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6 굳은 마음은 진노를 쌓는다(260201)

lks8284 2026. 2. 1. 17:27

260201주일 [굳은 마음은 진노를 쌓는다]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심을 따라 죄인들을 참으시고, 용납하시고, 많은 배려로 베푸시며 기다리신다.

그런 은혜를 배척하고, 무시하는 것은 큰 죄다.

이 죄 자체는 행함을 통해 짓는 죄보다 더 크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배려를 무시하는 자는 죄를 범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죄가 많아지게 된다.

또한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회개를 기다리며 오래참으심에 대해 존중하지 않는다.

이를 알고도 죄를 범하기 때문에, 결국 그의 인자하심을 배반하는 그의 태도는 악질적인 죄로 무거운 책임이 주어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셔서 당장 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데도 회개치 않고, 그를 거절하는 것은 고의로 반역하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고집스럽게 거절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큰 죄가 되어,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이전까지 그가 범한 죄보다 훨씬 무겁게 된다.

[고집과 회개치 않는 마음]

본문의 배경에서 유대인들은 스스로 자기들은 잘하고 있다고 오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진리에서 벗어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남들을 심판하고, 정죄하며 의로운 체 하지만, 그들도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그들이 정죄하는 자들보다 더 악한 자로 만들고 있다.

본문의 묘사는 직접적으로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부분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슴철렁한 경고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과 그리 다르지 않는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다.

결국 인간의 죄의 본성으로 인해 정죄받은 사실은 믿지 않는 자나 믿는 자나 마찬가지다.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죄를 범하는 것은 똑같다. 죄를 범한 모든 자는 최후의 날 혹독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두고두고 충격이 될 말씀이다.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의 기대와 달리 이 사실은 취소되지 않는 사실이다.

이런 인간의 죄에 대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모습은 하나님의 모습과는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관대하시고, 오래 참으시며 인간에게 베푸시는데, 하나님의 인자하신 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거절하고 있다.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이것은 유대인을 대표로 세워, 우리 모두의 성질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배려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고집스럽게 회개하지 않으므로, 그분을 거역할 뿐 아니라, 그분의 친절한 은혜를 멸시하고 있다. 선을 악으로 갚고 있다.

[고집]

본문에서 고집은 성경에 자주 나온 표현인데, 굳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 단어에서 오늘날 의학에서 나오는 경화증이 나온다.

동맥경화라는 말도 이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동맥경화는 동맥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다. 동맥을 통해 피가 돌며 산소를 온 몸에 공급하는데, 이물질이 쌓여 막히게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육신에 이루어지는 굳어짐은 하나님께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인간들의 영적 상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아주 이상적인 표현인 것 같다.

냉담하고, 감각이 없는 마음을 잘 나타내는 단어가 고집, 굳어짐이다.

하나님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을 말한다.

영적으로 나쁜 상태는 단지 육신의 상황보다 훨씬 더 나쁘다.

동맥이 굳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뺴앗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적인 굳어짐은 그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둘 다 피해야 하지만, 영적인 굳어짐은 더욱 무섭다.

성경 전체가 영적 굳어짐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다.

구약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고집에 의해 하나님께서 시달리시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이스라엘은 굳어져서 배반하고 있다.

본문은 타종교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신자들이 그 오랫동안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께서 계속 시달리는 역사다.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스라엘에게 늘 시달리던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어느날 너의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실 것이다.

(찬양)

나의 평생에 소원하던 일, 예수를 닮아가는 일.

굳은 마음 제하시고, 사랑을 가르치신 나의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

굳은 마음을 해결하려는 하나님의 애쓰심이 이것이다.

사람이 망쳐놓고, 하나님은 구원하시려는 것이 성경의 뜻이다.

도저히 개선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어느날 새것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 지도자들은 그를 올무에 걸려고 질문을 던졌다.

19: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이혼을 해도 되는지 질문을 받고, 예수님은 몹시 화가 나셨다.

하나님은 본래 이혼을 원치 않으셨으나, 남자들이 하도 여자들을 불행속에 가두어두고, 마음대로 하니까, 새출발 하도록 긍휼한 마음으로 이혼법을 주셨다.

자기들은 긍휼없이 여자를 짓밟아왔는데, 오히려 그것으로 예수를 책잡으려고 하고 있다.

예수님은 굉장히 분개하셨다.

,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하는 현장을 잡으려고 병자를 고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저희를 둘러보시고. 이는 노하심으로 노려본 것이다.

거기서 당장 그들을 처단하지 않으시고, 참으시고, 책망하시는 정도로 하셨다.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고치려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처럼 웬만한 병은 다 치료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 때는 대부분 병자였다. 병자들이 너무 많다. 다 불쌍하다.

불쌍하니까, 예수께서 치료하시려고 하는데, 치료한다고 난리를 치니까, 예수께서 너무 분개하신 것이다.

3:8,15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브라서는 사람의 마음의 굳어짐에 대해 초점을 갖고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과거의 특정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경고다.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오늘날은 매일 나타나는 날이다. 오늘날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예수를 통해 죄인을 사면하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베푸심을 고집스럽게 거절하고, 회개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가장 나쁜 죄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죄책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범한 죄의 무게를 증가시킨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멸사하므로, 자기 죄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자신에게 부어질 진노의 가혹함을 가중시킨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속적으로 가볍게 여길 때, 그 결과는 확실한 심판이다.

어떻게 잘 되겠지 할 수 없다. 명백하다.

가볍게 여기니까, 죄를 가볍게 짓고 있다.

넘어갈 수 없다. 심판이 확정적이다.

사람의 악의적 태도만큼 그가 받을 형벌의 무게도 비례적으로 증가한다.

[진노의 날을 위해 죄를 쌓음]

진노의 날은 우리가 모르는 날이 아니다.

신약성경은 이 날을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다.

다만 단어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고 있다.

주의 날은 물론 오늘도 주의 날이다. 부활하신 주일, 주가 지으신 모든 날.

그런데, 성경에서 주의 날이라고 하면 그 날이 무슨날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심판의 날, 그날, 하나님의 날.

성경은 수천년후의 세대에게도 모를 사람이 없도록 그날을 잘 설명하고 있다.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두로와 시돈은 마귀의 성품을 그대로 나타낼만큼 지독한 도시들이었다.

딤후1: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찬양)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찬양)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우리 더 나가자.

그날은 진노의 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그날을 빨리 맞고 싶다.

빨리 이 짐을 내려놓고, 그 나라 가고 싶다.

20:10-15

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세상의 모든 사악한 자들은 심판의 결과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른 척 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못 보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은 바다에서 증발한 자들도 다 찾아내실 것이다.

진노의 날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끝나는 날이다.

그 날은 하나님의 공의의 판단으로 각 사람이 행했던 일들이 명백히 공개되는 날이다.

잘잘못을 분명히 구별하여 공개하고, 이에 따라, 공의로 형벌이 집행될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달리 취급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같은 잣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자기들이 범한 모든 죄에 대해서 그대로 심판받을 것이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육신으로 행한 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무시하고 배반한 태도다.

이것이 더 무섭다.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무시한 태도는 더욱 사악하다.

[자신이 받을 형벌을 자꾸 쌓아둠]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자기가 범한 악한 일이 현실에서 심판없이 그냥 지나간다고 안심하는 자들에게 큰 충격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의 범죄에 즉각 내리지 않고, 오래참으심으로 연기되니까,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죄를 짓는다. 그러는 동안 그 죄책은 계속 쌓여간다.

마침내 진노의 날이 왔을 때, 쌓아놓은 죄에 대한 형벌이 무섭게 퍼부어지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 때, 임하게 될 진노의 크기와 심각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당장 진노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자기 죄책은 없어졌다고 안심한다.

이것은 치명적인 오판이다.

그날에 그 오판이 드러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날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할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의 죄책은 피할 수 없고, 그 죄책은 점점 늘어간다.

예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도전하는 자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가장 최악의 형벌이 몰아치게 될 것이다.

주의 교회에 대한 고의적 핍박은 하나님의 은혜를 반대하는 최고의 표현이다.

자기 고집과 회개치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오래참으심을 이용한 자는 진노의 혹독함과 크기를 쌓아두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를 비웃는 악습들]

독일의 어떤 유명한 철학자는 하나님은 결국 용서하신다고 했다.

형벌을 과장되게 말씀하시므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고, 실제로는 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사람은 철저히 불신자다.

진짜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이런 식의 생각이 다 들어있다.

다 좋게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고들의 필수적 역할]

인간이 죄 지을 때마다, 형벌하신다면, 어떤 인간도 제명을 살지 못할 것이다.

간헐적으로 그가 경고성으로 벌하실 뿐이다.

때때로 그가 무서운 경고를 주지 않으면, 인류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도 못하고, 처절히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한없이 그냥 놔둘 수 없고, 간헐적으로 심판하셨다.

경고마저도 없다면, 전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죄를 밥 먹듯이 저지를 것이다.

고전10:5-6, 8-11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오늘도 나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은혜 베푸시고, 오래 참아주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자녀들인데도, 죄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죄를 간과하고 계시다.

마땅히 벌하셔야 하는데, 당장 벌하지 않고 있다.

13:1-5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은 형벌받을 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살당한 자나 망대가 무너져 죽은 자가 죄가 더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회개치 않으면 이와같이 너희도 망하리라.

너희도 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영적 상태에 있다.

진노는 모든 죄에 대해서 쌓이고 있다.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범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의 시대에 살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는 시대에 있다.

우리 모두 당장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바라시며, 오래참으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자.

주의 교회를 우습게 보지 말자.

교회에 사람들이 있으니까, 업신여기고, 우습게 보고, 낮게 보고, 평가하고, 세상의 법정에 고발하고, 멸시하고, 박해한다.

절대 그런 자가 되지 말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자.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진노의 날이다.

그날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그것을 피할 자도 없다.

우리 모두 예수께 가자.

다 회개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자.

영원한 행복으로 이끄시는 그분을 평생 사랑하고, 순종하고, 따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