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새가족 목양아카데미 수료식 말씀 (2025년6월15일)

lks8284 2025. 6. 23. 14:47

새가족목양아카데미 수료식 말씀

2025년 6월 15일 새가족목양아카데미 수료식

-이기택 목사님 말씀-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 수료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성경스쿨 23기 수료하시는 분들 한번 손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성경스쿨 23기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다음 섬김스쿨 22기 수료하시는 분들? 반갑습니다. 그 다음에 리더스쿨 16기 계십니까? 안 계신지 오늘 못 오신 분들도 있고 또 지예배당에서 수료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성락 파트너십 과정 계십니까? 네, 이쪽에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네 파트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 이전에 우리가 이 기관이 새가족 목양 아카데미입니다. 원래 예전에 목양 아카데미 따로 운영되어 있었고 그다음에 새가족 아카데미 따로 하다가 지금은 이제 하나가 되어가지고 새가족 목양 아카데미라고 운영되고 있는데 사실 성격이 좀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장소도 다르고 대상자들도 다르고 하기 때문에 조금 이제 개별적으로 운영이 되고 담당 목사가 같고요. 담당 전도사님이 같고 어떤 한 맥락에서 진행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한 기관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료 예배는 목양 아카데미만 따로 하고 있습니다. 목양 아카데미가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성경스쿨부터 시작하지요.

그러다 보니까 자칫하면 ‘가장 기초적이고 초보적이다’ 이렇게까지 이해할 수가 있는데 사실상 그렇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초보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1단계다. 그 다음에 섬김 스크린 2단계다 이렇게 보기가 좀 어려워요. 왜냐하면 성경이라는 것은 신앙생활에 연륜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부분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스쿨을 먼저 하는 건데 성경스쿨을 다 공부하셨다고 하더라도 성경을 다 이해한 건 아니죠. 도와드리는 것 뿐입니다. 이번에 성경스쿨 하시면서 소감도 쓰시고 소감 나눠보기도 하시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자기가 받은 말씀을 나누고 하는 과정에서 또 깨닫고 이런 것도 해보셨을 것이고요.

또 반에 따라서 온라인으로 하시게 되면 소감을 작성해서 제출하고 이런 것도 해보셨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다 해보셨죠? 소감을 나누는데 그 취지가 뭐냐 하면요. 하나님 말씀 앞에 반응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어가지고 변화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 다음에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잘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근데 많이 들었지만 우리가 마음을 딱 닫고 귀로 듣고. 이쪽으로 또 나가고 보통 이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심령까지 잘 들어가지가 않아요.

우리가 영혼으로 받는다, 심령으로 받는다, 성령으로 받는다 말은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심령을 활짝 열고 말씀을 받지 않으면 잘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향해서 마음을 활짝 여는 것이 되게 중요한데 노력한다고 또 안 됩니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그것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소감 나누는 시간을 활용도 하는 것이고요 또 소감 쓰기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감을 쓰면서 여러분이 체험해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여겼지만 소감을 써보니까 정말 말씀 받는 깊이가 달라지더라. 혹시 그거 체험해보신 분 있으면 한번 손 들어봐 주시겠어요?

여러분들이 체험하신 것 같아요. 이런 방법은요, 우리 교회에서 몇 년 전부터 이렇게 암암리에 부분적으로 확산이 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미 중국이나 아프리카 또 남미 이런 그 다음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런 지역까지 계속 이런 방법이 진행되어서 전 세계에서 많은 분들이 소감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한결같이 처음에는 소감 쓰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일단 안 하다는 걸 하려니까 거부감이 있고요. 그다음에 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될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겨우겨우 해오시면 그걸 읽어보면 소감이 아니라 요약인 경우가 많습니다. 설교에 대한 요약.

그래서 만약에 제가 한 설교나 강의를 듣고 누가 소감을 써왔어요. 제가 읽어보면 제가 했던 얘기예요 새로운 게 없죠. 그런데 소감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받았을 때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았을 때 내 마음속에 어떤 반응이 일어났는가? 하나님 말씀 보니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있는 게 다 드러나니까. 그러한 반응을 기쁜 반응일 수도 있고 안 좋은 반응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진솔하게 반응을 내어놓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다음에 그런 반응을 쓴다 하더라도 그것을 누구한테 제출한다는 게 되게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고백했는데 그걸 누구한테 제출하겠어요. 괜히 소문나면 어떡해.

이런 것 때문에 잘 안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거 신뢰관계가 없으면 또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제출해야 되니까 적당히 고백하기도 하고 그런데 제가 이번에 여러분들이 소감 쓴 거를 간헐적으로 읽어봤는데 상당히 진실하고 깊이 있게 쓰신 분들이 참 많아요. 진솔하게 자기 자신을 내어놓으면서 쓰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게 하신 분들은 말씀이 들어가는 걸 체험할 겁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아요. 운동력이 있어서 계속 움직이고 나를 변화시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소감을 써봐야 내가 변화가 안 되는데 자꾸 쓰면 뭐합니까? 자꾸 쓰다가 보니까 내가 빈말을 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안 쓰랍니다.” 이런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분들은 소감이라는 것을 하나의 다짐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나 앞으로 잘해야지. 나 지금까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다짐을 쓰는 거예요. 그리고서 다짐했는데 잘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내가 빈말 자꾸 하는 것 같고 거짓된 사람인 것 같고 하니까 차라리 다짐을 안 할래요. 이렇게 고백을 하는 거죠. 그런데 소감을 쓴다는 거는요. 다짐 쓰는 게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겁니다. 이건 마치 거울을 보는 거하고 똑같아요. 거울을 여러분이 매일 보시잖아요. 아마 오늘 아침에 다 보고 오셨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하다못해 저 같은 사람도 거울보고 오는데요. 이렇게 올리고 쭉 하고 그런데 거울 보면 되게 기쁘신 분.

별로 맘에 안 들어요. 항상 거울 보면 맘에 안 드는데 뭔가 부족한 부분이 보이잖아요. 특히 여성분 같은 경우는 화장을 해야 되는데 화장이 마음대로 잘 안 될 때도 있죠. 눈썹이 잘 안 그려진다든지 그러면 그런 걸 발견해서 자꾸 고쳐야 되는데 그때 거울 비쳤을 때 발견한 나의 불완전한 모습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거 발견하는 게 좋습니까? 발견 못하는 게 좋습니까? 하는 게 좋죠. 안 그러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 야 너 화장이 왜 그래 혹은 야 너 얼굴에 뭐 묻었어. 이렇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발견하면 좋죠 그래서 그걸 수정할 수 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딱 받았을 때 마치 거울과 같아서 내가 보이는 겁니다 불편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거울 보면서 거울 보고 야단하는 사람 아무도 없죠. “야! 너 거울! 너 왜 그래? 왜 나한테 그렇게 공격적이야?” 거울이 공격적인 게 아니고요 당신 얼굴이 공격적인 거예요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죠.

그런데 이거를 보여주기 때문에 내가 수정할 수 있는 거니까 고마운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거울과 같다고 했어요. 거울에 비춰보는데 어떤 사람도 거울에 비춰보고 나서 ‘아, 더럽구나’ 하고서 그냥 가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했죠. 야고보서에 그런 말씀이 나와요. 그것을 수정 하겠죠.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을 받았으면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단 말이에요. 그걸 적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좋습니다. 창피하지만 적는 거예요 그러면 적으면서 내가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내가 적음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날 비춰주시는 거예요 이미 내가 적는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과정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이 이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소감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계속 쓰다보면 이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달라져 있는 걸 발견하게 돼요.

제가 지금 중국에 있는 베뢰아 교회들 280개가 있는데 이 목회자님들에게 이걸 쓰라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절반 이상이 쓰십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처음에 다 우리하고 똑같아서 쓰기 싫어하지만 계속 이렇게 쓰다 보니까 자기 자신을 보게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소감 쓰라고 하면 어떻게 쓰느냐 하면요.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셨는데 아들이 육체가 돼서 오셔서 마귀를 진멸하셨고 이 마귀는 음부를 지배하고 있다가 권력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성도가 마귀하고 싸우는 삶이다. 이런 식으로 적어요. 객관적인 사실 자체를 적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소감이 아니라 그냥 요약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을 소감 쓸 때 어떻게 했었냐면 오늘 말씀을 들으니까 마귀가 하늘에서 저질렀던 그 모습이 내 안에 그대로 있더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누군가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해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시는데 하늘에서 천사들 중에서 누군가가 그걸 시기 질투해서 말을 듣지 않고 “네가 하나님이야? 내가 하나님 말씀 듣지 왜 천사 말 들어야 돼?” 이런 식으로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마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모습이 내 안에 있더라.

“나는 지난 번에 교회에서 우리 단임 목사님이 누구를 세웠는데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뒤에서 그 사람 욕을 좀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저 하늘에서 있었던 마귀의 모습하고 너무 똑같다는 걸 발견하고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이 모습을 고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마귀의 종로를 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회개하는 거죠. 우리가 지금 방금 하늘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지 않습니까? 그 하늘에 있었던 일을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이유가 뭐냐면 이거 동그라미 잘 그리고 설명 잘하는 교사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고 이걸 깨달아가지고 똑같은 짓 저절로 말하고 가르쳐준 겁니다. 그러니까 저 하늘에서는 “네가 하나님이야? 내가 왜 천사 말 들어야 돼? 난 하나님 말만 들을 거야!” 이렇게 이런 일이 있었지만, 이 땅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말 들어야지 왜 사람 말 들어? 나는 하나님의 음성만 들을 거야!” 똑같지 않습니까?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배우면요. ‘잘 담아다가 나중에 가르쳐야지.’ 이렇게 말씀 듣는 게 아니고, 이 말씀으로 내 자신이 변화되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 배우면 배울수록 겸손해지는 거고요. 배울수록 예수님 닮아가는 겁니다. 그럼 예수님이 누가 보더라도 예수님 너무나 가까이 하고 싶고 사랑스럽고 이분 떠나고 싶지 않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님 항상 같이 있고 싶죠. 부담스러우세요? 예수님 다 사랑하시고 가까이 하고 싶잖아요.

그러면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가 돼야 되는 거예요. ‘아 나 저 사람하고 가까이 하고 싶어. 저 사람 너무 따뜻해. 또 저 사람은 정말 진실해. 저 사람은 자기를 희생하면서도 대의를 구하는 사람이야. 난 저 사람 옆에 있고 싶어.’ 자꾸 쫓아다닌단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죠. 우리가 말씀대로 한다면 말씀을 잘 배운다면 그래서 말씀 배우는 겁니다. 이거 베뢰아아카데미 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밟아서 다 해야 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직분 받으려면 이거 무조건 해야 되니까 한다.’도 아닙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지만 그건 중요한 거 아닙니다. 말씀 배움으로써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고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대로 “네가 내 모습을 좀 드러내다오. 나를 증거 해 다오.”

오늘날 온 세상의 문제가 뭡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되게 오해하고 있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혹시 보십니까? 넷플릭스 구독하신 분 계세요? 거기 안에 보면 드라마 시리즈가 있는데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만든 시리즈들이 있어요. 거기 오징어 게임이라는 거 한참 유행했었죠. 거기 보면 악역으로 나오는 사람들 거기에 종교가 뭐예요? 기독교입니다 그다음에 성폭력한 사람 직업이 뭐예요? 목사예요. 항상. 알고 계십니까? 아주 비열한 인간 뭐예요? 기독교 목사.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학교는’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어요. 좀비 나오는 겁니다. 어떤 화학 선생님이 자기 아들 실험을 해서 좀비로 만들게 됐는데 그 아이가 말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이 아버지가 점잖은 분이 아이를 폭행하는데 심하게 폭행하고 나중에는 이 아이가 첫 번째 좀비가 되고 그다음에 이게 퍼져가지고 학교 애들이 다 좀비가 되는 그런 설정인데 이제 그 아버지가 악한 사람으로 나오는 거죠. 화학 선생님이. 그런데 실험을 하다가 혹은 애하고 대화하다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무자비하게 때립니다. 아이를. 뭐로 때리는지 아세요? 뭘로 때리겠어요? 성경책..
두꺼운 성경책 딱 들어가지고. 성경이라고 딱 쓰여 있습니다. 그것도 얇은 성경이 아니라 두꺼운 옛날 성경 있죠. 딱 집어가지고 그걸로 때립니다. 얼굴을 피 철철 나고 그런데 그런 장면이 그 드라마 하나에서 나오지 않아요. 다른 데서도 계속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게 굉장히 많아요. 지금 이런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팽배해 있는데, 이런 것들에 우리가 일부러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자신이 플러스알파의 근거를 더해줘서는 안 되겠죠. 반대로 우리를 만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 인상이 달라져야 돼요. 저런 사람이 믿는 저런 사람이 섬기는 분이 저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바로 저런 분이시구나. 이렇게 해야 돼요.

여러분 어디 가서 먹을 게 있어요. 먹을 걸 마련해 놨어요. 뷔페라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무슨 행사가 있다든지 거기서 먹고 가래요. 그래서 마음껏 갖다 먹으랍니다. 마음껏 갖다 먹었어요. 싸갈까요 말까요? 집에 있는 애 생각나서 괜찮아 싸갈까요 말까요? 그거 성경에 있어요. 율법에 다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율법의 핵심이 사랑하라죠.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라. 이웃 사랑한다면 그거 가져가서 챙겨서 우리 식구들 줄까요. 말까요? 그렇게 갖다 준다면요. 자기 자식은 사랑하는 거지만 이웃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뷔페에 가서 다 싸서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죠?

여기 교회에 예를 들어 라운지를 만들어 놓고 사탕을 잔뜩 갖다 놨는데 거기 온 사람들은 하나씩 먹으라고 갖다 놨어요. 그런데 그거를 가방에다 전부 집어넣고 가져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회가 엉망진창 되겠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바로 율법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 식으로 한단 말이에요. 옛날에 이케아 가구점 아시죠? 이케아 가구점 가면 거기 펜, 연필 갖다 놔요. 메모하라고. 그거 우리나라에서 제도가 없어졌어요. 지금 다시 생겼나 모르겠는데. 왜 갖다 놨더니 다 집어가. 그러니까 그 제도가 없어진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집어가는 사람을 보고 우리가 뭐라고 하겠어요. 저런 이기적인 인간 상대하기 싫어 이렇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그런 다면요. 하나님 아버지 더 많이 갖고 올수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중에 간증까지 해요.

“내가 이렇게 갔는데 남들은 하나씩 밖에 안 가져왔는데 나는 10개 가져왔어.” 아니면 “나는 통째로 집어왔는데.” 하고서 간증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예를 들면 어떤 분이 “여기서 부산까지 가는데 나 2시간 만에 갔어. 200km로 달려서 약속 안 늦었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간증하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세상에다 증거 하는 겁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성격 공부를 잘하면서 그런 식으로 한다면요, 안 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모든 거는요, 그냥 머리에다 집어넣으라고 가르쳐주신 게 아니고 반드시 우리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주시는 거예요. 그럼 변화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선한 모습, 의로운 모습이 나타나서 눈에 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저들이 믿는 하나님이 드러나는 거예요. 우리 그거 하려고 배우는 겁니다. 남들보다 많이 배워서 남을 가르치는 위치에 서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에요. 혹시 그렇게 생각해왔다면 혹시 그런 생각의 요소가 우리 안에 있다면요. 싹 제거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성경스쿨부터 시작해서 성경스쿨 리더스쿨 배우는데 자꾸 점점 올라간다 생각하실 것도 없고 그다음에 리더스쿨 배웠다고 해서 이제는 난 리더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오해죠.

리더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질을 배우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 배웠다고 해서 자기가 다 습득이 된 것도 아니죠. 최소한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 목양 아카데미의 교육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배워야 될 모든 것을 우리가 준비해 놓고 있지 않아요. 지금 우리 교회가 분열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2017년 이후에 지금 여기 교사 하시던 분들이 저쪽으로 가신 분들이 많을까요, 남은 분들이 많을까요? 여기가 가르치는 데잖아요. 교사님의 역할이 아니라 남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 성향상 분열파가 많을까요? 교회를 사랑하는 측이 많을까요? 분열파가 훨씬 많았습니다. 가르치는 분들 중에서 분열 세력이 된 분들이 훨씬 많아요. 왜?

잘 가르치고 남들보다 위에 있어야 되고 내가 더 많이 알고 항상 내가 알고 있는 걸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감독자마저 판단하고 습관이 돼 있다는 말이에요. 만약에 이런 식으로 해야 된다면요. 안 하니만 못하죠. 또 이런 분들에게서 배운다면 또 그대로 배우는 거죠. 그렇게 돼서는 안 되고 진짜 우리가 배운 사람이다 그러면 남들보다 더 겸손해지고 남들보다 더 예수님 닮아가고 이렇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셔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 가는 거고 그런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배우셨던 것에 대해서 너무 확신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 정말 자세히 따지고 보면 모순되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만 예를 들어보면 여러분이 그전에 지옥 갈 존재였잖아요. 그럼 지옥 가게 된 그 원인이 뭐 때문입니까?

원죄 때문에 이렇게 됐죠. 그리고 우선 우리가 뭐라고 했냐면 아담 때문에 지옥 간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담 때문에 지옥 간다. 그런데 이거 자세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아담 때문에 지옥 가는 거 아니고요. 당신 자신 때문에 지옥 가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음에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른다. 로마서 5장 12절에 누가 범죄했다고요? 모든 사람이. 그런데 우리는 “나는 죄가 없는데 아담 때문에 내가 왜 지옥 가야 돼?”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를 하면 불신자들 이렇게 대답을 해요. “아니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아담 때문에 지옥 가야 돼요?” “염려 마세요. 예수님이 다 이미 죄값 치러졌으니까요.” “그래요? 그럼 난 지옥 안 간다는 거죠? 됐어요!” 그러면서 너무 복음이라는 것을 싸게 팔아버려요.

그런데 지옥 가는 건요. 각 사람의 범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에요. 에스겔 선지자가 말했어요. “각 사람은 다 자기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거지 아비 죄 때문에 자식이 그 죄의 형벌을 받는 거 그거 난 용납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하나님의 공의예요. 그런 하나님께서 아담 죄 지어서 내가 지옥 간다고? 그런 불공평한 게 어디 있습니까? 아니에요. 그러면 아담으로 발명한 죄가 들어왔다는 건 뭐냐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는 다 온전하게 만드셨을 텐데 왜 이렇게 죄가 있는 거냐? 어떻게 해서 죄가 들어오게 된 거냐 아담 때문에 이 얘기하려고 하는 거지 아담 때문에 당신이 지옥 간다 이 얘기하려고 하는 거는 아니다 이 말이에요. 한 반의 학생들이 마약을 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어떤 학교에 한반 애들이 30명이 다 마약을 했어요. 걸렸습니다. 다 퇴학당했습니다.

그러면 그중에서 1번 학생이 퇴학당한 원인은 무엇 때문입니까? 자기가 마약했다는 이유 때문이죠. 각각 자기 죄 때문에 퇴학당한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주장한다면요. 아닙니다. 이건 내 죄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입니다. 왜냐 조사를 해보니까 그 학교에 20년 전에 청소부 아저씨가 그 학교에서 일하시는 청소부가 마약을 하던 사람인데 그것을 학생들한테 몰래 몰래 나눠져 가지고 이렇게 퍼져가지고 지금 한반 학생들이 다 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해서 원래 마약이 없던 학교에 마약이 들어왔다. 마약 단속국에서 이렇게 확인을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20년 전 그 청소부 때문에 이 애들이 퇴학당한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나요? 마약 단속국 입장에서는 원인을 분석해야 되니까 그렇게 평가할 수가 있어요.

20년 전에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까지 됐다. 이렇게 할 수 있지만 각 사람이 범죄 했기 때문에 각 사람이 퇴학당한 겁니다. 우리 각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 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니들 안에 사람 속 안에 있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안에 뭐가 있냐. 살인, 간음, 강도질, 이기적인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아담의 죄 때문에 지옥 간다. 이렇게 개념적으로 학습한 게 도리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이 너무 그동안 배워왔던 거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거에 대해서 너무 맹신하지 마시고요. “모든 배우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다.” 하는 이 사실을 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평생 배우고 평생 가까이 하는 일에 힘쓰셔야 돼요.

혹시 여러분께서 ‘섬김스쿨부터 해서 성경스쿨은 할 기회가 없었다’거나 혹은 ‘옛날에 성경스쿨을 한 것을 나는 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을 나는 해본 적이 없다.’ 그러면 다시 성경스쿨을 하실 것을 권면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몇 년 전에 2, 3년 전인가요. 다시 제작을 했습니다. 기존의 것으로 배우셨던 분들은 다시 들어보실 것을 강력하게 권면드립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오늘 수료하신 여러분께서 우리 성락교회에 정말 우리 다른 모든 성도님들이 본 받고 싶고 또 나도 저렇게 하나님 사랑하고 싶다 라고 정말 거룩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변화가 보이고 하나님으로 말면 기쁨이 충만한 그러한 성도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하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우리 수강생 또 우리 수료생 여러분을 주님께서 우리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또 이들이 배우는 모든 것들이 단지 지식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더 가깝게 하며 하나님 사랑을 더욱더 뜨겁게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