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301주일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심판]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롬2:11-12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사람들은 어떤 개인들이 가진 높은 사회적 지위나 개인적 성취에 대해서 매우 열광한다.
사람들은 남보다 뛰어난 면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기 떄문에, 하나님도 사람의 뛰어난 면들을 높이 평가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도 유리한 입장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 추측대로일까.
여기에 초점을 가지고 말씀을 나눌 것이다.
[공정성]
하나님의 심판에서 적용되는 원칙들을 우리가 몇주째 다루고 있다.
오늘 다룰 요소는 하나님의 공정성이다.
어떤 특정 개인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으신다는 원칙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 조건으로 차별대우 하지 않으시고, 오직 정당한 심판만 하신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사전지식에 의해서 배려하고, 유리하게 판결하지 않으신다.
누구는 애초에 좋은 시선으로 보고, 누구는 나쁜 시선으로 보면서 차별적인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
외모로 사람을 취한다는 표현은 성경에 많이 나타난다.
이 단어의 원문은 얼굴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우리 성경에도 원어에 가깝게 외모로 사람을 취한다고 표현했다.
이 단어는 특별히 재판장에 대해서 잘 쓰여진다.
재판장이 피고인의 행위 자체나 동기를 파헤치기보다는 당장 그의 외적인 모습에 관심을 갖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피고의 사회적 지위, 인지도, 외모, 학력으로 보게 된다면, 그 심판은 편견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 편견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정은 공의롭고, 편견이 완전히 배제된다.
오로지 사람의 진심을 보시며, 그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하신다.
재판에 있어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다.
세상 법정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정의를 구현하는 법정의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
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왼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정확하게 저울질해서, 판단하고, 저울질한 결과에 따라, 정의의 검으로 엄중하게 형벌을 시행한다.
그런데, 정의의 여신상의 눈은 가려져 있다.
그래서, 심판받는 자가 누구인지 외모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피고를 부당하게 옹호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편파적인 판정하지 않는다.
[겉모습에 영향을 받는 인간습성]
그러나, 사람의 법정에는 편파적인 편견이 많이 있다.
심판받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심판의 결과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하나님도 심판하실 때, 편파적으로 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도 많이 봐서, 학습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모든 세세한 것까지 다 아실 뿐 아니라, 완벽한 의도 갖고 계신다.
그래서, 오직 공평한 재판만 하신다.
그래서, 그가 내리신 심판은 결점이 없는 완벽 그 자체다.
어떤 사람이 사회에서 가졌던 경력, 업적도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사람의 외적인 조건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의 예로서 루시퍼의 예를 들 수 있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 가장 뛰어난 자였다.
그는 그 자체로 너무 훌륭해서 드높여졌다.
그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그가 하늘에서 얼마나 높이 찬사를 받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루시퍼는 변질되었다. 이제는 자신을 그를 창조하신 분보다 높이고, 겨루려는 야심을 가지게 되었다.
누가봐도 칭송을 아끼지 않는 하늘에서 가장 높은 자였지만, 그는 하늘에서 쫓겨나 음부로 밀려났다.
가장 높았던 자가 가장 낮은 곳으로 던져진 것이다.
그만큼 높았다면, 저렇게 낮아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피조물로서 누구와도 비길 것이 없는 자였지만, 그런 엄청난 호의를 누리고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하여, 오히려 더 많은 책임을 추궁받는 자가 되었다.
그가 받은 축복 때문에, 그는 지옥에서 어떤 피조물보다 더 큰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천사장 루시퍼도 절대적 하나님의 공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인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원칙에서 제외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유명한 목사라고 해서, 큰 성취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공정한 잣대가 바뀌지 않는다.
교회에서 높은 직분, 장로, 권사, 기관장했다고 해서, 오래 교회 다녔다고 해서, 심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는 교회 바깥에서 유명한 사람, 업적을 남긴 자라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에 있어서, 나은 대우를 받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던 배경은 오히려 심판의 날, 더 엄중한 책임을 받게 될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으로서 물려받은 습관이 개념화되어 있었다.
그는 고넬료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고넬료는 이방인인데, 꿈에 천사가 나타나 지시하여 베드로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원치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다른 시각으로 보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지켜보셨을 뿐 아니라, 축복하기 원하셨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존중하고, 마음으로 간구하고 기도하던 자였다.
우리 시대로 보면,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교회를 사랑하던 자였다.
하나님은 그런 고넬료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역사하시려는 의지를 보이셨다.
행10:34-35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는 이것을 발견하고,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되었다.
유대인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갈2: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바울은 이 세상에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굴종적이지 않았다.
갈6:7-8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심은대로 결과를 얻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떤 지위를 가졌던,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세상에서 많이 누렸다면, 그 조건은 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된다.
엡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골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이와같이 신약성경 여러곳에서 하나님의 원칙을 잘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
우리 교회에도 자기 외적 조건 때문에 하나님 앞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자기가 사회지위가 있으니까, 하나님도 좋게 보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회에서 이정도인데, 교회에서는 더 좋아야하지 않겠냐며 엄청 고약스러운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오직 그의 의에 의해서 공의롭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방인에게도 심판의 기준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 사람의 조건을 다 고려하신다.
세상에는 율법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두부류가 있다.
율법이 있는 자는 이스라엘이고, 율법이 없는 자는 이방인들이다.
율법이 있는 자들은 율법에 따라, 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자들이었다.
율법이 없는 자들은 이스라엘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율법을 순종하여 행할 기회가 없었다.
바울은 양쪽의 영적 환경을 참작하여 심판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을 가진 자들은 율법대로 심판받고, 율법이 없는 자들은 율법 없이 심판을 받는다.
기록된 율법이 없기 때문에, 율법으로 심판받지 않고, 다른 기준으로 심판을 받는다.
이방인들이라고 해서, 심판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들은 율법에 상응하는 양심의 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
이방인이 하나님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들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 감각이 없지 않고, 잘 알고 있다.
모든 인간들은 이 세상 곳곳에 도사려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못보고 지나칠 수 없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크고 작은 만물속에 있는 증거를 통해 하나님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영원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다 드러나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율법이 없어도, 심판의 기준이 없어서, 심판을 못받지 않는다.
그들도 죄 때문에 망한다.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은 없을지라도, 한정된 지식의 분량만큼 심판을 받는다.
이방인은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절대 제외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죄를 범했더라도 심판을 면치 못한다.
율법과 견줄만한 자기 마음속에 있는 양심의 법이 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자기 마음 속에서 말해주고 있다.
또한 자연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만한 자연계시가 있다.
이런 증거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몰랐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
[망한다는 것]
그러므로, 율법이 없어도, 망하게 될 것이다.
망한다는 것은 소멸을 말하지 않는다. 상태가 폐허가 된 것이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지옥에 멸한다는 의미가 망한다는 의미다.
망하는 자는 지옥에서 망한다.
지옥은 모든 것이 소멸되는 곳이 아니다. 소멸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없어지지 않으니까 문제다.
육체도 살리고, 정신도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고통받는다.
마13:42,50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인간은 애초에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버렸다.
그래서, 멸망이 온 것이다.
자기들의 존재 이유를 배반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부르시는데, 그 부르심을 거절하고, 회복할 기회를 거절한다.
그러면, 회복할 기회는 영원히 잃게 된다.
그들이 복음을 거절할 때, 원래 받았던 정죄가 그대로 살아있고, 거절한 자체가 멸망받기에 합당한 증거가 된다.
[기독교인의 상황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관리하는 직분을 부여받았다.
엄청난 축복이다.
그들은 큰 잇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들은 그 책임을 감당하지 않았다.
눅12:47-48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그들은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위의 구절은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다. 나는 항상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를 신뢰하고, 책임을 맡겼는데, 그 책임이 크면 클수록 형벌도 비례적으로 커진다.
하나님께서 신임하고, 맡겼는데, 배반하면, 그 형벌도 그만큼 크다.
율법을 받고, 율법 아래서 죄를 범한 자들은 그 율법이 판단 기준이 된다.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율법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이다.
율법은 의가 무엇인지, 불의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지식을 전달해 주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그런 지식이 없으니까, 부족한 지식대로 심판받는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만큼 더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될까.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은 카테고리에 있다.
그런데, 사실 유대인들보다 더 위험하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었지만, 기독교인들은 율법과 복음을 다 알고 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추궁받게 될 것이다.
이 원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이미 언급하신 바 있다.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 더 많이 이적을 행하셨던 도시들이 있다.
고라신, 벳세다 등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고, 이적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율법도 받았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직접 만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배척했다.
마11:20-23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심판의 날 더 큰 책임을 받게 될 것이다.
두로, 시돈, 소돔은 악한 도시인데, 심판의 날 오히려 고라신이나 벳세다보다 낫다고 하셨다.
사랑받았지만, 배반한 자가 더 큰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배교자가 무서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배교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배교자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았던 자였지만, 궁극적으로 등을 돌려 주님을 저버린 자다.
배교자는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기독교를 버린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는 여전히 기독교 신자라고 하지만, 속은 배교자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 많이 보았다. 지금 말하는 중에도 그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간다.
히6:4-6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10:26-31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자기들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히브리서에 명확히 묘사하고 있다.
너무 충격적인 말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지나간다.
예수의 진리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애초에 받지 않았던 자보다 훨씬 큰 책임을 받게 된다.
애초에 믿지 않았던 자보다 배교한 자가 더 큰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범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심각하다.
[유일한 소망]
로마서 앞장에서는 아직 복음의 소망 부분을 충분히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
나 죄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가망이 없다.
이것이 왜 예수를 의지해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다.
우리는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다.
예수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유일한 소망이다.
우리 자신을 아무리 둘러봐도, 더럽고, 멸망받기에 마땅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공받은 자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한시도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한 최고의 긍휼의 결정이다.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다.
유일한 기쁨이고, 가장 유일한 소망이다.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할, 우리의 구원 예수시다.
예수는 우리에게 입히는 하나님의 의의 옷이다.
우리 자체로는 할 수 없으니,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죽음에 참여하고, 주님을 꼭 붇들고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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