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1환언(강석준집사님 정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절대 필요한 까닭이 있다.
그냥 듣고 있으면, 다 아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덤불아래, 더러는 옥토에 떨어진다고 하셨다.
여기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길가에 떨어진 씨 같은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의 염려와 걱정근심으로 채워져 있어서, 거기에 말씀을 같이 섞는다.
또, 어떤 사람은 돌짝 가운데 떨어진 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어도 뿌리가 없다.
목숨을 내놓고,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이것 이상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이상이요, 나의 주장이다. 이것을 주장하기 위해 목 베임을 받는다.
설교 잘 듣고,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자기 성별을 아는 것처럼 아주 분명해야 한다.
남자에게 여자라고 하면, 그렇다고 수긍할 자가 있는가. 끝까지 남자라고 주장할 것이다.
어떻게 변할 수도 없고, 변명할 수도 없는 진실이다. 이것이 뿌리다.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책을 원래 한권으로 쓰려고 했다.
한권이 너무 두껍고, 몸도 약해서, 반만 쓰고, 나중에 후편을 썼다.
사실 상, 하권이 한권이다. 다 읽으셔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지금은 각 교단이 있어서, 교단마다 그들의 교리가 있다.
말로는 장로교지만, 주장하는 바가 교단마다 각각 다르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신앙이요, 하나님과 아들이 보내주신 성령을 믿고, 순종하는 신앙이다.
거기서 성부만 주장할 수 없다. 아들만 주장할 수 없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를 믿고, 이것이 우리의 주장이요, 이상이다.
우리가 침례 받을 때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 받는다.
이름으로 삼위가 일체되셨다. 그 이름으로 침례 받는다.
성부와 성자, 성신, 삼위를 각각 분리하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도 없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도 아니다.
아버지는 이 땅에 아들을 보내셔서, 아들을 알게 하려고 애를 쓰신다.
아들이 이 땅에 계시다가 하늘로 가신 다음에 공백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금식해도 죽지 않을 만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성령이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믿음이 충만하도록 역사하신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예수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셨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 종의 영들을 보내셔서, 종의 영들을 통해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고, 성령이 우리 속에 오셔서 체험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종의 영들을 보내셔서, 종의 영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영존하신다는 것을 전하게 하셨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호와로 표호 하는 천사가 그들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도 될 수 없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다.
하늘의 충만한 영들이 있다. 미가엘, 가브리엘,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충만한 영들이 하나님을 잘 모시고 있다.
거기에는 생물도 있고, 미생물도 있고, 무생물도 있다.
생물 중에는 움직이는 것도 있고, 고정된 식물들도 있고,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것들을 하나로 축소해서, 담아놓은 것 같은 것이 사람의 몸이다.
하지만, 그림자가 나는 아니다. 내 모형이요, 나에 대한 하나의 비유다.
벽에 가리웠지만, 사람을 보지 않았어도, 그림자를 보면, 누가 오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여호와란 표호를 가진 천사는 하늘에서 부리는 영으로서 곧 하나님의 그림자다.
그것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비유로서는 알 수가 없다. 비유로서는 구원받을 자가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 이상을 모르니까,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순종하고 따랐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이스라엘 신앙을 그대로 따른다.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의 때까지라 하셨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께 침례를 주므로, 율법과 선지자가 거기서 딱 단절된다.
예수께 침례를 주기 전까지는 예수도 율법과 선지자 아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침례를 주므로, 예수가 율법과 선지자로부터 쏙 빠진다.
예수께서 여호와라 표호 하는 천사를 하나님이라고 믿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속에 계시다가, 천사를 통해 보호받던 이스라엘 중에서 나오시는 것이다.
모친에게 붙어서 살던 과거를, 탯줄을 끊으며 벗어나는 것이다.
뱃속에는 자기의 환경이 있다. 뱃속에서는 웅크리고 있어도 다리 아프다, 허리 아프다 하지 않고, 눈을 감아도 답답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속에서 아이를 낳으면, 물리적으로 좀 편하다고 한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물속에서 숨 막히지 않는다. 그런데, 물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공기를 마시면, 다시는 물속에 들어갈 수 없다.
율법과 선지자 아래 있다가, 침례 요한의 침례를 받고, 물속에 있느냐, 물위로 올라오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위로 꺼내면서, 예수와 함께 살았노라 선언한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요한의 침례를 받으시고, 물위로 올라올 때는 다시는 물속에 돌아갈 수 없다.
해산한 여인이 구로한다고 한다. 그 고통은 상상할 수가 없다.
물은 곧 침례, 구원의 표다. 물위로 올라오는 것은 모친에게서 해산한 것과 똑같다.
어린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고통이 엄마의 고통의 배가 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물속에 있는 자, 아직 율법 아래 있는 자였다.
물위로 올라오는 것은 마치 여인의 몸에서 해산하는 아이처럼, 해산하는 여인보다 더 힘들게 두 배의 힘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다.
거듭나야 한다고 할 때, 니고데모는 어떻게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묻는다.
우리가 침례 받아, 물위로 올라 올 때, 느끼지 못해서 그렇다.
엄마의 해산의 고통보다 두 배의 힘을 가지고 애쓰지만, 어린아이가 느끼지 못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본 적이 있는데, 오이처럼 머리가 길쭉해져 있다.
우리가 육체가 있어서, 육체의 감각을 통해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침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오면서, 역사적이고, 인간이 부인할 수 없는 체험을 했다.
누구든지 이렇게 침노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얻을 수 없다.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벗어나기 위해 물위로 올라오신다. 우리도 똑같이 침노한다.
우리는 침례 받을 때, 물속에서 몇 초 만에 올라온다.
엄마가 밥을 해놓고, 밥을 먹으라고 아이를 부른다. 엄마가 다 해놓은 것을 먹는 것이다.
요한의 침례는 율법과 선지자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예수께서 정작 받아야 할 침례가 있다.
예수께서 내가 받을 침례를 이루기까지 그 답답함이 어떻겠느냐 하셨다.
예전에 나는 성냥 통에 있는 성냥을 뚝뚝 잘랐다가 외삼촌께 엄청 혼났다.
성냥을 만들기 위해, 나무가 몇 십 년 자라야 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끝이 없었다.
예수께서 받을 침례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일이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시는 순간까지가 그리스도가 받을 침례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받는 것은 성령으로 받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엄마는 고통을 아는데, 아이는 고통을 모르고 나온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으로 침례받기 때문에, 예수께서 받으신 침례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침례받고, 물위로 올라올 때, 성령으로 침례 받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믿어야 한다.
침례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침례를 준다고 하였다.
너희는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우리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성령으로 받기 때문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성령으로 난 자는 다 이러하다.
우리가 전쟁하는 것처럼 침노를 해서, 솟구쳐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다시 돌아가면)를 범하면, 다시는 속죄할 제사가 없다.
처음 은혜 받았을 때, 성령 받고, 은사도 받고, 방언도 말하고 능력도 나타나면서, 그 기쁨은 굉장하다.
건달노릇하고, 말 안 듣던 청년들이 성령 받고, 변화된 순간부터 굉장히 열심을 내는데, 어느 순간 시험이 들면, 기쁨을 순간에 상실해버린다.
처음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해서 은사도 받고, 기쁨이 충만한 것은 유지하지 않으면, 회복이 안 된다.
처음 시험 들기 전에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가. 그 때는 다 순교할 것 같았다.
그렇게 기쁨이 있었다. 세상영광 다 필요 없고, 주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집이 있어야 할 텐데 하면서 기쁨을 상실하면 절대로 회복이 안 된다. 그저 내려갈 뿐이지, 회복은 안 된다.
다시 회복하고 싶어서, 안수해달라고 해도, 절대 회복은 되지 않는다.
내가 오늘날 열심히 증거 하는 것과 60년전 하던 것과 똑같다.
나는 성령으로 침례 받은 사람이요, 그 때부터 성령의 사람이다.
내 인생을 돌아본다. 정말 다행스럽게, 나는 내려앉지 않고, 처음 살목산에서 얻었던 그것이 지금도 눈에 훤하다.
나는 위로 가야 한다. 세상 것으로 발목 잡힐 필요가 없다.
84년도에 여의도 아파트로 들어가라고 했어도, 나는 가본적도 없고, 계약금만 날렸다.
나에게는 낙원과 첫째부활과 영생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욕을 먹어도, 육체 때문에 감정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낙심하지 않는다.
2017년도 사태 때, 나는 사람들에게 평안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환언 베뢰아를 계속 하면서, 평안하지 않던가.
이제 나는 낙원이 남았고, 첫째 부활이 남았고, 영생이 남았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태자라고 하면, 우리는 왕자다.
내가 오늘날 교인들에게 애써서 말하는 것은 속지 말고, 자기 신앙이 요동치 말라는 것이다.
한번 천국을 침노해서 빼앗았으면, 계속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침례를 받은 후에, 육신이 죽는 날까지 유지해야 한다.
유대 전통은 여아가 13세가 되고, 초경을 하면 결혼할 수 있다.
대게는 신랑 될 사람이 여자의 집에 들어와서, 정혼을 한다.
누가복음에 요셉의 이상은 헬리라고 한다. 본래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다.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이지만, 정혼했기 때문에, 그 이상은 헬리라고 한다.
헬리를 쭈욱 올라가면, 나단을 거쳐, 하나님까지 올라간다.
요셉이 마리아와 동거할 때는 정혼은 했지만, 아직 마리아는 동정녀다.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한 사실이 없는데, 잉태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슬그머니 끊으려고 했다.
그 때, 천사가 꿈에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아들을 낳기까지 요셉은 그 아내와 동침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영혼이 예수님을 알고, 볼 수 있도록 성령이 들어오셨다.
그러면 동정녀로서, 육체를 떠나는 날까지, 혹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정절을 지켜야 한다.
주님이 오실 때, 죽지 않고, 살아있던 자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올라간다.
먼저 죽은 자도 그 때 함께 살아나 공중에서 주를 뵙는다.
우리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동거한다. 그러나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다.
결혼할 때까지 우리는 신앙의 동정녀로서 정절을 지켜야 한다.
주님이 오시기 전, 육신을 떠나면, 낙원에서 동정녀의 영광을 가지고 있다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한다.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 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왜 거짓말이 나오는가. 거짓말의 자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자는 입에서 벌써 거짓말이 나오고, 거짓말을 자꾸 지어낸다.
요일 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우리는 이미 성령이 임하셔서, 혼인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동거하고 있다.
그런데, 신랑이 더디 오시니, 영생이 정말 있는지 헷갈린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육신에 화상이 있듯이 영혼이 마귀로부터 도장이 찍힌다.
요셉이 이제 마리아와 동침해야겠다고 할 때, 마리아가 잉태된 것을 알았다.
의롭지 않았으면 난리 쳤을텐데, 의로운 자라 가만히 끊고자 했다.
정혼기간에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순간에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했다.
고린도교회 어떤 자들이 순간에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했다.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아나니아, 삽비라는 혼이 떠났다. 영이라도 살려주려고.
겉으로 진실하게 보여도, 마음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른다.
일본은 남편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부인이 열심히 섬기다가, 퇴직금 받으면 깎듯히 절하고 떠난다고 한다.
계 14:1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계 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우리에게 재판을 걸었던 사람들이 무고로 벌금형을 받았다.
거짓말하는 자에게 속은 자들이 또 같이 거짓말쟁이가 된다.
디아블로스에서 디아는 이간하다, 블로스는 파괴하다, 창끝이라는 뜻이다.
여러분은 성락 교회를 사랑하고, 원로감독과 감독을 신뢰하여, 진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지금 드러나지 않는가.
좋은 씨를 심었는데, 어떻게 가라지가 났습니까. 원수가 밤새 심고 갔구나.
뽑지 말고, 가만 두어라. 추수 때에 가라지는 불에 던지고, 알곡만 창고에 들이라.
여러분 농촌에서 자라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호밀은 2미터 이상 자란다.
호밀이 자랄 때, 가라지가 옆에 같이 자란다. 가라지는 호밀의 뿌리 틈에 걸고 자란다.
교회 안에도 거짓말쟁이가 있어도, 뽑아내지 않는다. 뽑아내려다가 다른 사람까지 넘어간다.
말씀을 들어도, 이 사람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저 사람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속상해도 뽑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알곡까지 뽑힌다.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 함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그와 동거하는 동정녀로서 혼인날까지 우리의 심령을 지켜야 한다.
겉으로 아닌체해도 속으로 딴 생각하면 거기서부터 미혹에 걸린다.
그러면 회복이 안 된다. 그러면 주님은 거기서 딱 끊으신다.
침례 받은 이후, 신자들은 그와 동거하는 신앙의 동정녀다.
우리는 죽어서 낙원에 들어갈 때까지, 혹은 더 있다가 주님을 만날 때까지 지켜야 한다.
히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다. 다시는 속죄할 제사가 없다.
그 후에 자비를 구할 수 있다고 여기면 큰일이다.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히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았고, 그동안 잘 몰라서, 실수했다고 한다.
진리를 알아야 자유 한다. 자유는 법에 메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방종하다는 것은 아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우리를 일단 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지만, 나중에 보니까 자녀의 자격을 유지하지 못하고 빠져나간다.
종의 영은 마귀의 영이 아니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종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는 미가엘, 가브리엘, 수많은 영들이 있다. 그들이 다 신이다.
막연히 천사를 섬기는 자도 있다. 여호와 이름을 부른 자는 영생을 얻은 자가 없다.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공로와 성령의 증거로 합해진 아들의 이름이다.
그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영, 영생, 하늘이신 분을 아신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 하셨다.
성령이 오셔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알게 하신다.
요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성도들과 함께 아버지 안에 있게 하려고, 아버지 이름을 알게 하려 하신다.
그냥 아바 이름을 알 수 없다. 성령으로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한다.
어떤 외국 학자는 아바를 아빠라고 하는 소리라고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 겟세마네에서 아빠라고 하셨겠는가.
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바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아버지 뜻으로 예수 이름을 주어 보내셨다.
히 1:4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령으로 예수 이름을 의지하고, 그래서 아버지께 상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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