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No11 마음에 새겨진 율법(260308)

lks8284 2026. 3. 8. 17:38

260308주일 [마음에 새겨진 율법]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2:13-16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이 세상 끝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 각각 나와서, 공정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 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기준으로 평가받고, 거기서 불의한 자로 판명이 된 자는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

그 시점 이후, 영원한 운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 때 심판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불신자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애초에 율법을 받은 적도 없는데, 율법의 잣대로 왜 평가받아야 하는가.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끼리만 율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내게 율법의 잣대를 들이밀며 심판하느냐고 할 것이다.

본문은 이런 질문을 가정해서, 오늘 주시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도 이런 것에 대해 대답해야 할 것이 있다.

말씀을 많이 들었어도, 행했느냐, 행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있지 않다.

이미 구원받았으니, 굳이 해야하는가 생각한다.

율법은 꼭 모세의 십계명만 한정시킬 것이 아니다.

문맥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 위해, 여러 주 말씀을 이어오고 있다.

이 세상 끝에 우리는 어떤 운명을 맞는지 알기 위해 하고 있다.

상당한 분량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듣는 자란 누구?]

이방인은 율법이 없지만, 우리는 가진 자들이다.

율법을 가졌다고 안전할까?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우리 중 누가 의롭다함을 받을까.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오직 행하는 자다.

본문에 듣는다라는 단어도 다른 단어를 썼다.

새소리, 자연의 소리, 이것은 그냥 듣는 것이다.

엄마말 들어 라는 말은 듣고, 행하는 의무가 있는 단어다. 본문은 이 단어를 쓰고 있다.

대학은 청강생과 수강생이 있다.

수강생은 듣고, 익혀야 하고, 반드시 시험을 본다.

그러나, 청강생은 거기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교수의 강의를 듣든지, 딴 생각을 하든지 상관없다.

그래서, 그들은 시험도 보지 않는다. 듣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강생은 듣는 것에 대해, 반드시 합당히 요구되는 일을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사실 수강생에 해당되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청강생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경은 읽지만, 그냥 들러리로 여겼다.

회당에서는 성경이 아닌, 자기들의 유전을 공부했다.

성경은 회당에서 한번 읽으면 끝이고, 거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성경은 그냥 헛것이었고, 성경이 아닌 다른 책을 공부했다.

유대인들은 귀로만 듣는 것으로 끝났다.

예수님은 그들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라고 강력히 비판하셨다.

유대인들의 그런 전통은 예수님, 사도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나님은 듣기만 하는 자들을 합당치 않게 여기신다.

일단 들었다면, 순종해야 하는데, 순종하지 않으면, 들은 것은 행해야 할 책임만 늘어난다.

들으면 들을 수록 심판의 형벌도 점점 커진다.

아쉬운 것은 유대인들의 문제만 아니다. 그런 유대인들의 잘못된 습성은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듣는 것을 굉장히 멋있게 생각하고, 그 이상은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일주일간 자유롭게 산다.

듣는 것이 최종적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1:22-24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진리를 듣는데,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행함이 없는 것은 사실상 말씀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말씀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말씀을 그렇게 대하면 안된다.

말씀은 내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말씀 따로, 나는 따로, 모든 면에서 자기가 주인처럼 행동한다.

말씀을 자기 잣대로 판단한다. 설령 말씀이 와도 믿지 않거나, 참으로 받지 않는다.

그리고, 행동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말씀을 행동으로 옳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불순종하는 자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람은 많이 듣기는 하지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의 날 자기에게 매우 불리하다.

7:24-2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주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있고, 행하지 않는 자가 있다.

주님은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명확히 경고하셨다.

심판의 날, 주님의 경고가 생각날 사람이 무지 많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행하기 위해 주어져 있다.

[율법을 행하는 자란 어떤 자?]

율법을 행하는 자는 자신들이 율법을 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다.

참 구원받을 자들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율법을 순종하려고 하는데, 쉬운 것 같지만,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지옥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한다.

예수께 오는 자들은 율법을 행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이 사람은 주님과의 관계가 옳게 된 자다.

율법을 잘 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주께서 계속 도우실 자다.

순종하는 자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을 순종해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율법을 행하는 자세다.

순종하는 자는 이미 의로운 자로 인정받은 자다.

인정받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태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진정 구원받은 자는 그가 순종하는 사실에 의해서, 구원받은 사실이 드러난다.

구원받지 않은 자는 순종하지 않는다.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심판의 날, 의로움이 판명된 자로 빛이 날 것이다.

원래 정직하고, 의로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의롭다고 하신 자들이다.

이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받은 이후부터 순종한 자다.

순종하는 모습이 그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내내 드러낸다.

[왜 이방인은, 율법이 없는데, 정죄받을까?]

이방인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 속에 율법이 있다.

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처럼 기록된 율법은 받지 않았어도, 마음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세상의 삶을 살면서,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한다.

이들은 자연계시에 노출되어 있다. 하나님을 못볼 수가 없다.

이들은 또한 본능적으로 자기들의 영적 실상을 알고 있다.

이들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영적 실상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굉장히 어두운 것이다.

나는 죄가 있다. 내 생애 뒤는 굉장히 어두울 것이다. 너무 무섭다.

이런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영적인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의 경우는 이방인은 유대인이 아닌 자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성경 용어로 하면 길을 잃은 자들이다.

불신자는 멸망한다.

첫째,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데도, 자기는 모른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을 배척했다는 정죄를 받는다.

둘째, 그들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에 의해서 정죄받는다.

불신자들 중에도 선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나도 교회에서 엄청 상처받았는데, 바깥의 착한 사람을 만나 위로받는 경우도 있다.

불의를 행하지 않고, 긍휼함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도 많이 있다.

그런 행위들 속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고 있다.

세상 법적 시스템에도 하나님의 공의의 성격이 많이 들어있다.

거기에 부도덕, 불의 나쁜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어느 문화권도 더럽고, 악한 것은 나쁘다고 되어있다.

악한 것이 선한 것이라고 헷갈리게 되어있지 않다.

성경의 가르침과 어느 정도 함께 가고 있다.

세상사람들도 그것이 선한 일인줄 알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지식을 본인이 알고 있다.

이방인들은 그럼에도 하나님께 오지 않기 때문에, 정죄받을 것이다.

착한 일을 했어도, 하나님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의 날,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지 알고 있는데도, 외면한 것에 대해 정죄받을 것이다.

[이방인은 양심의 증거로 정죄]

이방인은 기록된 율법은 없어도, 마음속의 양심이 있다.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양심은 율법이 증거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방향이 같다.

율법이 없는 불신자라도 양심이 증거가 된다.

양심의 원뜻은 함께 아는 지식이다.

양심은 혼자의 지식이 아니다.

누구든지 양심이 있는데, 양심이라는 단어의 개념자체가 말해주는 것은 인류 모두에게 양심이 있다는 것이다.

함께 나누고 있는 지식이 증거가 되어,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양심은 주관적이 아니라, 상호인식이다.

그래서, 편향되지 않고, 정당하다.

양심은 객관성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다.

[너무나도 중요한 양심의 감수성]

물론 각 사람에게 양심은 같지 않다. 양심의 감수성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접한 사람은 양심의 감수성이 예민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와 저항하는 자의 양심의 감수성은 큰 차이가 있다.

문둥병에 걸리면, 피부가 녹아내리는 증상으로 설명했는데, 나중에는 감각이 없다는 것에 무서운 핵심이 있다고 알려졌다.

양심을 저항하니까, 감각이 없어진다.

양심이 완전히 멈추게 된 경우는 이단과 배교자들이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이단과 배교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자꾸 왜곡한다. 처음에는 양심이 찔리는데, 나중에는 찔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단은 가장 무서운 것이다.

배교자들이 교회를 파괴하면서도, 정당하다고 하려면, 진리에 역행하는 사실을 정당화해야 한다.

양심을 너무 많이 역행한다. 그러니까 양심이 무뎌지게 된다.

양심이 아파야 대처를 하는데, 아프지 않으니까 대처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인도하기 위해, 양심을 사용하신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자기 양심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양심의 인도에 충실하라고 했다.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고전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바울은 또한 다른 신자들의 양심도 존중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양심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 부숴도 된다. 목사 끌어내려야 한다. 괜찮아. 해도 된다.

이런 것들이 남의 양심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나중에는 무뎌져서, 진짜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내 양심으로 하나님께 죄송합니다 하면서 다가가는 것이다.

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내 양심이 나를 바로 세우도록 성령이 도우신다.

양심 필요없다고 하는 교회는 당장 떠나야 한다. 대단히 위험하다.

양심이 죽으면 구원도 없고, 끝장난다.

[생각(추론)에 의해 정죄된다]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위의 구절의 생각은 양심에 근거가 있다.

양심에서 가져온 정보를 생각으로 다투고 있다. 불신자라도 이런 능력은 다 갖고 있다.

예수를 믿던, 믿지 않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정죄를 피할 수 없다.

죄인줄 알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형벌받는다.

[결국 그 누구도 정죄를 피할 수 없다]

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동기를 분석하여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원칙중 중요한 것은 동기를 보시는 것이다.

무슨 속셈으로 그런 일을 했느냐. 원인을 찾으신다.

그날에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

아무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보신다.

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위가 참인지, 아닌지 잘 아신다.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고 했는데, 하나님은 그 동기까지 다 아신다.

사랑과 긍휼로 했는지, 악한 속셈으로 했는지 다 아신다.

대상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하나님은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다 아신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139:1-3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6:4,6,18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은 네 마음을 다 아신다.

어떤 사람은 착한 일을 하는데, 사실 자기를 유리하기 위해서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착한 동기]

교회에서 나에게 친절하게 하는 사람 많았다. 나중에는 나를 등쳐먹으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동기, 그분의 능력으로 갖는 동기가 중요하다.

다윗왕은 살인도 하고, 악한 행위를 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을까.

다윗은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했다.

동기가 하나님께 있다.

반면 가룟 유다는 어떨까.

가룟 유다는 착하고, 종교적으로 올곧다. 그런데,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주님을 버렸다.

예수를 위하는 동기와 내가 옳다는 동기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 교회도 세상적 동기가 와서, 영적 동기를 버리고, 교회를 혼란시켰다.

동기까지 보시니까, 누구도 하나님 앞에 살아남을 자가 없다.

나는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당신은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주께 나와서, 회개하며, 주님의 사랑받지 않으면 절대 희망이 없다.

자기 능력은 포기하고, 설마 잘 되겠지 요행은 포기하고, 주를 의지하고, 주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여, 내가 주의 말씀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나를 관리하는 자들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