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5주일 [참고 선을 행하는 자]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롬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예수 믿을 떄, 그 순간 천국 가는 것도 확정되었다고 말한다.
예수 믿을 때, 영생을 얻으니까, 그 자체로 천국 가는 것이 정해졌다고 믿고 있다.
이 사람들은 자세히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과 신자의 천국행을 구분 짓지 않고, 뭉뚱그려 하나의 사건으로 여기는 것이다.
조금 무리가 있다.
두개는 상당히 다른 개념을 갖고 있는 독립된 것이다.
너무 그렇게 간략히 정리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부터 신자의 마지막까지를 반마디로 해버리면,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영생이 확보되었으니, 우리가 얻을 최종 목적도 다 이루었다. 이제 마음을 편히 살면 된다.
교회 삶에 얽매일 필요 없이 세상식으로 살아도 된다. 굳이 교회 안다녀도 된다. 이치적으로 틀리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우리를 멸망에서 구하고, 생명을 주신 것은 맞지만, 그것이 천국행을 확정하지는 않는다.
어떤 영혼이 예수 믿고, 구속받으면, 그 이후부터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성경 전체가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
죄인이 회개하고, 그 이후부터는 개선을 위한 투쟁, 삶의 변화는 엄청난 신자들의 기념비와 같다.
이런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이 부분을 임의로 증발시키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진다.
그냥 형식상 지나가는 식으로 여겨진다.
[구속받은 자의 삶의 원칙]
구속받은 자는 삶이 달라진다. 삶의 형태가 선을 추구하며, 하나님이 주신 삶을 소중히 여긴다.
그는 삶 속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나아가는 일관된 그림의 삶을 갖는다.
구원받은 신자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선을 행하며 참고 견디는 것이다.
신자는 그 정체성으로 볼 때, 구속받은 자다.
이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에만 관심을 갖고, 세상에서 요구하는 것들 속에서 살지만, 신자는 육에 속한 것이 우선적인 것이 아니라, 진라를 우선으로 여기고, 진리를 순종하며 산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이 있다.
세상에서 어려움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세상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삶은 더욱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신자들은 그런 어려움을 당연히 여기고, 견뎌간다.
왜냐하면, 이들은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에 대해 마음이 기쁨으로 용기를 얻으며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는 소중한 것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 참고 선을 행한다고 했다.
시험, 어려움을 견디는 것, 한마디로 인내다.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욥은 엄청 인내하는 자였다.
하나님은 욥의 인내로 욥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셨다.
성경은 구속을 받은 자는 끝까지 견뎌서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있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전날까지 불신자였는데, 오늘 믿어서 구원얻었다고 표현하면 안된다.
믿는 자는 그날부터 끝까지 참고 견디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여정을 가게 된다.
히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왜 신자는 참고, 선을 행하며 살까.
왜냐하면, 신자는 그 마음속에 동기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삶속에서 행하는 행위의 방향을 정해준다.
첫째, 영광을 구하는 원칙
둘째, 존귀를 구하는 원칙
셋째, 썩지 않음을 구하는 원칙
이 세가지 원칙이 함께 어우러져 신자가 갖는 하늘을 향한 정해진 자세를 정확히 나타낸다.
[1. 영광을 구한다]
신자가 갖고 있는 욕망 중 가장 수준 높은 것은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어려움을 견디며, 선을 행하며 사는 것.
선을 행하는 것을 생각하니, 불우이웃 돕는 것 생각하는데, 그것은 일부만 포함한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은 성령에 이끌려 행하는 모든 것이다. 신실함, 긍휼함, 의로움, 거룩함, 착함 다 포함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두루 포괄해서 하는 말이다. 성경은 한마디로 경건함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선을 행하며 살면서, 어려움이 있어도 견디며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도, 우리 하나님이 욕되게 되면 안되고, 그분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을 신경쓰며 사는 것이다.
그런 욕망이 없는 사람은 참 신자가 아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이 알려주는 것에 쓰임받는 자들이다.
그분 자체를 나타내는 임무가 있다.
이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 뿐 아니라, 신자 자신의 영광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만, 사실 자신에 대한 영광도 동시에 구하고 있다.
이 영광은 세상의 영광이 아니다.
세상의 영광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것이다.
신자의 영광은 신자가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육신은 아무것도 없이 다 찢겨지고 홀로 남았는데, 그 노력에 대한 부수적 보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에 참여케 하시는 것이다.
이 영광은 세상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내 마음속에서만 그려지고 있다.
이 영광은 우리 삶을 마칠 때까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그날, 신자도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롬8:21,30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인류는 피조물의 대표로서 완전히 육신을 벗고,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기다린다.
우리가 아직 이 땅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마음을 씻고, 성령이 거하시는 심령의 구원은 있지만, 아직 육신은 구원되지 않았다. 그러나 육신이 구원되는 날, 하늘에 오르면 최종목표에 도달한 것이다.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살후2: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어려움이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있다.
이 고난을 견뎌가야, 영원한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영광을 받는 날, 내가 나를 볼 때, 무엇을 볼까.
그날은 내가 완벽해지는 날,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똑 닮아 있을 것이다.
시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빌3:20,21
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이렇게 하여 구속받은 신자는 선을 행하며 참고 세상을 견딘다.
[2. 존귀를 구한다]
여기서 존귀는 자신이 존귀를 얻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사람들은 자신을 존귀하게 하는 것에 몰입되어 있다.
누가 나를 낮출까봐 사납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이다.
이런 존귀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존귀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주님으로부터 귀하다 여김을 받는 것이다.
엄청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고전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함을 얻으면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요4:44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히5:4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존귀는 하나님이 부르신 자가 받는 것이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후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계5:12,13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헨델의 메시야를 보면, 그 가사 가운데, 존귀, 영광, 찬송 많이 나온다.
계시록은 이 세상 마지막에 일어나는 국면을 드러낸다.
그날은 주님께서 존귀를 받으신다.
벧전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너희에게는 귀한 분이지만, 사람들은 버렸다.
이렇게 신자들은 자기들 마음에 존귀를 구하는 자세가 있다.
그래서, 참고 선을 행하며 살아간다.
[3. 썩지 아니함을 구한다]
신자는 썩지 아니함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참고 선을 행한다.
모든 것이 썩고, 없어지지만, 썩지 않는 것이 있다.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사람도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썩지 아니함을 드러내실 것이다.
불멸은 영생의 다른 표현이다.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은 다 썩는다. 썩은 것은 절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참 신자는 참고 선을 행하며 사는데, 세상사람들은 이해못할 것이다.
신자는 영생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썩지 아니함이 있다면, 소중히 만들어갈 것이다.
참 신자는 이런 세가지 면이 나타난다.
[참 신자의 삶의 방식은 영생의 특질]
신자의 삶의 세가지 특질은 이렇게 해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다.
제3자 입장에서 신자의 공통된 것을 보고, 묘사한 것이다.
신자가 일생 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세상에서 갖고 살도록 한 그분의 특성이다.
그분 자신의 성질, 특성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은 영생으로 현실화하여 선물로 받게 된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특성, 하나님 자신의 특성과 너무 흡사한 것이 그 사람의 삶에서 일구어가는 성질이었을 때, 그 성질에 맞는 영구적인 현실을 부여해주신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된다.
영생은 그저 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품고 있지만, 분량보다 질이다.
믿지 않는 자도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죽으면 끝이 아니다.
살후1:8-9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불신자든 신자든 절대 소멸되지 않는다.
영원한 사망과 형벌도 이어진다.
계14:10-11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그런 면에서 그들도 영생이긴 영생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영생은 아니다.
[영생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갚으신다]
구속받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이 그속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삶이 그 삶속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
바울은 자기 육신의 생명은 주님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특성을 갖고 사는데, 이 자들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영생의 현실을 주신다.
롬2:7-8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갚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본질적 성격을 거울처럼 받아 비춰준다.
참고 선을 행하는 것.
진리에 따라 사는 것.
최후의 날 평가를 받는 대상은 참고, 선을 행하며 사는 삶이다.
그리스도 닮은 특성에 대해서, 평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자는 이 세상에서 합당한 행실을 갖고 살았는데, 그 삶에 대한 보응은 천국의 영생이다.
사람이 예수 믿는 날, 회개하고 돌이킬 때, 생명이 주어졌다.
그 생명은 영원히 사는 생명이다.
사망이 제거되고, 멸망의 길에서 건짐이 되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졌다.
심판 이후 받게 되는 생명은 영원히 천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삶의 권리다.
참고, 선을 행하는 것은 믿는 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강제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영생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자가 마치 무기한 숨을 참고 있을 수 없듯이, 안할래도 안할 수 없다.
이것은 호흡과 같다.
그런데, 우리 삶이 각박히 굳어지면, 막혀 있다.
영생에 대한 갈망이 없이 행하는 삶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다.
또한 선을 행함 없이 영생을 꿈꾸는 것도 헛된 망상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처럼 행함으로 심판받는다.
심판을 받을 때, 우리에게 부여될 진짜 영원한 삶은 열망하고, 열망하며 추구할 영원한 운명이다.
[믿는 날에 순종의 책임은 시작]
믿고, 돌이킬 때, 주님은 그에게 가장 먼저 순종을 물으신다.
이제 네가 순종하겠느냐.
예수 영접할 때부터는 순종의 책임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순종은 반드시 행함으로만 실천할 수 있다.
영생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는 순종이다.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이 영생으로 이끄시는 역사이고, 그 자체로 놀라운 역동성을 일으킨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은 자유하다고 했는데, 죄를 짓는데 자유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주의 몸된 교회를 공격하고, 대항하는 것, 그런 아이디어 자체를 절대 생산하지 않는다.
불의에서 풀려나고, 그 자유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역량도 만든다.
오늘 말씀은 다른 말씀과 같지 않고, 영생이 시작될 시점에서 신자들의 삶이 이럴 것임을 관찰하고 말했다.
지상에서 행한 모든 행위의 증거에 따라 영생이 주어질 것이다.
오늘 선한 행위는 구원받은 증거인데, 이에 따라 영생이 주어질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만 말하고 있다.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성도들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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