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22주일 [악을 행하는 자와 선을 행하는 자]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롬2:8-10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 땅에서 살면서, 악을 행하며 사는 자에게는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보응이 있을 것이고, 선을 행하며 사는 자에게도 또한 하나님의 보응은 반드시 있게 된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기초적인 진리다.
그러므로, 만약 누구든지 이 땅에 살면서 자기가 한 일들을 누가 알랴 생각한다면 아주 잘못된 것이다.
모든 사람의 행실에 대해서 그에 따른 보응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자의 행실을 지켜보실 뿐 아니라, 기억하시고, 심지어 기록까지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지막 날 심판을 위해서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굽은대로 끝나지 않고, 아주 정의롭게 펴지게 될 것이다.
또,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람은 자기는 교회에 착실히 다녀서 최후의 심판의 날, 하나님께서 좋게 보실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옥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 사람은 자기의 종교적 정체성, 사실은 사회적 정체성으로 자기는 기독교인이라고 할 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면제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기독교인이라는 신분을 가졌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에서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면서, 불의를 행한 자에게는 결코 유리하게 작용되지 않는다.
[오직 두 부류의 인간만 존재]
오늘 본문에는 두개의 그룹을 비교하고 있다. 선한 행실로 사는 자와 악한 행실로 사는 자.
롬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선한 행실로 사는 자는 선한 행실을 통해, 자기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영생으로 대우하신다.
반면, 악한 행실로 사는 자는 그 행동으로 자기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롬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이들은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행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노와 분으로 대하신다.
이들은 삶을 사는 성질이 악한 요소들이 많다.
이들은 다른 말로 하면 구속받지 못한 자다.
[구속받지 못한 자들의 특징]
이들 삶의 근본적인 특징 세가지가 있다.
[1. 당을 짓는 자, 이기적 야욕에 이끌려 사는 자]
당을 짓는 자의 성질은 야욕에 이끌려 산다.
당을 짓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속에 담고 있는 몇가지 고약한 의미가 있다.
이 단어는 원래 헬라어에서는 어디서 파생되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정리해서 말하자면, 이기적 야욕에 차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다.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 더러운 욕심으로 사는 자, 또는 자기 분수보다 더한 욕심을 품고 있는 자.
이들의 특성은 항상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욕심에 갇혀 있어, 매사에 거기에 몰입되어 있다.
항상 자기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주위를 노리고 있다.
돈을 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건전한 것, 참된 것은 아무 상관없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따진다.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성경에서 자주 묘사하는 악인이라는 정체에 딱 들어맞는 묘사다.
중생하지 않은 기본적 문제는 육신적 욕심에 단단히 둘러싸여 몰입된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리는 있을 수 없다. 진리에 관심이 없다.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그에게는 자신의 육신만 있을 뿐이다.
당을 짓는 자라는 번역 속에 숨어있는 의미는 야욕에 찬 사람이라는 특성이 있다.
두번째로 당을 짓는 자의 의미는 투쟁한다는 의미도 있다.
매사에 자기의 더러운 욕심을 채우기 위해, 트집을 잡고, 싸우려드는 특성이다.
그런데, 왜 당을 짓는다고 표현했을까.
다른 성경 번역에는 당파, 논쟁, 다툼,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 자기만 생각한다고 되어 있다.
당을 짓는다는 것은 이기적 야심이 가득해서, 그 속에 몰입되어 살면서, 매사에 싸우며 시비거는 사람이 자기 패를 만들어 거짓소문, 악의, 선동, 반역하여 그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자기가 패권을 차지하려고 하는 인간의 일반적 습성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단어다.
우리는 이 단어가 갖고 있는 내용을 알면 되겠다.
고후12: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갈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약3:14,16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다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집에 와서 물건 가져가려고 하는데, 그냥 가져가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 짓는 자는 구속받지 못한 자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다.
[2.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
이들은 진리에 따라 살지 않는다.
지난주에도, 오늘도, 다음주도 교회는 다니지만, 진리는 순종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공격적인 수단도 주저하지 않는 기질이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길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길을 몹시 싫어한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반대쪽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리를 불순종하는 삶을 추구한다.
이 사람은 진리를 불순종하는 삶을 산다.
그런데, 그는 자기는 진리를 반대한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진리를 반대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진리를 반대한다고 하면, 빨리 상대방에게 되받아쳐서 피한다.
나도 엄청 상처받고, 싸웠다.
그 사람의 명확한 행동을 보면, 진리를 불순종하고, 거역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다.
영적 반란은 인류에게 처해진 현실이다. 모든 인류가 영적 반란을 하고 있다.
인류 타락의 핵심이다.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영적 타락으로 인해, 계속 하나님께 반역한다는 증거가 계속 드러난다. 도덕적으로 드러난다.
구속받지 않은 사람은 본성에 이끌려 산다.
본성에 끌려가서, 하나님을 반역한다. 이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원수다.
우리 모두의 본래 성질이다.
우리는 반역자, 반란자였다.
[3. 불의한 삶의 방식으로 사는 자]
진리에 순종하지 않으면 불의에 순종하는 것이다. 진공은 없다.
이것이 성경적 사고다.
이들은 불의한 행실로 행하며 살고 있다.
불의로 산다고 하니까, 매사에 건달처럼 대놓고 악행을 휘두르며 사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착한 척 한다. 하지만 불의한 세상방법을 자기도 적용하며 산다.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산다.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팔아버린다.
오늘날 대부분이 그렇게 산다.
교회는 천국의 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 교인들이 세상법정에 교회를 고발하여, 세상심판을 받게 하고, 그래서 붕괴되길 바란다.
이런 발상은 아직도 세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불러왔다.
자기 목자를 세상이 심판하도록 마음을 자극하고, 거짓증언하고, 선동한다.
이것은 그냥 불건전한 나쁜 행위가 아니라, 반기독교, 반역이다.
이 경우는 지옥행이 단번에 확정된다고 되어있다.
히브리서, 베드로서, 복음서에도 암시되어 있다.
더 이상 회개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영적인 면에서는 진공상태가 아니다. 경건하거나, 경건치 않거나 둘 중에 하나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중간은 없다. 어떤 사람도 자기 주인이 없는 경우는 없다.
하나님이 그의 주인이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중립은 없다.
미정, 잘몰라서? 중간은 없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고, 그 주인이 그를 죄의 삶으로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진리를 순종하는 삶이다.
반면, 다른 주인을 섬기는 삶은 죄에게 순종하는 삶이다.
이기적 야욕에 사로잡힌 자들은 진리에 순종하길 싫어한다.
그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에 마음이 조급해 있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다.
이런 것은 진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거부한다. 이들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보응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지옥에 가는 길은 이렇게 명확하게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것을 반대하는 영이 휘두르는대로 사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된다.
구원받지 않은 자는 이기적 야욕에 가득차서,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다투는 일에 가세하고, 당을 지으며 세력을 규합하는데, 협조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가 하나님과 적대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원수됨으로 표현한다.
[노와 분으로 보응하시리라]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노와 분으로 보응하시리라.
노는 화내는 것 중에 제일 센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다 소진되고, 그동안 누르고 있던 분노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구속받지 않은 자, 회개치 않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끝나고, 터지는 것이다.
그래서, 최후의 전무후무한 분노가 나오는 것이다.
행실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 하나님의 원수됨을 증명하는 자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어떤 악한 행위 때문이라기보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은 노로 인해 숨을 난폭하게 쉬는 것을 말한다.
과거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때, 바로 왕이 분으로 좇아온 것에 사용된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심판의 날, 하나님의 분은 폭발할 것이다.
모든 반역하는 인간들을 향해 폭발하고, 퍼붓고, 해소될 때까지 쏟아부을 것이다.
[악인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라]
본문에는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환란과 곤고라고 간략히 말할 뿐이다.
환란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박해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유대인들이 초대교회를 박해하는 것, 바울이 박해받는 것, 아마겟돈의 대전쟁 등을 환란으로 표현한다.
외부에서 고통을 가하는 것이 환란이다.
반면 곤고는 내적인 고통을 표현한다.
곤고 단어 자체는 장소가 협소한 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이 감금을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풀려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감금되는 것을 생각하기도 한다.
환란과 곤고는 굉장히 소름끼치는 것이다.
그러나, 지옥은 그렇게 고요하고, 잔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순간 외적인 충격이 쉬지 않고 찾아오고, 내적인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옥은 한순간도 고통이 멈추지 않고 영원히 펼쳐진다.
[유대인을 먼저, 이어 헬라인을 심판한다]
헬라인은 유대인이 아닌 모든 자를 표현하는 말이다.
심판의 날에는 모두 심판받는다. 유대인도 받고, 헬라인도 받는다.
이방인이 받는 심판은 다른 성격일 수도 있다.
아무튼 유대인은 더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심판도 엄격하고, 형벌도 더 극심할 것이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모든 인간이 심판받는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 영광, 존귀, 평강이]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영광, 존귀, 평강을 주신다.
롬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영광은 하나님만 누리시는 것인데, 그날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도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존귀는 세상에서 아무리 무시받아도, 주의 나라에서는 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평강은 주의 나라에서 영원히 평안을 누릴 것이다.
이 땅에서는 거의 누릴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영원히 평안을 누릴 것이다.
영광, 존귀, 평강 세가지는 하나님께 속한 자의 특성이다.
이 땅에서도 이런 놀라운 축복이 약속하고 있고, 감돌며, 힘을 주고 있다.
이들은 이 땅에서 선을 행하며 산다.
구속받은 자로서의 증거가 계속 나온다.
기독교인들도 절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은 절대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암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사랑했던 것만큼 형벌도 클 것이다.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면, 그 나라도 저주 받는다.
이쯤 되면, 우리는 희망이 있는가 생각이 들 것이다.
[선한 행실은 주의 주시는 능력]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로운 행실은 원래 인간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신자라도 절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선한 행실 흉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절대 못한다.
신자가 자기 행실을 통해 구원의 상을 받을 수 없듯이, 신자라도 자기 힘으로 선한 행실을 할 수 없다.
합당하지 않은데, 은혜로 받듯이, 신자의 거룩한 행실도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다.
참 구원받은 자는 오히려 잘 할 수 있다.
신자의 삶속에 역사하는 성령이 능력을 주시므로, 신자는 잘 할 수 있다.
의를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를 내 주, 내 구원자로 신뢰하는 마음을 통해, 그 의가 우리 속에 들어오고, 성령은 그것을 지키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간절한 자세를 가질 때, 성령이 은혜로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
나는 오직 주의 은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주의 진리를 사랑하고, 순종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의를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소서.
주가 베푸시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얻기 바란다.
예수를 의지하고, 회개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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