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예배

이기심 없는 충성하는 삶(연합250622)

lks8284 2025. 6. 27. 10:10

이기심 없는 충성하는 삶(디도서 2:11~14)

2025622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디도서 2:11~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께서 준비하신 생명의 길, 구원받는 구원의 삶, 그리고 영원한 나라로 인도받는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준비하고 성공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기회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 의미와 목적대로 잘 이루어서,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하거나 잘못되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온전히 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수를 믿은 후 옛 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로이 낳은 바 된, ‘새롭게 태어난 나를 통해 새로운 삶을 성공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새 사람으로서 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십니다. 동시에 하늘에 속한 존재로서 준비시키는 이 과정을 통해 나는 결국 영원한 나라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때로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하늘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하늘에 임하느냐?”, “나도!”, “나도!” 다들 손을 들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늘에 들어가지 못할까요?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제시하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기준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기준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그 기준에 따라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종교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는 주어진 신앙의 기회를 잘 활용했고, 완성했고, 잘 해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천국에 갈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 빠진 것입니다.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교회를 잘 다녔는지, 내 종교 행위가 어떠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진정으로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핵심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문맥 안에서 우리가 종종 들어왔던 바이며, 거의 모든 설교와 가르침이 이와 일치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말씀이 선포되어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의 사도들을 통하여, 특히 사도 바울의 놀라운 영감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은, 인간 모두가 멸망하게 될 것인데,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방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나게 될 것이고, 주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근심과 괴로움은 더 이상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결국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지금의 모습은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영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아들, , 즉 왕자(prince), 공주(princess)로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성공시킬 것입니다.

 

, 교회 안에서의 일상이나 그리스도인의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었다고 해서, 복음에 잘 순종하고 있다 생각하며 거기에 머무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나 몇 십 년 교회 다녔습니다.” 이런 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여러 활동을 한다고 해도,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회개하고, 주의 이름으로 거듭나며, 침례를 받고, 결단하여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새 출발은 곧 이전의 삶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전할 말씀을 지금 다 했습니다. 핵심을 다 말씀드렸습니다.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사도들을 통하여 복음이라는 핵심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옛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옛 삶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옛 성품, 이전의 본성을 따르던 그 성품을 버리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기에 나는 천국 간다, 예수님의 사람이다라고 말하지만,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고, 싸움을 일으켜 교회를 삼키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말하는 것조차 구질구질해서 귀한 하나님의 말씀에 흠집이 갈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육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 이를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도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요구하는 것들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왔을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는 복음의 요구를 이루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뭘 빼앗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원래 지옥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나 같은 사람,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가겠습니까? 벌써 밥 먹을 때만 봐도, 우리가 속이 얼마나 좁습니까? 누구랑 같이 밥을 먹다가 소시지 반찬 하나 남았을 때 그걸 두고 서로 신경전을 벌일 정도인데, 그런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요? 그럴 순 없습니다.

정말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선하고, 인자하고, 의로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자체다하는, 그런 증거가 있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이 용납하실 수 있는 자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기 이기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사는 사람과, 그래도 욕심을 참고, 손해를 보더라도 선하게 베풀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 인본주의다!”라고 말한다면, 지옥 갑니다. 인본주의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선하고 의로운 성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어떤 복을 받았든지, 조상이나 부모가 잘 가르쳤든지, 비록 삶에서 많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리워하며, 용납하기 쉬운 마음의 성품을 가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남의 것을 훔치고 거짓말하는 데 대해서 꾸짖기 보다, “세상은 요령껏 살아야 한다면서 악을 같이 행하며 자식에게도 그런 것을 가르쳤다면, 그 자녀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부모가 너무 잘못한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간절한 부모의 욕망이 자녀에게도 물려져야 하고, 자녀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그 성품을 준비해 주어야 합니다.

 

성품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교회에서는 악을 행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교회를 지배하면, 교회에 악한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우주가 사라지고 이 세상이 몇 번을 지나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지켜야 할 진짜 법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성품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누구든지 양심적이고 착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악한 부분도 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는 있습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의를 위해서 참고, 교회를 위해서 절제하며 행동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기회만 생기면 누구든 밟고 쓰러뜨리려는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과, 그 외의 성도들이 모두 죄인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러나 그 둘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주의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주의 나라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바탕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 착해서 세상을 어렵게 삽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복음이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기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가 복음을 받은 후에는 자기 자신을 더욱 변화시키고, 자기의 악한 성품, 옛 성품을 잘 제어하는 능력을 통해 자신을 간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잘 제어하는 자는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죄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를 절제하며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려는 합니다. 무슨 법입니까? 예수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셨고, 그의 제자들과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그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실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가 하나도 없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실행하는 자, 바로 이 자를 주님은 구원하시고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행하는 자

 

그러나 옛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자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평생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며 사는 자,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무리 중에 꼭 대장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앞장서야 하고,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태도는 세상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들어오면, 내 교회를,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 손해만 보는데요? 어떤 성도는 세상에서도 잘나가고, 직업도 좋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데, 교회에서도 절대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헌금도 하지만 조금만 합니다. 신앙생활에 요구되는 것들, 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가난하고, 삶 자체가 힘든 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많이 섬기고, 헌신하며, 사랑으로 눈물로 기도하고, 먼 길을 오가며 교회를 위해 애씁니다. 이 사람은 손해를 엄청나게 보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사람은 이런 사람을 보면 비웃을 것입니다. “뭘 저렇게까지 해?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이 사람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신 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어렵지만 애쓰는 성도처럼 할 것입니다. 헌신하고 애쓰며 함께 하려 할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를 위해 애쓰는 것이 그 성도 스스로가 한 것인 줄 아십니까? 성령께서 그 속에서 그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나타나게 하려고, 변화된 심령으로 하게 하려고. 그 성도는 왜 그렇게 할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율법도 있고, 여러 규례와 법도 있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도 율법을 다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주 예수의 오늘 명령을 따라갑니다. ?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에는 우리를 다시 정리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라도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며, 악을 피하고, 교회를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주의 목자를 사랑하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실들을 발견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목자만 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듣도록 세우신 자다.’ 하고 그에 대한 조심성이 있어야 하고, 또 교회 안의 모든 기회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준비하신 것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헌금은 조금만 해. 혹시 모르니까. 지금 내 삶도 빠듯한데.”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기꺼이 주께 드립니다. 주의 교회는 양들 즉 성도들이 내놓는 헌신과 정성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피로 구원받고, 천국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유지합니다. 그렇게 유지가 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그들이 헌금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법입니다. 열심히 죽어라고 헌금하는 것은 교회가, 곧 성도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가 자신에게 어떤 혜택을 주지 않는다며 따지는 태도는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교회를 유지하고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이 땅에서 몇 년도에 태어나고, 몇 년도에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여, 죽는 그날 그 시각까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주의 교회를 섬기는 영광의 기회를 받은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그분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왔느냐?” 그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왔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다가 왔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특별히 즐기지도 못하고, 유익도 별로 얻지 못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주님. 저는 많이 무식했고, 능력도 부족해서 좋은 직업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을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제 눈에 주님이 보이지 않았기에,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다 왔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목자를 사랑했고, 주의 성도들을 사랑하다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된 자, ‘변한 자의 모습입니다. 이기심을 버린 자. 사실 누가 자기에게 이익이 오는 걸 싫어하겠습니까? 누구나 이익을 원하고, 돈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자기에게 온 기회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날부터 죽는 그날까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그때부터는 나의 삶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십니다. 멀리서 그냥 바라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주님이 보실까 봐 무섭다고 말하지만,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마치 CCTV처럼, 성령은 늘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성령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 안에 있으므로 너는 제사장이다. 너는 성전이다.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리스도께서 너를 위해 죽으셨고, 너를 위해 살아 계신다. 그리스도는 네 마음속에 계신다. 내가 너 안에 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너 안에 계신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거룩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껄렁껄렁한 태도로 교회에서도 껌도 좀 씹고 다리도 흔들고 하는 식의 태도는 다 버려야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모양이나 겉치레, 그런 종교성은 전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닙니다. 그래도 기도는 근사하게 하니까, 천국이 확보돼 있고, 하나님께서도 끔찍하게 사랑할 사람 같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서 떨어진 자일 수 있습니다. 아무 마음 없이 종교성에서 나오는 신앙이 있는 척하는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하러 오는 곳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뭘 잘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너는 교회를 사랑하잖아.” “.” “주의 교회를 섬기려고 애쓰잖아.” “.” “주의 뜻을 따라, 복음을 위해 교회의 일에 힘쓰고 있잖아.” “.” “그렇다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내 아들을 사랑하고 기뻐했던 것처럼,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겉으로 잘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는 오늘을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왜 인내하나요? 왜 기다리나요? 그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를 기다리는 동안 짓궂고, 괴롭고, 힘든 일들이 가득합니다. 저는 그래도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서 다들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고, 조금씩 양보해주고. 이렇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들은 사납고 세상은 괴롭습니다. 제 인생에도 배반하는 자들도 너무 많고, 속상한 일들이 많고, 인생은 굽이지고 후미지고 어두운 곳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나라 같은 귀한 나라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나라에 살고 싶다. 하나님의 의가 충만한 그 나라에서 살고 싶다. 나는 간절히 그 나라를 사랑하고, 주님의 은혜를 사랑한다. 주님의 너그러우심, 선하심, 인자하심을 나는 정말 사모한다. 나는 그 나라를 원하고, 그 나라가 오기까지 기다릴 것이다. 주님은 내 마음을 아시겠지. 나의 기다림을 아시겠지.’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들의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대단하고 훌륭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근본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그 원칙이 주 예수의 원하시는 뜻에 있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으로 종교성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이 무엇일까요? 보통은 충성이라 하면 배반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너무 기초적인 수준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수년 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충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부터인가는 충성을 신의(信義)’라는 단어로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은 무엇입니까? 무언가를 믿고 있는 생각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내가 상대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상대방에게 신뢰받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충성입니다.

 

로마서 8장은 신약성경의 중심에 있는데, 핵심이 되는 말을 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5~7)

 

침례 받으면 더 이상 육신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침례 받고 나서는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매일 달려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훌륭해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옛 성품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혹시 그런 모습이 주의 성도들에게 굴종적인 모습으로 비칠까 봐, 무시당할 까봐 그건 안 되지~” 하며 자기가 좀 있어 보이려고 똑똑한 척하고, 유식한 척하고, 뭐가 있는 것처럼, 뭐를 아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져야 할 모습은 섬기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 겸손해서 진짜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엄청나게 지식 있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으로 자주 들어본 이야기일 텐데, 우리가 그래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때 묻고 냄새나는 광장에서 살았지만, 그들 안에는 지식이 충만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건 세상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오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베드로후서 220절을 보면,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말합니다. “예수를 믿은 자는 옛 사람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뭐가 달라야 할까요? 스타일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생각의 깊이, 판단의 기준, 삶의 동기, 모든 것을 움직이는 시스템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달라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달라져야 하는데, 교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 그들은 옛 사람과 똑같습니다.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이 말씀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버려져야 한다고. 그러나 바뀌지 않고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결국 죄에 머무는 자로 산다면, 죄와 싸우지 않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기심으로, 야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애초에 믿음을 갖지 않았으면 나았으리라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그런 자에게는 더 심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19장에 보면, “불의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도,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0절에는 깨끗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들이 있다.’ 했습니다. 언제까지요? 예수 믿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입니다. 그리고 21에는, “깨끗하게 하는 자를 주께서 사용하시고, 네가 인생을 힘겹게 지났을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은 너를 사용하셨느니라.” 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에 매이지 않으며 완전히 변화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종교적으로 훌륭해 보이는 그런 모습 말고요. 우리 함께 모여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뜻에 따라 변화된 새로운 사람을 점점 더 활성화시키고, 더욱 적극적으로 주의 일에 권장하여 선한 일로 주의 교회를 위한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아무 의미 없는 겉으로 보이는 신앙적인 모습은 필요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 세상적인 것들 자랑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변화합시다. 세상의 정욕을 좇지 말고 이기심 없는 충성하는 삶을 열심히 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주님 이제 명하시는, 우리 주님 원하시는 더 정말 옳은 길로 다시금 걷길 원합니다. 우리를 정말 도와주시고 우리를 움직여 주셔서 거룩한 길, 또 의로운 길로 다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원합니다. 세상에 물들었고 원래 원수들의 세상에서 살아갈 때 물들고 죄로 향했던 그런 옛 마귀에게 속한 모든 성질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닮은 성품, 정말 그렇게 하여 주의 복음이 선포되는 동안에 하나님 나라를 확정하는 우리 의무들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역사해 주시옵소서, 저와 함께하는 주의 교회를 이루고, 주의 복음에 사명을 준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될 일에 열심으로, 진정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 천국에 속한 사람으로서 변화시켜서 훌륭하게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주께서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출처] 20250622 이기심 없는 충성하는 삶(디도서 2:11~14)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태초에 말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