단 신앙의 일을 다한 후에 돌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누가봐도 온전치 않다. 잘못된 태도다.

애초에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영적인 일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단정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행하는 일 중, 덕스러운 일, 선하고, 아름다운 일은 사실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하나님 닮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선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해당한다.

하나님 나라의 환경 안에서 갖게 되는 성품이다.

부모 순종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이다.

하지만, 부모를 무조건 섬겨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의 구원의 문제에 해를 가한다거나, 하나님 뜻에 어긋나게 하는 결과가 된다면, 이것을 신앙 앞에 내세울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는 예수 믿지 못하게 한다.

부모가 못가게 해도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 맞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 나라의 시민들의 겉모습은 갖지만, 그 날에 주님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를 섬기는 겉모습은 건전하고 좋지만, 이것이 사람을 살리려는 주님의 뜻과 계획에 상충된다면, 해서는 안될 일이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게 하라고 하신 적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은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그 사람은 먼저 자기 아버지를 장사지내게 해달라고 했다.

지금 장례식 중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하고 하겠다는 말이다.

인간적 본분을 먼저 하겠다는 말이다.

그것에 대해 예수께서 죽은 자들끼리 돕게 하라고 하시면서, 그 사람의 자세가 옳지 않음을 말씀하셨다.

부모 순종, 덕스러운 것, 그 자체를 하느라 눈이 멀면 안된다.

그것을 하느라,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불의한 일을 강제로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에는 부모를 순종하기 어렵다. 순종해서는 안된다.

부모가 강도질 하는데, 도우라고 해서,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기는 것에 있어서, 가장 좋은 조건은 부모 자신들도 그리스도인들이고, 부모를 섬기라는 명령받은 자녀들도 그리스도인인 경우다.

부모, 자녀 양쪽이 그리스도인일 때, 부모섬기는 행위는 단순한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옳고, 의로운 결과가 된다.

이것은 일단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일이 된다.

그냥 세상에 널려있는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는 거룩하게 기억되는 일이 된다.

 

[신앙 위해 인간 도리는 버려도 될까?]

 

반대로 신앙을 위해 인간의 도리는 버려도 될까.

하나님을 따르는 일과 부모를 섬기는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어떻게 할까.

신자가 아무리 독실하다고 해도, 일단 인간의 도리를 버리고, 천륜을 버리면, 실제 판단하기에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자일 것이다.

자기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한 일인데, 사실 자기가 잘못 해석한 일이다.

천륜을 버리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자, 하나님의 의를 버리는 자 일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은 한가지다.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16:10-11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세상에서 불의한 자들은 예수 믿을 때도, 불의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위의 말씀은 직접적인 말씀보다는 간접적으로 그 원리를 생각하게 해준다.

세상에서도 악한 사람은 주의 일에도 악하다. 반드시 그렇다.

그래서, 예수 믿을 때, 다 깨지고,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세상에서도 재물을 맡길 수 없는 자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길 수 없다.

아쉽게도 이와 유사한 잘못된 시행들, 옳지 않은 문제들이 주변에서 계속 일어난다.

이런 일이 드문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대변하고, 수호하는 바리새인에 대해 말씀하셨다.

 

7:6-13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모든 것을 몰입했지만, 주님은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유전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는 관계가 없다.

하나님의 계명은 부모를 섬기지 않는 자는 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를 재정적으로 돌봐야 하는데, 고르반이라고 하고 돌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보았다.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법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의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하는 일을 많이 했다.

인간은 약점이 많다.

일이 잘못되어가는데도, 그냥 휩쓸려 가기도 한다.

 

인간은 도덕적 법에 대해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양심이 잠재되어 있다.

양심은 타락전부터 갖고 있었던, 원래 사람의 일부다.

타락되는 인성이 다 망가지고, 버려져서, 변형되었지만,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했어도, 사람 속에는 선한 것에 대해 반응했던 기초적인 바탕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가진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도덕적인 것은 쉽게 버려질 수 있다.

다만 소량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양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회는 인간의 타락처럼 타락했기 때문에, 질서에 대해 건전한 자세를 갖지 않고, 자꾸 파괴하려는 생각이 주변을 맴돈다.

자꾸 질서를 깨려고 하고, 속이려 한다.

인간 사회는 자꾸 속이고, 잘못 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서로 그렇게 하고, 서로 배운다.

이런 반복된 시도는 그나마 남아있어서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연결성 자체를 상실케 만든다.

사회가 험악해지면, 사랑이 식는다.

나중에는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다 상실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완전히 깜깜한 곳에 버려지게 된다.

아름다운 덕에 대한 양심의 온기는 사람마다 더 갖기도 하고, 더 적게 갖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거의 다 팽겨치기도 한다.

그 사람도 지식으로는 사람들에게 그런 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것을 좋게 여기는 사회의 요구도 있다고 본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의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참되지 않다.

이런 사람은 양심이 다 불타서 없다.

그래서, 덕스러운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그런 체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 사람들도 겉으로는 덕을 행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악한 일을 꾸민다.

자기의 건전한 외모 뒤에서는 사람을 속이는 작업을 상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가 다 잘되기 원하고, 스스럼 없이 교제하기 원하지만, 그들은 교제하는 손 뒤에는 어떻게 후려칠까, 어떻게 속일까를 궁리하고 있다.

비극이다.

인간의 몇십년 삶속에 그것에 끌려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와 하나님이 그래도 시선을 맞댈 수 있는 면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이고, 직분도 맡고 있다.

애초에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음이 영영 상실되었다.

우리에게 분열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그랬다.

인간의 도리를 갖고 있다면, 해서는 안될 일을 자행하면서도, 말로는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음성까지도 기억한다.

너무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사람들이 마음이 움직였다.

한두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굉장히 부끄럽고, 나쁘다고 드러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하면 나쁜 일이 나쁘게 보이지 않는 심리를 이용한다.

이것은 도리를 경시여기는 지경까지 이른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불의한 일을 많이 행하고, 주의 나라에도 해를 끼친다.

우리가 대하는 모든 일들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선한 일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알고 있을 때, 나의 행위가 옳은 것이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은 다 심판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대해 상을 받거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교회를 좋게 하려고 한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보신다.

선하게 말을 했지만, 그 속의 거짓된 저의를 보신다.

그 저의가 악하면 형벌을 받고, 선한 의도였지만, 기대치 만큼 나타나지 않았어도, 인정하실 것이다.

선한 행위, 선한 동기는 내가 보기에 이렇다 저렇다 결정하기 보다, 애초에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할 것이다.

나는 영적인 일을 열심히 했다고 주장해왔어도, 심판대 앞에서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자기가 영적인 일이라고 했던 것이 다 주님을 배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영적인 일을 하느라, 도리를 다 버렸다.

그 때는 너무 늦었다. 비통속에 영원히 괴로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옳은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게 되면, 훨씬 합당한 자로서 일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속한 일이라고 해서, 경솔히 여기고, 중요치 않다고 하면 안된다.

영적인 것만 중요하다고 하면, 아마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일에 대해 반응하게 하신 그 기준을 내가 무시하게 된다.

천륜은 함부로 대할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마땅한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로부터 배우고, 이것을 행하여 그를 기쁘시게 한 일은 의로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를 결국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 그 계획 안에 있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을 행하는 것을 그가 기쁘시게 여기는 것이다.

 

[본문]

 

가정을 통해 인간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사단은 가정을 깨므로, 방해하려고 한다.

사단은 가정을 깨므로, 사회 자체를 병들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세상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는데, 특히 젊은 사람에게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온다.

세상 체제는 하나님을 배울 루트를 다 끊어버린다.

그런데, 부모들은 의와 경건 속에서 자녀들을 기르는 책임을 갖는다.

오늘날 그들은 그 인도받는 출발점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받는다.

성경이 이천년이 지났어도 괜찮다.

똑같은 하나님이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 문화의 모든 요소들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의 범위안에 있다.

오늘 우리를 인도하는 모든 원천은 성경말씀이다.

많은 성경 말씀을 통해, 그런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 부모 자녀 관계]

 

6:1-4까지는 부모와 자녀의 도리에 대한 것이다.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본문의 자녀들이라는 말은 연령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든 부모가 있는 자에게 말하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 교회 전체에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를 순종하라. 순종과 복종에 대해 약간 혼동할 수 있다.

순종은 헬라어 원어로는 아래, 듣다를 합친 말이다. 겸손히 낮추어 듣는 것이다.

기꺼이 하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태도로는 공경해야 한다.

자녀가 분가하고 난 다음에는 이전에 살던 부모의 통제 아래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에 대한 공경과 순종은 계속 되어야 한다.

어쨌든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순종하는 자로 만드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옳은 것, 의로운 것]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왜 이것이 옳다고 했을까.

자녀가 부모를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옳다고 한다.

헬라, 유대 사회에도 그렇다.

자녀의 인권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헬라문화이지만,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맞다고 본다.

 

본문의 옳다는 기준의 원천은 하나님의 계명이다.

옳다는 것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옳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은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보시는 것이다.

옳다와 의롭다는 것은 헬라어로는 같은 단어다.

심지어 옳다는 정의롭다는 의미로도 쓴다.

 

아래 구절들의 정직하다는 말은 honest가 아니라, 올곧음을 말한다. 정의를 말한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9:13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저희와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저희에게 주시고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119:75,128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128.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4: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옳은 일의 기준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5:10,17

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옳음을 추적하고, 옳음과 맞춰질 수 있는 기준이다.

 

우리는 구속사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의에 대해 좁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옳은 것의 기준은 하나님이다.

옳은 것은 또한 의로운 것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옳다는 것은 거의 근본이 하나님의 옳으신 판단에 있다.

인간의 보편적 생각으로도 부모 순종이 옳다는 것은 다 안다.

 

19:26,27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께서 숨넘어가기 직전 요한에게 그 모친을 부탁하셨다.

그 중요한 장면에 아무 설명도 없이 들어간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 어머니로 주님의 모친을 섬겼다.

하나님의 의는 세상의 덕이라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어느 사회든 덕으로 나타난다.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세상의 덕을 비추어, 하나님의 법으로 재확인했다.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각 사람의 양심이 지적하는데, 모른 척하고 행한 것 다 심판받는다.

 

[주 안에서]

 

부모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과 그 결이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면, 주님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보신다.

 

자녀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칠 때, 부모의 중요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과 하나님의 사이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신뢰하고, 권위를 주어,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도록 보낸 자들이다.

부모는 자기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이다.

대리인적 권세를 가진 자들이다. 하나님이 그 권세를 빌려주었다.

내 자녀이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양육하도록 나에게 맡긴 것이다.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주안에서라는 말은 부모가 나쁜 짓을 하게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긍휼을 배워야 한다.

자비 없는 사람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기 자녀는 절대 손해보면 안된다, 이겨야 한다, 길에 떨어진 것 주워와라. 이러면 안된다.

나쁜 짓 말고, 그 외에는 범사에 순종하라.

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각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법이 무시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주의 뜻을 따라 걷는 가정]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부모든 자녀든 모두 순종하는 자다.

하나님의 법에 절대 순종하는 가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단순한 사회적 관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계명,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걸어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